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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40화 (40/255)

의무병의 환생 40화

화약.

불이 붙으면 폭발하거나, 점화제로 쓸 수 있는 모든 화합물질을 칭하는 말이다.

그런 화약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를 접했을 때 셰인이 떠올린 건, 다름 아닌 제 스승이 들려준 화약과 관련된 일화였다.

‘화약을 처음 만든 건 한(韓)이라는 나라예요. 제조했을 당시의 역사를 보면, 처음 화약을 화약이라 명명했던 자는 그 단어 안에 약(藥)이라는 의미를 내포시켰다 했죠.’

‘폭탄에 약이 들어간다고요?’

‘아주 먼 옛날의 일이에요. 지금은 대륙 공용어를 쓰지만, 옛날에는 다들 쓰는 언어가 제각각이었잖아요?’

어쨌든 그에 대한 속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약을 만드는 중에 우연히 만들어져 화약이라거나.

혹은 약을 제조하는 창고에서 일어난 폭발을 바탕으로 화약을 제조했다거나…….

약이나 화약이나 정제되지 않은 상태에선 가루의 형태이니, 그 공통점을 착악해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등등.

화약과 약의 관계성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피오는 그 중에서도 화학적인 관점에서 그 파생을 분석했다.

‘약과 발화성 물질은 사실상 그 구성성분이 비슷하기에, 불이 붙는 화합물을 모두 화약이라 칭하는 것이다. 사실 저는 이게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해요.’

‘약이랑 화약이 비슷하다니….’

‘재밌지 않나요? 독으로도 쓸 수 있는 약이 그를 넘어 폭탄으로도 쓰일 수 있다니.’

확실히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화약을 약으로 쓸 일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카일은 환자를 앞둔 그녀가 왜 폭탄 제조법에 대한 책을 정독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말이다.

* * *

"니트로글리세린이요?"

"네. 폭탄을 만든다면 그걸 쓰는 게 좋다 생각해서요."

케이미를 만난 후 1주일이 지났을 무렵.

도서관에서 케이미의 연구에 대해 이런저런 토론을 하던 셰인은, 케이미에게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한 화학물에 대해 거론하였다.

"알고 계세요?"

"네, 뭐……. 총기에 쓸 탄피의 추진제 용도로 소량씩 섞어서 쓰고 있어요. 워낙에 폭발력이 강해서 아주 조금씩 쓰지만."

‘전쟁터이니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역시나 쓰이는군.’

니트로글리세린은 글리세린 알콜을 활용해 만든 질소 화합물.

그를 대표하는 성질은 특유의 불안정성을 통해, 분말식 화약 이상의 폭발력을 자랑한다는 점에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정성은 장점이 되기도, 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셰인이 거론한 화제에 케이미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건, 그런 단점을 처리하는 법을 알지 못해서였다.

"확실히 니트로글리세린이 어지간한 화약보다 성능이 좋긴 하지만, 문제는 너무 민감해서 관리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 군대에서 중요한 건 ‘양산의 난이도’와 ‘편의성’이다.

아무리 강하고 위력적이라도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병기로썬 사장되는 법.

그리고 니트로글리세린은 화약보다도 우월한 폭발력을 자랑함에도, 빈말 없이 깃털에만 닿아도 터지는 민감한 성질을 지니기에 응용이 쉽지가 않다.

효율이 너무나도 좋아 관심 밖에 둬버린 비운의 케이스란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에 니트로글리세린을 활용해 폭탄을 만들려고 했다가 공장자체가 폭발하는 바람에……. 그 책임자는 사령관님께서 직접 총살까지 하셨죠."

‘이야, 나도 용서해 주시는 분이 직접 총까지 들고. 어지간히도 빡쳤나 보네.’

어쨌든 중요한 건 활용방안을 제대로 짜지 못하면, 거론된 소재를 활용한 병기는 고려조차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셰인은 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몸이었다.

"확실히 니트로글리세린이 불안정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액체를 그대로 사용했을 때의 이야기예요. 다른 곳에 흡수시켜서 사용하면 유동성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니트로글리세린의 민감한 성질은 크게 완화되겠죠."

"흡수요……?"

"이를테면 나무처럼 액체 흡수율이 높은 물질을요. 톱밥이나 숯가루로 가공한 다음 주입한다면 안정적으로 니트로글리세린의 성질을 운용할 수 있죠."

"……오, 그런 방법이."

"그 외에도 흡수율이 높은 소재라 한다면 제올라이트나 규조가 함유된 흙이 있는데……."

활용법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 셰인.

그 설명이 더해질수록 안경 너머로 보이는 케이미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을 내었다.

나이가 어린 녀석의 헛소리라 흘려들을 법함에도, 듣는 자세엔 흐트러짐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셰인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설계식을 짜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제 설계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네요~ 셰인이 여러모로 발상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시험품을 제작해 봐야 하는데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요?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끝내주는 재료로 만든 폭탄이니까……. 아, 갤럭시 울트라 붐버 어때요? 멋있는 이름이죠!?"

‘…센스 하고는.’

셰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케이미의 말을 정정했다.

"다이너마이트는 어때요?"

"다이너……. 마이트?"

새로운 이름에 정적을 유지하는 케이미.

무언가 혁신적인 걸 발견한 듯, 안경까지 벗으며 눈을 껌뻑이기 시작했다.

"셰인은 천재인가요?"

"……마음에 드니 다행이네요."

감탄하는 케이미와 달리 셰인은 거들먹거리지 않고 애매한 웃음으로 넘겼다.

애초에 그 이름은 셰인이 직접 생각한 게 아니었으니까.

‘다이너마이트……. 연합국에선 전쟁당시에도 신나게 썼었지.’

본래엔 광산지대에 터를 잡은 ‘노벨리움’이란 나라에서 광산개척용으로 만든 거지만, 마침 전쟁이 터지면서 부랴부랴 전쟁용으로 기용된 비운의 병기였다.

어찌나 화력이 좋은지 연합국의 다른 나라에도 신나게 수출을 했을 정도.

질산을 구하고자 똥까지 퍼대었던 흑색화약에 비해 제조 난이도도 낮았으니, 대체재로 쓰기엔 굉장히 좋은 물건이었다.

‘그런 좋은 폭탄으로도 제국군을 몰아내지 못한 건 우습다만……. 설마 그걸 이 시대에 다시 구현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네.’

하지만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셰인에게도 긍정적으로 여길 일이었다.

애초에 니트로글리세린을 거론한 건 그녀의 연구를 돕기 위함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제 레시피는 완성되었고 실험해 봐야 하는데……. 아! 혹시 괜찮으면 시간이 될 때 제 실험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드디어 왔군.’

협력 요청.

그것을 기회로 삼은 셰인이 싱긋 웃으며 케이미에게 대답했다.

"한 가지 조건을 들어주면요."

"조건?"

"제가 도와줄 때마다 케이미도 제 연구를 도와주세요."

겸사겸사 필요한 실험재료도 제공받고 말이다.

* * *

"여기가 제 개인연구실에 딸려 있는 화학물 창고예요."

환생 후 14년 차.

셰인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화학물 창고를 손에 넣게 되었다.

정확히는 입장 허락을 받은 것뿐이지만, 케이미와의 거래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자주 이용할 곳임은 틀림이 없었다.

"의외로 준비가 잘되어 있네요."

"후후, 그만큼 제가 낸 성과가 끝내줘서 여러모로 지원을 많이 해주셨단 거죠."

공간에 자리한 선반과 그 곳곳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병들.

안쪽엔 하나같이 현존하는 원소물질과 화합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케이미가 그 사이에 선 채 양손을 펼치며 헤실헤실 웃었다.

"귀족들은 사치품이나 주로 취급하지만, 저희 같은 연구자들에겐 이런 곳이야말로 보물창고죠."

틀린 말은 아니다.

값비싼 금이나 싸구려 구리도, 다이아몬드나 루비와 같은 보석도 그들에게 있어선 연구소재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리고 그 중 가장 값진 보물이라 한다면, 인류의 과학사에 큰 이바지를 해온 물질들이 될 것이다.

"아, 셰인, 이게 뭔지 알아요?"

"질산이네요."

"화약제조에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죠. 가끔은 이게 제 아버지처럼 보일 때도 있다니까요~ 으히히~"

음흉히 웃으며 질산병을 볼에 비비적대는 케이미.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변태로 오인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화학에 관심이 있는 셰인에겐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반응이었다.

최초의 화약인 흑색화약은 물론, 이번에 새로이 만든 니트로글리세린에도 첨가되는 물건이다.

화약에 있어선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소재. 그것이 바로 질산이라는 화합물이다.

‘아니, 화약에만 쓰이진 않지. 만약 질산이 없었다면 인류문명은 아직도 농경사회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니까.’

인류사 발전에 큰 도약을 이룬 게 무엇인가.

불인가? 마나?

아니, 농경이다.

농사를 지어 식량효율이 증가했기에 일손이 크게 남고, 이런 일손이 가축을 기르고 건축에 힘을 쓰고, 또 글자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쏟아 학문이 생기고, 그를 기반으로 마도를 바탕으로 한 문명이 세워질 수 있었던 거니까.

여유가 있어야 문명은 발전한다.

그것을 크게 앞당긴 농경의, 그 휴경지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료’에 질산이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물질이었다.

‘흔히 똥 풀면 식물이 더 잘 자란다고 알고 있는데……. 다들 모르는 새에 질산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거지.’

그걸 설명한다 해도 이해 못 할 사람들이 이 시대엔 태반이겠다만.

그런 부분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게 기쁜 듯, 케이미는 또 다른 화학물을 셰인에게 내세워주었다.

"이건 황산이에요! 황산이 뭔지 알아요?"

"모를 리가 없죠. 연금술이 낳은 최고의 보물이잖아요?"

"그렇죠~ 애초에 이게 없었으면 공학이고 화학이고 전부 시작도 못했을 테니까요!"

질산이 인류 문명의 성장을 의도치 않게 앞당긴 윤활유라면, 황산은 화학과 금속활용 기술에 쐐기를 박은 초석이라 할 물질이었다.

금속 활용에 빼놓을 수 없는 도금은 물론이고, 온갖 유기화합물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

만약 황산이 연금술을 통해 탄생하지 않았다면, 화학을 기반으로 한 약학 역시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황산에 과산화수소를 섞으면 용암도 저리가라 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초강산이 완성되죠. 반란군 녀석들은 이걸 시체를 녹일 때에 쓴다고 하던데……. 어때요, 무섭지 않나요~?"

무서운 이야기로 어린아이를 골리는 것 같은 말투.

하지만 그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에 셰인이 느낀 건 반가움이었다.

"오, 과산화수소가 있어요? 잘 됐네요. 마침 소독제로 쓸 것도 필요했었는데."

"……예?"

과산화수소는 색소나 단백질을 분해시키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피부를 물들이는 얼룩은 물론 단백질로 이루어진 세균까지.

엄연히 산성이니 직접 바르면 피부에 해롭지만, 알콜에 5%정도로 희석시켜서 쓰면 별 문제 없이 끝내주는 소독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용도는 다르지만 황산과 과산화수소를 제조할 정도라면, 레시피만 짜인다면 어지간한 건 다 만들 수 있다 봐도 무방하겠군.’

케이미의 협조를 구한다면 필요설비를 갖추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을 터.

하지만 장단을 맞춰주지 않은 데에 실망한 듯, 케이미가 두 개의 병을 내려놓은 케이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어쨌든 말이죠. 아까 소개했던 이 질산과 황산을 섞고 공정을 거쳐서 만드는 것이 바로 이것! 셰인이 말한 다이너마이트의 주재료가 될 니트로글리세린이죠!"

‘나왔다, 니트로글리세린.’

니트로글리세린.

황색액이 든 유리병을 본 순간 셰인의 두 눈이 번뜩였다.

사실상 저 물질이야말로 그녀에게 조언을 하고, 그녀에게 협력을 요청한 목적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이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말할 것 같으면……."

"혈관을 확장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죠."

"……네?"

설명을 이어가려던 케이미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혈관이라니, 무슨 말인가요?"

"니트로글리세린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거예요."

‘화약과 약은 그 근본이 다르지 않다.’

스승이 누누이 얘기했던 그 말대로, 니트로글리세린 역시 아이헨발트에선 약으로 쓰이는 물질이었다.

다름 아닌 심정지의 주된 이유인 심근경색과 협심증.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맥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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