의무병의 환생 15화
천식은 알레르기 반응에 의해 변칙적으로 기도폐쇄증세가 일어나는 질환.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몸 전체에 비하면 극히 적지만, 생명활동의 핵심 중 하나인 호흡을 차단하기에 관리가 잘못되면 사망까지 갈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다.
그리고 알레르기성 질환은 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것.
약물을 통한 일시적인 해방감을 선사하고, 장기적으로 증세를 약화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크흡!"
흡입기를 들이킨 세실이 기침을 내뱉었다.
셰인이 잠시 흡입기를 떼어내며 물었다.
"괜찮아?"
"뭔가, 목이 따끔해요. 막 걸리는 것 같고……."
"효과가 있다는 거야."
처음 투입하는 것이기에 낯선 감각도 느껴지겠지만,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건 어쨌건 몸에서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당장 알 수 없지만.
"계속해도 될까?"
"네, 네."
이후 셰인이 다시 세실의 입에 흡입기를 물려주었다.
"그래, 그렇게 천천히…… 좋아. 너무 급하게 내쉬지는 말고……."
버튼을 누르면 케이스에 채워 넣은 약물이 분출되고, 그 상태에서 흡입기에서 숨을 들이킬 시 협소한 구멍을 통해 약물이 스프레이식으로 기도에 퍼지게 된다.
액체를 들이부을 때와 달리 사례가 들릴 위험도 적은 편.
처음의 낯선 감각에 적응하면 증세가 일어날 때마다 좋은 안정제가 되어줄 것이다.
"어때?"
"……상쾌해진 거 같아요."
"진통효과가 잘 받아서 다행이네."
이물감이 남아 있겠지만, 그것도 몇 번 사용해 익숙해지면 숨통이 훤히 트인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약이 의도한 대로의 효과를 내준다면.
"편해진다고 자주 쓰지는 마. 약물을 너무 과하게 사용하면 내성이 생겨서 효과를 덜 볼 수도 있거든. 뭣보다 이건 시험품이라 어떤 부작용이……."
소견을 들려주던 셰인의 말이 잠시 끊어졌다.
시험품, 부작용…….
절대로 환자에게 해선 안 되는 말이다.
의료라는 것은 환자의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행해야 하는 거니까.
‘망할, 나조차도 나를 못 믿는데 그런 불안한 말을 해서 어쩌자고?’
그런 상황에서 거짓을 고했다 잘못이라도 일어나면, 그건 선의의 거짓말조차도 못 되는 게 아닌가?
"고, 괜찮을 거예요!"
침묵하던 셰인을 향해 세실이 다급히 외쳤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셰인은 자신의 양손을 맞잡은 세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셰인이 열심히 한 건 옆에서 지켜본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어요. 뭘 하는지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또렷이 뜬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세실.
그러면서도 몸은 바짝 굳어져 있다.
"그러니까, 제가 근육이 엄청나게 늘어날 일은 없을 거예요!! 아, 아무튼 괜찮을 거예요! 분명히!"
그건 두려울 법도 하겠네.
하지만 셰인이 걱정하는 건 근육이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존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질지도 모를 터임에도.
"저는 셰인을 믿어요!"
그럼에도 세실은.
당사자인 만큼 불안이 클 터임에도 자신을 위로해 주고자 하고 있다.
그 모습이 한편으론 기특하고, 또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살다보니 환자에게 위로를 받는 경우도 있군.’
자조와 동시에 안도가 느껴졌다.
비밀리에 붙여진 일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건 그만큼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앞으로 상태를 지켜보면서 정량씩 주기적으로 공급할 테니까, 뭔가 이상이 있으면 바로 말해줘. 알았지?"
"네, 네!"
셰인이 어깨를 다독여주자 세실이 힘차게 말했다.
그에 쓴웃음을 지은 셰인이 작업을 마친 방을 정리하는 떼, 세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주변으로 향해졌다.
연금술에 쓰이는 증류장치와 플라스크, 그리고 서적…….
그중 독보적으로 많은 건 다름 아닌 책으로, 하나같이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화학관련’ 서적이었다.
셰인이 말하는 ‘의료서적’이란 게 없기에, 그와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여 필요한 정보를 하나하나씩 습득해 나간 것이다.
고작 손에 쥐고 있는 흡입기 안의 약물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대신해 가문의 혹된 훈련마저 자처해 받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까?’
아버지께서 소개시켜준 약혼자.
1년 전 혼담이 있기 전까진 연도 없었다.
그럼에도 첫 만남에서의 그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가문에도 주눅이 들지 않고, 서로의 관계를 도리어 주도하려 했으며.
‘그리고 나를 구하려고 했다.’
신을 섬기는 이들조차 포기해버린……. 사정을 아는 모두가 연민의 시선만을 보내왔던 자신을.
그러면서도 자신이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심으로 자신의 저주가…….
아니, 유전병이 호전되길 바라고 있기에.
‘셰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건 11살의 소녀에겐 더 없이 특별히 와닿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도련님, 아가씨. 슬슬 식사시간입니다."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시종의 목소리.
마침 방의 정리를 끝마친 셰인이 세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럼 갈까?"
"아, 네!"
이내 세실이 셰인의 손을 붙잡았다.
그저 손을 잡았을 뿐임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행여나 그 떨림이 전해질까 두려워하며 몸을 웅크리는 가운데, 방을 벗어난 셰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해졌다.
"……아, 셰인과 세실이구나."
마침 복도를 지나고 있던 라인하르트 공작.
영주로써 집무를 보는 듯 간소한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정작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기가 넘쳤던 얼굴엔 초췌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셰인의 수업은 잘 듣고 있니?"
"네. 그런데……."
세실이 머뭇거리다 셰인을 돌아보았다.
겉보기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인상, 그를 마주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세실을 대신해 셰인이 물었다.
"몸이 편찮으신 건가요?"
"으음, 근래에 현기증 증세가 좀 생겨서 말이다."
"현기증?"
"그래, 밤중에도 복통이 좀 있어서 잠을 설쳐서 그런 것 같다만……."
현기증에 복통.
둘 다 흔한 증세지만, 다름 아닌 무가의 가주에게 그런 증세가 발발한 건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영주로써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건강하기로 치면 대륙 내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자이거늘. 그런 사람이 수시로 복통과 두통에 휘둘린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사제분에게 상태를 봐달라 일러두었으니, 그 때까지 방에서 쉬고 있도록 하마."
"네 그럼 오늘 훈련은……."
"일라이에게 대신 부탁해 놓으마."
질리언이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것일까, 세실이 떨리는 손으로 셰인의 손을 붙잡았다.
"설마 아버지도 심각한 병에 걸리신 건가요?"
"……아직 그렇게 판단하긴 이르지."
복통도 현기증도 수면부족이나 긴장 등으로 생겨날 수 있는 흔한 증세다.
그 정도라면 신성력으로도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명문가에 상비약 하나 구비해두지 않는 게 우습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어쩔 수 없지.
괜스레 그런 씁쓸함이 느껴졌다.
* * *
셰인이 종교인들을 싫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신성력의 효과마저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신성력은 민간요법과 달리 엄연히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는 수단이니까.
문제는 그걸 다룰 줄 아는 게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뿐이라는 것.
때문에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아플 때마다 일일이 교회를 찾아가거나 그들을 불러야 하며, 고위사제일수록 더 많은 헌금을 지불해야만 한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확실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더욱 의존하는 구조.
그건 평민도 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 아버지!"
이윽고 제 방을 벗어난 라인하르트 공작을 향해 세실이 달려 나갔다.
이전에 마주했을 때와 달리 질리언의 얼굴엔 생기가 돌고 있었다.
신성력에 의한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졌단 것이다.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세실. 그래도 이젠 괜찮을 거란다."
"다행이네요."
셰인이 툭 말을 던졌다.
상당히 퉁명스러운 어조.
질리언이 셰인을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셰인, 그 몸은……."
"……일라이에게 물으세요."
몸 곳곳에 난 멍 자국과 생채기.
흙먼지야 오면서 털어내긴 했지만, 양쪽 눈 중 하나는 밤탱이가 되어 있었다.
옆에 선 일라이가 면목이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손대중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무리해서라도 내가 지도해 주마."
제발 그러길 바란다.
그녀만큼 남을 가르치는 데에 정말 소질이 없는 사람은 처음 봤으니까.
‘그리고 왜 이 애송이가 이 여자를 가문에 들였는지도 알 것 같네.’
확신한다.
일라이 덴, 그녀는 200년 전쟁에 내놔도 이름을 날렸을 만한 인재라는 걸.
"아, 이참에 다친 것도 치료하고 가는 게 좋겠구나. 셰인, 너에게도 소개시켜 주마."
곧 질리언이 제 방의 문을 열어 세실과 셰인을 들여보냈다.
성의 집무실.
그곳에 손님용으로 배치시켜 둔 테이블의 앞엔, 성직자가 흔히 입는 코트인 수단(사제복)을 걸친 여인이 보이고 있었다.
"당신이 소문으로만 듣던 자매님의 약혼자시로군요."
푸르스름한 머리카락을 지닌 여사제.
나이는 질리언보다 조금 어려보이나, 목에 걸고 있는 두 개의 목걸이에선 권위가 느껴지고 있었다.
하나는 주교를 상징하는 마크.
교황과 추기경 다음으로 가는 교단의 고위직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 말뚝이 박힌 형태.
‘이단심문관…….’
셰인의 경계심이 곤두세워졌다.
그 긴장을 읽지 못한 듯 안젤라가 가슴께에 손을 올린 채 인사를 건네었다.
"유일교의 사제인 안젤라라고 합니다."
"아, 네. 잠시 성에 신세를 지고 있는 셰인이라고 합니다."
셰인이 굳은 목소리로 얘기하며 깍듯이 인사했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진정해라, 눈치 채고 온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이곳에 온 건 치료를 위해서지, 자신이 하는 일을 눈치채서가 아니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셰인을 향해 안젤라가 미소를 지었다.
"듣던 것보다 훨씬 늠름하신 분이군요."
나긋하고 자상한 목소리.
하지만 셰인에겐 철판이라도 긁어대듯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그런 거북함에 시선이 자연스레 돌아가는 것도 잠시.
문득 셰인의 시선이 테이블에 올라있는 컵과 병으로 향해졌다.
"저 컵은……."
"아아, 이거 말인가요?"
안젤라가 슬쩍 컵을 들어올렸다.
보석이 박힌 은색의 컵.
그 범상치 않은 컵에 담겨있는 하얀 액체는 리본이 매어진 투명한 병에 담겨있는 것이었다.
"2년 전 이맘때, 제가 주교의 자리에 올라 저택에 방문했을 무렵 공작님에게 선물로 드렸던 겁니다. 주로 성수를 마실 때에 사용하는 물건이죠. 자, 받으시죠 공작님."
"친절에 감사합니다, 주교님."
컵을 건네받은 질리언이 ‘성수’라는 하얀 액체를 들이켰다.
소금과 알콜, 과즙과 식물의 뿌리를 섞어 만든…….
‘마약.’
아니, 어디까지나 성분이 일치할 뿐 마약이라 부를 물건은 아니다.
해로운 물질이어도 수십 배로 희석을 시킨다면 몸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적으니까.
수면제와 마찬가지로 과용과 오용을 할 시 해로울 뿐, 성수 자체가 나쁘다곤 볼 순 없었다.
‘약간의 취기와 안정성분으로 명상에 좋은 상태를 만들어주는 거지.’
명상을 하기 전에 마시기엔 딱 좋다고 할까.
물론 셰인의 입장에선 입에 대기도 싫은 물건이다.
그저 술잔 치고는 꽤나 거창한 잔에 담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넘어갈 뿐.
"그건 그렇고 몸에 상처가 많이 나셨군요."
이후 안젤라가 셰인의 몸을 살펴보았다.
곳곳의 멍자국과 생채기, 게슴츠레 뜨여진 눈이 뒤에 서 있는 일라이에게로 향해졌다.
"일라이, 당신이 한 건가요?"
"공작님을 대신하여 훈련을 지도하다 그만……."
"그러고 보면 당신은 예전부터 남을 가르치는 데엔 소질이 없었죠. 하루는 공작님께서 가르쳐달라고 말씀하셨을 때 대련을 하다 팔을 부러트린 적도 있었고……."
"안젤라 주교님, 서로의 부끄러운 과거를 읊는 건 그만두시죠."
곤란한 표정을 짓는 질리언.
안젤라가 장난스레 웃으며 셰인의 몸을 쓰다듬었다.
스르륵.
손이 맞닿은 부분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어간다.
신성력에 의한 육체의 복원효과. 이 시대엔 엄연히 치료라고 부르는 일이다.
의사에겐 꺼림칙할 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건 질리언과 일라이, 안젤라가 익숙한 관계인 양 행동한다는 점이었다.
"서로 옛날부터 아는 사이였던 건가요?"
셰인의 물음에 안젤라가 답했다.
"네. 고향에 있었을 때에 모두가 같은 소대에 속해있었죠."
"소대?"
"이 제국의 변경에 존재하는 ‘블레이즈’라는 영지에 있었을 적의 이야기입니다."
블레이즈.
이 제국에서 유일하게 전쟁터라 불리는 곳이다.
"일라이는 그곳의 태생이었고, 라인하르트 공작님께선 성인식을 치르고자 갔죠. 그리고 저는 당시 고행을 쌓고자 그곳에 지원했던 자. 그때의 경험은 어린 시기에 신성력을 각성하게 하였죠."
두 사람을 둘러보는 그윽한 시선.
한편으론 그리움마저 느껴지는 눈빛이다.
"요컨대, 같은 소대에 속하며 치유를 전담했다는 건가요?"
"보통 성직자들이 소대에 직접 속하는 경우는 없지만……. 일라이와 공작님께서 속했던 부대는 꽤나 특이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래,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성직자가 직접 부대에 속하는 일은 없겠지.
교리상 전투를 멀리해야 하는데다, 연약한 몸으로 전장에 나가봐야 화살받이가 될 뿐이니까.
실제로 200년 전에도 그들의 주 역할은 후방지원인 만큼, 성직자 한 명이 특정 부대에 속한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이 여자도 만만히 볼 사람은 아니라는 건가.’
공작과 비슷한 젊은 나이에 고위직인 주교의 자리에 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에 괜스레 주눅이 드는 것도 잠시.
"그건 그렇고 이 아이가 자매님의 약혼자라……."
질색을 할 무렵 안젤라가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이 세실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이 신경 쓰이는 듯.
이내 치료를 마친 안젤라가 싱긋 웃으며 질리언을 돌아보았다.
"공작님. 몸 상태를 보아하니 치료가 길어질 것 같은데, 이분의 치료를 개인실에서 마저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상태가 심각한 건가요?"
"심각하다기보단 치료하기엔 상처가 너무 많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힐끗.
안젤라가 셰인을 응시하였다.
협소해진 시선, 두 눈에 그려진 눈웃음은 이전까지의 부드러움을 완전히 감추고 있었다.
"단둘이 나눠보고 싶은 얘기도 있어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