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36화 (36/255)

의무병의 환생 36화

오전의 의무교육이 끝난 시간.

식사를 마친 어린 수행원들은 각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장소로 향하여, 그곳에서 맡은 바 일에 충실하게 된다.

그 일과는 주로 정식 성직자들의 잡무를 수행하거나 성당 청소, 그리고 병사들의 수발을 들어주는 등. 신성력을 요구하지 않는 잡노동과 봉사가 주를 이루는 상태.

그에 예외가 되는 건 엄연히 병과의 선택권한으로 부대에 자원한 셰인 정도였다.

"앞으로 오후 일과는 저의 곁에서 수행하도록 하지요. 일단은 저를 보좌해준다는 이유로 당신의 합류를 받아들인 거니까요."

병자들을 모아두는 구호소에 오니,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크리스틴이 셰인을 반겨주었다.

그는 이단혐의로 이곳에 온 셰인을 편견 없이 대해주는 사람.

그의 호의는 셰인에게 있어선 아주 유용하게 여길 만한 것이었다.

‘교단에도 이런 사람이 나오다니. 치외법권지라 가능한 건가.’

그런 자애로운 태도에 매료된 건 셰인만이 아니었다.

크리스틴이 보살피는 병자들은 하나같이 그를 향한 강한 호의를 비추곤 했다.

"상태는 어떠십니까?"

"하하, 수녀님 덕에 몸이 나아졌습니다."

체인메일에 망토를 두르고 있는 추레한 인상의 남자.

정식으로 채용된 병사들이 아닌, 이 영지에 일시적인 돈벌이를 하고자 찾아온 용병이었다.

임시로 고용된 만큼 전문병사들과 같은 절도나 예의는 보이지 않지만, 그런 막돼먹은 자가 누군가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상태가 호전되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주세요. 주님께서 보은을 내려주신다 한들, 그 보은이 내려지기까지의 고통마저 지우지는 못하니까요."

"하하! 그런 고통을 무서워해서야 어디 용병일 하겠습니까? 뭣보다도 이렇게 수녀님과 만날 수 있는 것이 저에겐 가장 큰 보은인 것을……."

제 손을 맞잡은 크리스틴을 보며 헤벌쭉하는 용병.

누가 보더라도 크리스틴에게 호감을 품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다.’

그걸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전장살이가 고된 것을 아는 입장에서, 힘겹게나마 마주한 순정을 짓밟는 행위는 피하고 싶었으니까.

"치유사! 여기 당장 손 남는 치유사 없어!?"

"여기 이 녀석 뼈가 완전히 부러졌는데."

이후 또 다른 용병들이 구호소 내로 달려왔다.

다리가 측면으로 크게 구부러진 사람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광경이나, 셰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성직자들보다도 먼저 그들을 향해 다가섰다.

"셰인?"

"잠시만요."

우드득.

손짓과 힘과 함께 바로잡히는 뼈.

다리가 뒤틀린 용병의 표정이 왈칵 우그러졌다.

"크으윽!"

"좀 더 참아요. 신성력으로만 회복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뼈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근육에 손상에 가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이윽고 다리가 본래의 형태로 되돌린 셰인이 크리스틴을 돌아보았다.

"여기 회복을……."

"아, 네."

크리스틴이 곧 용병의 다리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드득.

뼈가 붙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소리가 보통의 신성력으로 회복할 때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이다.

용병의 표정 역시도 마찬가지.

처음 뼈를 바로잡을 때엔 괴로워했지만, 빠른 속도로 뼈가 붙는 것을 느끼니 얼굴은 점차 감탄으로 물들어졌다.

"아, 이거 직접 뼈를 끼운 다음에 치료하는 건가?"

"아, 어……. 생각만큼 그렇게 아프진 않았어. 정신 차리고 보니 다리가 제대로 돌아와 있고."

"어린데도 실력이 좋네~ 멋대로 끼웠다가 반병신이 돼서 우는 녀석들이 한 바가지인데."

"저번에 네가 그랬었나?"

"네가 그랬겠지 망할 자식아."

용병들은 셰인이 뼈를 끼우는 행위에 별 괘념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건 성직자들도 마찬가지.

접골이라는 행위 자체에 종교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기 때문이다.

‘의학이 없는 시대라도 인체학의 발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이 시대에도 용병이나 기사 등, 전투를 업으로 삼는 자들은 존재하며, 전투에는 필연적으로 인체에 대한 공략이 따라온다.

단지 그 지식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적은 것뿐.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접골법은 제대로 된 치료라고 할 수 없다.

뼈가 뒤틀렸다는 건 뼈 사이를 잇는 연골이나 인대 등에 손상이 가해졌다는 것.

이런 부분을 끼운다 해도 손상된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러한 상태를 방치시킨다면 ‘습관성 탈골’ 증세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접골은 결국엔 대체의학일 뿐……. 탈골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선 외과수술은 필수라는 거지.’

하지만 살을 가르거나, 뼈를 뽑는 등의 일은 종교적인 관점에선 결코 해선 안 될 일이다.

몸에서 뼈를 뽑거나 구조를 바꾸는 건 불경한 의식의 시작이다.

그 외에도 수혈을 하면 안 된다, 가죽을 벗겨선 안 된다, 문란한 활동은 자식에게 저주를 만드는 일이니 단기간에 반복된 수음 행위는 삼가야만 한다 등등…….

성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외과수술에선 결코 빠져선 안 될 치명적인 규율이 많다.

그게 전생에는 어이없고 무식한 짓거리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왜 그런 규율들이 생겼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구시대 의학만 놓고 보면 아주 틀리다곤 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

교리에 나오는 그 금기는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치명적으로 여겨졌던 사항들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사람하나 도축하는 거나 다름없게 보였던 행위들 말이다.

‘까놓고 얘기해서 그 당시 수술은 수술하고 쇼크로 죽기vs그냥 살다가 죽기 였으니까.’

별 다른 항생제도 마취제도 없던 시대에, 쇳독에 오염된 부위가 나오면 최소 환부 절제부터 고려하던 시기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뜬 마당에 누가 톱으로 자기 팔을 산 채로 도려낸다 생각해보라.

‘차라리 파상풍 걸려서 피똥싸다 뒤지는 걸 택하지.’

반면 신성력은 눈에 보이는 잔혹함 없이, 대상에게 불어넣기만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뼈가 바로잡히는 과정에도 통증이 동반되긴 하지만, 그 고통도 닥치고 사지절단부터 시작하는 외과치료보다는 낫다 생각할 터.

그런 걸 생각하면, 당시 성직자들이 의사를 야만족이라 칭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구시대에 만연한 혐오가 발전된 현대까지도 이어진다는 거고.’

그래, 아무리 신성력의 효율이 좋아도, 낡은 관습만을 신성시 여기며 발전과 타협을 배척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이 시대에도 회복시키지 못하는 환자가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해결법을 찾지 않고 신성력의 완전성만을 주장하다니.

‘이 시대의 성직자들은, 자기들이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아야 돼.’

그 점을 되새기며 꾸욱 주먹을 틀어쥐는 것도 잠시.

"여, 여기에 셰인이라는 분 계십니까!?"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셰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망가진 갑옷을 걸친 채 축 늘어진 남자. 그를 업으며 달려온 병사가 다급한 얼굴로 셰인을 마주하였다.

"제, 제 친구가 저를 지키다 그만……. 심장이 멈춰서 다시 뛰질 않고 있어요!"

심장이 멈춘 환자.

그를 데리고 오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건,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을 전해들었기 때문일까?

‘할 수 있다면 해야겠지만…….’

셰인이 말없이 주변의 사제들을 돌아보았다.

몇몇 성직자들이 셰인을 긴장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이단의 영역이라곤 하나 신성력으로 살리지 못하는 환자를 살리는 것에 갈등을 느끼는 것.

그런 갈등을 해소해준 건 다름 아닌 크리스틴이었다.

"부탁드릴게요."

허락이 떨어졌다.

셰인이 시술을 준비하며 호송자를 향해 물었다.

"심장이 멈춘 지는 얼마나 됐죠?"

"5, 5분 정도……."

아니, 그보다 더 되었을 것이다.

환자의 맥을 짚고, 마나를 불어넣어 내부의 흐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바로 알 수 있었다.

‘…피의 흐름이 완전히 멈췄다. 뇌도 거의 망가졌을 거야.’

심정지 환자의 골든아워는 10분 내외.

하지만 9분이 지났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심정지의 가장 위험한 점은, 심장이 멈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후유증이 죽음에 근접한 수준까지 이른다는 것이니까.

‘뇌로 향하는 혈류가 차단되면 그만큼 뇌기능이 저하되지. 3분만 지나도 위험해지고 6분만 지나도 뇌사가 일어날 확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해.’

5분만 지나도 식물인간이, 혹은 생명반응을 관장하는 기간이 먼저 죽어버려 시한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미래가 기다린다고 환자를 방치해서야 될까?

셰인과 같은 의사의 기준에서, 아직 이 환자는 죽었다고 정의할 수 없는 상태였다.

-파즈즉!!

곧 환자의 가슴에 올린 손에서 전기충격이 일어났다.

일순간 크게 달싹이는 몸.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기겁을 내뱉었다.

"아니 그렇게 충격을 가하면…!"

"이런 수단이라도 있는 걸 다해으로 여겨요."

제세동술이 만들어지기 전엔 심폐소생을 위해 갈비뼈가 부서질 기세로 두드려댔으니까.

물론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불안하겠지만…….

"일단은 지켜보죠."

다행히도 크리스틴이 그들을 타일러주고 있었다.

그가 있어주어 정말 다행이다. 셰인이 마저 시술을 하고자 환자의 입에 손을 가져갔다.

산소호흡술.

대기 중 호흡에 필요한 공기만을 걸러 손아귀에 모으는 기술로, 이를 이용하면 무의식적으로 호흡이 멈춘 환자의 호흡기에 산소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 두 가지를 병행하며 순환계와 호흡기를 자극하는 것을 ‘심폐소생술’이라고 부른다.

단순 양손을 이용한 것만이 아닌 마나를 이용한 술법을 섞어낸.

의사 본인의 몸을‘의료도구’로 쓰는 아이헨발트식 의술의 결정체.

‘하지만 그것만으론 후유증은 어찌 못한다.’

살아나더라도 결국 뇌에 이상이 생겨 시한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의술만으로 처치하고자 한다면.

"크리스틴, 슬슬 신성력을 불어넣어주세요."

"주여, 부디 어린양을 구원해주소서……."

기도를 읊는 몸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파즈즉!!

그 빛보다 강렬한 섬광이 전기음과 함께 반복해 터져나온다.

그와 함께 환자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나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전기충격이 몇 번이고 주입되어 심장의 근육을 자극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의 공백엔 몇 번이고 산소호흡술이 병행되었다.

그저 그것만이 반복되는 행동.

그저 그것만이 전부인 치료.

‘하지만 이걸로 많은 사람을 살려냈다.’

그리고 지금은 전생시절보다도 더 능률이 높은 치유가 가능하다.

신성력.

그것은 의술만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의 상태를 호전시켜 주리라.

신이라는 자가, 바닥에 뉘어진 시체가 완전히 죽었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커헉!"

이윽고 두 눈이 번뜩인 환자의 입에서 격한 숨이 터져 나왔다.

자극을 받은 심장이 다시 뛰며 혈액이 순환되고, 죽어가던 뇌가 다시 살아나며 정신이 일깨워진 것이다.

이윽고 되돌아온 호흡과 함께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환자.

그를 내려다보는 용병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 입을 쩌억 벌려대었다.

"뭐, 뭐야. 정말 살아 난거야?"

"강령술?"

"강령술이고 뭐고 어때? 살아났으면 된 거지 뭐!"

"뭐, 뭐야. 니들 왜…. 우어억!"

막 깨어나 경황이 없는 병사들에게 안겨드는 병사들.

이제까지 친하게 지낸 전우가 깨어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했다.

셰인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피식 웃었다.

"깨어났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체력의 소모는 신성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으니까, 당분간 무리하지 마시고 푹 쉬도록 하고요."

"고, 고마워. 아, 아니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 흐흑!"

이내 울부짖는 환자들이 감사를 전하며 제 전우를 데리고 떠나갔다.

전우는 아직도 상황이 어떤지 모르고 ‘마물들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뿐.

언어소통이나 거동 등엔 별 문제가 없는 듯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틴이 셰인을 향해 감탄을 흘렸다.

"정말……. 죽은 자를 살렸다는 게 사실이군요."

"…심장이 멈춘다고 사람은 죽지 않아요."

아이헨발트에선 죽음을 논할 때에 반드시 ‘의학적’이라는 말을 썼다.

죽음의 기준은 의학의 발전에 따라 확장될 여지가 있기 때문.

그 기준이 심장을 살리는 법을 알지 못했을 때엔 제국과 같았지만, 이후 심폐소생법이 알려진 후엔 사망의 기준이 심장에서 뇌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의학자들은 이렇게 말을 했다.

‘만약 뇌의 회복까지 호전시킬 수단이 있다면 의학적 죽음의 경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 경계를 신성력이라면 좀 더 크게 확장시킬 수 있다.

‘완전히 뇌가 죽어버리거나 절단상을 재생시킬 순 없지만, 신경이 일부 손상된 정도면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어.’

뇌의 일부가 손상되어도, 살아만 있다면 그 후유증마저 회복시킬 수 있다.

즉, 골든타임의 확장과 더불어 심정지의 후유증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는 것.

그건 셰인이 몸을 담은 의학계에선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이헨발트에선 의술에 신성력을 접합시킬 수가 없었지.’

그야 신성력을 다룰 정도의 신앙을 갖추려면 지식보다도 신앙을 우선시 둬야 하니까.

그건 지식이 주축을 이루는 현대의학에선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일.

종교를 이해하기로 한 스승조차 끝내 신성력을 다루지 못하게 되었으니, 의사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성력이 매력적이라 해도 그게 의학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니야.’

지금 셰인은 그걸 증명했다.

이 구호소에 있는 많은 사제들과 환자들의 앞에서.

"셰인."

그중 대표격에 해당하는 자가 셰인의 이름을 불렀다.

"이전의 처치에 대해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주교 크리스틴.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이단에 대한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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