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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37화 (37/255)

의무병의 환생 37화

휴식을 위해 잠시 현장을 벗어난 셰인은, 자신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크리스틴의 물음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심장 또한 근육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거기에 자극을 주어 신경, 이라는 걸 되살리는 거군요."

"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심장이 자체적으로 박동하게 만드는 건 심장 내부에 존재하는 신경세포.

그것이 모종의 이유로 이상을 일으킬 시 서로의 신호가 어긋나 경련증세가 일어나며, 그로 인해 심정지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신경을 전기충격으로 리셋시키고 자체적으로 다시 활동하게 유도하는 셈이지.’

그런 설명이 별로 와닿지 않는 듯, 크리스틴은 눈살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유일교에서 심장이란 혼이 깃드는 곳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혼이 움직이기에 심장이란 자체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의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결과다.

실제로 아이헨발트에서도 구시대엔 뇌가 아닌 심장이 생명의 중심을 이룬다 믿었으니까.

그런 상식이 파탄 날 당시에도 말이 많이 나왔는데 종교인은 오죽하겠는가?

"후후, 그렇군요. 혼에 의한 게 아닌 근육에 의해서……. 혼과 관련된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지식이로군요."

그럼에도 크리스틴은 마냥 그 점을 부정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납득해주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크리스틴이 외도에 들어서며 집단의 소외를 받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받아들이셔도 되는 건가요?"

"교리도 결국에는 신앙을 가지기 위한 정석일 뿐이죠. 설령 이단의 지식이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한들, 신에 대한 믿음이 진실 되었다면 저희들은 결코 타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심문관이 이단의 지식을 익히는 것이 허락되는 이유와 같다.

크리스틴은 그걸 심문관이 아닌 다른 길로 나아가며, 이단의 지식으로부터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타협점을 찾는 시도를 보이는 것뿐.

그건 그 또한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안이라 믿기에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셰인에게 많은 도움을 빌리고 싶군요. 어디까지나 이 영지에 있는 동안만은……."

"네 뭐, 제국으로 돌아간다면 자중해야죠."

교리가 중시되는 제국에서 이런 수법을 인정받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러니 셰인은 크리스틴과의 관계가 앞으로도 좋게 이루어지고, 또 그가 제국으로 돌아간 후 의학과 관련된 부분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내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호의와 별개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럼 충분히 휴식도 했고, 좀 더 수고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잠시만요. 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여쭤볼 게 있는데……."

크리스틴을 불러 세우는 셰인.

크리스틴이 의문을 느끼며 돌아보자, 셰인이 긴장한 목소리로 그를 향해 물었다.

"왜 남자인데 수녀복을 입고 계신 건가요?"

"……."

잠시 침묵하는 크리스틴.

눈이 둥그렇게 뜨여진 걸로 봐선 자신의 성별을 들킨 데에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불쾌감 한 점 없는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편이 환자들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으니까요."

"……."

"…이상하다 생각하시나요?"

"아, 아뇨.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타당한 이유라 생각해서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이타심을 위해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

그 근본은 제 스승이 종교를 가진 이유와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 * *

그렇게 두 사람의 사이가 돈독해질 무렵.

멀리서 노동을 하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들이 못마땅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저 이단 녀석…. 크리스틴 누나랑 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어."

어린 수행원들.

그들에게 있어 셰인이 크리스틴과 붙어 있는 건 시기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아직 신성력을 개화하지 못한 자신들과 달리, 그는 이단의 지식을 긍정함에도 존경하는 사람의 활동을 보조하고 있었으니까.

"부럽다. 나도 언니랑 같이 있고 싶은데."

"주교님에게 언니가 뭐야 언니가!"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 기도 시간도 아닌데."

"그런 것보다 그 이단 녀석이 주교님의 총애를 받고 있는 걸 신경 써야지!"

고된 봉사를 행하는 아이들의 주된 대화소재 중 하나는 동경하는 사람에 대해 논하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들을 보살펴주는 그를 우상화해 왔지만, 최근에 들어선 그 마음조차 셰인을 향한 질투와 왜곡된 오해로 변질되고 있었다.

"설마 현혹당하신 건가?"

"아니, 주교님이 현혹당하실 리가 없잖아."

"어쩌면 주교님께서 교화시키려는 걸지도 모르지. 우리랑 나이도 비슷한데 독실하신 그 분을 어떻게 유혹하겠어?"

"그래도 이단인데……."

"그리고 우린 그냥 지켜보는 것밖에 못하잖아."

"얘기 들어보니까 위병대도 저 녀석 하나한테 다 쓰러졌다고 하던데?"

그래, 그의 위험성은 단지 이단의 지식을 가진 것만이 아니다.

위병단장을 한 방에 제압했다는 둥 과장이 끼어 있긴 하지만, 주변 어른들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직접 해코지를 해봐야 반격을 당할 터.

그에 모두가 주눅이 드는 가운데 한 소녀가 코웃음을 터트렸다.

"하, 저깟 녀석이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어?"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적발의 소녀.

메어리란 이름을 지닌 수행원이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고 봐. 이제 곧 있으면 그 녀석이 원정에서 돌아올 테니까."

"그 녀석?"

씨익, 메어리가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 외쳤다.

"무려 위대한 성자인 볼레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전해지는 성기사. 아슬란의 후손이라고."

성기사 가문 아슬란의 차기 당주.

그 소년 역시 현재 이 영지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다.

* * *

블레이즈 영지에 온지도 어언 보름.

그 시간 동안 셰인은 크리스틴의 옆에서 보조를 하며, 가급적 접골이나 점혈을 이용한 지혈 위주로 환자들의 치료를 보조해 주었다.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와 치료의 수월함만을 보조할 뿐.

신성력이라는 힘이 있는 이상, 후방까지 온다면 별 다른 처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죽어야 할 사람들도 여럿 살려냈어.’

의술과 신성력의 협력.

그를 통해 이 영지에선 후방까지 호송된 시한부들의 생존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해 있었다.

그건 그 자체로 굉장하다 여겨질 성과지만, 셰인은 그 정도로 만족할 만큼 이상이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여전히 최전방에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니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응급처치의 중요성조차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

신성력에 의한 치료만을 믿기에 지혈법은커녕, 호송조차도 제대로 신경 쓰지 않는 상태다.

그걸 어찌 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애꿎은 사람들의 사망률만 높아지리라.

‘뭐, 그건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차근차근 고민하고…….’

일과를 끝마친 저녁.

성벽 내부의 시설을 거니는 셰인이 자신의 팔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동년배를 기준으로 한다면 능히 발달된 신체.

어지간한 성인에도 꿇리지 않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셰인은 제 팔을 보며 불만족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운동을 쉬어서 그런가, 조금 근육이 줄어든 것 같네."

이 영지에 온 후 한 단련이라곤 짬이 날 때마다 팔굽혀펴기를 좀 한 것뿐.

라인하르트 성에 있었을 당시를 생각하면 꽤나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근손실은 중대 문제지.’

하지만 죄수신분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있다.

기껏 해봐야 숙소나 성당구역이 전부. 아무리 실내가 넓어도 대놓고 런닝을 하겠다 하면 몰매를 맞을 것이다.

훈련장처럼 아예 그런 걸 장려하여 만들어진 곳이 있다면 모를까…….

"가만, 훈련장이라면 있지 않나?"

성기사단.

교단에서 취급하는 기사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보통의 성직자와 달리 신앙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봉사가 아닌 단련과 전투로 증명한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기사들과의 차이점은 마나의 사용은 강체술 정도로 한정하며, 모든 전투에 신성력을 기용한단 것이었다.

‘자가재생력 하나만은 정말 끝내주게 좋은 놈들이었지.’

신성력은 대개 타인을 치료할 때엔 흐트러짐 없는 집중과 진심을 다해야 하지만, 그 치유효과를 자신에게 한정할 경우 집중 행위는 결코 필요치 않다.

성기사란 그런 치유효과를 발하는 신앙심을 ‘투쟁심’과 규합시켜 발휘하는 존재.

그 회복력이 단련된 육체와 이루는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인간의 뇌는 제 몸이 망가질까무의식적으로 힘을 제어해버리지만, 성기사들은 자가치유력 덕에 근파열이나 골절에는 면역인 상태니까.’

그 제약 없이 힘을 발휘한다는 건, 같은 체급과 비교할 때에 몇 배의 강함과 질긴 생명력을 가진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말 그대로 전위직 하나는 끝내주는 병력. 그들 때문에 부상자들의 호송에도 꽤 애를 먹었었다.

‘그때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면 훈련도 꽤나 빡세겠지만……. 이단자인 내가 그 놈들이랑 같이 훈련하겠다 하면 들어주기나 할까?’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접근을 해야 할까 궁리를 하는 것도 잠시.

문득 복도를 거니는 셰인이 전방의 모퉁이를 도는 사람을 발견했다.

성기사 한 명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베르디였다.

손에 짐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기사단 쪽에서의 잡무를 돕고 있는 듯 보였다.

‘마침 잘됐네. 성기사단에 대한 정보를 듣고 싶었는데.’

겸사겸사 대화를 나누며 친해질 구실도 마련하고.

그렇게 계획을 세운 셰인이 곧장 베르디에게 다가갈 준비를 취했다.

"베르디, 잠깐……."

"거기까지다 사악한 자여!"

뚝, 하고 멈춰지는 손.

그 잠깐의 망설임에 베르디가 모퉁이 너머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 빈 흔적을 응시하던 셰인이 제 표정을 왈칵 우그러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감히 자신의 활동을 방해한 녀석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넌 뭐야?"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나타난 녀석이 근엄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셰인을 마주했다.

동년배보다도 두 뼘은 큰 기를 가진 셰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몸집.

입고 있는 것은 실내용의 얇은 천 옷이나, 터질 것 같은 근육은 그 막을 타고 겉으로 크게 도드라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이제야 겨우 변성기를 거치는 남자아이의 것.

그 괴리감에 눈살을 찌푸리자 덩치 큰 소년이 제 주걱턱을 움직이며 물었다.

"네가 바로 셰인 골드리안이란 녀석인가?"

"……허허, 내가 꽤 유명인이긴 한가 보네."

처음 보는 녀석도 제 이름을 알고 있다니.

"유명한 정도가 아니다. 지금 이 영지엔 너에 대한 악명이 가득 돌고 있는 상태! 그 내용은 내 원정에서 돌아오자마자 분노를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격노를 내지르는 소년.

하지만 셰인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녀석이 시비를 거는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 녀석도 성직자인 것 같다만……. 원정이란 말을 한 걸로 보면 나에 대한 소식을 뒤늦게 접한 것 같네.’

그렇게 접한 소식이라고 해봐야 제도의 재판소에 올랐다거나, 오자마자 위병들을 때려눕혔다거나, 이단 주제에 신성지원 부대에 들어왔거나 한 정도일 텐데…….

거기에 욕을 들어먹어야 할 부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니 나 개새끼 맞네.’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지금의 셰인은 엄연히 사령관의 허락을 기회로 활용하는 상태.

이 영지에선 누구도 사령관의 말을 거스를 수 없으니, 거기에 다른 녀석이 욕까지 하며 화를 낼 자격은 없을 것이다.

그걸 알지 못하는 듯 소년은 제 멋대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너의 횡포도 이제는 끝이다! 지금 막 승전을 이루고 돌아온 용사의 후예인 이 몸이 네놈을 벌할 터이니!!"

"……용사의 후예?"

"그렇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나를 지칭하는 말!"

가슴을 펼치기 무섭게 팽창하는 대흉근.

소년이 그것을 부각시키며 셰인을 향해 외쳤다.

"나는 유일교를 수호하는 태양기사단의 정식 성기사이자, 그 태양 기사단의 창시한 솔라리온 아슬란님의 후예인 레온 아슬란! 선조님의 이름을 뒤에 업으며 네놈에게 결투를 신청하고자 왔……."

-퍼엉!!

말이 끝나기도 전.

셰인의 드롭킥이 그의 가슴팍에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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