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34화
"무,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셰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마녀사냥이 개짓거리인 걸 교단이 인정한 지가 벌써 40년이 넘는데 이제 와서 무슨 놈의 마녀타령이야?"
제국이 200년 간 평화를 유지했다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외세의 침략에 한한 이야기다.
내부에서는 반란군들이 드문드문 등장했고, 전염병으로 영지 몇 군데가 쑥대밭이 되어 민심이 파탄 나기도 했으며.
종교 내의 파벌싸움이나 마탑과의 대립 등, 제국의 입지를 흔들리게 한 사건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 사건 중에서 가장 독보적이었던 것이 바로 마녀사냥.
제국 곳곳에 있는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죽이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마저 전부 마녀의 수하로 여겨 처형한 희대의 병신짓이다.
‘그게 현재의 교황으로 바뀌고 난 후엔 귀신 같이 중단되었지.’
자기들도 과했다 생각한 건지. 아니면 얻을 건 다 얻었다고 생각한 건지.
어쨌든 그만한 사건을 일으킨 후부터, 교회 사람들조차도 마녀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꺼리는 상태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 마녀 같은 말을 입에 담다니. 니들은 공식적으로 마녀사냥의 폐해를 사과한 현 교황님을 무지성 빡대가리로 만들 생각이냐?"
"무, 무지성!?"
"너, 너 교황님을 욕하는 거야!? 이단 주제에!"
"교황님을 욕한 게 아니라 너희들이 하는 짓거리가 교황님을 모독하고 있다는 소리란다. 이 난청증 빠가사리들아."
"나쁜 말 그만해!"
"그래! 이단지식 가진 게 뭐 대수야!?"
"너 같은 애들이 문제를 일으킬까봐 심문관님들이 매일 고생하는 거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어린 수녀들.
하지만 발끈하는 데에 비해 제대로 된 반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기들도 마녀라는 말을 입에 담은 게 경솔하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하지만 여기서 그만둔다면 욕은 더욱 거세질 뿐.
"심문관? 말 잘했네."
곧 셰인이 압박하듯 쏘아붙였다.
"너희들. 법적으로 심문관 자격 없이 이단몰이 하는 거 불법인 거 모르냐?"
"무, 뭐?"
"친구끼리 술 처먹다 싸움 나서 이단이요, 부부싸움하다가 이단이요, 심지어 아카데미에서 자기보다 성적 잘 나온 애 가지고 이단이요 하며 수틀리면 이단부터 찾고 보니, 우리 위대하신 황제폐하도 빡이 돌아서 공식적으로 이단자 선언을 할 수 있는 건 심문관들뿐이라고 법적으로 지정한 지가 벌써 30년이 넘는다, 이 녀석들아."
"그, 그건……."
"교단 소속 사람이 이단의 스파이란 게 의심이 되면 일단 신고부터 해야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단몰이로 처벌하려 들면 사칭죄로 기소되는 걸 꼭 알려줘야 알아? 당장 이 밑에 있는 성직자분들에게 달려가서 니들이 심문관 사칭했다 말하면 참 볼만하겠다. 응?"
"이……."
"우, 으으……."
법까지 들먹이니 이내 아이들이 벌벌 떨며 뒷걸음질을 친다.
그래, 이대로 물러나줘라.
가급적 아이들에게 손을 대기 싫어 간절함마저 느껴졌지만…….
"즈, 증거라면 있잖아!"
"그래! 분명 심장이 멈췄는데 뛰게 했다 했어!"
그래, 이 제국에선 심정지는 사망판정이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
치외법권지인 이곳에선 뛰어난 능력으로 보이겠지만, 성직자들에게 심정지의 회복을 인정한다는 건 ‘신성력의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론 무능한 게 아니라 만능이 아닐 뿐이지만.’
에휴, 한숨을 내뱉은 셰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냐?"
"그걸 말이라고 해!? 이미 안식에 든 사람을 되살리다니, 그게 사령술이 아니면 뭔데!?"
"그런 걸 다루는 녀석이 지키는 애가 마녀인 건 당연한 거잖아!"
마녀가 아니라 의사다.
그 말을 속으로 꾹 누른 셰인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결코 무시 못 할 말을 입에 담아 외쳤다.
"그럼 성서에 나오는 영웅들도 다 마녀나 그 하수인들이겠네."
"……뭐?"
"200년 전만 해도 수십만의 병자를 하루아침에 일으켜 세우고, 사지가 다 분질러지고도 사흘 밤낮 동안 쉬지 않고 싸우던 용맹한 성기사들도 있었다고 하던데, 그런 업적들에 비하면 심장 다시 뛰게 만드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성직자들에게 있어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절대적인 것.
그러니 심정지도 지금 거론한 것과 비슷한 거라 취급하고 넘어갔으면 했지만…….
"그, 그것들은 다 성경에서 나온 거잖아."
"그래! 다 신화라고!"
‘얼씨구?’
이어지는 호통에 셰인이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구겼다.
신화를 진실로 믿기에 진화론마저 부정하는 게 종교란 것이거늘.
그런 모순을 눈치 채지 못한 듯 아이들이 제 주장에 강경히 힘을 실어 넣었다.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성서에 적힌 게 다 사실인 건 아니야!"
"그래! 어디까지나 그 분들의 위업을 칭송하기 위해 과장된 부분도 있는 거지!"
"그걸 곧이곧대로 믿다니. 너무 순수한 거 아니야?"
"순수한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벗어나려는 거겠지! 이 이단 녀석!"
"맞아! 맞아!"
다른 성직자들이 들으면 기가 찰 논리다.
종교를 싫어하는 셰인이라도 그걸 알 정도였다.
싫어한다는 건 그만큼 그들에 대한 습성을 잘 파악한다는 거니까.
‘어중간하게 나이를 먹으니 이런 건가.’
청소년기.
미성숙한 자아가 빠르게 확립되어가는 시기이며, 이전까지만 해도 수긍하기만 했던 것들에 의심을 하게 되는 때이다.
성직자들은 그런 의심을 풀어야만 진정 신성력을 구사할 수 있다 말한다.
그런 시기를 거쳐가는 아이들에게 의심 역시 시련이라 말하면서.
‘근데 웃기는 건 성서에 나오는 구절들이 마냥 거짓부렁이가 아니라는 거지.’
심정지를 회복시킬 순 없지만, 그 외의 감염이나 외상에 한해선 의학보다 능률이 높은 게 신성력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걸 ‘군대단위’로 시행했던 게 바로 그 시절의 성직자들.
후방으로 후퇴한 수천수만 명의 제국군이 하루아침에 다시 회복해 전장으로 나서는…….
그런 신화의 재림과 같은 불사의 군대를 만들어, 연합군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게 그 시절의 광신도들이란 말이다.
‘그런 마당에 꼬꼬마들이 신화네 거짓부렁이네 떠드니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네. 이 시대 성직자들이 하는 치료는 그때랑 비교하면 재롱잔치야 이것들아.’
속내를 내뱉으려던 걸 끝끝내 억눌러내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지옥 같기만 했던 때일뿐더러, 그 시절의 기억을 말해봐야 믿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됐다, 니들이랑 얘기해서 뭐하겠냐."
이내 꼬마들에게 정이 떨어진 셰인이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배후에서 뭐라 떠들어대는 소리가 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가자."
제 배후에 있는 소녀의 손을 움켜쥐는 셰인.
그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셰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손을 잡는 순간 느껴지는 맥동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 *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베르디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지에서 살아남은 것도, 평소와 같은 수행원들이 자신을 핍박하는 것도 늘 있는 일이었다.
다른 점은 그 과정에 ‘이단’이라 불리는 소년이 끼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그 이단의 소년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어딘가로 이끌기에 이르고 있었다.
"저기……."
"이름."
이윽고 공허한 기도실에 도착했을 무렵, 셰인이 베르디의 손을 놓아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못 들은 거 같아서."
"……."
"이름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셰인의 물음에 베르디가 눈을 껌뻑였다.
왜 제 이름을 궁금해 하는 걸까?
아니, 베르디에게 있어 스스로가 느끼는 의문은 하잘 것 없는 것이었다.
답을 할 수 있으면 답한다.
입을 여는 이유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베르디라고 해요. 유일교의 수행원 베르디."
"그래, 만나서 반가워 베르디. 난 셰인이라고 해."
"알고 있어요."
"…그러시겠지."
자길 살린 녀석에 대해선 이미 들어보았을 테니까.
하지만 놀란 기색을 보인 건 처음뿐이었다.
지금 자신을 따라온 베르디가 느끼는 건 순수한 의문.
"셰인."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베르디가, 셰인을 다소곳이 올려다보며 의문을 토로했다.
"셰인은 왜 절 도와주신 건가요?"
정적인 분위기.
누군가가 보기엔 께름칙하다 여길 몸이지만, 셰인은 그런 모습보다 안젤라와 같은 이들의 광기를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런 거 두고 못 가는 성격이거든."
"……그게 전부인가요?"
"그거면 충분하지."
살릴 수 있으면 살린다.
그건 셰인이 전생부터 줄곧 지켜오고자 했던 철칙이었으며, 그렇게 살려낸 아이가 좋지 못한 꼴을 받는 것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마녀처럼 이 시대에도 우스갯소리로 욕을 먹는다면 더더욱.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이윽고 베르디가 셰인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딱딱하고 무감각하지만, 고개를 숙인 행동은 분명 정중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별나지만 그래도 착한 아이다, 생각한 셰인이 멋쩍음을 느끼며 볼을 긁적였다.
"별로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내가 원해서 한 거니까."
"도움을 받았다면 감사를 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요."
예의가 다분히 느껴지는 태도.
이전까지만 해도 어린아이들의 막되어먹은 모습을 보았기에 더욱 와닿는 모습이다.
그에 감탄마저 느꼈을 무렵, 베르디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셰인을 마주하였다.
"하지만 다음엔 도와주지 않으셔도 돼요. 셰인에게도 폐가 될 테고……."
"아니,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돼. 너도 괴롭힘 당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행하는 따돌림은 당연히 방지해야지.
그런 의도로 말을 했던 거지만…….
"그 아이들에 대한 게 아니에요."
정작 베르디는 셰인의 말을 정정하며 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를 살려준 것에 대해 말한 거예요."
"……살려준 거라니?"
셰인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괴롭힘이 아닌 살려준 쪽. 심장이 멈췄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걸 거론하며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니…….
‘살려주지 말라고?’
순간 자신이 잘못 이해했나 싶었지만, 베르디의 얼굴에 감정의 변화는 도드라지지 않았다.
그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언제나처럼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뿐.
"그야 전…… 죽을 곳을 찾아 이 영지에 온 거니까요."
"……."
셰인이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다시 말문이 열린 건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뭐?"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으니, 베르디가 고개를 기울이며 역으로 되물어왔다.
"이해가 안 되시는 건가요?"
"……그럼 그걸 이해하라고 하는 말이야?"
셰인이 표정을 왈칵 우그러트리며 대답했다.
죽기 위해 전쟁터에 오다니.
정신이 나간 놈이 아니고서야 그런 말을 진지하게 할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괜찮아요. 이해해주길 바라진 않으니까요."
베르디는 그것을 농담이라 정정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떠나는 걸음걸이엔 그 어떤 미련도 없었다.
마치 자신을 구해낸 생명의 은인을, 그저 지나치는 조형물과 다를 바 없게 여기는 것처럼.
"그저 다음부터는 저의 목숨을 연명시킬 노력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해 주길 바랄게요."
"잠깐……."
"그럼 전 일과를 수행해야 하니 이만."
그렇게 제 할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나버리는 베르디.
셰인은 차마 그 발걸음을 말릴 수가 없었다.
이전처럼 활동 자체에 훼방을 놓는다면 모를까, 본인이 업무를 수행하길 바라는 걸 막는 건 괜한 오지랖이 될 테니까.
"허……."
그걸 알면서도 허탈함을 지우지 못하는 건 어째서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저 소녀가 보이는 행동이, 셰인이 알고 있는 ‘아이에 대한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고 있었기에.
"꼬맹이 주제에 세상 다 산 것마냥 떠들고 있네."
죽으러 왔다.
의사로서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