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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28화 (28/255)

의무병의 환생 28화

검문소의 절차를 거친 후 성벽 내로 들어가게 된 셰인.

그 안으로 들어선 직후, 셰인은 주변의 풍경에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얘기로는 들었지만 정말 해괴한 도시군.’

건물의 구조가 이제껏 봐왔던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벽돌과 목재 뿐 아니라 철재를 이용한 건물도 적잖게 보일 정도.

대부분은 고철을 덧붙여 만든 조잡한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중 일부는 제국에서 봐왔던 그 어떤 건물들보다도 기계적인 구조를 띠고 있었다.

끼릭끼릭.

근처 건물에서부터 들려오는 쇠의 마찰음. 드문드문 증기가 뿜어지는 소리도 얼핏 들려오고 있다.

그 앞에서 해괴한 기계를 매만지는 장인들의 모습은, 흔히 알고 있는 공방과 큰 괴리가 느껴지고 있었다.

‘저게 공학의 산물인가.’

공학.

구조적인 설계를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나 생산품을 만드는 과학이다.

자연과학에 속하는 물리나 화학을 ‘부품’으로 삼아 기계장치를 만드는 기술이지만, 현 시대에 활용되는 곳은 기껏 해봐야 귀족사회의 사치품 정도다.

‘태엽인형이나 오르골 등등…… 신기하긴 하지만 만들기도 어렵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마법보다도 효율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지.’

공학은 필요한 것을 만들고 조립해야 하지만, 마나는 그 자체를 부품으로 삼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즉시 이룰 수 있다.

실제로 공학적 설계라며 만들어진 건물들도 다 고철을 뒤섞어 만든 요상한 물건들뿐.

마법에 비해 훨씬 질이 떨어지고 비효율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의사를 보는 사제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게 어렴풋이 느껴질 정도로.

‘뭐, 기술이란 건 어느 정도 발전하느냐에 따라 취급이 달라지는 법이지. 실제로 지저분하긴 해도, 이쪽의 문명이 더 발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200년이나 지났으니 제국도 발전했겠지 싶지만, 제국은 워낙에 보수적이기에 200년 전부터 문화 활동의 발전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건물은 물론 예술품이나 식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수준도.

그건 반대로 말하면 치외법권지인 이곳만이 여러 가지를 시험하며, 문명의 발전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의학을 하는 녀석은 없나.’

마저 주변을 둘러보는 셰인이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어쩌면 이곳에서도 의학은 발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정작 지나가는 길에 진료소나 그와 비슷한 것으로 추측되는 곳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의술은 몰라도 민간요법이라도 판을 칠 줄 알았건만. 투자가 많은 도시라서 그런지 그걸 기대하는 건 무리인 것 같네.’

애초에 민간요법이라는 것이 판을 치는 곳은 세간과의 정보가 뜸한 시골 정도니까.

치료는 무조건 신성력으로.

그것이 상식으로 자리 잡은 건 치외법권지인 이곳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 치료는 무조건 교회로 향하는 게 정석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며 거리를 거닐던 중, 문득 셰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해졌다.

‘저건…….’

셰인이 들어온 검문소에서 반대된 방향으로 유입된 이들이다.

하나 같이 갑옷이나 군복을 입고 있는 이들.

몇몇 이들은 엉성하게 묶은 붕대 사이로 피를 철철 흘린 채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어딘가에서 싸우고 온 것일까?

주시하던 중 어느덧 셰인의 발걸음이 뚝, 멈춰졌다.

"왜 그러시죠?"

호송자 중 한 명이 의문을 표하고, 곧 셰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돌아보았다.

이전에 설명을 해주었던 친절한 군인이었다.

"부상자와 사망자들을 호송하는 부대 같군요. 아마도 이 성벽 밖의 교외지역에서 사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블레이즈 영지는 성벽 내부로 한정되지만, 그 관할은 성벽 밖에 존재하는 마을과 노동지, 그리고 경유지도 포함되어 있다.

전선 밖이긴 해도 이러한 장소에도 사건은 벌어진다.

보급품을 노리고자 찾아오는 도적들과 한때 침투한 마물들이 번식하며 생긴 존재들, 그리고 반란군…….

셰인이 주시하는 것은, 그런 존재들이 벌인 사건에 당하고 호송되고 있는 환자들이었다.

‘두려워하는 건가.’

아무리 이단의 지식을 탐했다 한들, 결국에는 14살의 어린아이가 아닌가.

재판 당시엔 의연하고 어른스럽게 대처를 했지만, 막상 죽어가는 사람들을 본다면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호송하는 입장에선 타이를 수 없는 노릇.

할 수 있는 거라곤 말 몇 마디에 깨달아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뭐, 이곳에선 흔한 광경입니다. 앞으로 익숙해져야……."

-콰창!!!

붕괴음.

그것이 울려퍼진 동시에 말문이 멈춘 호송자가, 셰인의 수갑으로 다급히 시선을 향했다.

두터운 목제와 철을 이용해 만들어진 장비가, 모종의 충격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띠는 건 셰인의 얼굴에 그려진 감정.

그건 결코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저 개새끼들이 지금 뭔 짓을 하는 거야……!"

공포가 아닌 분노.

그것이 셰인이 부상자와 시체를 이끌고 가는 사람들을 향해 느낀 것이었다.

그 감정을 버티지 못한 그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를 취하고 있다

"잠깐, 지금 뭘 하시려는……!"

-콰앙!!

막 제지를 가하려던 측면의 호송자가 셰인의 주먹에 얻어맞았다.

아니, 단순한 주먹이 아니다.

마치 대형 해머에 얻어맞은 듯, 호송자가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무슨 짓을……!"

그 빈틈을 채우듯 다른 호송자가 칼을 휘둘렀지만, 셰인은 그 칼을 피해내며 주먹을 틀어쥐었다.

-투파팡!!

왼손만으로 가하는 쨉의 난사.

견제공격에 불과함에도 한 방 한 방에 강대한 힘이 실렸다.

그 공격에 엉거주춤을 추기 무섭게 파고드는 스트레이트.

-콰앙!!

그 주먹에 얻어맞은 자마저 바닥에 고꾸라진 때, 나머지 둘이 뒤늦게 태세를 잡으며 무기를 고쳐쥐었다.

‘이 애는 라인하르트 가문의 검술을 익힌 자……!’

‘14살이라 해서 얕잡아봐선 안 될 자다!’

눈빛을 교환하며 셰인의 양옆을 두른 채 동시에 공격을 내지른다.

양 측에서 절묘히 가해지는 공격은 아무리 숙련자라도 막기 어려운 법.

하지만 셰인은 그에 주눅이 들지 않고, 자신의 몸을 거세게 회전시키는 것으로 그들의 공격에 응대를 가하였다.

-휘리릭!

회전음과 함께 두 사람의 무기가 셰인의 몸에서 밀려났다.

절묘하게 맞닿은 사지가 공격을 밀어내고, 그 회전력은 그의 두 팔과 다리에 고스란히 실려 반격으로 승화되었다.그들의 안면과 복부를 강타했다.

-퍼펑!

주먹과 발길질.

거기에 어린 마나가 기폭되며 두 사람의 몸을 꿰뚫었다.

그 이상의 저항은 허락되지 않았다. 강체술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그 충격은 고스란히 몸에 전해져 정신을 뒤흔들었으니.

‘마, 말도 안 돼.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4써클의 마나유저인 것을…….’

4써클.

제국 내에서라면 어디에서든 인정받는 경지로, 10명 정도로 이루어진 소수의 기사단이라면 단장직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역죄인을 호송하기엔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상대는 기껏 해봐야 14살의 아이다.

마나의 경지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 2써클. 검술을 익혔어도 손에 검을 쥐지도 않은 상태다.

‘그런데, 아무리 기습이라도 고작 맨손으로……?’

털썩.

처참히 쓰러진 호송자들.

셰인은 그들과 더불어, 이목이 집중된 영지민들을 뒤로한 채 목표로 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상자들을 호송하는 부대가 있는 곳으로.

"야 이 개새끼들아!!!!"

콰강! 소리와 함께 선두에 선 이들의 몸이 나자빠진다.

두터운 갑옷을 입은 이들이 주춤거리며 들춰 업던 환자들마저 바닥에 내팽개쳤다.

"뭐야 이 새끼는!"

"손에 수갑을 차고 있잖아. 저거 죄수 아니야?"

"아직 어린아이인데……."

부상자들을 호송하던 군인들이 당혹을 토로한다.

하지만 더욱 따지고 싶은 건 셰인이었다.

"환자를……."

바닥에 쓰러진 환자를 내려다보는 셰인이.

이윽고 이를 바득 갈며 그들을 향한 격노를 드러냈다.

"환자를 이따위로 호송하는 놈들이 누구 보고 새끼란 말을 떠들어!!"

의술이 없는 시대다.

그러니 전문적인 치료 따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의료를 배척해도 응급처치와 호송의 중요성마저 망각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 미친 새끼들, 의식도 없는 사람의 목 관절도 안 받쳐주고 저리 달려대?’

사람의 머리는 성인을 기준으로 대략 4~5kg.

결코 적지 않은 무게이며, 그 밑의 목뼈는 위 아래로 가해지는 힘은 몰라도, 양 옆으로 가해지는 수평 반동에는 매우 취약하다.

그런 마당에 자기 움직임에만 신경 쓰느라, 목을 덜렁거리게 움직이도록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뿐이면 이렇게 달려들지도 않았지. 지혈이랍시고 한 것도 하나 같이 다 개판이야.’

출혈을 막고자 붕대를 감는 처치는 아는 듯했지만, 의사의 시점에서 보면 그건 시늉이라고도 보기에 민망한 짓거리였다.

제대로 감겨있지 않아 피가 새는 건 물론, 오히려 너무 꽉 조이는 바람에 사지에서 손과 발끝이 퍼래지는 등 괴사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안색만 봐도 그들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건 바로 알정도.

그들이 환자를 취급하는 방식은, 비효율을 넘어 목숨에 안중을 두지 않는 행위란 것이다.

‘그 잘난 신성력도 죽기 전에 받아야 의미가 있는 거지. 가다가 환자가 죽어도 상관 없다는 거야!?’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셰인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죄수가 날뛰는 정도로만 자각하며 화를 내지를 뿐이었다.

"위병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당장 이 새끼 안 끌어내!?"

"저기 오고 있어!"

이후 호송하던 녀석들이 환자마저 내팽개치고 위병들의 뒤로 달아났다.

부상자를 호송하는 자라곤 생각할 수 없는 양심 없는 짓거리.

그에 울컥함마저 느껴졌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악당으로 규정된 건 다름 아닌 셰인이었다.

"모두 제압해! 제압이 안 되면 죽여도 상관없다!"

몰려든 위병들이 무기를 들며 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 같이 눈빛이 살아 있는데다, 무기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량과 견고함도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건 현 시대를 기준으로 한 이야기.

200년 전에 자신이 상대했던, 그 정신 나간 제국군 녀석들과 비교하면 발에 채일 정도로 허접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투콰강!

합을 나눌 것도 없었다.

셰인의 사지는 교묘히 그들의 무기를 피해 지나치고, 휘둘러지는 공격은 그들의 급소와 관절부를 정확히 두드렸으니까.

"뭐야 이 꼬마! 엄청 강한……. 쿠헥!"

이윽고 셰인의 발밑에 열이 넘는 위병들이 쓰러졌다.

한 사람에게 쓰러졌다기엔 너무나도 많은 숫자.

그를 보다 못한 책임자가, 달려들길 주저하는 위병들의 몰을 옆으로 밀쳐내었다.

"이익! 이 녀석들! 그깟 죄수 하나 제압 못 하고 대체 뭘 하는 거야!!"

"다, 단장님!"

위병들이 존칭을 칭하는 대상은 서쪽 구획의 치안을 책임지는 위병단장이었다.

몸을 두르고 있는 터무니없든 크기의 갑옷은, 그가 어마어마한 체력과 마나를 이용한 강화능력을 다루고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열세에 밀렸던 위병들이 그의 등장에 승기를 가지며 외쳤다.

"하하! 죄수 녀석!! 지금이라도 잘못했다 비는 게 좋을 거다!"

"우리 단장님은 무려 5써클의 마나유저!! 황실의 기사들도 상대가 안 되는 강자시라……."

-투콰앙!!!

그들의 조롱이 끝나기 무섭게, 셰인의 주먹이 위병단장의 갑옷과 충돌을 일으켰다.

누가 보더라도 계란으로 바위를 친 거나 다름없는 광경.

"꾸웨엑!"

하지만 정작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건 셰인이 아닌 위병단장 쪽이었다.

고작 주먹 한 방.

14살의 소년이, 5써클의 마나유저를 제압하는 데에 소요된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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