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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6화 (16/255)

의무병의 환생 16화

이단심문관은 교리에 반하는 일을 하는 자들을 심문하고, 그 처분을 결정하는 이들.

전쟁을 하다보면 그들이 만든 ‘처형자’들을 제국군들이 데리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야만족들에게 공포를 주고자, 성전이라는 이름하에 허락되었던 그로테스크한 조형물들을.

그 방식은 고통에 중점을 둔 아이헨발트와 달리, 남들에게 보여주는 ‘본보기’에 초점을 두기에 나타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을 기억하는 제 앞에 심문관이 할 말이 있다 하는 상황.

셰인에겐 결코 가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연금술……. 이로군요."

이후 방에 들어온 안젤라가 셰인의 책상을 보며 눈을 게슴츠레 떠갔다.

변화를 추구하는 학문은 보수적인 교단에겐 좋게 여겨지는 게 아니기 때문일 터.

물론 약물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화학식이나 약초 등, 정체를 들킬 만한 건 모두 숨겨놓은 상태다.

연금술 자체는 이 나라에서도 합법이니 의심을 사진 않으리라.

"가문의 비전약을 보니 관심이 생겨서요."

"아아, 네. 그렇죠. 영약……. 육체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는 물건이죠. 그 덕에 라인하르트 공작님도 아주 늠름하게 자라셨고요."

영약이나 영양제의 경우에는 약학에서 파생된 치료제와 달리, 제국 내에서도 합법으로 유통할 수 있다.

기호식품으로써의 가치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전통이나 의식에 대한 성향도 적잖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에 이것 때문에 라인하르트 가문도 이단으로 몰린 적이 있었죠."

"……."

"……어디까지나 수백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엔 교단도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불안정한 부분이 많이 있었죠."

싱긋.

안젤라가 연금술 서적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 중엔 제국의 설립에 큰 이바지를 했던 라인하르트 가문의 전통에도 여러 지적이 있었지만, 후에는 효력의 확실함과 전통성을 인정받아 레시피를 이제까지 보존해올 수 있었던 것이죠."

고작 보충제 하나로 그런 분쟁까지 있어야 하나 싶지만.

달리 생각하면 개국공신에, 오랫동안 봉사를 해온 가문정도는 되어야 규정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이미 멸망한 왕국의 후예 따윈, 애초에 이 나라에 받아들여지냐 마냐를 논할 처지가 못 된단 것이다.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옛 설화가 떠오르는군요. 셰인 님, 혹시 볼레로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흠칫. 몸이 떨렸다.

아주 잠시 동안.

"……이 가문의 선조님이셨죠."

"그렇습니다. 제국의 검이자 역사상 최강의 검사, 대륙 통일의 영웅, 그리고 현 제국에 야만족의 피를 남게 만들었던……."

잠시 말꼬리를 흐린 안젤라.

"……아, 오해하지는 마시죠. 야만족이라곤 하나 지금의 그들에 대한 흔적은 남지 않았으니까요."

표정을 굳히자 안젤라가 손사래를 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정작 그녀는 이 제국에 야만의 피가 섞인 부분을 불쾌히 여기는가를 우려하고 있었다.

정작 신경 쓴 부분이 ‘야만족’이라는 단어 그 자체란 걸 모른 채.

"오히려 저와 같은 신자들은 그분을 성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분 덕에 우리들은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노예제도 역시 그분 덕에 폐지되었는데 어찌 그분을 모욕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잘 아는군.

만약 볼레로가 없었다면 이 보수적인 제국은, 지금 시간대까지 제국의 후예가 아닌 자들은 전부 노예취급을 받으며 살았을 테니까.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것을 교리로 삼는 교단의 입장에선 노예제도 따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닌 이상 그런 취급을 하진 않겠지.’

정말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노예고 뭐고 일단 처형부터 하겠지만.

"그저 그분이 성자가 될 수 있는 깨달음을 마련해준 야만인이 안쓰럽게 여겨져서 말입니다. 사람의 몸을 해체하는 것을 치유라 여기는 아둔한 족속들……. 만약 그분에게도 신의 비호가 따랐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텐데 말이죠."

‘야만하고 아둔한…….’

하나같이 의료인을 자부하는 자에겐 불쾌감이 치밀어 오르는 말.

그 감정을 알지 못하는 안젤라는, 그저 자상한 웃음과 함께 양손을 맞대며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하지만 200년 전의 그 야만인들에게도 숭고함이란 존재했죠. 그런 숭고함이 있기에 저희 제국은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내어, 지금의 부국강성한 나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걸 겁니다."

그녀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신성력.

그로부터 비롯된 광명이 셰인의 몸을 비추자, 몸 곳곳에 나있는 상처들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진정 아픔을 낫게 해주는 건 진실 된 기도라는…… 그 가르침을 설파한 결과물을 말이죠."

그래, 이것이 제 조국을 멸망시켰던 힘이다.

지식이 없는 자들은 매료될 수밖에 없고.

지식을 갖춘 자가 일구어낸 성과를 부정해 버리는 힘.

‘이 세계엔 신앙을 빚어 만든 만병통치약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힉에 의료라는 행위 자체가 쇠퇴할 수밖에 없을 터. 그건 카일을 포함한 그 어떤 의료인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부정한다면 그건 논리가 아닌 고집의 영역이 될 테니.

‘하지만 그게 신앙으로 무지를 덮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래, 이 시대의 문제는 모든 것을 신앙으로 해결하기에, 탐구와 배움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힘을 내려주는 신이라는 작자가 누구인지, 그 힘이 어떤 원리에서 생성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내는지를 알고자 하지 않는다.

감히 인간이 된 자가 신이 내려주신 힘을 부정하는 것을 가소롭다 여기기에, 그걸 알고자 하는 이들을 모두 이단으로 몰고 가면서.

그리고 눈앞에 있는 자는 그를 주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다.

"……그런 말을 하러 여기에 오신 건가요?"

상처 하나 없는 몸뚱아리와 혐오, 그리고 불안이 공존한 정신.

"제가 조금 말이 과했군요."

원리를 알 수 없는 회복과정에 께름칙함을 느낄 무렵, 안젤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거두었다.

"확실히 교단에 속한 자가 아니라면 과한 가르침은 삼가야 하는 법. 축복도 충고도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정도로 끝을 내야겠죠."

차차 뜨여지는 눈동자.

그 시선이 셰인을 조금 훑다, 이내 제 입가에 그렸던 미소를 차차 지워갔다.

"제가 당신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유일교의 신도가 아닌, 질리언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의 ‘전우’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우가 된 자로써.

그렇게 스스로를 정의한 그녀가, 곧 친우의 후계자자가 될 소년에게 말했다.

"셰인 골드리안. 당신은……. 당신이 이 가문을 이끌 만한 인재라 생각하시나요?"

직설적으로.

하지만 상식적인 질문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초대면에서부터 진즉 꺼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얘기를 들어보니 당신은 가문의 서자에 불과하다 들었습니다만……. 세실 자매님의 몸 상태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한 사람.

교단에서 한 사람만이 세실의 몸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다 하였다.

그가 셰인을 향해 말했다.

"세실 아가씨께선……. 앞으로 머지않았을 겁니다."

의사가 보기엔 터무니없는 선고.

그것을 입에 담으면서도 여인의 얼굴엔 아련함이 깃들어 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랬죠.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듯, 그녀의 외조부가 그렇듯…… 길다 해도 성인식을 치른 직후 정도겠죠. 그 어미처럼 산모로써의 고통을 견디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참담함은 결코 거짓된 게 아니다.

그토록 믿어온 신이 내려준 힘을 아무리 때려 박아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현 시대의 종교는, 그것을 절대로 자신들이 섬기는 존재의 무능함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분께서 떠나시는 그 날까지 행복한 삶을 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신을 섬기는 신도이자, 라인하르트의 친우를 자처하는 자는 그에 한 점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분을 대신해 이 가문을 이을 분이 제대로 된 사람이기를 바랬고요."

그러니 지금 하는 말도 분명 진심이겠지.

스스로가 마냥 신앙에 미치지만은 않은, 과거의 인연 또한 신경을 쓸 정도로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 짓는다고.

"하지만……. 그건 서자에 불과한 당신에겐 무리한 일이겠지요."

만약 그녀가 연금술 서적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면 그 진심을 존중해 줬을지도 모른다.

‘가증스럽게도.’

평생을 교단에 제 몸을 위탁했던 주제에.

그 배경지식도 결국 교단의 가르침에 투영된 마당에, 누군가를 향한 평가에 공과 사를 구분 짓는다 단언하는 태도라니.

"그럼 당신은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건가요?"

"이대로는 그분이 불행해질 거라 확신하기에 말하는 겁니다."

짜증을 드러내기 무섭게, 안젤라가 표독스레 셰인을 쏘아붙였다.

"셰인 골드리안. 당신은……. 이 시대에 당신을 지켜보는 자들이 아주 많다는 걸 알아야 해요."

둥그렇게 뜨여진 눈동자에 핏줄이 그려질 정도로 살벌하게.

안젤라는 그러한 눈으로 11살의 아이를 몰아붙였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귀족가들은 물론 나머지 두 공작가와 황실, 그리고 무수한 제국민들이……. 그들의 앞에서, 당신은 이 나라를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 중 하나를 이끌어가는 후계자로서 당당히 모습을 비춰야 하는 겁니다."

지금의 물음은 군인으로서의, 그리고 의사로써의 자신을 제외한 ‘셰인 골드리안’ 그 자체를 겨냥한 물음이었다.

"그런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당신은 그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 자신할 수 있습니까?"

첩의 자식.

후작가의 서출.

정치적인 도구로 쓰이거나, 혹은 후계자가 정해질 때 가문에서 쫓겨날 것이 확실시되는 운명.

"더욱 나아가 그에 뒤따르는 책임을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다 당당히 말하실 수 있습니까?"

그런 녀석이 공작가의 후계자가 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건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셰인 스스로도 생각하는 바였다.

그게 당연한 거고, 그게 이 시대의 상식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그 놈의 잘난 상식이 병든 여자아이 하나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병을 죄로 취급하며 그 죄를 숨기고 살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그걸 정의했던 건 눈앞에 있는 이 여자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광신적 믿음과 무지에서 비롯된, 저 알량한 주절거림을 당장이라도 닥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끝내 셰인은 틀어쥔 주먹에서 차차 힘을 풀어갔다.

그래, 감정을 불태워선 안 된다.

지금의 자신은 의사임을 제외하면 그저 주먹질 좀 하는 서출일 뿐이고, 의사임을 자부하면 그 즉시 이단으로 취급되어 목이 걸릴 게 분명하니.

"……조만간 기회가 되면 또 보도록 하죠. 부디 당신의 앞날에 올바른 가르침이 함께하기를."

그렇게 침묵으로 응대하며 시선을 회피하니, 셰인을 쏘아보던 안젤라가 신음하다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딸칵.

출구가 닫히고, 방에는 이내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 현장에 홀로 선 셰인의 다시금 두 주먹이 불끈 틀어쥐었다.

그저 듣기만 할 수밖에 없는 무력함, 종교에 대한 환멸, 자학감.

그 외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뒤엉키며 신경을 타고 충동을 쥐어짜내었다.

"이야, 저 언니 되게 웃기다~"

그걸 애써 억누를 무렵 배후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목소리는 아니었다.

최근엔 의외로 자주 들었던 목소리였으니까.

"자기가 뭐라고 집안 사정에 대해서 저리 왈가왈부하실까? 교쟁이면 교쟁이답게 기도나 드리고 멍청한 말이나 구구절절 흘려대기나 할 것이지."

창가에 있는 것은 나뭇가지에서 태평히 매달려있는 호박색 눈동자의 소녀.

얼마 전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자신을 납치하고자 했던 뒷세계의 조직, 검은 해골의 어린 우두머리인 쟈드 브링시커였다.

눈을 마주친 쟈드가 셰인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야호~ 오빠 안녕! 귀염둥이 쟈드가 놀러와쪄염 뿌우~☆"

"돌아가 이 녀석아."

-촤학.

셰인이 바로 커튼을 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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