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7화
검은 해골.
돈만 준다면 납치건 살인이건 가리지 않고 받아준다 알려진 뒷세계의 청부조직이었다.
엄연히 비밀조직이기에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진 않지만 어쨌든.
얘기를 들어본 바, 그들의 주 고객층은 같은 뒷세계의 주민이 아닌, 그들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귀족들에게 고루 분포되어 있다 하였다.
그런 사악한 조직의 수장이 설마 10살의 꼬맹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후후, 불법 약물 제조라니. 공작가의 후계자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안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창문을 통해 방에 들어온 쟈드가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응시하는 증류장치.
자신이 연금술을 바탕으로 불법적인 일을 추구한다는 걸 가늠하고 있는 것이다.
‘능구렁이 같은 꼬맹이.’
다시 찾아왔을 때만 해도 벌벌 떨던 녀석이, 약점 하나 잡은 순간부터 태도가 돌변하곤 의기양양 놀러오고 있다.
얕잡아 본다기보단 ‘같은 동류’라는 걸 알고 친근하게 접근한 것이다.
괜히 악당 취급을 당하는 것 같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지금 네가 마시는 그거, 그 불법약물 제조로 만든 거 알고는 있지?"
"응~ 그래서 오빠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비밀리에 붙이려고. 이런 걸 만들어주는 사람을 내가 미쳤다고 교단에 넘기겠어?"
"허허, 탄산수 하나에 매료되는 조직의 보스라니.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네."
"이런 건 비싼 돈을 줘도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반쯤 장난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시대에서 화학은 배척을 받는 류의 학문이었다.
마탑 소속의 인물들도 추구하는 건 진리의 탐구 뿐.
마법의 발전을 추구하되, 그것을 통해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크지 않은 편이다.
발전되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탄산수 같이 쉽게 만들 수 있는 물품이 대중화될 리가 없단 것이다.
‘종교에 묻혀 있을 뿐이지 이쪽도 문제는 많다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라 한다면 눈앞의 꼬맹이와 같은 범죄조직이겠지.
다름 아닌 주요 권력층이 법의 구멍을 노려 불법적인 일로 이익을 챙기고자 하니까.
실제로 자신을 노렸던 것도 그런 일의 일환이 아니었던가?
귀족, 혹은 교단 측의 사람들은 자신이 라인하르트의 후계자가 되는 걸 꺼려할 테니.
그런 녀석들에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뒷세계의 거물과는 어느 정도 연을 맺어두는 편이 좋으리라 판단을 내렸다.
이전의 의뢰주에게 자신과 관련된 일을 맡지 않겠다 한 게 사실이라면.
"……의뢰주에 대해 알려줄 생각은 여전히 없는 거지?"
"응."
쟈드가 과자를 씹으며 대답했다.
대답에는 일절 망설임이 없었다.
입가에 그려진 웃음은 여전하지만, 눈매에 그려진 건 진지함 그 자체였다.
"나도 오빠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가 없거든. 아무리 의뢰주에게 이 일에 대해 맡지 않겠다 말을 했다 해도, 정보를 분다는 건 더 이상 이쪽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뒷세계엔 법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통제할 자가 없으니 의뢰를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자유.
그렇기에 그로부터 벌어지는 모든 책임은 본인이 져야만 한다.
무언가 수틀렸을 때에 뒤를 봐줄 자가 없단 것.
이로 인해 그들은 집단을 결속시켜 주는 정과 규율을 맹신하며, 때로는 조직의 신뢰를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쟈드가 속해있는 검은 해골이 그런 곳이었다.
아직 미숙하고 어린 쟈드가 우두머리가 된 것 역시, 그런 신뢰로부터 비롯된 세습제를 따른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비밀로 치겠다는 거네."
"그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길 일이지. 우리 조직도 엄청난 손해를 입어가면서 의뢰를 포기한 거니까."
쟈드가 마저 과자를 씹었다.
"물론 오빠의 입장에선 나쁠 것 없는 이야기일 거야. 우리 조직은 의외로 뒷세계에선 유명하거든. 그런 거물이 포기했으니 어중이떠중이들이 오빠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지 않겠어?"
반대로 엄청난 거물들의 이목이 집중되겠지.
잔챙이 여럿이냐, 거물 소수냐.
어느 쪽이 더 짜증나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니, 그들에 대한 대응책이 되어줄 소녀를 내버려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대로 그건 이 꼬맹이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은 이 시대의 내로라하는 범죄조직도 홀로 궤멸시킬 수 있다 자신하는 실력자. 거기에 라인하르트 가문을 계승할 가능성도 있는 상태다.
그런 자와의 연결고리는 의뢰를 포기하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가지고 싶은 것일 터.
연을 맺길 희망하는 건 서로가 마찬가지란 것이다.
"……좋아, 이렇게 된 거 너한테 의뢰 하나 맡기도록 할게."
그리고 이에 필요한 신뢰를 가지는 확실한 법은 역시 상호 간의 거래다.
"후후, 그렇게 나오셔야지~"
쟈드가 기다렸다는 듯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고 팔짱을 껴 말했다.
"비록 우리들이 오빠와 같은 강자에겐 전면전에선 못 이기지만, 우리 조직의 진가는 정보수집과 잠입, 그리고 공작에 있단 말씀! 그러니까 뭐든 말만 해~ 대금만 준다면 할 수 있는 선에선 뭐든지 해줄 테니까!"
"저번에 살려준 걸로 퉁치지?"
"엑!? 그건……."
뚜둑.
손가락을 푸는 소리.
쟈드가 질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동류라는 걸 알고 여유를 가지고 대해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 무력을 두려워하는 속내는 여전한 듯했다.
"아, 알았어. 한 번 정도는 무료로 해줄게. 한 번 정도는……."
구시렁 구시렁.
말꼬리를 흐리며 비아냥을 흘리는 쟈드.
다수는 자신에 대한 욕이겠지만 직접 달려들지만 않으면 아무래도 좋을 뿐이다.
"그래서, 뭘 조사해주길 바라는 거야?"
"아까 전에 이 방에 왔던 안젤라라는 사람의 일과에 대해 조사해줘."
"일과? 구체적으로 어떤 거?"
"그냥 평소에 뭐 하는지, 누구랑 접촉하는지 같은 거."
"불륜 정보나 그때즐겨 입는 속옷 같은 걸 알아내달라는 거지?"
"……꼬맹이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뭐 어때~ 나는 애초에 법 없이 사는 몸인데."
법 없이 살아도 문란함이 도를 지나치면 인륜의 문제다.
공교롭게도 셰인은 범법자도 선을 지켜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그 선을 지키는 일이었으니.
"그건 그렇고 오빠 같은 강한 사람도 심문관은 무서운 거구나."
이내 창가에 선 쟈드가 씨익, 웃으며 셰인을 돌아보았다.
지금의 제안이 자신의 약한 면을 보였다 오인해서 그런 것인가?
반쯤은 맞는 말이다.
셰인의 입장에서 이단 심문관이란 두려워 마지못할 존재니까.
"그래, 무서울 수밖에 없겠지. 심문관들이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거고, 오빠도 아무리 강해봐야 결국 사람이니까."
"……잘 안다는 듯 말하네."
"의외로 뒷세계에도 많거든. 엄청 강한데 교회의 앞에선 쪽도 못 쓰는 사람들."
쟈드의 눈이 가느다랗게 뜨여졌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권위자의 뒤에 구린 부분이 있길 바라더라고."
"……꼬맹이 주제에 말은."
"오빠도 나랑 한 살 차이인데 뭐 어때~"
그럼 나중에 보자~! 하며 외친 쟈드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높이만 해도 3~4층이거늘, 정작 밖을 지나던 사용인들은 ‘바람소리인가?’정도의 감상만을 남기며 제 갈 길을 가버릴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솜씨가 참 예술이다.
그것도 이 성 곳곳엔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무가의 호위들이 자리한 상태.
그들의 눈을 피하며 움직이는 걸 보면, 괜히 부하들에게 천재소리를 듣는 건 아닌 듯하였다.
눈치 역시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권위자의 뒤에 구린 부분이 있길 바라더라고.’
"……망할 꼬맹이."
괜스레 정곡이 찔려서일까.
셰인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석양빛을 커튼을 쳐 가리고, 침묵이 찾아온 제 방을 돌아보았다.
익숙함과 낯설음이 공존하는 방.
서적과 연구자료로 어질러진 광경은, 전생에 자신이 머물렀던 장소와 비슷하다.
그때에도 하루가 멀다 하며 책을 읽어대었고, 정리할 시간마저 아까웠기에 부관에게 매번 야단을 맞고는 했었다.
반대로 약품과 광물의 냄새는 그다지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전공은 외과, 화학물의 냄새라 한다면 소독약이나 완성된 약품을 쓸 때 빼곤 맡을 일이 거의 없으니까.
그런 자신이 알레르기 치료제를 만들고자 원재료를 처음부터 손본다…….
그건 셰인에게 있어서 크나큰 불안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셰인. 약이라는 건 결국 쓰기 나름인 거예요. 우리가 약이라 칭한 건 어디까지나 무언가 효력이 있는 것을 이롭게 쓰기에 그런 것이지, 반대로 해롭게 쓰면 그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셰인의 스승이 약에 대해 논할 때에 누누이 강조해온 것이다.
잘못 쓰면 독이 된다. 과하면 독이 된다. 혹은 제대로 쓰지 않으면 약조차 되지 못한다…….
그러니 약을 쓰고자 한다면 언제나 자신이 쓰는 물건의 효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그런 양면성을 경계한 말.
아이러니하게도 교회가 약학을 금지한 건, 이런 양면성 중 독에 대한 부분을 극단적으로 경계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신성력이란 완벽하고 안전한 치유희 힘이 있는데 어찌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것에 의존하는가?
그런 사상에 의해 발전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세계에서 약을 제조한다는 건, 무척이나 고단하고 무력함마저 느껴지는 일이었다.
‘오랜만이네. 이런 걸 느끼는 것도.’
그래, 이런 감상 따위.
전장살이를 하면서도 숱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때가 찾아올 때마다 되뇌었던 것이 있다.
지금 자신이 펼친 노트에 적혀 있는 글귀였다.
[의무병의 신조.]
최전선에서 의무병으로 활동했을 당시, 언제나 마음속에 되새겼던 세 개의 문장이다.
셰인은 그것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었다.
"신조 하나. 의무병은 그 어느 때에나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해야 한다."
처음은 생존에 대한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자가 제 목숨을 소홀히 한다면, 그건 그자가 살려야 할 무수한 아군을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신조 둘. 의무병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아군을 살리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두 번째는 사실상 의무병의 존재의의라 할 수 있는 것.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병과인 만큼,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엄연히 인명의 구조에 귀결되어야만 한다.
스스로의 생존을 가장 중요시여기는 것 역시, 이 인명구조를 위한 과정이 역전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신조 셋-자신과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의무병은 전장의 승기를 가져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의무병도 결국에는 군인이니까.
설령 적을 쓰러트리지 못해도 아군이 쓰러트릴 수 있도록, 그들의 부러진 다리를 지탱해주고 부러진 칼날로나마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자신을 지키고, 아군을 살리면서도, 전투에 기여하는 존재.
카일이 생각했던 의무병이란 그런 존재였다.
카일이 이끌었던 의무부대란, 그런 이들이 모였던 곳이었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묻겠다. 이 세 가지의 신조가 말하는 바란 무엇이냐?’
그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모아둘 때마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에 대한 답이 지금 그의 입을 타고 내뱉어졌다.
"사람을 살리는 자란, 전장의 그 누구보다도 강해야 한다."
무력이건 지력이건 마음가짐이건, 그 어느 것 하나 꺾여선 안 된다고.
그 사실을 다시 되뇐 셰인이 피식 웃고, 절망감을 털어내며 자시 책을 펼쳤다.
유혈 하나 흐르지 않되, 더 없이 고독한 전쟁터에서의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
그것을 이어갈 수년의 시간을 버텨줄 원동력으로 삼듯이…….
* * *
14세.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급격한 성장기에 접어들게 되는 시기이다.
셰인 역시 10세였을 때와 달리 키가 훤칠해진 상태였다.
동년배와 비교한다면 두 뼘 정도는 더 큰 키, 근력운동을 꾸준히 한 만큼 내장된 근육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발전을 이룬 셰인은 내일로 이 성을 완전히 뜨게 될 것이다.
본래 예정되었던 3년보다 1년이나 늦은 시기에, 마침내 후계자를 정하기로 한 아비가 셰인을 저택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셰인. 너와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기만 한 지도 언 4년의 시간이 흘렀구나. 그 시간 동안 너의 얼굴을 보지 못해 그립지만, 한편으론 보다 성장했을 네 모습을 보는 게 기대가 되는…….]
자신에 대한 걱정만이 장문으로 쓰여 있는 편지.
그 안엔 후계자가 누구인지, 재산의 분배가 어찌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래도 좋다 생각했다.
애초에 그 저택에 있는 이들에게 셰인은 굴러들어온 돌일 뿐이고, 셰인 역시 아버지를 제외한 자에겐 애착을 느끼지 않고 있으니까.
일단 돌아가고, 그 후 절차가 끝이 나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자.
으레 그렇듯 흐름에 맡기기로 한 셰인이 편지를 거두었을 무렵, 방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셰인. 지금 괜찮을까요?"
뒤를 잇는 익숙한 목소리는 4년 간 가장 많이 들어온 것이었다.
셰인이 제 방에 있는 물품들을 가방에 넣어 정리한 후 문을 열어주었다.
세실리아 라인하르트.
그런 이름을 지닌 소녀가 셰인을 마주하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련을 부탁해도 될까요?"
라인하르트의 성에 머무른 지 4년이 되는 해.
셰인은 이 시대에 처음 행한 의료행위의 결과를 마주하는 순간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