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43화
"끼에에에에에엑!!"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마치 익룡을 연상케 하는 비명소리.
이전의 시원함이 무색할 정도로 벌개진 얼굴은, 마치 염산으로 세수라도 한 것처럼 끔찍해 보이기도 한다.
"끄어어어어! 내 얼굴이이이이!!! 저주다! 이단의 저주가 나를 침범한다아아악!!"
"이 새낀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도 이단을 탓할 놈이네. 야이 등신아. 파스를 대가리에 붙이는 게 등신짓이라는 걸 꼭 말로 설명해 줘야 아냐?"
"으아아! 생화학 병기다!"
"이단이 우릴 죽이려 한다아!!"
이윽고 평소처럼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버리는 아이들.
그들을 보던 셰인이 한숨을 내뱉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식을 키웠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시비 거는 것도 일상에 녹아드니, 이제는 귀찮고 짜증난다기보단 귀엽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물론 그 중에는 안면이 텄음에도 관계를 맺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막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지나치는 소녀가 그랬다.
‘베르디?’
수행원 베르디.
이 영지에 온 후 2달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있는 소녀였다.
* * *
베르디가 처음부터 축복받은 아이라 불렸던 건 아니었다.
태어날 때만은 정말 평범했다.
어머니가 있었고, 아버지가 있었고, 오빠가 있었다.
그런 가족들이 운영하는 농장엔 많은 사람들이 오고 다녔다.
비록 비극적인 사태로 인해 그들 모두가 곁을 떠났지만, 그 후 교단에 신변을 위탁했을 때에도 그녀와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
그때의 기억마저, 이 세상에선 축복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었다.
"베르디, 잠깐만."
그렇다면 지금 자신을 부르는 자는 어떨까?
이단이라고 불리면서도, 이 영지에 무언가 변화를 불러오길 희망하는 사람은…….
그 역시 자신에게 새로운 축복으로 다가오게 될까?
‘이 사람은 왜…….’
흘려 넘기고 싶음에도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서툰 그녀는,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호의를 표하는 자를 밀어내는 법을 알지 못했으니까.
할 수 있는 건 평소처럼.
"용무가 있나요?"
그저 무심히 돌아보며 의중을 물어볼 뿐.
"어……. 그렇긴 한데."
그래, 오늘은 용무가 있구나.
베르디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괴롭히려는 건가요?"
"……괴롭힌 거 아니야."
설득력 없는 대답이다.
방금 전 그의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떠올리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까 주교님의 방을 지날 때, 메어리가 셰인을 주의하라 했어요."
"……그 주근깨는 그냥 오해한 거야."
"레온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어요."
"그건 걔가 등신이라 그래."
"등신은 나쁜 말이에요."
"아니 그건……."
"역시 괴롭힌 거죠?"
"……아니라니까."
곤란한 얼굴로 재차 부정을 하는 셰인.
베르디가 그런 셰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말했다.
"화풀이 상대를 찾는 거라면 제가 상대해드릴게요. 그 아이들과 달리 저는 그렇게 해도……."
"대체 왜 그렇게 날 나쁜 놈으로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데?"
생각해보면 늘 이런 식이었다.
꼬맹이들과 마찰을 일으킬 때면 툭 튀어나와서,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아이들을 놓아달라는 식으로.
악의 없는 행동인 건 알지만, 선의 역시 존재하지 않기에 좋게 봐줄 수 없는 게 문제였다.
‘나는 어차피 죽을 거니 마음대로 해버려라.’
그런 자포자기의 태도에 대해 뭐라 충고를 하고 싶었지만, 정작 셰인은 베르디가 왜 그런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 영지에 온 지 벌써 2달이나 지났음에도.
‘다른 성직자들에게 말해도 다 대답을 회피하기 일쑤였지.’
가장 호의적인 크리스틴조차도 베르디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말을 돌리고는 했다.
‘베르디는……. 그저 이곳에 올 수밖에 없는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서툴러도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서툴다니.
자포자기로 피학적인 요구를 하는 태도가 서툴다 정의할 만한 것일까?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된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돌려 말하니 이런 곤란한 구도만이 2달째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일교의 교리 중에선 자기애를 먼저 깨우쳐야 한다던데.’
훗날엔 신앙이 제 목숨보다도 우선시 여기되, 그 신앙을 개화시키기 위해선 먼저 그 신앙을 가져야 하는 스스로의 소중함을 깨우쳐야 한다고.
하지만 베르디는 신자가 되고자 함에도 그런 자기애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성직자가 되고자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런 주제에 교단의 수행원으로 머무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급하게 가지 말자.’
그래, 사정도 모르는데 충고를 한다 해서 뭐가 달라질까?
공교롭게도 셰인은 카운슬링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소녀의 속마음을 끌어내는 것도, 병든 마음을 치료해 줄 재주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행여나 위험한 일을 할까 지켜보는 것뿐.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가 준비될 때까지의 ‘유예’를 만드는 것이었다.
"…됐으니까 이거 받아."
이내 셰인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베르디에게 건네주었다.
베르디를 만났을 때를 대비해 마련한 물건이었다.
베르디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셰인의 손에 올라있는 사탕을 응시했다.
"이건, 뭔가요?"
"박하사탕이야. 박하가 뭔지는 알지?"
하얗게 물들어진, 각이 뭉툭한 마름모꼴의 사탕. 아이헨발트의 전통 간식 중 하나였다.
빈말 없이 아무 진료소에만 들어가도 흔하게 제공해 주던 간식거리.
"그걸 혀 밑에 넣고, 천천히 녹여서 먹어봐."
먹는 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자 베르디가 사탕을 입에 집어넣었다.
먹는 행위엔 거리낌이 없었다.
처음 보는 것을 먹는 데에 수상쩍음을 느낄 법함에도.
"읍!"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베르디의 표정이 살짝 우그러졌다.
박하의 매운맛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베르디가 제 입을 움켜쥔 채 물었다.
"이, 입에서 불이 나는 독을 만든 건가요?"
"그런 독이 있으면 좀 알려줘라. 알보칠 대신으로 구내염 치료용으로 쓰게."
"…알보칠?"
"그런 게 있어."
얘도 가끔 엉뚱한 말을 한다니까.
"맛은 어때? 괜찮아?"
"……."
베르디가 슬쩍 입에서 손을 치워갔다.
매운 맛에 익숙해진 것일까?
눈살의 찌푸려짐을 푼 베르디가 사탕을 입 안에 굴리며 눈을 감았다.
낯선 것은 처음 뿐.
오히려 박하 특유의 맛과 느낌이 기호에 맞는 듯하였다.
셰인이 안도하며 피식 웃었다.
"씹거나 삼키지 말고, 혀 밑에 두고 차근차근 녹여먹어. 그렇게 먹는 게 오래 가고 좋으니까."
셰인의 충고를 따르듯 베르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사탕 하나를 다 녹여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 시간은 굉장히 조용했지만,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셰인도, 그리고 베르디도.
"셰인."
다시 입이 열렸을 때 화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상쾌한 느낌.
베르디가 그에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셰인은 왜 모두에게 잘해주시는 건가요?"
자신을 포함해서.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환자를 치료할 때의 일이에요."
하지만 설명을 할 때엔 자신을 예외에 두었다.
그저 2달 간, 자신 역시 그를 멀리서 지켜보았다고만 말을 할 뿐.
가끔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나가며 보는 정도였지만, 유독 그의 모습이 눈에 익었으니까.
지금의 물음은 그 동안에 느꼈던 의문을 표현한 것이었다.
"셰인이 봐주는 환자들이 모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어요."
그가 영지민들과 교단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건 여럿 보았다.
하루는 심정지에서 회복되었던 한 병사가, 자신을 강령술로 일깨운 걸 수치로 여기며 극단적인 자살기도까지 벌였었다.
‘이단의 힘으로 되살아난 나는 천국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주님을 볼 낯이 없다.’라고 말을 하면서.
만약 크리스틴이나 다른 성직자들의 설득이 없었다면, 셰인은 기껏 살린 환자가 제 앞에서 목숨을 끊는 것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셰인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폭언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셰인은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어요. 묵묵하게 그들을 치료하거나 돌려보내고는 했죠."
언제나 무뚝뚝하게 외면하는 자신 역시 마찬가지로.
"셰인은,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건가요?"
이단의 문화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미울 법도 하거늘.
어떻게 그들에게 증오 하나 느끼지 않고 넘어가는 것일까?
그 물음에 셰인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의사가 환자를 싫어하면 안 되니까 그렇지."
"환자를……?"
"나도 감정이란 게 있는데 화가 안 나겠어?"
욕먹으면 화가 나고, 시비가 걸리면 주먹에 힘부터 들어간다.
그런 걸 견뎌내는 게 힘이 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셰인은 그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변치 않고 유지하기로 했다.
"그냥……. 이런 시대라도 의사로 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참을 수 있는 건 참고 넘어가는 거지."
재판 때만 해도 교수대에 목을 걸 각오까지 했는데, 어렵게나마 찾아온 기회를 화딱지 난다고 날려서야 되겠는가?
그런 흔들림 없는 태도를 멍하니 쳐다보는 가운데 셰인이 다시 베르디에게 물었다.
"베르디, 넌 왜 이 영지에 온 거야?"
‘왜 이 영지에까지 와서 죽으려고 한 거야?’
직구라고도 할 수 있는 물음.
흐름상 자연스레 내뱉어졌지만, 베르디는 그걸 불쾌히 여기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잠시 내리깔며 제 가슴에 손을 올릴 뿐.
"저는……."
-두근, 두근.
여전히 심장은 뛰고 있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강하게.
그런 불규칙적인 심장박동을 느낀 베르디가 곧 대답했다.
"편하게 살면 안 되니까요."
많은 것을 내포했지만, 무엇 하나 확실히 알 수 없는 말.
하지만 추측정도는 할 수 있다.
‘그건 마녀라는 말과 관계가 있는 거야?’
어쩌면 이 아이도 이단혐오의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내 그 물음이 입밖으로 내뱉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직 14살의 아이.
민감한 시기에, 어쩌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어찌 대해야 할지를 몰랐으니까.
"……가볼게요."
그 찜찜한 침묵에서 벗어나려는 듯, 베르디가 툭 말을 던지며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잠깐만."
셰인이 떠나가려던 베르디를 불러세웠다.
아직 더 할 말이 있는 것일까?
잠시 발걸음이 멈춘 가운데, 셰인이 우물쭈물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 베르디, 너 달달한 거 좋아해?"
"달달한……?"
"이를테면 초콜릿 같은 거."
겨우 튀어나온 건 이전의 대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화제였다.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베르디에게 자신의 의문 따윈 정말로 하찮은 것이었다.
답할 수 있으면 답한다.
그건 지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콜릿이라는 건 먹어본 적이 없어요. 애초에 교단에선 단 건 먹을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요."
"다행이네."
"다행?"
"그런 게 있어."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박하와 달리 초콜릿은 심장병 환자에겐 좋지 않으니까.
물론 그걸 직접 일러둘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이 영지에서, 의료품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사라지기 전까진 직접적으로 심장질환을 거론하는 건 피해야 할 테니까.
"아까 전에 사탕 말인데. 그건 아직 시험품이라 더 조정할 부분이 많은 상태거든. 앞으로도 이런 걸 자주 만들 건데……. 맛에 대해서 시험을 봐줄 수 있을까?"
그러니 지금은 이런 식으로 애둘러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물음에 베르디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저라도 좋다면 기꺼이."
자기애라곤 느껴지지 않는 수락.
하지만 셰인은 그런 대답으로도 충분한 듯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개의치 않고 마저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 급하게 묻지 않더라도 앞으로도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을 테니.
그렇게 자기애가 없는 소녀는,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소년과의 만남을 예정에 두고 있었다.
* * *
"……결국 못 건네줬군."
베르디와 헤어진 후, 연구실로 돌아가는 셰인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들었다.
겉으로는 박하사탕이지만, 혀 밑에 둔 채 서서히 녹여서 먹는 설하정을 사탕형태로 만든 것.
본래라면 오늘 건네줬어야 할 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