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41화
‘다이너마이트를 심장치료제로 쓴다고요?’
‘믿기 어려우시죠? 하지만 사실이에요.’
그리 대답한 피오가 셰인에게 한 논문을 보여주었다.
니트로글리세린이 신체에 흡수되면 인체의 혈관이 확장되는 효력이 나타난다는 것.
심장질환이 대체로 심장에 피가 통하지 않아 생기는 것임을 생각하면, 니트로글리세린은 심장질환의 특효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물질인 것이다.
‘혈관을 확장시킨다는 점 덕에 왕도의 연구소에선 남성들의 고충인 발기부전 치료제의 시험품으로도 쓰이고 있죠. 임시로 이름은 비아그라라고 지어졌는데……. 괜찮으면 논문 보여드릴까요?’
‘안 주셔도 돼요.’
외과 서적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비뇨기는 언제 배울까?
그런 것보다도, 어쩌다가 니트로글리세린을 치료제로 쓴다는 발상이 나왔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설마 첫 발견자는 화약을 직접 마셨나, 싶을 정도로…….
‘뭐, 효과가 증명된 시점에서 그런 건 아무래도 좋겠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니트로글리세린이란 물질을 통해, 의학을 꿈꾸는 자신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일 것이다.
‘셰인. 아무리 사람을 죽이는 물질이라도 화학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 그 근본은 약학과 다르지 않아요.’
그녀의 말대로다.
가장 대중적으로 쓰인 흑색 화약의 재료인 숯, 초산, 황……. 이것을 이루는 구성성분인 질산과 황산, 암모니아와 탄소 결합물들은 모두 약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즉, 화약을 다루는 무기학을 파헤치는 것도 사람을 살리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그렇기에 피오는 카일이 쓸모없다 여겼던 화약 관련 서적들도 꾸준히 읽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수완이 놀랍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아이러니함도 적잖게 느껴졌었다.
그가 보아왔던 전쟁참여자들이 갈망하던 건 효율 좋은 약과 화약, 둘 전부였으니까.
‘그건…….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는 전쟁이 터졌을 때라는 뜻인가요?’
‘…….’
피오가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쩌면 교단 녀석들이 의학을 사술이라 부르는 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지.
많은 희생이 있어야만 진보를 이룰 수 있다니.
맥락만 놓고 보면 흑마법과 같지 않은가?
* * *
"그러니까, 심장을 펑펑 터트려서 편하게 만들어주는 건가요?"
"…죽음은 치료가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케이미가 장난스레 혀를 내밀었다.
심장을 펑펑 터트리다니.
참으로 끔찍한 안락사법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셰인도 처음 들었을 때엔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으니 이해 못 할 농담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약학이라……. 셰인이 왜 여기 왔는지 알 것 같네요."
안경을 이루는 두터운 렌즈의 밑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눈빛.
게슴츠레 뜨여진 눈은 마치 상대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생화학 연구자들은 여기서도 좋은 취급은 못 받는데. 그건 알고 계시죠?"
생화학.
현 교단이 의학의 위험성을 거론할 때 누누이 거론하는 분야다.
단순 피해만 주는 것만이 아닌 생물의 근원을 뒤집어버린다는 경계심이 있기에, 대량 살상에 특화된 화약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계심을 가지는 것이다.
"……순전히 약으로 쓸 생각이에요. 병기로 만들 생각은 없어요."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과연 어떨까요?"
그래, 개인의 진심 따윈 사회적 책임을 지탱할 수 없으니까.
그걸 알기에 셰인은 자신의 죄를 겸허히 수용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 셰인을 어리석다 조롱할 법 함에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물론 위험물을 만드는 건 피차 마찬가지이니 신경 써봐야 자학밖에 안 되겠지만요. 하하~"
뒷머리를 긁적이는 태도에선 죄책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에 화학물을 기쁘게 설명한 것도 그렇고.
단지 순수하게 연구를 좋아하며, 그에 대한 부차적인 피해에 별 생각을 가지지 않는 듯했다.
좋게 말하면 탐구심이 뛰어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그 탐구심에 윤리관이 결여된 셈.
치외법권지에서의 삶이 천성으로 여겨질 괴짜가 아닐 수 없었다.
"아, 니트로글리세린도 약으로 쓴다면 혹시 이것도 약으로 쓰나요? 아이오딘화질소라고 하는데 이건 빈말 없이 숨만 불어넣어도 터져버리는 화합물이에요! 어찌나 민감한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기만 해도 주변을 날려버리기도 한다니까요!?"
"그건 안락사용으로도 못써요."
전쟁병기는 전쟁병기로 써야지.
뚱한 표정을 지을 무렵 셰인의 배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호통소리.
"케이미. 지금 창고에서 뭘 하고 있는 게냐!"
"으햐앗! 스, 스승…… 악!"
난입한 노인이 지팡이로 케이미의 머리를 후려쳤다.
소리가 쌘 걸로 보아 상당한 힘으로 후려친 듯했지만, 그보다 신경 써야 할 건 충격에 날아가는 아이오딘화질소 병이었다.
"…취급 주의품을 너무 함부로 두는 거 아닙니까?"
바닥에 떨어지기 전, 그것을 손으로 잡아챈 셰인이 노인을 쏘아보며 말했다.
다행히도 잡는 정도로 터지진 않았다. 매부리코의 노인이 제 옆에 서 있는 케이미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 산만한 녀석만 아니면 그렇게 다룰 놈은 없으니 말이다."
"헤헤……."
"그건 그렇고 넌 뭐하는 녀석이냐."
이윽고 자신에게 관심이 쏠린 때, 셰인이 긴장을 하며 제 소개를 이어갔다.
"셰인이라고 합니다. 그…….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감히 내 이름을 묻는 것이냐?"
불쾌한 듯 표정을 왈칵 우그러트리는 노인이, 곧 자신을 소개했다.
"파라켈 코페르쿠스다. 날 아는 녀석들은 다들 파라켈쿠스라고 부르지."
"……파라켈쿠스요?"
"들어본 적 있느냐?"
"네 뭐,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파라켈쿠스.
마법 중에서도 연금술의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꾸준히 현대 연금술의 발전에 이바지해 온 위인.
셰인이 라인하르트 저택에 있었을 당시 읽었던 연금술 서적 중, 가장 많은 참고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이 사람의 것이었다.
그런 유능한 사람이 왜 이곳에 있는가. 그건 개인사이니 제쳐두고…….
"…개인 연구실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스, 스승님은 거의 연구실 쓰지도 않으니 사실상 제 거죠 뭐."
이 여자야. 주인 없다고 세 들어 사는 놈이 주인행세를 하면 쓰나.
눈을 회피하며 휘파람을 불었지만, 파라켈쿠스는 굳이 그에 대해 지적을 하진 않았다.
지금 그가 관심을 가지는 건 철없는 제자가 아닌 셰인이었다.
"그건 그렇고 교단 출신의 꼬마가 왜 이곳에 있는 게냐."
"……엄밀히 말하면 교단소속인 건 아닙니다. 사정이 있어서 그쪽 부대에 속해 있을 뿐이라 적당한 옷을 갖춰 입은 거죠."
셰인이 케이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사정을 위해 제자분의 연구를 돕는 걸 대가로 이 창고를 이용하기로 거래를 한 거고요."
"창고를 이용하고 싶다고?"
"네.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말꼬리를 흐리며 눈치를 살피는 셰인.
그때에 파라켈쿠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해 있었다.
"케이미. 나에게 말도 없이, 학자도 아닌 녀석에게 네 멋대로 거래를 한 것이냐!?"
"그, 그래도 셰인 덕에 스승님이 주신 과제는 다 수행했는걸요? 그걸 좀 봐서……. 악!!"
또다시 지팡이로 머리를 가격하는 파라켈쿠스.
이후 파라켈쿠스가 지팡이의 끝으로 셰인을 지목했다.
"네 놈도 마찬가지다! 어찌 책임자를 경유하지 않고 비품을 가져가려 한단 말이냐!? 이곳에 있는 것들은 엄연히 위험물들로 이 영지 바깥으로의 반출이 금지된 것들도 많단 말이다!"
"네, 그건 죄송합니다만……."
"허락하는 건 실험용으로 쓸 소량뿐이다! 더 가져가고 싶다면 가져간 물품으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쓰고 제출하도록 해라! 차후 지원은 그걸 보고 생각해볼 테니!"
그 후 파라켈쿠스가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쾅! 하고 닫히는 문.
성이 난 듯했지만, 이전에 한 말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셰인에겐 전혀 아쉬울 게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후의 연구자료를 공유하는 걸 대가로 지원도 고려하겠다고 말한 거지?’
그 의미를 자각할 무렵, 머리를 얻어맞은 케이미가 안경을 고쳐 쓰며 헤헤 웃음을 지었다.
"우리 스승님 친절하시죠?"
"그러네요."
교단이 얼마나 연금술을 배척하는지를 생각하면, 그 권위자가 교단 소속원의 가능성을 봐준다는 건 실로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속내가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자 그럼 필요한 것도 다 찾았고 슬슬 연구를……."
"잠깐만, 더 찾을 게 있어요."
셰인이 잠시 케이미에게 벗어나 창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케이미가 의문을 느끼며 셰인을 쫄래쫄래 쫓아갔다.
"찾을 거라니, 니트로글리세린이 필요한 거 아니었나요?"
"그건 나중에 쓸 거예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아, 여기 있네."
이내 셰인이 선반에 배치된 하얀 병을 들어올렸다.
액체가 아닌 결정으로 굳혀져 있는 물질.
케이미가 그것을 자세히 확인하고자 안경을 치켜세웠다.
"멘톨? 이런 것도 있었나요?"
"박하에서 추출한 성분이에요."
박하.
제국에서도 향신료로 주로 쓰이는 물건이다.
각종 요리는 물론 관상용이나 향수로도 만들어 쓸 정도.
무시무시한 번식력과 생존력을 자랑해 농사를 망치는 최강의 잡초로 불리지만, 수요가 높은 만큼 박하를 전문으로 기르는 농장도 있을 정도다.
"이 멘톨에는 냉점의 역치를 높이는 성질이 있는데, 박하 특유의 차가운 매운맛이 이 성분에서 비롯된 것이죠."
"음, 신기하긴 하네요. 그런데 매운맛을 노린다면 캡사이신이 낫지 않나요? 최루탄 용도로는 정말 유용한데."
"그 정도로 파격적이지 않은 게 딱 좋은 거예요. 너무 파격적이면 교단 사람들이 괜히 적대감을 가질 테니까."
확신한다.
이 박하의 추출액이야말로 자신이 이 영지에 불러올 변화의 시작점을 마련하리란 걸.
* * *
그렇게 셰인이 케이미의 연구실을 들락거리길 또 1달이 지났을 무렵.
사건은 연구의 성과가 나타난 시기에 일어났다.
"다들 큰일이야!"
일과가 끝이 난 후의 휴게실.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재잘거리는 어린 수행원들의 사이로 누군가가 뛰쳐 들어왔다.
붉게 땋은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
어린 수행원 집단에서 가장 적극성을 가진 수녀인 메어리였다.
그런 메어리의 안색이 창백히 질린 것을 본 아이들이 근심과 당혹을 표해갔다.
"무슨 일이야?"
"이단 녀석이 또 사고 쳤어?"
"또라니? 최근에 그 녀석이 사고 친 게 있었나?
"그,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그래! 그 이단 녀석이야!!"
메어리가 호들갑을 떨며 그들의 말을 긍정했다.
실제로 메어리는 이단에 대한 혐오가 아이들 중 가장 큰 아이.
그런 그에게 있어 이단 소년의 일거수일투족은 요주의 대상이었으며, 특히나 크리스틴 주교님과 함께하는 모습은 아니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붙어 있을 때면 관찰하는 게 일상이 된 상황이거늘…….
"그, 그 이단 녀석이 크리스틴 교주님과 그……. 하고 있는 걸 봤어."
"하고 있다니?"
"뭘 하고 있는데?"
"그, 그게 그러니까……."
뭐라고 말을 할지 곤란한 메어리. 이윽고 한 사람에게 손가락을 까닥여 제 곁에 오게 한 후, 그 귓가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속삭임을 받은 소년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입을 쩌억 벌렸다.
"무, 뭐!? 그 녀석이 주교님이랑 섹ㅅ……."
"입 밖으로 내지 마!!"
-짜악!!
따귀를 얻어맞고 대차게 땅을 구르는 소년.
그 행동만으로 주변 아이들은 메어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바로 눈치챘다.
"우, 와아, 세, 섹…… 이라니."
"그건 성인이 되기 전엔 입 밖으로 내면 안 된다고 했어."
"하는 것도 안 돼!"
"그런데 이단 녀석이 그걸 하고 있다고?"
"크리스틴 주교님이랑?"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윽고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메어리의 주변에 모였다.
엄연히 이단에게 희롱을 당할지도 모르는 주교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아무튼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