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23화 (23/255)

의무병의 환생 23화

-웅성웅성.

제네릭의 주장에 재판장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지금 제네릭의 주장은 그만한 혼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

심각함을 눈치 챈 안젤라가 다급히 재판장을 향해 소리쳤다.

"재판장님! 지금 저 자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자 현 제국의 체재를 모독하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어서 발언의 중재를!"

이단자를 양성하는 사회라니.

어찌 제국을 살아가는 자가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존경하는 재판장님."

하지만 그것이 무리수라는 걸 가장 잘 아는 건 발언자 본인이다.

"저는 한명의 법조인으로써, 재판을 이끌어가는 재판장님의 뜻을 언제나 존중하고 있습니다. 부당하다 생각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저의 어리석음을 벌하시길 바랍니다."

그래, 이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단자의 무죄를 주장하고자 제국의 체재를 부정하다니, 이제까지의 자신이라면 결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한다.’

피고에 대한 동정 따위가 아니다.

이 재판에서 완벽히 이길 거란 확신도 아니다.

그저 소년이 내뱉은 주장에 감회되었기에…….

이 재판을 통해서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그런 소년을 믿고 그 변화에 일조하고 싶다.

그건 풍조에 순응하기에, 그 풍조를 거스르고자 하는 욕망을 억눌러온 남자의 변덕.

한편으론 변호인으로써의 신념을 건, 제국을 향한 작은 반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변호인의 발언을 허가하겠습니다."

이윽고 고민 끝에 재판장이 답을 내렸다. 안젤라가 다급함을 느끼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재판장님. 지금……."

"심문관 안젤라."

고함에 돌아오는 엄숙한 답변.

"제도에서의 재판은 특히나 엄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타당성이 있다면 모든 견해를 들어볼 필요가 있죠."

지금의 의견은 교단이나 황실에 있어선 결코 수용해선 안 되겠지만, 이곳은 엄연히 공정한 판결을 중시하는 재판장이다.

자격이 있다면 규율을 지키는 선에선 누구라도 발언의 자유를 보장받는 장소.

그러니 제네릭의 발언에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는 법.

"변호인 제네릭. 방금 발언에 대한 책임은 재판의 결과가 어떻건 그대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건 제가 감내할 일이니 진행을 계속해 주시죠."

"……발언을 계속해주시지요."

허락이 떨어졌다.

많은 것을 희생시켰기에 공신력을 가지게 된 발언권.

"친애하는 제국민 여러분."

제네릭이 그 발언권을 향한 곳은 이곳에 모인 청중들이었다.

"저는 스스로가 이 테라스 제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레 여기고 있습니다."

거짓이 아니다.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 평생을 살아갈 땅이다.

풍조를 따른 이유는 체념만이 아닌, 그 풍조에서 나름대로의 매력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그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이어지는 발언은 그런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이제껏 우리가 두려워하고, 그렇기에 지켜야 하리라 여겼던 금기 중 일부는, 현 피고처럼 일상을 누리던 중에도 도달할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죠."

모두가 꿈꾸는 완벽한 사회란 그저 바람일 뿐.

강박적인 전통의 숭배로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사회에 대두되는 문제들을 외면하며 없던 셈으로 치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현 피고가 금기를 범했으나, 그 과정은 저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요소들로 뭉쳐져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쪼개어 본다면, 결코 죄라고 할 수 없는 일들이겠죠."

의도치 않게 도달한 유사점.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게 전부다.

거기에 죄를 묻는 게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

"물론, 피고 역시 자신이 도달한 결과가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리란 걸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피고는 그것을 죄라고 여겼다.

사회는 개인의 사정보다도 집단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고, 그런 사회에서 과정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까.

의도가 다르다 한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일에 뒤따를 결과에 책임 질 의무가 있단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여기기에, 그 의도가 분명한 ‘선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죠."

죄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소신이 있기에.

그 맥락만은 교단에서 말하는 ‘순교자’라 불리는 이들과 같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심문관님. 당신의 말대로 저희들이 ‘저주받았다’ 일렀던 분들은 결코 혐오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될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걸 강조하고 배려한다 해도, 이 제국이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겠죠."

그들의 힘은 저주받은 이들을 구원해 줄 수 없고, 신앙을 절대적으로 숭상하는 이들은 결국 그들을 편협한 시선으로 보며 다시 외면해 버릴 테니.

"하지만 저 소년은 이제껏 당신들이 말로만 주장했던…… 그들을 향한 구원을 이루어냈습니다. 세실리아 영애님의 상태를 봐오신 심문관님이라면 아실 겁니다. 그녀의 증세는 당신이 돌보기 이전보다 크게 호전된 상태라는 걸."

그러니 이 사회의 떳떳함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저 소년을 죄인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설령 그 결과가 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한다 해도, 그 의도가 올바른 성과를 이루어내었다면…….

그 자체만으로 이제껏 경계해온 이단자들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고.

"그러니 그 가능성에 기대어 죄를 사해주었으면 한다……. 이것이, 제가 현 피고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이윽고 의견을 마무리 지은 제네릭이 대중의 앞에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엄격하고 진지하게.

그럼에도 올곧은 태도로.

"……."

참관인들 중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평민들은 물론 귀족들도, 심지어 교단의 사람들조차도, 모두가 한마음에 되어 제네릭의 의견에 감회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의견엔 그만한 힘이, 이 시대가 추구하는 ‘완벽’에 균열을 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럼에도 오직 한 사람.

"발언의 허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소년을 죄인으로 규정한, 심판자를 자처하는 집단의 대표는 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굽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제 앞의 남자가 행하고자 하는, 현 제국이 추구하는 ‘완벽’에 구멍을 낸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고 있었으니까.

"허가합니다."

이윽고 허락이 떨어진 때.

안젤라가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제네릭을 쏘아보았다.

"안쓰럽군요."

"……무슨 말씀이시죠?"

"안쓰럽다 했습니다. 제네릭 얀데르센, 당신 정도 되는 인간이 누군가에게 회유되어 억지스러운 변호를 이어가다니……."

역변한 분위기하고 숨통이 막혀왔다.

그저 상대가 진지하거나 무게를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뭐지?’

제 소신을 떳떳이 주장한 제네릭이었으나, 지금만큼은 숨통이 턱 막혀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상태가 호전되었다……. 네, 지금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만약, 그것이 우연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라면 어찌 할 겁니까?"

그건 사람을 향한 공포.

하지만 이제껏 두려워했던 자를, 에버그린 골드리안이란 여자를 마주할 때와는 다르다.

지금 자신을 위협하는 건 뱀의 혓바닥이 아닌, 직접적으로 자신의 몸을 짓이겨 밟을 수 있는 괴물이 뿜을 만한 살기였으니.

"방금 저 소년이 성과를 이뤘다 했지만, 정작 저 소년이 이루어낸 성과는 어디까지나 ‘독학’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 지금의 안젤라는.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증오를 자신을 향해 표출하고 있었다.

"스승을 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숙련된 학자인 것도 아니죠. 그런 결과물이 객관적으로 대중을 설득시킬 만한 근거가 존재한다 누가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입꼬리가 치켜세워지고, 그럴수록 광기가 스멀스멀 드러난다.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에 표출되는 기백이.

"세실리아 영애님께서 회복되었다고요? 눈에 보이는 그럴싸한 결과가 어찌 정답이라 할 수 있습니까? 겉으로만 괜찮아 보일 뿐 몸이 서서히 망가지는 거라면? 일시적인 도핑효과일수도 있죠. 혹은 그 처치에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축복으로도 어찌 못할 정도의 후폭풍이 몰려들 수도 있단 말입니다!"

"심문관 님. 감히 말씀드리지만 그 발언은 지나치다 생각합니다. 그건 마치 세실리아 영애님께서 상태가 호전되길 바라지 않는……."

"저 소년이 한 건 절대로 구제가 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는 겁니까!!"

-콰강!

반박에 돌아오는 난동.

안젤라의 주먹이 제 앞의 단상을 내려치며 난……. 아니, 내려친 것조차도 아니다.

그저 디디고 있던 두 팔에 힘이 실린 것만으로 붕괴된 것이다.

그 갑작스러운 파괴에 대중에게 경기가 일었지만, 그럼에도 안젤라는 제 의견을 멈추지 않았다.

"아아, 제네릭 얀데르센……! 그래요, 당신은 그저 법을 지키기만 해온 자. 금기를 범해본 적이 없으니, 금기가 어째서 금기라 불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죠!"

가빠진 호흡.

핏발이 선 눈동자에선 자애 따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을 배워왔으니, 당장의 결과만을 보며 이제까지의 체재가 잘못되었다는 둥,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정상이 아니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그녀를 말리려 들지 않았다.

그저 호흡을 굳힌 채 그녀를 멀뚱히 주시하는 가운데, 안젤라가 자신의 팔을 차차 들어올렸다.

"하지만 무지와 무식은 별개로 쳐야 할 문제……. 그러니 아직은 무지할 뿐인 당신을 이해하며, 당신에게 이 자리에서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상을 부쉈던 손을 대중의 앞에.

도저히 인간의 손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흉측한 것을 내세운다.

"이것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흠칫.

제네릭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안젤라가 그 반응을 비웃듯 고개를 기울였다.

"……왜 말이 없으시죠?"

뒤틀려진 골격의 구조.

피부는 칠흑빛으로 물들어지되, 그 사이로 두툼히 솟아오른 혈관만은 붉은 빛을 발하고 있다.

"직접 말씀해주시죠. 이 손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두근, 두근.

심장이 뛸 때마다 부풀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팔.

그 움직임이 흉측한 팔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가운데, 안젤라가 진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유전자 변이 실험의 결과물. 저 소년이 행한 것과 같은 ‘의학’이 이루어낸 일입니다."

-웅성웅성.

참관인들의 경악이 아우성으로 뒤바뀌어간다.

안젤라가 보여준 결과물이란, 그렇게나 강렬한 것이었다.

그녀가 보여준 건 제네릭이 주장한 사회적 체재의 구멍보다도,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었으니까.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와 같은 심문관들은 이단을 벌하고자 이단에 대한 지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을 할 건 아니지만……. 때로는 그에 대응하고자 이단의 기술을 사용하기도 하죠."

괴물을 처리하고자 한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

이단심문관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걸 감내하고자 하는 자였다.

설령 괴물이 되더라도, 주님에 대한 믿음은 자신들을 타락시키지 않을 거라 확신하기에.

"그런 심문관으로써, 저는 제국 내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여럿 보아왔습니다.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인체실험과 생화학 테러! 상식을 져버린 채 태어난 부정하고 부도덕한 창조물들은, 지금 제 손을 이루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처참하고 참혹하고 끔직한 것이죠!"

결코 망상도 추측도 아닌, 엄연히 존재했던 결과.

실제로, 이 자리에 참관한 이들 중 그 자리에서의 참혹한 광경을 본 이들은 적게나마 존재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저는 이제껏 그들을 여럿 단죄해온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단언해 말할 수 있죠. 제가 단죄해온 이들 대부분이, 시작만은 저 소년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설령 그것이 이 시대의 죄로 여겨질지언정, 의도만은 옳으니 언젠가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그러니 그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어떤 책임을 지더라도 주장하기만 하면 된다.

관철하기만 하면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그녀의 손을 이루는 무언가였다.

"지금 당신의 눈엔, 그 마음의 결과가 올곧다 여겨지십니까?"

‘금기란 이유가 있기에 금기가 있는 법.’

그 이유가 대중에게 밝혀진 시점에서, 그것은 낡은 관습이 아닌 엄연히 지켜야 할 규율로 승화되는 것이다.

"제국민 여러분. 변화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안젤라가 행한 것은 그런 것이다.

제 수치스러운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그 사실을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이 나라의 대중이 주목하는 자리에서, 제 의사를 각인시킬 ‘발언권’ 하나를 얻고자 많은 것을 희생하는 행위.

"그리고 누군가는……. 그 논리를 빌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하죠. 변화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스스로가 그 책임을 짐으로써 이 정체된 현실을 바꿀 수 있겠구나, 자신해 말합니다!"

그러한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그녀는 꺾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진 분쟁에 피를 흘리는 것이 정녕 그들뿐이었습니까?"

오히려 그 점을 빌어, 제 주장의 설득력을 굳혀간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희생을 들어, 그 외에 있을 모든 희생을 정당화하고자 하죠."

신문물을 접했다는 우월감을.

세계의 개혁이라는 선의로 포장한 반역의 의지를.

"그들을 저지하고자 하는 이들……. 더욱 나아가, 그 싸움을 지켜보는 자들에게 불똥이 튄다 하더라도, 그들은 무관계한 이들에게조차‘각오해야 할 일’이라 주장을 하기에 이릅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무지한 이들마저도, 그들의 독선에 각오하지도 않은 희생을 강요받기에 이르는 겁니다!"

악이라 정의해 마땅한 그들의 의지가, 이 시대에 불러일으킬 피해를 강조하며 대중을 설득한다.

방향이 비틀어져가는 풍조를 바로잡는다.

"그래요, 의도가 올바르다는 건 결코 죄를 사면하는 이유가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처벌의 진정한 목적은 잘못을 이해시키기 위함이 아닌, 그자가 저지른 것과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니까……."

누군가는 극단적이라 여길지도 모르는 주장.

하지만 지금 그들이 언쟁을 벌이는 곳은 엄연히 재판장이다.

죄인을 처벌하는 이곳에서 내려야 할 판단은 결코 올바름만이 되어선 안 된다.

"여러분들께선, 저 소년의 정당성을 주장한 후에 생길 혼란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계십니까?"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그 과정에서 일어날 혼란과 희생을 줄이는 것.’

그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경우의 파장을 인지하기에, 안젤라는 더욱 필사적으로 저 소년을 죄인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건 다름 아닌 피고인이 가장 절실히 실감하고 있는 것이었다.

"……."

셰인이 조용히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땀이 적셔진 손아귀.

손주름 사이에 물이 고일 정도다.

그건 분노인가.

그녀의 의견을 부정하기에 그런 것인가?

반은 정답이었다.

자신은 그녀와 달리 의학의 완전성을 목도했던 자였으니까.

그리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200년이란 시간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었단 사실에 대한 자학이었다.

‘그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거야. 전쟁 이후에 모든 걸 잃어버렸으니까.’

지식의 완전성을 목도하지 못하는 군중에게 어찌 설득이 통할까.

그것을 강제로 집행하려 하면 또 다시 무수한 피가 흐를 것이다.

그건 다름 아닌 200년 전의 전쟁이 증명해준 사실.

그 흔적이 소실된 현재에 죄인이라 불려야 할 자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부하는 현대인들이 아닌, 도태된 감상으로 세상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야만족일 것이다.

"셰인 골드리안."

그걸 차차 깨달아가는 가운데, 안젤라가 셰인을 불렀다.

"본래 심문관들은 재판에 오르기 전, 그대와 같은 죄인들로부터 고해를 듣기 위한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광기가 거두어진 자리에 어리는 아련한 감정.

그건 이제까지 주장했던 ‘극악무도한 죄인’들과, 제 앞에 있는 소년 사이에 선을 긋기에 보일 수 있는 태도였다.

"그럼에도 그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건, 당신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실토했기 때문이죠."

이제까지 마주했던 다른 이들과 달리 저항하지 않고, 심문을 할 때에도 자신의 죄를 고백했었기에.

그러니 저 소년의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만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다시 한 번……."

하지만 죄에 대한 떳떳함과 반성은 별개로 쳐야 할 문제.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안젤라는 이 소년이 자신이 봐왔던 ‘타락한 어른들’로 자라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이 제국에 끼칠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죄를 뉘우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묻는다.

어떤 식으로 접근했건, 어떤 의도로 저질렀건.

자신이 저지른 일이 이 사회에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올지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그에 대한 속죄를 청할 의중이 있는지를.

"저는……."

그 물음에 셰인이 고민 끝에 대답했다.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고, 이 재판에서의 언쟁을 듣고 난 후에도.

재판을 시작했을 때부터 변치 않은 태도로, 그 마음으로.

"제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이 자리에 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속죄의 의사를 보여도 10년이 넘게 수도원에 박혀야 할 일을 저질렀음에도.

여기서 반성의 여지가 없다면 그가 가야 할 길엔 오직 교수대만이 존재할 터임에도.

"당신은……."

"아니, 제가 했던 일은 분명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구제를 위한 설득조차도 소년은 거부하였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 시대의 사람들과 달리 ‘의학의 완전성’을 목도한 자.

그 완전성을 다시 구현하기만 한다면, 그들이 우려하는 것들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저는……."

그렇기에 단언한다.

잘못된 악습과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변화의 부정적인 면모만을 보며, 변화를 거부하는 풍조는 결코 권장되어서 안 된다고.

"저는, 저를 믿고 따라준 그 아이를……."

그렇기에 주장한다.

그 누구도 희생되어선 안 된다는 이유로, 이미 완성된 결과마저 부정하는 건.

도리어 숭고한 의지를 지니고 사지로 나아간, 그들이 ‘순교자’라 불러 마땅한 이들에게 모독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그 아이를 구제할 가능성을 보여준 나라의……!"

그 의미가 내포된 카일 페터슨의 의지가 200년의 시간을 넘어.

이 순간 셰인 골드리안의 입을 통해 내뱉어졌다.

"아이헨발트의 의지를, 이 시대에 이어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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