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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29화 (29/255)

의무병의 환생 29화

"어, 어?"

"다, 단장님?"

위병들이 쓰러진 단장을 보며 경악을 토로했다.

게거품을 물며 쓰러진 단장은 다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5써클의 강체술에 더해, 무시무시한 두께와 강도를 자랑하는 갑옷에 보호받는 몸이 고작 주먹 한 방에 쓰러지다니!

반면 셰인은 도리어 그들의 반응을 어이없게 여기고 있었다.

‘이 새끼들은 그냥 써클만 높으면 장땡인 줄 아나.’

8써클 유저도 사람이다.

급소 한 대 잘못 맞으면 죽는 건 마찬가지.

전장에서 8써클의 경지만 믿고 최전선에서 까불대면, 절개술을 갓 익힌 신입 의무병에게도 목이 따여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조심해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방어 무시 공격도 염두에 안 두고 그냥 맞아줘?’

마투술-발파.

몸에 둘러진 마나를 흩트리고, 그 빈틈을 비집어 무장의 내부로 자신이 제어하는 마나를 투입한 후 터트리는 기술이다.

마나가 만물의 어디에나 스미는 성질을 이용한 기술.

갑옷과 마나에 의한 보호를 무시하는 만큼, 바바리안급이 아니라면 그 충격은 버티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년 전엔 대놓고 쓰면 맞아주는 놈이 없었지.’

갑옷에 마나를 스미게 하고, 신체를 보호하는 마나를 파훼할 정도의 집중과 시간이 소요되니까.

애초에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녀석들은 접근도 못하게 견제를 하게 마련이거늘.

‘뒷세계 놈들도 그렇고 군장교란 녀석도 그렇고. 이 정도만 해도 칼밥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참 우습네, 진짜.’

참 좋을 때다, 나 때는 말이지…….

그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정작 주변의 녀석들은 그마저도 경악스러운 듯 보였지만.

"마, 말도 안 돼. 다, 단장님이……."

"야. 니들."

당황하는 위병들에게 셰인이 조용히 외쳤다.

경악스러운 건 이해하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는 상태였다.

"닥치고 증원이나 부르러 가. 니들이 암만 떼로 덤벼도 당해줄 생각 없으니까."

"이, 이익! 어서 증원을 불러!"

"모두 후퇴!"

이윽고 위병들이 쓰러진 대장을 데리고 도망쳤다.

한 녀석도 남기지 않고 전부.

‘그래도 목숨 걸고 지키는 놈이 한 둘은 있을 줄 알았는데, 군인이란 놈들이 희생정신은 쥐뿔도 없군.’

그런 게 의미가 있냐 싶겠다만, 어쨌든 이후 방해받을 일이 없는 건 잘된 일이다.

셰인이 곧장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려가고, 그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점거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입을 쩍 벌린 채 쓰러져 있는 자.

맥박과 호흡을, 그리고 눈동자를 벌려 확인한 셰인의 표정이 이내 왈칵 우그러졌다.

‘…골든아워는 이미 지났어.’

골든아워.

대체로 과다출혈이나 장파열, 혹은 심정지나 뇌사 등등, 빠른 처치가 요구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쓰이는 의사들의 은어다.

최전선에선 죽어나가는 자들이 많기에 입에 붙이고 살았던 말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지금 이 환자의 사인이 된 건 출혈에 의한 쇼크. 혈색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뇌는 완전히 죽어 있었다.

수 분 전에 처치만 제대로 되었어도 살릴 수 있었던 환자였거늘.

‘아니, 지금도 죽어가는 환자들은 많아.’

지금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

애도는 뒷전으로 미뤄야 한다.

‘망할, 너무 험하게 데리고 가느라 목뼈가 다 나갔잖아.’

처음 확인한 환자는 역시나 호송방식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였다.

목뼈가 비틀린 상태로 사지가 발발 떨리는 상태. 경추 손상에 의한 신경 마비증세가 발생한 거다.

시간에 맞춰 성직자에게 데려가면 호전되겠지만, 정작 이 광활한 도시에서 성직자가 있는 후방전선까지 간다면 한참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거리를 이전처럼 막무가내로 호송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설령 데려간다 해도, 신성력에 의해 뼈가 맞춰지는 과정에서 쇼크로 죽을 수도 있다.

‘조심해서 끼워라. 잘못하면 바로 즉사니까.’

셰인이 제 손의 마나를 조작해 대상의 몸에 투입시켰다.

마나의 성질을 부드럽게 만들어, 뼈를 끼우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충격의 방충망을 만든다.

이내 목뼈가 바로잡히자 환자의 몸에서 일어난 경직이 잦아들었다.

‘하나는 됐고 다음은…….’

엉망으로 묶여진 붕대를 풀며 대상의 몸 곳곳에 손가락을 찔렀다.

민간요법인 점혈법을 응용한 지혈법이다.

사람의 몸에 존재하는 혈도를 모두 꿰고 있기에 가능한 응급처치술.

피가 지나는 길 곳곳을 마나로 굳혀 흐름을 막거나, 피가 흐르는 혈관을 다른 곳으로 돌려 출혈을 방지하는 것이다.

‘실은 옷에 있는 걸로 대신 쓰고.’

셰인이 자신의 손가락을 세우고 그곳에 힘을 집중시켰다.

손톱을 기점으로 모이는 마나가 바늘처럼 얇고 날카롭게 바뀐다.

봉합술.

메스를 대체하는 절개술과 마찬가지로, 수술용 바늘을 대체하고자 만들어진 기술이다.

셰인은 점혈로 출혈을 지연시킨 환자의 몸에, 마나를 벼려 만든 바늘을 가져갔다.

‘꿰매기는 전장에서도 하루에 수 백 번은 더 했던 일이야. 이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어.’

꿰매기로 어찌 할 수 없는 상처가 있을 경우, 주변에 떨어진 무기와 옷자락을 급조해 만든 지혈대를 달아주었다.

도중에 뼈가 부러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외과전공인 셰인에게, 뼈를 만지는 건 셰인에게 있어서 매우 손쉬운 일이었으니까.

‘골절 정도야 성직자들도 치료할 수 있지만……. 너무 뒤틀린 상태로 데리고 갔다가 쇼크로 죽는 경우도 있으니까.’

성직자들이 수술을 ‘사술’이라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육체가 기존의 상태에서 상당히 벗어난 상태로 치료를 하면, 그것이 원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몸이 뒤틀어지며 쇼크로 죽을 수 있기에.

그러니 뼈가 기존보다 심하게 뒤틀렸을 경우, 신성력을 무조건 들이박기보단 어느 정도 본래의 상태로 맞춰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끄으극!!"

"거 미안하게 됐수다. 진통제가 없어서 이렇게밖에 처리를 못하겠네."

그래도 계속 골골대는 것보다는 낫겠지.

제대로 뼈를 맞춰준 셰인이 마저 치료행위를 이어가던 중, 문득 셰인의 배후에서부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커, 허……."

이제껏 처치했던 환자들이 내뱉은 게 아니다. 그들은 의식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쓰러진 상태.

하지만 그건 신음을 흘린 환자 역시 마찬가지다.

‘무슨…….’

셰인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해졌다.

환자들 중 유일하게 수녀복을 입은 여자아이였다.

나이로 치면 세실과 비슷한…….

"이런 망할!"

의식을 잃은 채로 행하는 발작증세.

그에 셰인이 다른 환자들을 뒤로하며, 다급히 그 소녀의 손목을 움켜쥐며 마나를 불어넣었다.

내부에서 느껴져야 할 흐름이 현저히 느리다.

혈액의 흐름이 느려지는 건 심정지 상태에서 흔히 보이는 증세.

‘급성 심근경색? 아니면 협심증인가?’

뭐가 됐건 심정지는 신성력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들이 복원하는 건 상태뿐.

신성력을 아무리 주입해도 힘이 강해지지 않듯, 그들은 ‘활동’에까지는 간섭이 불가능하다.

엄연히 근육운동으로 움직이는 심장의 정지는, 이 시대에선 사망판정이 나올 수밖에 없단 것이다.

‘개소리 집어 치워. 심장 잠깐 멈춘 정도로 사람이 죽을 리가 없잖아!’

셰인은 알고 있다.

사람이란 호흡이 멈추는 정도로도, 심장이 멈추는 정도로, 설령 뇌가 일부 손상되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걸.

적어도 200년 전 정의되었던 ‘의학적 죽음’은 그랬다.

그리고 그 시대의 의술을 구사하는 자.

전장에서 쇼크로 심장이 멈춘 환자를 살려본 경험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운 좋은 줄 알아 꼬마야. 골든아워에 마침 의사가 지나간 건, 진짜 신이 내려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파즈즉!

제세동술.

손에 전류를 흘려보내 대상을 자극하는 기술이, 셰인의 손을 타고 소녀의 심장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 * *

-철컹!

"…그래, 역시 이렇게 되겠지."

환자들의 치료를 끝낸 후, 셰인은 위병들에게 사로잡혀 감옥에 처박히게 되었다.

죄수의 신분으로 영지 한복판에서 벌인 난동의 대가를 치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차피 처리가 다 끝났으니 저항할 필요도 없었지만.’

당장 내버려두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환자만 열이 넘었다.

그대로 데리고 갔다면 성직자들에게 호송되는 과정에서 반절 가까이목숨을 잃었으리라. 적어도 셰인이 보기엔 그랬다.

‘협조를 하는 것도 거슬리는 게 없을 때의 일이지.’

오히려 법이라는 곳이 없는 곳인 만큼 행동에 주저함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설령 이곳에서 처벌을 받는다 해도…….

‘후회는 없어.’

이미 한 번 포기하고자 했던 삶이 영위된 건데, 이 정도의 억지 정도는 부려봐야지.

그리고 정말로 이곳이 치외법권지로서, 제국의 상식과 풍조에 예외 된 곳이라면 마냥 절망적이라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대에 죽음으로 판정되는 심정지 환자를 살려냈다는 건, 종교적 편견이 없는 자에겐 정말 대단히 여겨질 일일 테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기다려보자.’

난동이건 탈영이건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할 일.

당분간은 그들의 장단에 맞춰주자, 생각하며 유치장에서 시간을 보낸 지도 사흘이 되었을 무렵.

"당신이 셰인 골드리안인가요?"

홀로 시간을 때우고 있던 셰인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철창 너머에 있는 것은 군복을 입고 있는 실눈의 남자.

생긋 그려진 웃음이 묘하게 수상쩍게 보이기도 하였다.

"당신은 누구시죠?"

"당신을 데리러 온 사람이죠. 헌데……."

스윽.

남자의 실눈이 게슴츠레 벌어졌다. 그 역시 자신을 수상쩍게 여기는 것처럼.

"지금 뭘 하고 계신 거죠?"

"…운동하고 있죠."

별로 양심 찔리는 것도 없기에 바로 답을 해주었다.

셰인은 현재 한쪽 팔만으로, 다리를 대지 않은 채 행하는 팔굽혀펴기를 행하는 중이었다.

팔에 가장 큰 부하가 가해지나, 몸을 꼿꼿하게 펼침으로써 전신에도 적잖은 근력을 요구하는 전신 운동.

도저히 14살의 어린아이가 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셰인의 행동에 감탄을 터트려주었다.

"운동을 좋아하시는 것 같군요. 어쩐지, 열네 살이라 들었던 것치곤 키가 큰 편이다 싶었습니다만."

움찔.

다시 팔을 굽히려던 셰인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찾아온 군인이 의문을 표하며 셰인을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시죠? 혹시 팔이 삐끗한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얼버무리며 관심을 돌리는 셰인.

남자가 그런 셰인의 반응에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 * *

이후 셰인은 철창에서 빠져나와 남자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감옥 인근에 위치한 사령부의 건물을 함께 거니는 가운데, 남자는 셰인에게 아무런 적의 없이 친절히 스스로를 소개해 주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현 블레이즈 영지군의 참모이자, 총사령관님의 부관을 맡고 있는 존이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존. 그런데……."

셰인이 슬며시 자유로운 자신의 양팔을 내려다보았다.

감옥에서 빠져나왔음에도 수갑 하나 채워져 있지 않다. 어딘가로 데리고 가는 것 같지만, 그 외에 다른 호위도 없는 상태.

영지에서 난동을 부린 범죄자를 호송한다기엔 너무나도 허술한 일이다.

"관리가 허술한 게 이상하다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 부분에 대해 눈치를 주자 존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냥 한 말씀 드리자면…… 저는 손대중이라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서로 손해 보는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는 것만 일러두도록 하죠."

"……노력해 보죠."

셰인이 소극적으로 대답했다.

손대중이라는 말에 기시감이 느껴졌었으니까.

‘그 여자도 그런 말을 했었지.’

일라이 덴.

이 영지에서 태어나 자라고, 직업군인으로 활동한 전적이 있는 아가씨였다.

그녀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던 만큼, 같은 말을 입에 담는 자는 주의를 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 영지가 얼마나 녹록치 않은 곳인지에 대한 깨달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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