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32화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야.’
보급부터 인원보충은 물론, 그 인원의 분배 역시 제대로 짜여져 있었다.
그 수준은 200년 전 제국군과 비교하면 급을 달리할 정도였다.
‘과거 제국군은 대강 포지션만 정해뒀었으니까.’
무수한 병졸을 소수의 기사들이 이끌게 하고, 마법사나 성직자 등의 부대를 뭉뚱그려 운용했을 뿐.
그렇게 군 세력을 대강 정하는 건 현 시대의 제국군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없는 시대이니 군의 존재의의는 기껏 해봐야 전통과 스포츠, 치안유지 정도일 뿐.
출전을 나간다 해도 마수토벌이나 반란세력 진압 등에만 쓰일 뿐이며, 그마저도 고정적으로 정해지기보단 ‘손이 남는 이들’을 파견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와 비교하면 블레이즈 영지군이 얼마나 체계적인지 실감할 수 있으리라.
‘가장 의외인 건 제식병기로 채택한 게 냉병기나 마장이 아닌 화약병기라는 건가.’
실제로 화약을 전문으로 다루는 병과가 마법사와 궁병들이 전담하는 부분을 대체할 정도.
학자로써의 성향이 짙은 마법 반은 대부분은 연구 쪽으로 돌리기까지 했으니, 마법이 공학보다 우월하다 생각했던 셰인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마나유저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전력을 낼 수 있는 병기의 양산이 가능해서인가.’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하다 평가되는 3써클 마법사의 양성시간만 쳐도 최소 10년.
전쟁 당시엔 그마저도 기다릴 수 없어, 아카데미의 수습생들조차 전쟁터로 끌려오곤 했다.
그와 비교할 때에 화약병기는 보급만 잘된다는 가정 하에, 물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군대엔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년이나 지나면 전쟁의 양상도 이렇게 바뀌는군.’
물론 그에 대한 감상은 어디까지나 호기심으로 그칠 뿐이었다.
학자로써 셰인이 지향하는 분야는 엄연히 의학이며, 현재 병과의 선택 역시 이런 치유와 관련된 쪽으로 고를 필요가 있으니까.
그리고 현 방위군에 치유관련 부대라고 하면 딱 한 곳뿐이다.
"일단 신성지원부대라는 것부터 견학해볼게요."
신성지원부대.
최후방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거나 사망자들의 장례를 담당하는 부대이다.
이름대로 전원이 성직자로 구성되어 있기에 들어가는 건 무리겠지만, 일단 인명구조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으니 견학을 해서 나쁠 건 없다 생각했다.
"지원부대라……."
그곳의 견학을 희망하는 존이 두 눈을 게슴츠레 떠보았다
무언가 탐탁지 않은 듯 보이는 제스처다.
셰인이 대강 그 의도를 짐작하며 애매히 웃었다.
"기왕 주어진 기회인데 안전한 곳에 관심을 가지는 건 좀 그런가요?"
"아, 그런 건 아닙니다. 노동강도만 본다면 보급반보다 훨씬 강하니까요."
농담이 아니다.
전쟁 당시에만 해도 카일이 후방에서 홀로 맡은 환자만 하루에 수백, 순회 진단만 하더라도 천 단위는 족히 넘었다.
인원만 해도 그런데 응급처치 뿐 아니라 장기검진과 수술까지…….
존의 말대로 노동강도만 치면 다른 병과와 비교를 거부할 수준이다.
‘직접적으로 목숨이 위험한 일은 없지만 과로사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
의외인 건 그게 성직자들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성직자들의 치료란 오직 믿음만으로, 과로사를 유발하는 육체적인 피로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으니까.
‘실제론 피로가 큰 건가.’
그래, 그들의 활동지를 보기 전까진, 셰인 역시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자, 여기가 지원부대의 활동지입니다."
영지와 영지 밖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성벽, 그 안쪽에 위치해 있는 대성당.
블레이즈 영지 내의 유일한 구호소로, 전장에서 속출하는 부상자들을 수습하고자 영지 내의 성직자들을 모두 밀집시켜버린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넓은 장소이나, 그곳에 들어서며 느낀 첫 인상은 익숙함이었다.
전쟁시절에도 흔히 보았던……. 그런 처참함이.
"으으……."
"치, 치유사, 어서……!"
들어서기 무섭게 작렬하는 피비린내와 통곡성.
제대로 된 지혈이나, 골절상의 신체 교정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다.
만약 그들이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면 시체밭이라 여겨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런 처참한 광경을 누비는 건 셰인과 같은 의사가 아닌, 수녀복과 수단을 걸친 교단의 신자들이었다.
"괜찮습니다. 이제 곧 아픈 게 나으실 테니까요."
셰인의 시선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신자에게로 향해졌다.
눕혀진 환자의 손을 붙잡고 있는 한 수녀.
그녀가 기도문을 읊자 몸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오고, 그 빛을 쐰 이의 몸에 나있는 상처가 눈에 띠는 속도로 빠르게 아물어갔다.
"신께서 당신의 고통을 사해주실 겁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신은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음을 편히 놓고, 모든 걸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진심어린 기도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성직자들.
표정이 구겨지며 생긴 주름과 땀은, 그들이 치료에 진심을 다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아, 아악!!"
하지만 성직자들이 열의를 올릴수록 비명은 더욱 거세진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날뛸 기세를 취하니, 이내 몇몇 성직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환자들의 몸을 붙잡기에 이르렀다.
"조금만 견뎌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몸에 잔재한 부정한 기운을 뽑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시련일 지어니……."
격통을 내질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성력을 불어넣는 성직자들.
치료의 성과는 나오고 있지만, 셰인의 눈으로 보기엔 무식하기 그지없는 시술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부러진 팔이라도 좀 들어주고 치료를 하던가.’
부상당한 부위가 기존과 크게 뒤틀려 있을 경우,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에선 환자의 몸에 큰 부하가 가해진다.
치료 자체가 자연회복력이 아닌 ‘역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
지금 그들이 하는 건 진통제도 없이 수술을 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제국에선 마약이 금지되어 있지.’
술이나 허브처럼 단순 릴렉스 정도가 아닌, 사람의 감각이상을 유도하는 물질.
제국에선 그런 물질의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치외법권지라도 치료를 전담하는 건 그런 편견을 가진 성직자들이다.
이 시대의 외상치료에도 저런 통곡과 난동은 동반될 수밖에 없단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활동한다면 저런 걸 많이 본다는 건가.’
미처 구하지 못하는 환자들 역시.
"여기 또 부상자입니다!"
"사제님들! 어서 빨리!!"
아니, 이미 늦었다.
그들의 등에 업혀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그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의식적으로, 그 용태를 확인하고자 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건 순전히 뇌리에 박힌 직업병에 의한 행동이었지만…….
"오늘은 견학으로 끝내야 하는 거 아시죠?"
배후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발걸음이 멈춰졌다.
돌아볼 것도 없었다.
오늘 하루 자신의 안내역을 맡은 자는 감시자의 역할도 병행하고 있으니까.
"봐주는 건 한 번뿐입니다."
"알고 있어요."
유능해도 통제가 안 되면 결국에는 제거대상일 뿐.
신뢰를 사기 전까진 첫날과 같은 돌발적인 행동은 삼갈 필요가 있었다.
‘당분간 내가 나설 상황이 펼쳐지지 않길 바라야겠지.’
교회를 둘러보는 내내 그런 불길함이 섞인 감상이 이어졌다.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해온 건 어느덧 기도실에 도착했을 때.
"아, 참모님이시로군요."
마침 신자들의 기도가 끝난 듯, 무수한 신자들이 기도실을 벗어나는 광경이 보이고 있었다.
그만한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존재감이 부각되는 자가 있다.
지금 존이 마주하고 있는 자였다.
"오늘도 저희 영지를 위해 봉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스틴 주교님."
주교-크리스틴.
금빛의 자수가 놓인 수녀복과, 베일 밑으로 흘러내린 연녹색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으로 보이는 자였다.
곧은 턱선과 가느다란 체격.
여린 목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간질이는 마성이 돋보인다.
곧 그가 가슴팍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신을 섬기는 자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일이죠. 이곳에서의 봉사를 허락해 준 사령관님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된 노동마저 시련으로 삼으며 주에 대한 감사를 높인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듯 그리는 자애롭고 부드러운 미소는, 순수의 상징인 수녀에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셰인은 그 미소에 께름칙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인간은 남자인데 왜 수녀복을 입고 있어?’
셰인은 뼈와 근육을 보는 걸 전공으로 하는 외과의사.
뼈에 관한 전문가인 만큼, 상대의 골격구조를 대강 가늠하는 것만으로 대략적인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상태였다.
‘다른 거 볼 것도 없이 골반만 봐도 알 수 있지.’
남성과 여성의 뼈 중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바로 하체의 골반.
이 부분은 생식기관과 출산 등의 문제로 인해, 상체보다도 특히나 많은 차이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부위다.
물론 뼈에 정통한 사람이나 겨우 구분이 가능한 미세한 차이.
그 차이를 구분 지을 만한 능력이 없다면, 눈앞에 있는 자는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일 것이다.
"크리스틴 주교님께선 오늘도 아름다우시군요~"
그 중 한 사람인 존이 크리스틴을 마주한 채 헤벌쭉하며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사령관의 부관을 맡을 정도면 꽤나 유능할 터이거늘. 능력과는 별개로 여색이 심한 듯 보였다.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저러는 거면 셰인의 입장에선 더 없이 혐오스럽겠지만.
‘동성애자들은 이해가 안 돼.’
정신의학적으론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나, 생물학적인 시점에서만 본다면 동성애란 정말로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의사들 중엔 동성애를 일종의 ‘정신병’으로 보고 있는 자도 적잖을 정도.
셰인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런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기에 아이헨발트엣너 동성애를 법으로까지 금지해놓았다.
그런 나라에서 태어났으니 셰인 역시 자연스레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이성관계의 순수함을 중시하는 제국도 마찬가지지만.’
유일교에서도 동성애는 불법.
제국과 조국간의 몇 안 되는 공통점이었다.
"후후, 칭찬 감사합니다."
그리고 크리스틴이라는 저 자는 존의 칭찬을 정정하지 않았다.
남자라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뭐, 남자건 여자건 무슨 상관이겠어? 이 사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거겠지.’
이윽고 크리스틴의 관심이 셰인에게로 향해졌다.
"헌데 옆에 있는 그 아이는 본 적이 없는 얼굴이군요. 새로이 온 수행원은 아닌 것 같고……."
"아, 이쪽은 셰인 골드리안이라고 합니다."
"……셰인?"
존의 소개에 크리스틴의 눈이 둥그렇게 뜨여졌다.
언젠가, 셰인에 대한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당신이 안젤라가 심문했던 그……."
안젤라.
셰인에겐 적이었지만, 이 시대에 서의 그녀는 의인이라 불러 마땅한 자였다.
그런 사람의 부정을 고발한 자신이 다른 성직자들에겐 어떻게 보일까?
그 자가 동등한 권위를 쥔 교단의 권력자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해코지를 할 일은 없으니까요."
몸을 굳히고 있는 가운데 크리스틴이 인자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얼굴에 그려진 나긋한 미소.
크리스틴이 그러한 얼굴로 눈높이를 맞추며 제 속내를 털어놓았다.
"다른 영지에 가면 그 영지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요. 이곳에선 저희들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겁니다."
"……."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의외인 듯하군요."
‘자각은 있나보군.’
주교라는 건 교단의 고위성직자.
만인의 지지를 받는 ‘지도층’에 해당하는 만큼, 이단의 존재를 ‘선택과 의무의 문제’라고 말하는 걸 가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자신을 구속한 안젤라도 주교의 지위에 오른 자임을 생각하면,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그 여자도 이 영지에서 몇 년 굴렀다고 했었지.’
분명 일라이와 질리언과 같은 부대에 속했었다고.
그런 그녀가 가졌던 이단에 대한 강력한 증오를 본다면, 오히려 이 영지의 풍조가 교단 사람들의 증오를 가증시켰다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것이 당연할 터임에도, 정작 이단의 소년을 내려다보는 크리스틴의 얼굴엔 자애만이 엿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