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5화
풍조란 사회의 순리와 같은 것.
권력자란 그것을 이용하는 자들이며, 대중은 그것을 이용하는 이들을 ‘풍조의 선두’라 여기며 가볍게 따르게 된다.
즉, 권력자들에게 간섭하는 것만으로도 풍조의 방향 정도는 비틀 순 있다.
쟈드에게 안젤라의 조사를 부탁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안젤라, 혹은 그녀와 관계된 권위자의 부정과 부패를 파헤치고, 유사시에 그들을 무너트려 제 주장을 밝히는 수단으로 삼고자.
하지만…….
‘이야, 이 사람만큼 깨끗한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보네.’
정작 쟈드에게 부탁했을 때, 안젤라에겐 그 어떤 부정이나 부패도 보이지 않았었다.
‘깨끗하다니, 정말로?’
‘응, 거짓말 안 치고, 이렇게 아무것도 안 나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야.’
셰인에겐 너무나도 의외라 여겨지는 결과였다.
처음엔 거짓말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자는 없고, 그건 교단 내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여겼으니까.
반면 그녀에 대해 조사했던 쟈드는 별 다른 혼란을 느끼지 않았다.
‘매일 같이 기도도 꼬박꼬박 나가지, 여유가 있을 때엔 전도를 하거나 여기저기 봉사 다니지……. 물론 이단을 처형할 때엔 엄청 잔인하고 무섭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딴 길로 새는 일 없이 사람들을 돕고 다닌다 하더라고.’
‘……정말로 몇 년 간 그게 전부라고?’
‘뭐,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애초에 신성력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남부끄러운 일에 엄두를 못 낸다는 거고.’
실제로 교단에 소속된 이들이 부패를 저지르는 게 어려운 환경을 갖추고 있다.
교단의 권위자란 신앙이 강한 사람인 법이며, 신앙심이란 조금이라도 교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흐트러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거기에 요행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
사람의 눈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신은 지켜보는 법.
그를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생각은, 홀로 있는 곳에서도 올곧음을 강요받는 강박으로 다가올 테니까.
‘……이건 예상 못했네.’
실망스럽기보단 놀라웠다.
자신을 향한 압박엔 신을 향한 광기마저 보였거늘, 정작 그 광기마저 선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그게 교단이 저지른 패악을 용서하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신념만은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잔에는 도금질을 왜 한 건지.’
‘응? 도금?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납중독을 알 리가 없지.
하지만 그런 무지함이야말로 안젤라가 저지른 일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였다.
쇳물을 마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고통을 받고, 그 지식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 이용당하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
‘그건 그렇고,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왜 이단심문관 같은 걸 하는 걸까?’
조사 결과를 말해준 쟈드가 셰인에게 의문을 토로했다.
그렇게나 독실한 신자가, 어째서 이단을 처형하여 본보기를 보여주는 잔혹한 일을 일삼는지.
그건 셰인 역시도 궁금했지만, 더 궁금한 건 왜 그녀가 자신의 친구를 이용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신성력이 유지된다는 건 그 또한 대의를 위한 일이란 뜻일 테니.
‘권력을 쥐고 싶어서겠지.’
‘권력……?’
‘선악과 관계없이 모두가 필요로 하는 거니까.’
아니, 오히려 악인보다 선인이야말로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를 주도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부정을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실의 상태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거, 사실이야?’
‘응, 교회 내에서 들을 수 있는 소식은 모두 들었어. 거기에 공작님 딸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 들렸거든.’
제 친우의 불운조차도 가십거리로 삼지 않고, 그 친우의 딸을 세상에 인정받게 하고자 부정을 저지르고도 대의를 추구하고자 한 사람.
그런 자가 행하는 처벌이란, 적어도 이 시대를 기준으론 결코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그럴 터임에도…….
‘그래도, 신성력으로 독을 완치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럼에도 셰인은 그녀가 가진 마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이 올곧다 한들, 무지를 신앙으로 덮는 풍조만큼은 결코 인정되어선 안 된다 여겼으니까.
‘어? 아니야! 해독은 완전히 가능해. 전염병 같은 것도…….’
‘아니, 아주 조금씩은 축적되게 되어 있어.’
신성력을 이용한 복원으로 기아는 해결할 수 없고, 또 식생활에 따라 몸의 체격은 달라진다.
즉, 몸에 흡수된 것들도 체격이나 성장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
그건 양분 뿐 아니라 독이나 중급속 등 해로운 성분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어, 그러고 보면…….’
‘아주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
미량이라도 몸에 중금속이 축적되고, 그로부터 비롯될 문제가 신성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발전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당연한 분석과 예지조차도 하지 않는다.
신성력이라는 절대적인 힘은 결코 탐구하는 것이 허락하지 않고, 그에 뒤따르는 인과관계를 생각하는 것조차 고려하지 않기에.
그렇게 무지한 이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자각하지 못하고 신성력을 발휘하니, 자각 없이 그릇된 일을 저지르는 풍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의사로썬 결코 방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쟈드. 이걸 심문관들에게 흘려보내줘.’
셰인이 숨겨둔 물건을 내어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내어준 건 흡입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양산된 실패작 중 하나였다.
‘이거 들키면 교회에서 오빠를 잡으려고 들 텐데?’
‘시간만 걸릴 뿐이지, 언젠가 들키게 되어 있어.’
약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서적과 설비의 구매기록, 그걸 마련하기 위해 마주친 사람 등등.
자신이 어찌 하지 못하는 증거들은 차고도 넘친다.
첫 만남에서 냄새를 맡았으니 조사는 이미 진행했을 터.
자신이 이단자라 낙인찍히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언젠가 꼬리가 잡힐 거라면, 괜히 없던 물증을 만드는 개수작을 안 부리게 하는 편이 낫지.’
그들의 목적은 올바름이 아닌 변화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그렇기에 심증과 약간의 증거만 있어도 고문을 서슴지 않고 행하며, 없던 증거까지 만들어 대중을 납득시키는 것도 거침없이 이루어낸다.
그런 그들의 습성을 이해한다면 차라리 확실한 증거를 넘겨주는 게 서로에게도 좋을 터.
‘그건 좀 곤란한데.’
그 의견을 들은 쟈드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오빠가 교단에 넘어가면 내가 오빠한테 얻어먹을 수 있는 게 없어지잖아.’
‘당분간 일거리 많아지는 걸로 퉁치지 그래?’
아무리 신념이 올곧다 한들, 그게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지 못하면 죄악으로 여겨지는 법이니까.
그러니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고발해야 한다.
그저 풍조를 따를 뿐인 사람들에게 의심을 유발하고, 그들이 절대적으로 믿던 정의에도 흠이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런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 속에선 뒷세계의 사람들도 활동하기 좋을 터.
쟈드에게 있어 셰인이 세운 계획은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활동에 셰인과의 관계가 배제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정말 이대로 교회에 끌려갈 생각이야?’
쟈드가 걱정을 내뱉었다.
‘오빠, 이단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속죄하겠다 하는 거랑은 전혀 다른 거야. 갱생의 여지도 안 보인다면 교수대에 목이 걸리게 된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수치스럽게 죽을 거라면……. 차라리 도망치는 게 좋지 않아?’
부정을 저질렀다 해도 아까운 인재라 여겨준 것일까?
도망을 친다면 도리어 뒷세계의 인간이 될 테니, 어쩌면 좋은 동업자를 찾을 기회라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들키는 게 나아.’
그럼에도 셰인은 쟈드의 제안을 부정하였다.
이대로 죄인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설령 이 두 번째 생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그런 개죽음으로 끝을 맺을지라도.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선.’
이런 시대라도 셰인 골드리안은.
여전히 카일 페터슨으로써 살아가길 희망하고 있었으니까.
* * *
안젤라가 떠난 후에도 재판은 진행되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재판을 진행하는 자가 안젤라에서 교단 내의 또 다른 권위자로 바뀌었을 뿐.
이후에 찾아온 또 다른 주교는 안젤라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신자였으며, 도리어 안젤라가 저지른 부정을 빌어 셰인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주장하였다.
하지만 정작 참관인들은 마냥 그들을 옹호하지 못하였다.
모두가 안젤라를 지지했던 것과 반대로, 현재의 그들에겐 교단에 대한 불신이 적잖게 생겨난 상태였으니까.
그래, 흐름은 바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바뀌는 과정’이다.
그 과정의 선두에 선 자의 최후란 언제나 명확하다.
"셰인 골드리안."
제 이름을 부르는 재판장의 눈빛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존중 역시도.
셰인은 그 모든 감정을 읽었다.
그것만으로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 역시도 이해하고 있다.
"비록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호전시켰다곤 하나, 그대가 탐닉한 지식은 이 제국에 큰 혼란을 초래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그대를 구속한 자가 죄를 저질렀다 한들, 그대 역시 위법을 저지른 만큼 처벌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후 어떤 결과가 나오건, 그 처벌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자신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담담히 이어지는 대답.
그를 마주한 재판장이 두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안쓰러운 목소리로.
그럼에도 죄인이 되는 자를 향해, 존중을 담아 말한다.
"아이헨발트라는, 고대민족의 의지를 잇는다는 그 말은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야만인이 아닌 고대민족이라는 수식을 붙여서.
그건 이제까지의 풍조를 따른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들을 야만인이 아닌 하나의 민족으로 정의하는 건, 제국이 저질렀던 정복전쟁이 마냥 정의였다 말한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그래, 지금 이 순간.
제국은 조금이나마, 자신들의 체제에 구멍이 있음을 인정하고자 하고 있었다.
"……네."
그리고 그 타협점이야말로 자신이 이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다.
이 이상은 바라면 안 된다.
그건 개인의 마음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과한 욕심이니까.
그러니 이걸로 만족하자.
이 두 번째 삶을 대가로 한 보상은 이걸로 충분한 거다.
"그럼 마지막으로 배심원단 분들의 회의를 거친 뒤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재판장이 장막의 아래로 들어갔다.
셰인을 포함한 이들이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 누구도 그들의 판단을 그릇되었다 하지 않으리라.
이후 그들이 내릴 심판이야말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의견이라 할 수 있을 테니.
그걸 개인의 뜻으로 거스르는 건 오만을 넘어 어리석음이라 정의될 일일 것이다.
‘부디 나에게 이 시대의 올바름을 보여주길.’
그렇게 셰인은 그들을 향한 존중을 담아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전생에 끝없이 되뇌고,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던 세 개의 문장을.
‘신조 하나. 의무병은 그 어느 때에나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살아가는 것이다.
‘신조 둘. 의무병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아군을 살리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살아 있다면 주변을 지켜야 한다.
‘신조 셋-자신과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의무병은 전장의 승기를 가져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모두의 생존이 유지되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는 스스로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여겼다.
그 모든 것을 이루고자 했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강해지길 택했다.
강해진다는 건 어느 분야에서건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써 여겨지는, 일종의 진리라고도 할 수 있는 해결책이니.
‘하지만 그런 강함도……. 결국엔 내가 사람을 살리는 자라고 인정받아야만 필요한 거잖아?’
카일 페터슨.
그는 의사이자 군인으로써 사람을 살려왔고, 인간으로써의 존엄과 긍지를 중요시 여겼던 자였다.
하지만 셰인 골드리안은 그 무엇도 추구할 수 없었다.
전생의 기억이 없는 그는 그저 힘없는 서출일 뿐이고, 이 시대는 카일 페터슨이 이룩한 모든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런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변화의 시작점이라도 만들자.
‘이 시대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죄라 칭한다면, 그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교수대에 목을 내어주는 것이다.’
이미 피를 흘리며 만들어낸 결과물을.
그것을 이룩해낸 숭고한 의지와, 그 의지를 가진 이들을 기억하는 자로써.
"그럼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200년을 넘어 쏘아올린 조용한 전쟁의 포문.
그것을 열어낸 자에 대한 선고가, 이윽고 재판장의 입에서 떨어졌다.
"셰인 골드리안. 그대가 한 일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간과할 수 없는 중죄입니다."
결국에는 유죄로 낙인찍힌 판결.
하지만 그 서문에선 분명한 존중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소녀가 구제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 그대가 추구한 외도에는 분명 현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판단이 되니, 현 제국에선 그대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가능성의 확인.
그것을 들은 직후 참관인들의 얼굴에 하나둘씩 놀라움이 그려졌다.
지금의 선고란 유죄의 판결보다는, 그것이 정녕 죄인지를 알기 위한 ‘유예’를 두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그래, 이건 끝이 아닌 기회다.
이후의 말을 듣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피고 셰인 골드리안은, 앞으로 5년 후 성인식을 치르게 되는 날까지 제국 변경에 위치한 ‘블레이즈 영지’에서 활동할 것을 명하겠습니다. 이 5년 동안 당신은 귀족으로써의 자격을 잃게 될 것이며, 그 신변은 해당 영지의 책임자인 블레이즈 변경백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귀족의 권한을 박탈당한 채로 5년 간 타지에서의 봉사를 행한다.
징역이라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기간이며, 그 기간 동안의 처벌 역시 유배 정도로 약하다 볼 것이었다.
향하는 곳이 ‘블레이즈 영지’만 아니었다면.
"블레이즈라니. 그것도 보충병도 아닌 변경백의 휘하에?"
"차라리 감옥이 낫겠어."
"그래, 차라리 심문관들에게 고문을 받는 게……."
재판장의 선고에 참관인들이 하나같이 경악을 흘렸다.
그건 제네릭 역시도 마찬가지.
"어찌 이런 가혹한……."
사형까진 아니더라도 무기징역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거늘.
그것을 각오했던 그조차, 지금 내려진 판결에 대한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렇게 심각한 판결인 건가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제네릭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언제나 재판장에선 냉정을 유지하는 그의 얼굴이 창백한 색으로 물들어질 정도.
"블레이즈 영지는 현 제국 내에서 유일하게 전쟁터라 불리는 장소입니다. 당신도 얘기 정도는 들어보셨을 텐데요?"
"네 뭐……. 들어는 봤죠."
단순한 전쟁터도 아니다.
오염된 땅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흉측한 괴물들이 몰려오고, 제국 밖으로 추방된 자들과 망명자들이 뭉쳐 세력을 튼 반란자들은 끝도 없이 몰려든다.
이전에 안젤라가 경고했던 의학의 위험성 따윈 ‘하나의 사건’으로만 치부되는, 이 대륙에서 가장 위험하다 여겨지는 마경이란 것이다.
"그런 장소를 관리하기 위해 제국은 그곳을 ‘치외법권지’로 지정했죠. 헌법도 교리도 영향을 받지 않으니, 거주민들조차도 도저히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모병제로 들어가는 것도, 용병으로써 잠깐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닌 변경백 직속의 휘하로 들어간다니.
그건 그 끔찍한 지옥 내에서도, 가장 막중한 책임과 고난이 예정되었다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허허."
그것을 직시한 셰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심각함이라곤 쥐뿔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웃음을.
"방금 제 말을 뭐로 들으신 겁니까!? 지금 당신은 생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죠."
발끈하는 제네릭에게 셰인이 대답했다.
폭음과 쇠비린내.
처절한 함성과 끔찍한 비명.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지평선 끝까지 뻗어진 묫자리란, 전생의 그에겐 일상이나 다름없던 것이었다.
그런 그가 어찌 이 판결에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까놓고 얘기하자면……. 후계자 싸움에 끼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죄인조차 수긍하는 판결.
그것이 이 시대가 택한 올바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