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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30화 (30/255)

의무병의 환생 30화

"그건 그렇고 보고로 들었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는 것은 들었지만…. 설마 이곳에 오자마자 사고를 칠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군요."

단순히 난동을 부린 것도 아니다.

4써클의 호송역 네 사람을 단숨에 제압하고, 심지어 5써클의 경지에 오른 위병단장마저 주먹 한 방에 쓰러졌다.

주둔지의 역할을 병행하는 이 영지에선 결코 무시 못 할 일이다.

난동을 부린 이유가 부상자들을 호송하는 자들을 격퇴하고, 그 환자들에게 수작을 부리기 위해서였기에 더더욱.

"설마 죽은 사람들을 제 책임으로 몰 생각은 아니죠?"

제발 덤터기는 씌우지 마라.

한편으론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바람에, 존이 대수롭지 않게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오히려 처음 보고로 들었을 때보다 생존자 수가 늘어서 놀랐을 정도인걸요? 분명히 심장이 정지된 걸 확인했던 시체가 사흘이 지나고도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기까지 했으니……."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심정지가 사망판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종교적인 편견이 없다면 그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자란 놀랍게 여겨질 테니까.

하지만 평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더군다나 5써클의 경지에 오른 위병단장을 한 주먹으로 쓰러트릴 정도의 실력이라니. 기습이라곤 해도 그만한 강함을 가진 당신에게 벌을 가하는 건 사령관님도 아깝다 생각하시겠죠."

대놓고 방어무시 공격을 맞아주는 녀석도 이 시대를 기준으론 실력자일 테니까.

예상했던 대로 자신에 대한 평가가 높아진 걸 느꼈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말에서 적잖은 의문도 느껴졌다.

"이전에 사령관이란 분의 부관이라 소개하셨는데……. 절 관리하는 걸 전담하는 건 영주님이 아니었던가요?"

"아, 이곳에선 영주님을 사령관이라고 부릅니다."

"……네?"

"뭐, 의문을 가지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아무리 전쟁터라도 영주를 사령관이라 부르다니.

제국의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뭐,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전장에 투입되는 귀족출신자들도 대개 작위가 아닌 직책으로 불리게 마련인데, 이 영지에서 영주가 된 분들은 200년 동안 전장에서 벗어나는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벗어난다고 하면 그건 죽거나 작위를 다른 이에게 물려줬을 때뿐.

그렇게 작위로 불리는 일이 없다 보니, 아예 이 영지 내에선 영주를 부르는 칭호를 사령관으로 굳혀버린 것이다.

‘납득이 되긴 한다만 200년째 사령관이라 불리는 거면, 사실상 군국주의가 자리한 동맹국인 셈 아니야?’

변경백은 보통의 백작과 달리 조세권과 행정권뿐 아니라, 황실만이 허락되는 군권마저 갖추는 게 허락된 작위다.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사병을 넘어, 필요하다면 황실에 요청해 필요한 병력을 호출할 수 있다는 것.

백작에서 파생된 작위라 한들 그 위상은 사실상 후작가를…… 군사권에 한해선 공작을 넘어선다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관리하는 영지가 치외법권이기까지 한다면 당연히 법보다 칼이 훨씬 가깝겠지.’

존이 말하는 사령관의 호의가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실감하는 순간ㅇ이었다.

"슬슬 도착하겠군요."

이내 사령부의 상층에 도착한 존이 집무실의 문을 앞둔 채 셰인을 내려다보았다.

"서로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5년 간 함께 일해야 하는 만큼……."

"이 불경한 자가!!"

"……네, 이런 식으로 첫인상을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존이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문의 틈을 열었다.

그 사이로 슬쩍 들여다본 곳에 보이는 건 두 사람의 모습.

사제복의 남자가 집무실의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는 여성에게 따지고 드는 광경이었다.

"아무리 제국의 법이 들지 않는 곳이라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어찌 제국을 섬기는 지도자가 이곳에 뻔히 자리한 부정들을 눈감고 있단 말입니까!!"

고함을 치는 자의 목에 십자가 문양의 목걸이가 걸려있다.

유일교에서 ‘주교의 자리’에 오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물건이다.

"뭐, 흔한 일이죠. 막 이곳에 지원 차 온 고위 성직자들이 사령관님에게 따지고 드는 일은 말이죠."

"……."

존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셰인은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제가 대면한 자는 권위적인 느낌이 풍기는 제복을 입은 자.

팔 부위에는 제국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휘장이 매어져 있다.

"하아."

그런 복장의 여인이, 구불거리는 장발을 쓸어 넘기며 손에 쥔 만년필을 서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

"그런 시답잖은 일로 제 일을 방해하러 오신 겁니까?"

"시답잖다니! 지금 제가 한 말을 뭘로 들으신 겁니까!!"

"제대로 들었습니다. 오히려 이곳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건 당신인 것 같다 생각을 했고요. 그러니까… 타이커스 주교님이었죠?"

타이커스 주교.

그것이 사령관에게 따지고 드는 성직자의 이름이었다.

"제 이름은 핀들레이입니다! 타이커스는 대체 누굽니까!?"

……아니, 핀들레이 주교였다.

사령관이 뒤늦게 그 점을 자각하며 만년필로 머리를 긁었다.

"죄송합니다. 얼마 전에 온 죄수병과 헷갈렸군요."

"죄수? 죄수라니요!? 지금 교단에서 이곳을 지원하고자 파견을 나온 저를 그런 자들과 비교를 하는……."

-쿵!!

이윽고 서류가 가득한 책상에 그녀의 다리가 처박혔다.

산발하는 서류더미.

그 종이를 손으로 걷어내며 책상을 넘자, 주교가 주눅이 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사령관은 그러한 상태로 그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눈 밑에 만연한 다크써클에 시체마냥 썩어 있는 눈동자.

"주교님."

하지만 그 안엔 분명히 감정이 있었고, 그 흔들림 없는 시선은 정확히 자신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여인이 그러한 상태로 말했다.

"영지법상 사람들은 저를 제외하곤 모두 평등합니다."

"무슨……."

"성직자건 범죄자건 귀족이건 여자건 남자건 노인이건 어린아이건, 이 영지에 머물러야 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군인이나 예비군으로 취급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건 이단자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교국을 표방하는 제국의, 그것도 교단에 소속된 권위자에게 할 말이 결코 아니었다.

핀들레이가 발발 떨다 힘겨이 대답했다.

"그것도 정도가 있다는……."

"그 정도를 정하는 건 당신이 아니라 접니다."

뭐라 반박을 하는 것도 허락이 되지 않았다.

이곳은 황제조차 법을 가벼이 어길 수 없는 제국과 달리, 법의 위에 지도자가 존재하는 ‘이단의 땅’이었으니까.

"당신과 같은 교단사람들 역시도, 이 땅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이상 교리보다는 제 명을 더 우선시 여겨야만 하죠."

"무, 무슨!! 감히 외도 주제에 신을 능멸하는……."

"능멸이 아니라, 황제 폐하께서 이곳에 직접 행차하신다 해도 제 명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윽고 그녀의 엄지손가락이 자신의 뒤편으로 향해졌다.

집무실의 창문, 그 밖에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는 드높은 성벽으로, 그 너머의 전장으로.

"그 정도로 강경하게 나서지 않으면, 여기 방어선 뚫려서 제국이 쑥대밭이 되는 건 시간문제거든요."

그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펑~’하는 소리에, 핀들레이 주교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어졌다.

"정 뭣하시면 주교님께서 저 대신 이 자리에 앉아보시겠습니까? 물론 이후에 뒤따라올 책임은 모두 그 쪽이 짊어진다는 걸 전제로요."

시비를 걸 거면 감당할 수 있는 걸 들먹여라.

그런 에두른 설명에 이를 갈다 못한 주교가 ‘천벌 받을 녀석!’이라 호통치며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지나치는 길에서 마주한 셰인과 존을 무시한 채.

그를 본 존이 어깨를 으쓱이며 눈웃음을 지었다.

"뭐, 대충 이런 이유로 이 영지에 성직자들의 지원율은 적은 편입니다. 현재 영지에 머무르는 성직자들의 숫자가 한 500명 정도 될까요?"

500명.

영지민과 병사, 그리고 예비병력 외 기타등등을 포함해 수 십 만에 달하는 영지민을 책임지기엔 턱 없이 적은 숫자다.

교국을 표방하는 나라이기에 더욱이.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 영지는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로 운영되고 있으니까.’

사흘 동안 유치장에서 죄수들이 노닥대는 걸 들어본 바, 다른 구역에는 제국에서 불법으로 여겨지는 유흥가가, 지하에는 암시장이 자리한 도시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은 교단의 교리를 진리로 여겨온 이들에겐 결코 용납 못할 일일 터.

그걸 제거할 수 없다면, 차라리 발도 들이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 대부분의 성직자가 가진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황제까지 들먹이며 주교를 압박하다니…….’

역시 예사롭게 볼 자는 아니다.

곧 그녀가 주교가 떠나간 자리를 대체한 이를 불렀다.

"부관."

셰인을 데리고 온 존이었다.

그를 마주한 사령관이 책상에서 떨어지며 지시를 내렸다.

"정리를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싱긋 웃는 존이 책상의 정리를 하러 떠났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그녀가, 곧 존의 옆을 지나치며 셰인을 마주하였다.

"네가 그 소문의 꼬맹이구나."

소문이라는 건 제국에서의 일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이 영지에서의 일을 말하는 걸까?

어느 쪽이건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셰인 역시도.

"셰인이라고 합니다."

"사샤 블레이즈다."

마찬가지로 소개를 하는 사샤가, 그 뒤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앞으로 5년 간 너를 부려먹을 사람이지. 그 시간 동안 네가 죽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비심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말.

셰인에겐 굉장히 익숙히 여겨지는 것이었다.

* * *

집무실과 이어진 접대실.

그곳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셰인의 앞엔 다과를 담은 그릇이 한가득 존재하고 있었다.

밀을 포함한 각종 재료를 뒤섞어 굳힌 비스킷…….

귀족의 만찬에 나오는 디저트보단 군용식품에 가까운 것이었다.

귀족으로 환생한 후엔 입에 댈 일도 없던 물건.

‘대접도 참 좋군.’

그래도 역시 죄수병에게 내어줄 물건은 아니다.

그런 의문 따윈 아무래도 좋은 듯, 사샤는 서류를 손에 쥔 채 제 입에 시가를 한 대 물 뿐이었다.

그 앞에 가져가는 물건은 ‘라이터’라고 부르는 물건이었다.

‘부싯돌을 튀기며 버튼을 누르면 기름이 새어 나오는 구조인가.’

저 또한 공학이란 걸로 만든 거겠지.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초급마법조차도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유용한 점화수단이 되어줄 듯했다.

"셰인 골드리안."

내어진 다과의 반을 먹어치웠을 무렵, 사샤가 퀭한 눈동자를 굴리며 셰인의 이름을 불렀다.

"본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

본제에 들어가기 전의 질문.

적어도 처벌에 대한 건 아닐 것이다. 애초에 처벌을 할 거였다면 이제까지의 취급이 더 가학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테니까.

그렇게 예상했지만…….

"무엇을 물어보시려는 거죠?"

"그 몸뚱아리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에 대해."

흠칫.

몸이 크게 떨림과 동시에 셰인에게서 여유가 사라졌다.

사샤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게슴츠레 떠진 두 눈은, 그 질문이 단순 떠보기로 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무슨 뜻인가요?"

설마 환생자란 걸 눈치 챘나?

"말 그대로의 의미지."

의중을 묻는 셰인에게 사샤가 서류를 내세웠다.

"네 전적은 14살의 어린애가 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니까."

셰인에 대해 적힌 서류였다.

이 영지에 오기 전, 그리고 이곳에 온 후의 일에 대해 적혀 있는.

"귀족가의 서자로 태어난 뒤 약혼관계를 맺게 된 가문의 비전을 전수받고자 그곳에서 4년을 보냈다…….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는 자각은 가지고 있겠지?"

이단의 지식이야 어쩌다 흔적을 접하고 숨길 수야 있겠지만, 4써클에 오른 제국군에 이어 엄선해 고른 위병단장까지 주먹 한 방에 골로 보내기까지 했다.

대개 성인이 되기 전 3써클이나 겨우 넘으면 천재소리를 듣는 법.

그 누구라도 14살의 가죽을 쓴 무언가라 생각할 존재가 아닌가?

"……하하."

그런 당연한 의문에 셰인이 애매히 웃으며 비스킷을 입에 물었다.

‘당연하다라. 이제까지 그런 걸 지적한 사람은 없었는데 말이지.’

소년의 몸에 어른의 정신이 깃든다니.

그런 건 신성력과 마나가 존재하는 시대에도 판타지라 부를 만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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