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22화 (22/255)

의무병의 환생 22화

제도 아스토라의 재판장.

이곳에서 벌어지는 재판은 ‘년 단위’로 새야 할 정도로, 제국 내에서도 매우 드문 일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치러지는 재판 속에서 처벌의 대상이 되는 자는 반란군, 혹은 이교도의 수장.

제국 내에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역죄인들이며, 이런 중요성 때문에 참관인으로 황제를 섬기는 측근과, 제국의 3공작이 의무적으로 출석할 것이 명될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위상이 드높다 해도 결국에는 관중에 불과할 뿐.

재판에서 공신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오직 법조인들뿐으로, 그 중 공소제기를 맡는 건 대대로 사건을 조사한 심문관들이었다.

이단심문관 안젤라.

그녀는 제 반대편에 선 변호인을 보며 눈웃음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제네릭 얀데르센……. 이렇게 마주하게 된 건 처음이던가요?"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안젤라가 반대편에 서 있는 제네릭에게 인사차 말을 건네었다.

"당신에 대해선 누누이 들어왔습니다. 제국 내에서 가장 유능한 변호사라고 소문이 자자했었죠. 이단을 변호한 적은 처음이라 이런 자리에 설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잡담은 재판을 끝낸 후로 미루도록 하시죠."

오똑한 콧날과 표독스러운 눈빛.

그러한 인상에서 안경을 치켜세우니 깐깐한 인상이 급증하는 듯하였다.

안젤라가 쿡,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와의 대화가 불쾌한 듯하시군요. 이해합니다. 엄연히 적이 된 사이이니 거리를 두는 게 당연하겠죠."

"재판이란 어디까지나 공정한 판결을 위한 자리입니다. 그 과정에 대립한다 하여 서로 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단을 변호하기로 결정한 이상은 적이죠."

안젤라의 눈이 가느다랗게 뜨여졌다.

"물론 당신에게도 사정은 있을 겁니다. 이후의 재판에서 어느 정도의 처분을 주장하느냐에 따라, 교단에서 행하는 당신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겠지요."

그러니 모쪼록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그 무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제네릭은 덤덤히 손에 쥔 서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재판장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그 순간.

-탁.

망치를 두드리는 소음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수천의 사람들을 수용하는 재판장에서 가장 드높은 자리.

"재판에 참석하게 되실 모든 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귀족들보다도 더욱이 높은 곳에 위치한 그곳에, 하얀 수염을 덥수룩이 기른 노인이 망치를 들고 자리하고 있었다.

"저는 이번 재판을 진행하게 된 제국의 사법부 소속의 판사 안드레이 웨이튼. 유일교의 신자로써, 그리고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섬기는 신하로써 이번 재판을 공정하고 엄숙히 진행하겠다 이 자리를 빌어 맹세하겠습니다."

이 재판장 내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는 자.

엄숙함이 묻어나오는 언동에 일동이 침묵하였다.

이전까지 서로를 벼르고 있던 안젤라와 제네릭 역시 마찬가지.

그 분위기에 묵념을 하고 있을 무렵, 재판장이 기도를 마치고 마저 말을 이어갔다.

"이 재판에는 제국 전체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다루는 자리입니다. 모쪼록 재판을 참관하시는 분들께선 엄숙하고 정중한 마음으로 진행을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3공작을 포함한 다수의 귀족.

그들을 호위하고자 몰려온 무수한 병력들과, 무수한 평민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어수선한 웅장함이 가득한 장소.

그런 이들을 재판장의 배후에서, 장막에 가려진 5명의 배심원단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 수 있는 건 실루엣 뿐.

참관인은 물론 법조인들 역시, 그들의 정체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재판장은 그들을 등진 채, 현 재판을 주도할 이들을 차차 둘러보았다.

"심문관 안젤라."

"네."

"변호인 제네릭."

"말씀하시지요."

"두 사람은 제국을 굽어 살피는 황제폐하와 주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현 재판을 정직하고 공정하게 진행할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하겠습니다.""

"피고인 셰인 골드리안."

이윽고 재판장의 시선이 피고에게로 향해졌다.

이 공간에서 가장 고독한 자리에 서 있는 14살의 소년에게로.

"그대는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순응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네."

애초에 피고석에 선 순간부터 대답은 결정되어 있었다.

재판장이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다, 이내 안젤라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럼 심문관 안젤라. 그대에게 현 사건에 대한 정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한데 집중된 상황.

안젤라가 그 시선을 느끼며, 제 손에 쥔 서류의 내용을 읊어가기 시작했다.

"피고인. 셰인 골드리안은 후작가문에 소속된 인물로,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제국 내에서 금기시 여겨지는 이단의 학문인 ‘약학’의 연구를 독자적으로 행했습니다."

웅성웅성.

개요의 설명에 참관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사전에 듣기는 했어도 고작 14살의 소년이, 정말로 제국에서 금기시되는 학문을 연구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정말로 저 애가 금기를?"

"아무리 어린애라도 그렇지, 골드리안 가문이라면……."

"들어보니 서자인 거 같던데."

"그런데 약학이 뭐지?"

-탁!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재판장이 망치를 두드렸다.

딱딱한 목재망치에서 비롯된 전율에 소란은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설명을 계속 하시죠."

"……네."

이후 안젤라가 서류를 새로이 펼치며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골드리안 가문의 관계자 분들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적부터 학구열이 강한데 비해 가문의 사정상 그 욕구를 해소하기 어렵다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큰 불만을 보이며, 여러 마찰을 일으켰다 저택의 사용인들이 증언을 해주었죠."

-펄럭.

고요함 속.

서류의 흩날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그랬던 피고인은 각 가문의 협의 하에 잠시 라인하르트 가문에 신변을 위탁……. 그 과정에서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영약에 관심을 가지고 연금술을 독학하는 중, 현 제국이 금기시 여기는 지식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내 모든 내용을 읊은 후.

안젤라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개요의 정리를 마무리 지었다.

"억압된 학구열의 표출이 금기를 범한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저희 측에서 파악한 사건의 정황입니다. 신분에 대한 차별도 이에 영향을 주었겠죠."

뒤에 덧붙인 말은 소속된 가문과 피고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의견인 것일까?

논란이 있을 법함에도, 그에 대해 지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귀족사회에서의 서자란 그렇게나 하찮게 여겨질 존재였으니.

"하지만 조사해본 바, 현 피고가 습득한 지식은 단순 일탈로 보기 어려울 정도의 전문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만한 의욕을 발휘하는 데엔 그만한 계기가 존재할 터……."

그 계기에 대해 설명할 때가 왔다.

안젤라가 잠시 보고를 멈추고,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이에 대해 말하기 전, 이 내용은 라인하르트 공작 전하의 허락을 받아 공표하는 것임을 미리 밝히겠습니다."

판사석보다 한층 낮은 자리에 위치해있는 세 개의 자리.

그중 중앙에 앉아 있는 젊은 공작은, 그녀의 옛 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였다.

그의 긴장어린 시선을 마주한 안젤라가 굳어진 목소리를 흘렸다.

"세실리아 라인하르트. 현 라인하르트 가문의 유일한 계승권자분께선, 천성적으로 병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천성적인 병…… 이라 하면?"

"제국에선‘저주’라고, 교단에선 신께서 내리신 ‘탄생의 형벌’이라고 부르고 있죠. 위대하신 분께서 내려주신 힘으로도 치료하지 못하는 데엔 그에 따른 이유가 있을 테니……."

웅성웅성.

다시 한 번 소란이 인다.

이단의 연구에 대한 것보다도 더욱이 큰 소란.

그건 이제까지 제국에 알려진 바가 없던 소식이, 다름 아닌 심문관의 입에서 직접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심문관 안젤라."

재판장이 망치를 두드리고, 잠시 그녀의 설명에 난입하였다.

"제가 알기로, 그대는 라인하르트 공작가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사실입니다. 교단과 관련된 부분에서 용무가 있을 때엔 저를 호출하고는 하셨죠."

"그건 세실리아 라인하르트 역시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바겠지요. 즉, 그대는 그녀가 저주에 걸렸다는 걸 알면서도 이 때까지 숨기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안젤라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교단 내에 숨기는 바가 없어야 할 신자로썬 죄의식을 가질 만한 일이었으니.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그건 주님에게 맹세코, 결코 제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안젤라의 시선이 참관인들로 향해졌다.

"이제까지 저주를 받았다 알려졌던……. 그분들을 핍박하는 사회를 거스를 수 없었기에 행한 결정이었죠."

저주를 받았다 일러지는 이를, 편견을 가진 대중에게 선보이는 건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

안젤라는 그런 편견을 심어 넣은 세력의 사람이었다.

"지금 밝혀진 이 진상에, 영애님을 두려워하거나 경멸하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그들에게 가해진 핍박을 잘 아는 자.

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그 세력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제 주장을 펼칠 지위까지 오른 상태였다.

이어지는 건 그런 입장에 서서 행하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여러분. 탄생의 저주란 결코 죄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중과 권력자들이 주목하는.

이 제국에서 결코 흔히 찾아오지 않는 이 기회를 빌려.

"당초에 죄라는 건 스스로의 의지로 저지른 것을……. 하지만 저주는 그 누구도 각오하지 않고, 수용하고자 한 적도 없는 것이죠."

계급도, 출생도, 능력조차도 아닌.

그저 태생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 마땅하다는 건, 현 제국에선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일임을 밝힌다.

"그런 이들을 무조건 핍박하는 건, 유일교의 교리인 ‘모든 인간을 평등히 사랑하라’는 가르침에도 위배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과거 볼레로 라인하르트가 교화된 야만인들을 포섭하듯.

그로 인해 노예로 전락해야 했을 야만족들이 제국에 귀화되었듯.

"……물론 이건 교단을 대표하는 의견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해석일 뿐. 이에 대한 처사는 재판이 끝난 후 겸허히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내 의견을 마무리 지은 안젤라가 고개를 숙이고, 시선만을 라인하르트 공작에게로 향하였다.

10년을 넘게 숨겨온 제 딸의 비밀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밝힘으로써 제국사회에 만연한 인식을 뒤바꾼다.

그 의도로부터, 라인하르트 공작은 안젤라가 가진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단자는 아닙니다."

동시에 제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도.

"……셰인 골드리안."

곧 안젤라가 날이 선 눈빛을 피고석으로 향해졌다.

"그가 금기를 범한 이유는, 신성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논해야 할 것은 치료의 대상이 된 소녀가 아닌, 금기를 어긴 소년을 어찌 처벌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겠죠."

"……."

셰인은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분노하지도, 억울함을 토로하지도 않은 채 상념에 잠길 뿐.

재판장의 시선이 제네릭에게로 향해졌다.

"변호인 제네릭. 그대가 듣기에 이제까지의 발언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습니까?"

"……죄를 논하는 자리라는 점에 대해선 이의는 없습니다."

덤덤히 말하는 제네릭.

그는 변호사로써, 피고석에 선 자가 편견과 모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는 자였다.

하지만 그런 편견만으로 판결이 내려진다면 애초에 재판 따윈 거칠 필요가 없을 터.

"그럼 변호인. 피고에 대한 변호를 진행해 주시죠."

"네, 그럼……."

안경을 치켜세운 제네릭이, 곧 손에 쥔 서류를 셰인에게 겨누며 당당히 외쳤다.

"먼저 저 변호인은, 이번 재판에서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할 것을 선언하겠습니다."

흠칫.

예상치 못한 발언에 안젤라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건 현 재판을 관람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숙."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그 침묵을 빌린 재판장이 제네릭을 쏘아보았다.

"변호인. 지금 이 재판은 이단에 대한 형벌을 정하는 자리입니다. 그러한 곳에서 선처가 아닌 무죄를 주장하는 건……."

"존경하는 재판장님."

말꼬리를 흐리는 재판장에게 제네릭이 말했다.

"변호사가 어떠한 주장을 할지는, 재판의 규율과 절차를 지키며 관계자들을 모독하지 않는 선에선 자유라 알고 있습니다."

변호인이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한다. 법적으론 문제될 것이 전혀 없는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제네릭 개인이 감수할 일.

그 의사를 읽은 재판장이 그에게서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당신이 그리 말한다면……. 알겠습니다. 순응하도록 하지요."

현 재판에서의 재판장은 어디까지나 진행자일 뿐.

제네릭의 의견대로, 그의 개인적인 결정에 책임을 물을 자격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순응한다 해도 법정의 혼란을 지울 수 있을까?

그런 혼란을 느끼는 건 안젤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죄라니, 자신이 있는 건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만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이제까지 맡은 재판에서 대부분 승소를 거두었다 한들, 이단의 재판에서까지 그걸 바라는 건 무리가 있으니까.

"그럼 변호를 진행하기에 앞서, 현 피고가 이단연구를 했다 여겨지는 증거물들을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긴장을 느낄 무렵, 제네릭이 변호석에 선 채로 제 손에 쥐어진 서류를 뒤적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지시를 받는 이들이 물품을 가지고 왔다.

내어진 건 다량의 서적.

그리고 유리관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장치들.

"심문관님. 이 물품들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겠죠?"

"……피고인이 썼던 방에서 발견한 증거품입니다."

"화학관련의 서적들, 그리고 증류장치를 포함한 각종 연구용 도구……. 흔히 연금술사들이 사용하는 물건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전에 설명했던 대로, 현 피고는 연금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단의 지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제네릭의 말에 덧붙이는 안젤라.

어디까지나 제 주장의 설득력을 더하기 위한 행동이며, 제네릭 역시 그것을 부정하진 않았다.

"연금술의 연구과정에서 이단의 지식을 탐구하게 되었다……. 확실히 결과만 본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겠군요."

"네, 결과만 본다면……."

"그럼 이 중에 이단의 지식에 도달한 계기를 가져온 증거물은 존재합니까?"

안젤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슨 말씀이시죠?"

"좀 더 알기 쉽게 설명을 하자면……. 그래요. 과거 이단자들이 서술한 문서나, 그들이 사용했던 공간에 대한 흔적. 혹은 다른 이단자와 내통한 편지 등을 발견했는지를 묻는 겁니다."

현재 증거물로 내어진 건 도시에만 내려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약학이라는 이단의 지식이 화학에서 파생되었다 한들, 그 결정적인 계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소년이 행한 건 ‘개인적인 연금술 연구’로 그치게 될 것이다.

"연금술과 관련된 물품만으로 이단으로 몰아간 것이라면, 마탑은 공식적으로 이단자들의 집단이라는 뜻이 되겠죠."

어디까지나 소년이 행한 건 연금술이었을 뿐.

그것이 제네릭의 첫 주장이었다.

안젤라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 흔적이야 진작에 처분을 했겠죠. 물론 처분을 했다면 그 처분을 행했다는 증거를 찾아야겠지만……."

-탁!

이윽고 그녀의 손에 새로운 증거품이 내어졌다.

"애초에 그런 걸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가 연금술을 기반으로 이단 연구를 행했다는 결과는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내어진 것은 파이프 담배와 비슷한 형태의 흡입기.

세실리아 라인하르트에게 내어주었던, 약물을 담아 흡입하는 물품이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와 같은 이단심문관들은 기본적으로 이단의 지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단의 지식을 알아야만 이단자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괴물을 잡으려면 심연으로.

성서에서도 나오는 오랜 격언으로, 이단심문관들은 그 가르침을 적극 수용한 이들이었다.

주에 대한 믿음이 진실 되었다면, 설령 그 지식을 접하더라도 자신들을 타락의 길로 이끌지 않을 테니.

"그 지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물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신체에 영향을 주는 약물을 흡입하는 장치……. 현 피고는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 끝에 고안한 이 장치를 영지 내의 장인에게 의뢰하여 만들었죠."

현 제국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될 물건.

그런 결과물이 구현된 것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하다.

"그렇군요."

제네릭 역시 그 점을 수긍했다.

그리고 말한다.

"즉, 당장의 의견을 정리하자면……. 피고인은 이단의 지식을 접하지 않고도 이단자들과 같은 결과물을 내었다는 뜻이겠군요."

"무슨……."

"교단에서 채택한 증거물들은 현 피고가 사용했던 연금술과 관련된 물품과 서적, 그리고 이단의 지식에서 나타난 결과물이죠. 하지만 그 사이에 피고가 직접적으로 이단의 지식을 접했다는 증거물은 그 어디에도 없잖습니까?"

처분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처분을 한 흔적 역시 남아야 한다.

그런 흔적마저 발견되지 않았다면, 당장의 상황만 보았을 때 소년이 행한 건 그저 연금술의 연장선일 뿐.

그 끝에 도달한 결과가 이단의 물건이라 해도, 자의로 지식을 접하지 않았다면 어디까지나 ‘유사한 정도’로 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안젤라는 그 주장에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저 자의 말대로, 저 아이가 이단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접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가 없었어.’

정리된 내용조차 방대한 서적의 내용을 하나하나 추리고, 조합하여 만든 것일 뿐.

비유를 하자면 답에 도달하기까지의 공식을 처음부터 설계한 셈이다.

그건 교단의 사람에겐 몰라도, 상식을 갖춘 사람에겐 결코 흘려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환생자라는 개념을 접해본 바가 없기에 더더욱.’

"존경하는 재판장님."

반론을 하지 못하는 심문관에게서 등을 돌린 제네릭이, 곧 재판장을 마주하며 제 의견을 토로했다.

"허락된 연구를 이어간 끝에 이단자와 같은 결과를 내었다……. 그것만으로 죄인으로 규정하는 건, 현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판결이 아닙니까?"

‘현 죄인의 유죄를 주장하는 건, 이 사회가 이단 문화를 접하지 않음에도 이단자로 몰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제네릭이 셰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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