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35화 (35/255)

의무병의 환생 35화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렇게 떠들어댄 녀석들이야 전쟁시절에도 더럽게 많았지만, 그런 특이할 것 없는 이야기조차 어린아이의 입에서 내뱉어지면 의미가 달라지는 법이다.

‘저 나잇대 애들은 감정에 민감한 시기니까.’

경험이 없으니 자신이 겪는 모든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그것이 스트레스나 우울증이 겹칠 경우 극심한 충동증세로 번지게 된다.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아이들, 혹은 갓 성인이 된 청년들 중 유독 자살지망자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마당에 14살의 아이가 죽을 곳을 찾으러 왔다 제 앞에서 말했거늘, 어찌 의사된 자가 흘려버리듯 넘길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저 아이, 그때의 심정지 증세는 세실과 같은 상태라서 비롯된 걸지도 몰라.’

신성력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증세를 보유한 상태.

그것이 저 소녀의 사정을 남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이유였다.

‘심정지를 발생시키는 요인은 쇼크, 당뇨, 고혈합, 비만 등등 다양한 후천성 요인……. 하지만 성직자라면 이런 요인들엔 거의 내성이 있는 상태지.’

신성력을 보유한 성직자들은 기본적으로 자가치유력이 높으니까.

저 아이는 신성력을 각성하진 못했지만 주기적으로 성직자들에게 치료를 받았을 터.

즉사급 피해를 입거나, 회복력이 몸의 손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어지간해선 죽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즉, 종교인들에게 별 다른 계기 없는 발작증세가 났다면, 십중팔구 ‘선천적 장애’에 의한 일이란 것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저 애의 질환은…….’

이윽고 셰인이 제 손을 내려다보며, 베르디의 손을 잡았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손목을 잡았을 때에 느껴졌던 맥박의 세기와 리듬.

그 모든 것이 불규칙하게 이루어졌었다.

‘선천적 심장기형. 그로 인한 돌발적인 부정맥 증상.’

당장의 요소들만을 모아본다면 그런 결과가 나온다.

‘구체적으로 심장에 어떤 장애가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선 역시 옆에서 길게 지켜봐야겠지.’

꽈악.

주먹을 틀어쥔 셰인이 제 뒤에 있는 신상을 돌아보았다.

유일교가 섬기는 신의 형상을 상상하여 만든 석상.

앞으로 이 영지에서 실컷 보게 될 낯짝이었다.

* * *

신성력.

이 세계를 굽어 살피시는 위대한 존재가 하사한다 알려진 힘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인류는 그런 위대한 존재의 자비와 비호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래영겁의 평화와 지상낙원을 만든다는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지만 아무리 신앙심이 깊더라도,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신께서는 자신에게 신앙을 증명한 만큼 힘을 하사하시고, 그 마음의 그릇만큼 축적을 허락하시니.

즉, 신성력을 사용하기 위해선 신앙을 다스리고, 쌓아가는 기도란 필수적인 일이란 것이다.

"그러니 모두 오늘 하루도 주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도를 드립시다."

이단의 땅에도 볕은 드리운다.

이른 새벽, 대성당의 기도실에 모인 수백의 신도들은 신상을 앞둔 채 각자의 기도를 시작하였다.

"주여. 부디 이 어질고 부족한 자에게 총명함을 내려주소서."

"거룩하신 마음으로 우리를 굽어 살피시고……."

"또한 죄인에게 후회를, 그 마음이 속죄로 이어지길 바라며……."

"당신을 섬기는 이들의 고통을 삭혀주시고, 안식에 든 이들에겐 구원을."

"그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길을 밝혀주소서."

누군가는 성서의 구절을. 또 누군가는 제 처지에 맞춘 바람을 진심을 다해 읊조린다.

그런 믿음에 반응하듯 몇몇 이들의 몸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왔다.

‘신성력.’

그 힘이야말로 이 세계에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며, 제국이 제국으로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절대적인 힘이다.

하지만 모든 성직자들이 신성력을 다루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신성력을 발현하기 위해선 신앙에 거짓이 없어야 하며, 스스로가 실천하고자 하는 정의에 확고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자.

혹은 마음에 흑심을 품거나,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이들은 그 힘을 영접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건 수행차 블레이즈 영지에 찾아온 어린 수행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역시 이단은 나빠."

지루한 기도시간 중, 한 아이가 분을 못 이기며 중얼거리자 옆에 있는 아이들이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왜 그래?"

"어제 만난 이단 녀석 때문에."

"아, 어제 만났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었어?"

궁시렁궁시렁.

작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잡담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 녀석이 마녀를 지키고 돌았다니까?"

"의학이라는 걸 익혀서 여기에 벌을 받으러 왔대."

"의학이 뭐야?"

"얘기로 들어보니까 사람의 몸을 산 채로 분해시키는 거래."

"막 괴물들을 양산한다며?"

"얼마 전에 전신에 화상을 입은 사람도 생화학인가? 하는 병기로 그렇게 된 거래."

"으으, 무서워. 그런 걸 저지르고 떳떳하게 여길 돌아다닌다니."

"애초에 치료는 신성력으로 하면 되는데 그런 걸 왜 노리는 거야?"

"이단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

아무리 이단의 문화를 받아들인 영지라 한들, 그 구성원들이 제국민으로 이루어진 이상 이단의 풍습을 무조건 장려할 순 없다.

혐오와 배척은 만연할 수밖에 없는 노릇.

자중과 분별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 표현이 더욱 투명히 이뤄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단이라는 게 정말 잘못된 거야?"

"무,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크리스틴 누나도 그러잖아. 이단이라고 모두 나쁜 건 아니고, 교리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언니야 경험이 많으시잖아. 우리랑 달리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파악하실 줄 안다고."

"그럼 우리가 이단을 평가하는 건 잘못된 거 아니야?"

"나, 나쁜 건 나쁜 거야! 이단 에서 좋은 게 많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얼마 전에 케이미라는 이단자 누나가 보여줬던 그……. 불꽃놀이라는 거. 엄청 이쁘지 않았어?"

"그런 게 우릴 다 현혹시키려는 수작인 거야.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그리고 여기서 그런 걸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신님께서 허락하셔서 그런 거라고……."

"크흠!"

언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

화들짝 놀란 아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엔 고지식한 인상의 남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있어선 무서워 마지못할 존재인 고위사제였다.

"신성한 기도시간에 잡담은 금물입니다. 정숙하시지요."

"네. 죄송합니다."

깨갱, 하며 물러서는 아이들이 마저 속으로 기도문을 읊조렸다.

당연하지만 철부지 아이들의 몸에서 신성력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주님, 오늘 아침은 부드러운 빵이 나오게 해주세요.’

‘마굿간 정리할 때 똥이 덜 묻게 되기를.’

그저 기도라 하기에도 뭣한 것을 읊으며 식사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릴 뿐.

"모두들 잠시 주목해 주시지요."

이내 기도시간이 끝이 났을 무렵, 정적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현 제국에서 이 영지에 파견 나온 성직자들 중 셋뿐인 주교 중 한 사람.

이 영지에서 가장 오래토록 봉사를 해온 크리스틴이었다.

"신자 여러분. 여러분들께선 각기 살아온 세월도 환경도 다르겠지만,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이 영지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행해온 봉사는, 분명 하늘에 닿아 주님에게도 큰 기쁨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배후에 자리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는 형형색색의 빛.

그것을 등진 채 양손을 맞잡으며 행하는 연설은 누구라도 진심을 의심치 않고, 또 감격을 느낄 만한 것이었다.

그가 ‘성인(聖人)’이라는 존재에 걸맞다는 건 이 자리에 선 모두가 생각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러한 저희들의 고행에 오늘부로 함께하게 될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이후 크리스틴의 말과 함께 누군가가 단상에 올라온 순간, 기도실 내부가 어수선함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부로 유일교의 수행원이 되신 셰인 형제님입니다."

"뭐, 뭐!?"

셰인을 알아본 몇몇 성직자들의.

특히나 어린 수행원들의 입에서 일제히 경악이 터져 나왔다.

"자, 자… 잠깐, 예?"

"주교님, 무슨……."

"그 녀석은 이, 이단의……."

"자, 셰인."

소란스러움에도 크리스틴은 제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셰인의 등을 복 돋아 주며 그를 제 앞으로 내세울 뿐.

변치 않은 미소는 그가 자신의 행동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앞으로 함께해주실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이내 셰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 영지의 봉사를 위해 모인 이들의 앞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수단을 걸친 몸을.

이단의 영역에서도 교리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을 대면하며.

"유일교의 형제자매님들. 비록 머무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겠지만, 그동안 여러분들과의 불화 없이 지낼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그렇게 신앙이 없는 의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단을 증오하는 무리에 들어갈 것을 선언했다.

* * *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에겐 마주하는 모든 것이 배움의 일환.

그러한 배움이 시간이 지나며 방향성이 정해지고, 그 방향성이 곧 진로로 고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신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유일교의 가르침 그 첫 번째. 주님을 사랑하기 이전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세상을 인지하는 스스로의 감정을 부각시키고, 그 감정을 확산시킴으로써 주님을 지탱하기 위한 신앙의 초석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대성당의 교육실.

그곳에서 칠판을 뒤에 진 사제는 성경책의 구절을 읊으며 아이들을 향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사제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인 만큼, 교육을 경청하는 중에 한눈을 파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집중을 하는 건 셰인 역시 마찬가지. 결여된 건 사제가 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이거 좀 배운다고 신성력을 다룰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놈들이 뭘 배우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들어야겠지.’

앞으로 교단 사람들과 마찰이 잦을 예정이니까.

그들을 대하는 법을 익히는 건 필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교육을 받더라도 미성년부터 신성력을 다루는 건 소수라는 건가.’

얼핏 들어본 바, 유년기부터 교육을 는다 해도 신성력을 개화하는 시기는 성인이 된 직후가 일반적이라 한다.

그마저도 신성력을 각성한 직후엔 능력이 약한 편.

신앙심이 약하면 여럿이 한 명을 붙잡고 치료를 할 때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굳이 이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이 영지에 온 것도, 고행을 많이 할수록 신성력의 개화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믿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 아이도…… 그 신성력을 각성하기 위해서?’

셰인이 슬쩍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교육을 위한 자리 내에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수녀복의 소녀.

베르디는 다른 수행원들과 달리, 교육을 해주는 사제로부터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멍한 눈동자를 보면 집중하는지 아닌지는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베르디 역시 교단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다.

‘교단 사람에게 학적 병명을 구구절절 설명해 봐야 협조하지 않을 게 뻔하니까.’

거기에 자살지망까지 추가된 상태.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제 목숨에 미련이 없는 만큼, 심장질환을 제외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일 것이다.

‘약물치료가 필수적인 내과진료에 우울증 상담까지……. 양쪽 다 전공이 아닌 게 코미디군.’

하지만 그렇다고 시도도 안 할 순 없다.

살릴 수 있다면 살린다.

그건 전생부터 셰인이 지향해 온 철칙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야 할 건 치유법 그 자체보단……. 어떤 식으로 거부감을 줄이며 접근을 할지에 대한 건가.’

수업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셰인은 종교인인 베르디와의 관계를 좁힐 수 있는지를 궁리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일단 직구를 던지는 거였다.

‘베르디. 사정은 나중에 설명해줄게. 일단 가슴 좀 보여줄래?’

-철컹철컹.

사슬의 마찰음이 울렸다.

교육을 진행하는 사제가 자료로 가지고 온 물건이었다.

"다만 금기에는 금기로 지정되는 이유가 있으며, 특히나 성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자를 구속할 때에 밧줄이 아닌 사슬을 쓰는 이유는 그 죄가 중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이에 대한 처벌로는 남성기를 자른 후 달궈진 부지깽이로 지지는 것으로……."

‘…남들 눈을 피하는 것도 고려해야겠네.’

상태 검증에 필요한 일에 대해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진 않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