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42화
메어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잡무를 마치고 평소처럼 귀가를 하던 중 발견하게 된 크리스틴.
그를 향해 반가움을 토로하려던 때에, 주목하던 이단의 소년이 나타나 크리스틴과 대화를 나누었다.
거리가 멀어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크리스틴은 그 점을 수긍하며 이단의 소년을 ‘자신의 방’으로 직접 안내하였다.
그 후 방 밖에서 문에 귀를 대어 엿 든 대화의 내용은…….
‘그건 그렇고……. 이런 건 처음 해보는 거라 긴장이 드는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별로 위험한 건 없으니까.’
‘네, 그럼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셰인. 제 몸을) 편한 대로 사용해 주시길.’
몸을 사용하라니!
메어리는 귀를 의심했지만, 정작 닫힌 문틈 사이로 들려온 것은 크리스틴의 것으로 추정되는 야릇한 신음소리였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결코 오해가 아님에 쐐기를 박는 대화문.
‘기분은 어때요?’
‘아, 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네요…….’
"호에에에에~!!"
설명을 들은 수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졌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정말 해버린 거야?"
"그,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떻게 된 건데!?"
"모, 몰라. 자세히 묻지 마! 나도 방 밖에서 엿듣기만 해서 어떻게 된 건지 모르고……."
양 팔을 저으며 아이들을 물려버린 메어리.
반응을 봐선 결코 이단을 폄하하고자 꾸민 거짓말로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거의 확실하지?"
"응, 확실해."
메어리는 정말로 들은 것이다.
이단과 주교님과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서. 그것을 깨달은 한 소년이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이단녀석이 먼저 어른의 계단에 오를 줄이야……."
"이 멍청이들아! 그런 걸 부러워할 때야!?"
"부, 부러워한 거 아닌데……."
메어리의 고함에 시선을 회피하는 소년들.
메어리가 그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사제님들이 그랬잖아! 아이를 가지는 건 서로 어른이 된 후에 축복을 받고 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거라고! 그 이전에 유혹에 넘어가는 건 몽마의 사술에 놀아나는 거나 다름이 없단 말이야! 왜 결혼식마다 신부님들이 축사를 외우는지 몰라서 그래!?"
"아, 알지. 당연히."
"그런 것도 모르고 주교님을 꼬드기다니……."
"알면서도 그런 거야! 그 녀석은 이단이니까!"
"역시 이단은 나쁜 문명!"
"분쇄해야 해!"
이윽고 메어리의 설득에 아이들이 이단을 향한 혐오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혐오는 혐오로 그칠 뿐.
정작 그들은 이 상황에 개입하기엔 너무나도 어리고 나약한 게 문제였다.
"근데 이거 누구한테 말했어?"
"아, 아직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어. 근데 어른들이 말해준다고 들어줄까?"
"으으, 그 녀석, 요새 다른 어른들도 회유하고 있으니까."
처음 셰인의 존재를 못마땅히 여겼던 다른 성직자들조차, 지금에 와선 크리스틴처럼 그를 향한 혐오를 누그러트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치유를 돕는 과정에서 교리에 어긋나는 일은 거의 없고,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사술조차 신성력의 도움을 빌려 교단의 존재를 긍정해주었으니까.
"그래도 핀들레이 주교님은 여전히 싫어하시던데……."
"하지만 그 분은 온 지 얼마 안 됐지."
"뭣보다 무섭잖아."
"그럼 어쩌지?"
"주교님을 구해야 돼!"
"하지만 우리 힘만으론 무리인데……."
아이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리는 아이들.
누군가가 난입한 건 그때였다.
"힘이 필요하다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레온?"
육중한 몸의 소년.
어린 나이에 신성력을 다루며, 14세란 어린 나이에 정식으로 성기사단에 입단한 명망 있는 가문의 후계자인 레온 아슬란이었다.
그는 어린 수행원들을 게슴츠레 뜬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셰인 골드리안. 그 녀석이 크리스틴 주교님에게 해코지 하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으, 응 확실해."
"그게 사실이라면 두고 볼 순 없지."
이후 레온이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며 복도를 거닐었다. 셰인과 크리스틴이 있는 방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메어리가 화들짝 놀라며 레온을 불러 세웠다.
"자, 잠깐. 설마 혼자서 갈 생각이야!?"
"불의를 보고 지나치는 건 선조님을 볼 면목이 없는 짓. 그건 상대가 강하다 해도 마찬가지다."
레온은 셰인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그건 약 1달 전에 있었던 패배 뿐 아니라, 내기의 대가로 성기사단에 그를 소개시킨 후 함께 훈련하며 질리도록 실감한 것이었다.
"셰인 골드리안. 그 녀석은 확실히 강하다.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 생각될 정도지."
"……."
일동 침묵.
그럼에도 레온은 꿋꿋이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1달 전의 이야기! 지금의 나라면 그 녀석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근거 없는 확신이 아니다.
성기사단의 훈련장에서 단련을 열심히 하긴 하나, 그로부터 두각을 보였던 건 어디까지나 지구력과 근력 정도였다.
가끔 어른들과 대련을 하는 걸 보면 검술에는 그다지 재주가 없는 편.
힘겨루기라면 모를까, 실전전투가 되면 정식 성기사가 된 자신과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검을 들고 싸우는 거라면 결코 내가 당할 리가 없다! 그러니 이번 사투의 결과는 다르리라! 모두 나를 따르는 것이다!!"
"오, 오오!!"
이윽고 레온의 자신만만한 외침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외치며 셰인을 정벌하고자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셰인의 주력은 검술이 아닌 무투라는 걸 알지 못한 채로.
"우오오!! 감히 내 앞에서 외도를 벌이다니!! 내 주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치 않겠다! 죽어라 셰인 골드리안!!"
-퍼엉!!!
문을 걷어차 들어가기 무섭게 대찬 폭음이 터져 나왔다.
한 달을 준비한 리벤지가 3초 만에 끝난 순간이었다.
"야 이 새끼야. 니네 어머니께서 방문 열 때 발로 차서 열라 가르치셨냐!?"
"히익……!"
기절한 레온을 끌고 온 셰인을 보며 아이들이 기겁하기 시작했다.
셰인이 선두에 선 메어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 이것들아. 사람 처음 봐?"
"다, 닥쳐 이 이단 녀석!"
‘쟤는 또 저러네.’
수행원 메어리.
사실상 어린 수행원들의 리더격에 해당하는 아이로, 셰인에 대한 질타가 가장 심한 아이이기도 했다.
‘쟤 때문에 가끔 내 이름이 셰인 골드리안인가 이단 골드리안인가 헷갈린다니까.’
어느 쪽이건 그 근본이 카일 페터슨인 건 변함이 없지만 아무튼.
"너, 너! 주교님을 어떻게 한 거야!"
메어리의 삿대질에 셰인이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말이야?"
"시치미 떼지 마!! 아까 전에 다 들었어! 네가 주교님이랑 같이 방에 들어가서 그……."
호통을 치다 말꼬리를 흐리는 메어리.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은 점차 새빨갛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그, 그러니까. 세, 섹……."
"섹?"
"세, 세…. 엑, 우, 우으……."
말꼬리를 흐리는 아이들을 보며 의문을 표하는 셰인.
‘섹’이라는 말 뒤에 무엇이 올지를 상상하던 셰인이, 곧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 채 오른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거?"
"외설스러운 손짓 하지 마!"
"이 변태! 불경한 녀석!!"
"나쁜 문명!"
욕을 퍼붓는 수행원들.
셰인은 그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빌 뿐이었다.
‘알 거 다 아는 놈들이 왜 이런 걸로 부끄러워하는 건지.’
청소년기부터 성욕이 왕성한 거야 당연한 일인 것을.
물론 셰인도 미성년의 성관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나, 제국의 귀족들은 정치의 일환으로 미성년부터 기정사실을 만드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당장 우리 가문의 큰형님만 해도 성인식 전에 마누라만 셋을 들였었지.’
교회 쪽에서 너무 빡빡하게 관리하는 건지, 아니면 귀족들이 문란한 생활을 일삼는 건지…….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번엔 꽤 선을 넘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틴이랑 자신이 그렇고 그런 일을 한다?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된 곳 출신자가?
"니들은 사람을 뭘로 보길래 내가 주교님이랑 그런 짓을 할 거라 생각하는 건데?"
그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오해지만, 정작 그들은 크리스틴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경국지색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미인 중의 미인이었으니까.
"그, 그건 네가 주교님의 옷을 벗겼으니까!"
"기분이 좋아질 거라는 등 말을 했잖아!"
"주교님이랑 대체 뭘 한 건데!?"
꾸득꾸득 죄를 묻는 아이들.
뭐 숨길 게 있으랴, 셰인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냥 파스 좀 붙인 거야."
"파……."
"파스?"
눈을 껌뻑이는 소년 소녀들.
파스가 뭔지를 전혀 모른다는 소리다.
몇몇 아이들이 얼굴을 붉히는 건, 둘 모두 ‘스’로 끝나는 단어이기에 야시꾸리한 무언가로 오인했기 때문인 듯했다.
"셰인이 새로이 만든 물품을 시험하길 바라여 협조를 한 것이었습니다만……."
소란을 들은 크리스틴이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몸을 내비췄다.
이불로 몸을 감춘 채.
하지만 쇄골과 더불어 가느다란 팔은 훤히 드러나고 있다.
그 이불을 더욱 당겨 감춘 크리스틴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후,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좀 부끄럽군요."
"오, 오오……."
"누나아……."
"뭘 보는 거야 이 변태들아!!"
찰싹 찰싹!
메어리가 남자들의 몸을 하나 둘 씩 후려쳐 쫓아내었다.
결국에는 평소와 같은 시끌벅적한 헤프닝으로.
그런 아이들의 소행을 본 크리스틴이 풋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들. 참 귀엽지 않나요?"
"…저도 일단은 쟤들이랑 동갑인데 말이죠."
"셰인은 너무 조숙하니까요. 가끔은 저보다 연상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요?"
아주 기가 막힌 통찰력이었다.
* * *
성직자는 신앙의 증명으로 봉사를 택한 자.
이타심으로 세상을 대한 것으로, 세계를 보살피는 신에게 제 신앙심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돕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며, 아무리 자가치유력을 가진 성직자라 한들 근육통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신성력은 육체가 적응단계에 들어섰다 판단될 시, 그 부분을 복원하는 속도가 더뎌지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적응에 대한 걸 고려하지 않았다면 신성력으로 치료된 사람들의 유전자배열은 모두 똑같았겠지.’
일단 신성력이 그 정도의 구분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것.
근육통 역시 비만이나 영양실조 등, 섭취에 따른 체질문제와 마찬가지로 ‘성장과 관련된 적응 문제’로 취급된단 것이다.
‘물론 일단은 신체에 해가 가해지는 건 맞으니 회복이 되긴 하지만, 그 속도가 더딘 게 문제지.’
즉, 신성력으로 근육통을 치료하는 건 매우 비효율적인 일.
그리고 셰인이 만든 파스는, 그런 성직자들의 고질적인 직업병에 특효약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그러니까 그냥 여기에 박하즙을 발라서 붙이는 게 전부라는 거야?"
이후 크리스틴의 방을 벗어난 셰인이 아이들에게 파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얇은 패치에서 종이를 떼어내면 나타나는 끈적이는 부분.
그곳에 손가락을 대자 감도는 시원한 느낌에 아이들이 하나같이 감탄을 흘렸다.
"뭐, 뭐야 이 부적?"
"시원해."
"냉기마술인가?"
"그래도 별로 위험한 구석은 없어 보이는데……."
"방심하기엔 일러! 갑자기 얼음이 솟구칠지도 몰라!"
파스를 보며 하나같이 신기함을 표출하는 아이들.
물론 메어리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은 경계심을 표출했지만, 크리스틴이 인정해 줬기에 대놓고 그 적의를 표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허용선이라 말해준 게 다행이었지.’
주된 소재인 박하 자체가 제국에선 식용으로, 향수로도, 심지어 관상용으로도 쓰니까.
셰인이 처음 제작한 의료품으로 파스를 선택한 건 그런 접근성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활용되니, 그걸 피부에 붙인다 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있을 테니까.
‘물론 멘톨에 진통성분이 강하진 않지만……. 그런 어중간한 효과인 게 좋은 거겠지.’
딱 기호품 정도의 인식.
그 정도면 교리에 위배되는 부분을 회피해, 성직자들도 부담 없이 사용하게끔 만들어줄 것이다.
그건 이전에 파스를 시험해준 크리스틴이, 그리고 파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들이 증명해주는 바였다.
"와, 이거 뭐야?"
"아까까지 쑤셨던 부분들이 낫는 기분이야."
"어깨가 엄청 편해졌어."
블레이즈 영지에 수행차 온 아이들은, 동년배의 아이들보다도 중노동에 시달리는 상태다.
신성력을 개화시키기 위한 수행이라 한들 휴식 정도는 필요할 터.
해방감을 선사해주는 파스는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육체의 혹사도가 높은 성기사라면 더더욱.
"우, 오오……!"
벗어던진 상체의 곳곳에 파스를 붙인 레온은 특히나 만족스러운 듯, 연이어 감탄을 흘리고 있었다.
"이, 이건 정말 대단한 물건이다. 몸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에 몸의 쑤셨던 부분이 모두 호전되고 있다! 지금이라면 누구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군!"
"그래, 좋아하니 다행……."
이후 자신을 돌아보는 레온을 보며 셰인이 표정을 왈칵 구겼다.
몸 곳곳에 파스를 죄다 붙이고 있어서?
아니, 박하와 종이야 제국에선 흔한 물건이니 양산설비만 갖춰지면 문제될 건 없다.
거슬리는 건 레온이 파스를 제 안면에도 덕지덕지 붙여놨단 것이다.
레온은 그런 얼굴로 셰인을 향해 외쳤다.
"셰인 골드리안! 이 넘치는 힘을 너와 겨루는 데에 쓰겠다! 당장 나와 결투를 하는 거다!"
"결투고 자시고 파스를 왜 대갈빡에까지 붙이고 있냐 이 똘게이 새끼야."
-촤학!
안면에 붙은 파스가 셰인의 손에 단숨에 뜯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