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6화
"돌아오셨군요."
재판 후 사흘이 지난 뒤.
영지로 복귀한 질리언은, 마침 자신을 마중 나온 시종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라이 덴.
이번 재판에서 새로이 죄인의 딱지를 달게 된 자와, 결코 무관계하지 않은 전우였다.
"재판에 대해서는 전보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이후에 안젤라의 재판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 역시도……."
과거, 안젤라와 일라이는 질리언과 같은 부대에 속해 있었다.
그런 전우의 부패와 처벌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무미한 반응만을 보였다.
실망일까, 아니면 분노?
아니,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이런 일에 감정을 태우는 사람이 아니니까.
"잠시 쉬고 싶군."
"네, 방은 정리해 두었습니다만……."
이후 성으로 향하던 중, 일라이가 제 옆을 지나치는 질리언의 손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 잔은 안젤라의……."
"내가 알아서 처분하지."
독살미수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품이 되었던 은색의 잔.
버리고자 하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질리언은 그 잔을 다시 자신의 성으로 가지고 온 것이었다.
미련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인지…….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앞으로 그 컵이 제 집무실의 책상에 장식될 일은 없을 듯 하였다.
그걸 결심하고자 눈에 띠지 않는 곳에 넣으려는 것도 잠시.
"……이건."
책상의 서랍을 열었을 무렵, 문득 라인하르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었다.
그림이었다.
과거 변경지대로 향했을 때의 부대에 속했던, 그림을 취미로 삼던 한 귀족가의 후계자가 그려주었던 소대의 그림.
‘일라이, 페니, 존, 라이너, 빌헬름 대장…….’
그려진 얼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질리언.
이윽고 그의 엄지손가락이 거두어지며 한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 청년과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짓는 여성.
‘……안젤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청년이 은색의 잔에 감춰지고, 그 표면엔 자신의 얼굴이 비춰진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와는 대조적일 정도로 칙칙한……. 그런 얼굴을 한 어른이.
‘그때에도 이런 얼굴이었나?’
서랍의 문을 닫기 전.
라인하르트는 마지막으로 안젤라의 면회를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에 나누었던 것은 십수 년 전. 함께했을 때에도 들어본 적이 없던…….
‘저의 부모님은 연금술사였습니다.’
오직 그녀만이 홀로 간직하던 유년기의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금기의 연구를 연금술에 숨겨 행했던 이들이었죠. 언젠가 자신들의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인체실험도 서슴없이 벌이셨습니다.’
안젤라는.
교단에 들어서기 전, 이단자들의 실험체로 쓰였던 전적이 있었다.
유독 이단이나 연금술에 대한 혐오가 짙었던 그녀였지만, 설마 그 원인이 제 부모에서 비롯되었다곤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라도 제 부모였죠. 그들에게도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을 잔혹하게 처형한 교단이 처음에는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결국 소녀는 다른 고아들과 마찬가지로 수녀원에 신변을 위탁했다.
원망해 마지못한 집단 속에서 그들을 향한 증오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제 부모를 처형한 집단을 개혁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처음에는.
‘……결국 어린아이의 결심이었죠. 의존할 대상이 필요한 아이가 부모마저 잃었는데, 자기 마음을 기댈 만한 장소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요?’
결국에는 허상뿐이다.
그림이 그려진 벽이나 신상. 그리고 상상력…….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엔 그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죠. 증오하는 집단을 이끄는 자가 힘을 내려주다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소녀에게 살아갈 의미가 개화된 순간.
소녀는 그 힘을 빌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나아가고, 또 나아가 이윽고 어른이 되었다.
‘어느 순간 저는, 유년기의 제가 그토록 혐오하던 이들과 같은 세상에서 세계를 평가하고 있었죠.’
편협했던 아이의 시선과 어른으로서 마주한 세계.
고독했던 외톨이와 많은 지지자를 거머쥔 권력자.
어느 때의 생각이 옳은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망설임도 아주 잠시였을 테니,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이 행하는 일을 정의라 믿고 떳떳이 나아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이라 생각하셔도 상관없어요. 애초에 이 대화는, 서로를 위해서라도 그리 길게 이어가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고요.’
부정을 저지르고도 신성력을 여전히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자신에게 납잔을 선물한 것도, 추구하는 바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여겼을 터인데.
어째서 그 당시의 면담에서, 그녀는 죄책감을 표현하며 거리를 두려고 한 것일까?
자신이 정녕 그녀를 원망하여 고발했다 생각해서?
‘모쪼록 이후에 만났을 때엔 저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어 있길 바랄게요. 어중간하게 대한다면 서로에게 고통만 될 뿐이니…….’
-탁.
이윽고 은잔을 넣은 서랍의 문이 닫혔다.
회고를 마친 순간 서서히 돌아오는 시야의 초점.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제 집무실의 책상에 위치한 한 장의 종이.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당신에게만 이 이야기를 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자신이 안젤라를 고발한 계기가 된 편지였다.
* * *
환생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존재의 혼은 생명이 사그라진 후, 저승을 거친 뒤 다시 다른 생명에 깃들게 된다는 윤회사상에서 비롯된 것.
이에 대한 증거로 부정한 존재이나, 억지로 불러들여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사령술 등이 들 때가 있다.
편지의 서문을 장식하는 단어는 그런 환생을 의미하는 개념일 터.
[저는 200년 전의 인간입니다.]
[과거 저는 아이헨발트라는 나라에 소속되었고, 제국에게 대항하고자 하는 연합군의 군인으로써 활동했었습니다.]
[카일 페터슨. 그게 200년 전 제가 사용했던 이름이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총명함과 조숙함은 물론, 마력을 다루는 재능이나 전투센스도 전문 기사 수준이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숙련된 전사조차도 압도할 정도의 살기와 의표를 찌르는 재량.
그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재능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부류의 능력이었다.
그럼에도 그에 깊게 파고들고자 하진 않았다.
후계자는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좋고,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뭣보다 그 아이와 함께하던 딸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으니.
[그저 망상이라고 치부하셔도 좋습니다. 이건 그저…….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둔 것뿐이니까요.]
그러한 남자가 편지에 적은 내용은 라인하르트의 상식을 산산이 부수는 것이었다.
과거 제국이 벌였던 정벌의 실상은 단순한 침략행위였고, 그 선두에 자신의 가문이 존재했으며.
뭣보다 자신을 죽였던 것이 다름 아닌 가문의 선조라는 것도.
그럼에도 편지 그 어디에도 자신들에 대한 원망은 적혀 있지 않았다.
[제가 가장 두려운 건, 저의 죽음이나 조국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긍심을 짓밟히고.
조국이 멸망하고, 심지어 자신마저 선조에게 죽임을 당했음에도…….
[제가 익혀왔던 상식들이,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올바르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었죠.]
그는 이 시대에서 가장 고독한 싸움을 벌여왔던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의학’이라는 게 그릇된 것인지를 의심하기에.
2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륙을 지탱해온 신앙이 빚은 만병통치제의 효용성을 인정하기에.
그렇기에 세상에 자신이 필요치 않을까. 혹은 자신이 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자신의 선조와 사투를 벌였을 정도의 강자조차도 그런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는 이 편지를 읽는 자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
[이것을 듣고 어찌 판단할지는 당신의 몫입니다. 제가 지켜본 당신은 현명하고 올바른 사람이었으니, 무엇을 선택하건 분명 당신의 결정이 옳을 것이라 믿겠습니다.]
자신은 그저 베일에 감춰진 진실을 가르쳐 줄 뿐이니.
이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써 올바른 일을 택하라고.
-바스락.
이제껏 몇 번이고 정독한 편지의.
그 곳곳에 가득한 구겨진 선이 손아귀의 힘에 다시 접혀지고 우그러져 갔다.
뒤늦게 그것을 자각한 라인하르트가 편지를 곤히 접어 제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머리를 싸매며 생각한다.
‘내가 한 건, 정말로 올바른 일이었나?’
그녀를 용서할 수도 있었거늘.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딸을 저주받았다 규정하는, 이 시대의 풍조를 따르는 게 마냥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길 택했다.
그로 인한 파장은 앞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
어쩌면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릴지도 모르며, 자신 또한 그에 대비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 책임감이 너무나도 무겁기에.
‘정말로, 옳은 선택이었나?’
이미 저질렀음에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정말로 자신이 옳은 일을 했는지.
그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짊어질 수 있을지를.
"…윽."
끝내 밀려드는 두통을 버티지 못한 질리언이, 벅차오르는 호흡을 다잡으며 집무실을 벗어났다.
성직자를 부를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어 그들을 향한 의존성을 털어내었다.
그래, 일시적인 증상이겠지. 일단 바람을 쐬도록 하자.
그렇게 성 밖으로 나아간 라인하르트가 정원을 벗어나고, 성 인근에 위치한 숲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그리고.
-샤학!
그 끝에 도달한 공터에서, 공기를 가르는 경쾌한 소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숲의 한가운데.
나무의 밑동만이 드문드문 심겨져 있는 장소에서 누군가가 홀로 가검을 휘두르고 있다.
가문에 내려져 오는 초식을 연습하고 있는 소녀.
그건 질리언이 이제까지 마주해본 적도, 앞으로도 마주할 리가 없다 여겼던 광경이었다.
"아, 아버지."
이윽고 소녀가 제 존재를 눈치 채며 말했다.
세실리아 라인하르트.
연습복으로 갈아입은 소녀가 자신을 마주하기 무섭게 다소곳한 자세를 취했다.
어깨를 좁히며 고개를 숙이는 소심한 모습.
그건 여전하지만, 질리언에겐 이전의 적극적인 검무가 더욱이 뇌리에 박히고 있었다.
"그동안 혼자서 연습을 하고 있었던 거니?"
"…네."
조심히 대답을 하며 눈치를 살피는 세실.
마치 홀로 검을 연마하는 모습을 부끄럽게 여긴 듯하였다.
"세실."
그런 딸을 자상히 부르는 아비.
곧 그가 근처에 떨어져 있는 예비용 가검을 들어올렸다.
"괜찮다면 한 번 대련을 해보자꾸나."
셰인이 성을 벗어난 후 2달이 지났을 무렵.
질리언은 처음으로, 제 딸이 제래도 된 검술을 구사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 * *
대련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연습을 봐주는 정도에 불과한 일이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체술과 검술에만 집중할 뿐.
그 과정에서도 라인하르트는 공격하지 않고, 세실이 발휘하는 전력을 모두 받으며 흘리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콜록!"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고, 세실이 중도에 기침을 하며 중도에 끊어지고 말았다.
놀란 라인하르트가 검을 내동댕이치며 달려들었다.
"세실, 괜찮……."
-스읍!
걱정을 토로하기도 전 세실이 품에서 꺼낸 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손에 쥘 정도로 작은 장치.
그 안에 들어 있는 약물을 몇 번 흡입하니 세실의 호흡이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아……."
그럼에도 표정색이 좋지 않은 건 제 아비의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이제 와서 어찌 저 행위에 제지를 가할 수 있을까?
아직 이 제국이 바뀌었다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 성 내에서만큼은, 이 아이가 온전히 숨을 쉴 수 있기를 바란다.
"잠시 쉬도록 하자꾸나."
"…네."
이후 나무밑동을 좌석으로 삼아 휴식을 취하는 부녀.
그러는 중에도 세실은 손에 쥔 파이프형 장치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움에서 비롯된 행동.
그것을 어렴풋이 짐작한 질리언이 조용히 물었다.
"셰인이……. 심문관들에게 잡혀가리란 걸 알고 있었니?"
비밀을 공유했던 유일한 아이가, 셰인이 구속된 후부턴 제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셰인이 잡혀간 게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라 여겼지만, 세실은 진즉에 각오를 굳혔던 것이었다.
"언제나 얘기해줬어요. 자기가 하는 일은, 언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그 아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란다."
재판은 예상외의 판결이 내려졌고, 인해 이번이 마지막 이별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의 정체를 아는 질리언은, 분명 그가 그곳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네, 그렇겠죠. 하지만……."
제 딸아이도 어렴풋이 그걸 짐작했겠지만, 그럼에도 얼굴에선 서글픔을 지우지 못했다.
질리언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 이후에, 셰인과 같이 지낼 날은 다시 찾아오지 않겠죠?"
"……."
질리언은 그 말을 바로 부정하지 못했다.
설령 그 땅에서 돌아온다 해도 기다리게 될 것은 전과자라는 꼬리표.
그것을 달고 있는 이상, 그가 공작가의 일원과 맺어지는 건 결코 있을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