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1화
제네릭이 말없이 한숨을 내쉬며 손에 쥔 파일을 내려두었다.
무엇을 묻나 했더니.
결국 이 상황이 되어서도, 아직까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각이 없는 듯 보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다면 알려줘야겠지.
피고를 납득시키는 것도 변호사의 의무일 테니.
하지만 그 배려는 결코 어중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예정이다.
단호하고 직설적으로.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로부터 비롯된 대답은 변호사가 피고에게 할 말도 아닐뿐더러, 교단 사라들에게 있어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일 것이다.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단에 대한 존재를 ‘아무래도 좋다’고 말을 한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대화가 유출된다 해도 그가 이단자로 몰리는 일이 일어날까?
"제국이 교국을 표방하고 있다 한들,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교단에 속할 것을 강요받진 않습니다. 모두가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면, 신성력이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힘이 되었겠죠."
귀족, 농민, 상인, 건축가, 용병, 주부, 학자…….
그들 모두가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른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며, 그들 모두가 신앙을 갖추도록 지시하기엔 제국이란 터무니없이 넓다.
특정 교단이 주축을 이루는 교국이라 한들, 교리를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건 교단에 신변을 위탁한 자들 정도란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 나라의 대중은 이단을 엄숙히 벌하고자 하는가……."
제네릭이 곧 그 답을 얘기했다.
"그건 현 제국의 풍조에, 이단을 용납해선 안 된다는 흐름이 깔려있기 때문이죠."
고작 해봐야 대중이 따르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황실과 3공작, 더욱 나아가 대중이 주목하는 재판이 열린 이유라기엔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그렇게 생각될 만한 이야기다.
"이유가 보잘 것 없으니 결과 역시 가벼워야 한다……. 설마 그렇게 생각하시진 않겠죠?"
가벼운가 중한가.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풍조의 사소함은 결코 특정한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소속된 집단 내의 전체에 만연한……. 즉, 사회의 흐름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 누군가 그렇게 하라 정의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당연시 여기기에, 개인이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순리와 같은 것이 풍조라는 것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해가 뜨고 지고, 생물이 생물을 먹으며 성장하듯.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사회의 풍조란, 인간이 살아가는 영역에선 생태계의 순리와 비등하게 여겨지는 요인이었다.
"그 풍조를 뒤집는다는 건, 그 분위기가 생기기까지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당신은 고작 말 몇 마디로 제국의 역사를 뒤집을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제국이 탄생한 후 500년.
인간의 평생을 아득히 넘어서는 시간이 여러 차례 지나고, 그보다도 많은 세대의 교차가 이루어져왔다.
그런 흐름 속에서도 제국은 유일교라는 종교에 의해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그런 나라에서 변호사를 하는 자에게 있어 사회의 흐름이란, 법과 윤리 이상으로 중요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었다.
"그래요, 개인이 그 풍조를 앞두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 해봐야 순응하는 것뿐입니다. 권력이나 힘을 갖추고 있다면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걸 거스르는 낌새를 보이는 순간 대중은 그를 반란자로 규정하여 교수대에 목을 걸고자 하겠죠."
그리고 그러한 자리에 이 소년은 서게 되었다.
고작 14살에 불과한 나이에.
그저 홀로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르고 저질렀을 수도 있죠. 하지만 사회란 개인을 배려할 수 없는 법. 이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수를 향한 본보기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라도, 부정을 저지른 자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가혹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소년을 동정하되 그 이상의 마음을 주진 않는다.
그 역시 풍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개인에 불과했으니.
"……이 정도 설명했다면,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충분히 납득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냉정한 설명을 바탕으로 한 핍박이 끝마쳐진 때.
제네릭을 마주한 소년의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물론 잘 알고 있죠."
설명을 이해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
실성해서 벌벌 떨거나 억울함을 토로해도 이상하지 않거늘.
완전히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걸 각오했는지…….
‘아니, 고작 14살의 아이다.’
어른스럽다 해도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 한 소년.
세상의 가혹함에 대해선 티끌만치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그런 자가 이후에 있을 잔혹한 처사를 각오하고 있을 리가 없다.
분명 그럴 터임에도…….
"그래도 역시 내키지가 않네요. 이 시대에 이단자를 향한 처벌이 거의 사형에 준하는 수준이라니……."
"그건……."
"잠깐."
마저 반박을 하려던 때.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려도 될까요?"
셰인이 제네릭에게 화제의 전환을 주장했다.
또렷이 뜨여진 눈을 마주친 제네릭이 잠시 숨을 멈추었다.
긴장한 그를 본 셰인이 제 어깨를 으쓱였다.
"뭐, 별 거 아닌 이야기예요. 제가 이단의 지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해당하는 이야기 중 일부죠. 누군가의 기억이라고 말을 하는 게 좋겠네요."
소년은 이단의 지식을 익히고 그것을 시행했던 자였다.
고대에 있던 야만족들이 벌였던 일들을, 당연히 그에 따른 역사를 접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전쟁시절에 잊히고 만 옛 이야기들 역시.
"……일단 들어드리죠."
그 또한 아무래도 좋다 여겨졌지만, 카운슬링 역시 변호사의 덕목 중 하나였다.
그러니 일단은 들어준다.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릴 생각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여긴 셰인이 곧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헨발트."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름을 입에 담으며.
"제국이 교화시켰던 나라……. 아니, 야만족 집단의 이름입니다. 제가 습득했던 지식들의 시작은 그곳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신성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법을 연구하던 집단이란 말이군요."
그건 심문관들이 내어주었던 셰인의 심문자료로 파악한 바였다.
그 내용을 처음 들었을 때에 제네릭이 생각한 건, 의학이란 굉장히 비합리적인 활동이란 것이었다.
신앙을 통해 개화되는 신성력.
신앙이 없는 자조차 ‘편리하고 굉장하다 여길’힘을 부정하면서까지, 그 비효율적인 일을 추구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 그렇게 단언해 말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리고 그곳에서 치유사로 활동하는 한 여인은 유일교의 신자였죠."
"……야만족이 말입니까?"
"피오 아스클레. 그런 이름의 여인이었습니다."
일순간 믿지 못하는 제네릭에게, 셰인이 그 이야기의 구체성을 더하듯 대상의 이야기를 얘기했다.
그것만으로 단순한 망상은 정교한 짜임새를 갖춘 이야기로 바뀌었다.
차차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느낀 제네릭이 그를 향해 물었다.
"망명한 배교자입니까?"
"아뇨. 엄연히 아이헨발트 태생이에요."
그녀는 단 한 번도 제국의 땅에 발을 들여 본 적이 없다.
전장에서도 제국군과 마주할 일이 없는 최후방에서만 활동했을 뿐.
오히려 그녀가 하는 일은, 제국군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환자들을 살려내는 일이었다.
"그런 사람이 종교를 가진 이유는, 그저 남들보다도 이해심이 깊었기 때문이었죠. 적이 된 자조차도 사랑할 수 있는……."
유일교의 교리에 적힌,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 부분.
"……물론 아이헨발트에서 종교를 가진다는 건 배척받기 좋은 일이었죠. 그야 그들의 근본은 마법사들과 같은 학자에 속했으니까요."
모든 결과에는 과정이 뒤따른다.
그건 의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바이며.
그렇기에 믿음을 대가로 이루어진 결과만을 숭상하는 교단과는 척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런 세력에게 공감을 하는 여인을 어찌 주변이 좋게 볼 수 있을까?
"하루는 그녀를 존경하고, 그 밑에서 가르침을 받던 제자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왜 우리들을 학살하고 조롱하는 광신도들의 문화를 이곳에 전파하는 것인가? 신이라는 존재와, 그를 섬기는 이들은 우리의 적이다. 그들은 이 나라에선 배척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죽어간 동족에게 제국에서 전해지는 진혼가를 부르는 여인에게 했던 말이죠."
"……."
어째서일까.
이 소년의 말은, 마치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언젠가 그런 광경을 직접 본 것 같은.
그런 경험자의 입담 같은 느낌에 괴리가 들면서도, 그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다.
"물론, 그녀 역시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자신이 신앙을 가졌음을 꾸준히 남들에게 증명했고, 때로는 그들에게 전도를 하기도 했어요."
끝내 그 어떤 대답도, 부정도 내뱉지 못한 채.
제네릭은 그저 소년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걸 못마땅히 여기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나약하기에 언제나 강대한 존재에게 기대기를 희망한다. 그 존재가 제 앞에 서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일을 대신해 주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말없이 뒤에서 관망을 하고 비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는 힘이 되어준다.’
‘먼 길을 거니는 나그네가 마주한 가로수처럼, 거기에 등을 기대며 더위를 삭히듯, 인간은 잠시의 기도만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빛을 가려줄 그늘.
등을 기댈 수 있는 기둥.
숭배의 대상이 된 자에게 들 비유라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괴리감을 가진 의견이기에, 그녀는 주변에 있는 이들이 표하는 증오를 누그러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코 저 광기 어린 군대와 같지 않다고.
그건 제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요, 그녀는……. 제국의 사람들처럼, 신이라는 존재로부터 구원을 찾지 않았어요. 그저 필요할 때에 찾아와 지켜봐주는 정도로 족한 거였죠. 그야 고생하는 자신을 누군가가 지켜봐주는 건, 그 자체로 힘이 나는 일이니까."
그녀에게 있어 신앙이란 그림이 그려진 벽과 다름이 없었다.
기도라는 행위는, 그 벽에 그려진 그림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았다.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 위안을 가지고, 때로는 그걸 남들에게 전파하며 그들을 결속시키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주니…….
누군가는 그녀의 장송가를 들으며 울음을 터뜨리거나,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거두곤 하였다.
죽음마저도 괴롭지 않고 평안하게…….
신앙을 표현하는 것으로, 상처를 달래주고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기에 이른 것이다.
"그녀가 종교를 빌어 행한 모든 것은, 그녀가 속한 세력이 추구하던 ‘의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거였어요."
일종의 정신 안정제.
그것이 이해할 수 없다 단정했던 존재로부터, 한 의료인이 찾아낸 타협점이었다.
과용하거나 오용하면 해로움을 가져오지만, 그 반대로 적절히 사용하면 좋은 효과를 보이는…….
종교 역시 그런 양면성을 가진 존재이니, 믿음을 숭상하는 이들을 적으로 여기고자 한다면 그 분석 역시도 우리와 같은 학자에겐 필요한 일이다.
그 또한 결국엔 사람을 살리고,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길로 이어질 테니.
"그리고…… 그런 용도로 사용한 건 당시의 제국민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바였을 겁니다."
그런 그녀를 존중하기에, 그녀의 가르침을 받아온 카일은 그들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 이해심이 적의까진 없앨 순 없었고, 그들의 광기 어린 행동 역시 납득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 시대에, 전쟁이 자아내는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것 정도는 가능했으니까.
"그래요 제네릭. 그 시기엔,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풍조를 따르기만 하는 이들도 전쟁터에 내몰렸을 거예요."
제 목에 칼이 겨누어진 상황에 누가 열정을 발휘할까.
언제 머리에 화살이 박힐지 모르는 마당에 금은보화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죽은 자는 산 자와 소통할 수 없으니, 역사서에 이름을 적어준다는 보장조차 무의미한 보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 시대였으니까…….."
뚜렷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인과관계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믿음이라는 손쉬운 수단만으로 사기를 드높이며.
설령 죽음마저도 안식으로 받아들여 의지를 발휘하게끔 만들어내는 신앙이라는 존재가.
"그런 시대니까 신앙이 절실히 필요했던 거겠죠."
그것을 이해하기에…….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는 지금 이 시대에 만연한.
이단을 향한 광신적인 증오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그 때와는 달리 신앙에 미칠 필요가 없잖아요."
200년이나 흐르지 않았는가.
제국의 변경을 제외하곤, 전쟁터라고 불릴 만한 장소도 없는 평화의 시대이지 않은가?
신앙에 광기를 더하지 않아도 되는……. 그를 넘어 결코 더해서는 안 되는 시대이거늘.
"진정 시대가 풍조를 따른다면 낡은 관습도 바뀌어야 하는 법이죠. 전통의 계승도……. 그게 사회 전체를 물들여선 안 되는 거고."
셰인은…….
카일 페터슨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시대에 비참히 활동하다, 끝내 제 곁을 떠나버린 스승이 가르쳐주었던 ‘올바른 약’의 사용법을.
그게 독이 되리란 것도 알지 못한 채 남발하는 이 시대를,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은 의사로써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고하는 물음은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 시대의 풍조를 읽고, 이용하는 자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고.’
그것이 제 진심을 파고드는 물음이란 걸, 그의 사정을 모르는 제네릭 역시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런 걸 당당히 주장하는 태도를 세간에선 만용이라 부릅니다."
하다못해 200년 전이었다면.
200년 전 교국으로의 큰 도약을 이루기 전에 태어났다면, 지금 시대의 무언가가 바뀌었을지도 몰랐을 텐데.
"당신의 의견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요, 잘못을 바로잡는 건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그 잘못을 바로잡는 것 역시도 풍조를 따르며 이루어지는 겁니다."
악습이 유지되는 건 대중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닌, 그 악습이 사라졌을 때의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미래에서 비롯된 책임을 짊어지길 기피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책임을 짊어지는 것을 강제할 수 없으니, 변화란 자각 없이 이루어지는 게 이상적인 것이다.
그 변화를 개인의 손으로 직접 바꾼다 말하는 건, 한낱 인간에게 있어선 만용이라 부를 일이다.
"당신이 이 평화의 시대에 전쟁을 일으키려는 게 아닌 한……."
200년 전과 같은.
"당신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요."
진정 소년이 말한 광기가 필요한 시대를 다시 이끌어내지 않는 한.
"그러니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건, 당신의 주장이 옳고 그르건……. 당신은 이번 재판에서 죄인이 되어 심판을 받게 되고, 이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될 겁니다."
그렇게 시대의 흐름에 잊혀가는 사람들을, 제네릭은 이제껏 무수히 봐왔다.
제네릭은 그것을 이 소년에게 이해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에 대한 소명마저도 느꼈다.
그럼에도.
"아뇨, 바꿀 겁니다."
그럼에도 소년은 굴하지 않는다.
아니, 주장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알아야 해요. 그저 믿기만 하는 걸로는 모든 걸 극복할 수 없다는 걸."
설령 신성력이라는 만병통치제가 실존한다 해도, 그것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 아닌 저주로 받아들이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막대한 힘 하나가 모든 걸 해결해줄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을 가져선 안 된다는 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이번 재판이 끝나면 분명 무언가 바뀔 테니까."
그 확신을, 그는 이 자리를 빌어 자신을 변호하게 될 이를 향해 단호히 말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그저 분위기일 뿐이라면, 그건 한 순간에 주어지는 계기만으로도 분명히 바꿀 수 있으리라 확신하듯.
‘분명 근거 없는 확신일 텐데.’
분명 그럴 터임에도.
‘어떻게 저렇게 의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거지?’
이제껏 마주해온 죄인들 중, 재판을 앞둔 상황에 이렇게나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자가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하물며 어린아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그런 기억의 되짚음이.
풍조를 이용하길 택했던 한 남자의 마음을 자극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