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44화
"…아직 불안정한 부분이 많으니 어쩔 수 없나."
베르디에게 건네준 건 평범한 박하사탕이었다.
약물을 첨가한 건 아직 실험작이기 때문에.
행여나 이것이 베르디에게 문제를 일으킬까, 걱정이 들어 겁이 난 것이다.
‘박하 자체가 니트로글리세린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래, 앞으로도 시간은 많으니까.
이걸 계속 처방해준다면 베르디가 가진 심장질환도 호전될 것이다.
완치는 무리더라도 일시적인 안정제로는.
‘제대로 치료하기 전까지 시간은 벌어줄 거야.’
꾸욱.
사탕을 쥔 손을 틀어쥔 셰인이 이내 연구실에 들어섰다.
증류장치와 분석기, 무수한 플라스크 등의 전문설비가 마련되어 있는 실험실.
그 중심에서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는 안경의 여인이 셰인을 환영해 주었다.
"오, 셰인 왔어요?"
근 1달 간 서로의 연구를 보조해 주는 케이미였다.
셰인이 그녀에게 물었다.
"연구는 잘되고 있어요?"
"후후, 시험은 완벽했죠. 조금만 조정하고 제출하면 공장에서 양산도 가능할 거예요~"
엄연히 실전병기로 사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온 것인가.
고대의 지식을 발굴한 결과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진짜 전쟁을 준비해서인지 위험품을 기용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는 듯했다.
‘그걸로 많이 죽긴 하겠지만…… 전쟁이란 게 그런 거니까.’
때로는 잔인한 병기가 아군의 생존율을 높이고 전쟁의 시간을 줄여주는 법이다.
그런 씁쓸함을 삼키던 중, 문득 셰이미가 품에 안은 통에 수저를 꽂아 넣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뭘 먹고 있는 거예요?"
"아, 셰인이 이전에 만들고 남긴 박하를 사용해서 만들어봤어요. 액체질소를 이용해서 빙과의 형태로 만든 건데…. 한 번 먹어볼래요?"
녹색과 검은 색이 뒤섞인 무언가. 케이미가 거기에 스푼을 퍼서 셰인에게 내어주었다.
새로운 간식거리인가?
셰인이 의심 없이 케이미가 내어준 것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설마 1달이나 친하게 지낸 사람이 이상한 걸 먹일까. 생각하며.
"콜록, 허컥!!"
하지만 그 믿음은 입에 넣은 걸 삼키기 무섭게 깨져 버렸다.
일순간 속이 뒤틀리는 감각에 발작이 일어나는 몸.
마치 독극물이라도 먹은 것마냥 시야가 흐려지고 속이 울렁거린다.
케이미가 그런 셰인의 반응을 보며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맛없어요? 이상하네, 전 맛있게 먹었는데."
"대, 대체 뭘 섞은 거야……."
케이미가 수저를 입에 문 채 대답했다.
"박하랑 카카오를 얼려서 만들어봤죠. 아, 이름은 둘을 따서 민트초코라고 지었어요!"
"구웨에엑!!"
* * *
"사령관님, 제국 곳곳에서 확인된 바가 없던 독극물들이 확인되고 있다 합니다."
"……생화학 테러인가."
블레이즈 영지의 사령부.
그곳에서 부관인 존의 보고를 들은 사샤의 눈이 날카롭게 뜨여졌다.
생화학 병기.
화약과 달리 파괴력은 없지만, 인간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물질을 광범위로 살포하는 물건이다.
예전에는 단순 독가스로 그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산성가스나 신체의 괴사를 유발하는 물질들도 적잖게 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심각한 물질에 대처방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애초에 범위 내에 들어가지 않거나, 바람마법으로 가스를 날려버리거나, 죽지 않은 상태에서 신성력으로 회복하는 것이 대처방안의 전부일 정도.
그렇다보니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애초에 화학병기를 쓰지 못하게 손을 쓰는 것밖에 없었다.
"이 영지 밖에서 일어난 일이니 황실에서 조만간 저희 쪽에서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까지 그 병기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파악해야 할 텐데……."
"암거래상들이 지하도시 쪽으로 유입시켰을 가능성도 있겠지."
후우.
담배연기를 내뱉은 사샤가 마저 시가를 태우며 물었다.
"통제가 가능하다고 보나?"
"통제는 어렵겠죠. 기껏 해봐야 입구 측의 검문을 강화하는 게 전부일 겁니다."
영지의 북서쪽에 밀집되어 있는 유흥과 오락시설들.
그 밑에 자리한 지하도시는 성벽 밖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제국의 영향권을 벗어난 ‘외지’로 분류되는 장소였다.
표면적으론 제국의 영역이 아니기에 법적으로 간섭이 불가능한 것. 국제적으로 본다면 ‘외교’의 범위로도 확장될 문제이다.
물론 군사주둔지이니 몰아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다.
총기나 화약병기. 공학장비의 설계도나 비전마법서들…….
200년 전 유실되었던 고대의 흔적들과 그 발전형은, 이 영지를 지키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알아서 모이는 장소를 어찌 생각 없이 쓸어버릴 수 있을까?
"……일단 영지 주변에 경계를 울리고 지하도시의 입구 부근을 예의주시하도록."
"통제 정도로 그쳐도 되는 겁니까? 차라리 그 도시에 협력을 요청하는 편이……."
"그 놈들과 교섭을 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손해를 보겠지. 그리고 구멍을 뚫어놔야 일망타진이 쉽지 않겠나?"
희망이란 언제나 강대한 힘에 의한 억압이 아닌, 자그마한 희망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그건 생화학병기도 마다하지 않고 사용하는 반란군도 마찬가지.
기회를 줘야 성공가능성에 조급한 마음으로 시도를 하고, 빠르게 제거해야만 규모가 커지기 전에 뿌리를 뽑을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건 오직 인륜을 버릴 것이 강제되는 치외법권지에서만 가능한 방법이다.
"불만인가?"
"…필요하다면 따라야죠."
쓰게 웃는 존.
사샤가 마저 서류를 훑어보며 물었다.
"그 외의 보고사항은 없나?"
"네 뭐, 그 외의 보고사항이라 하면……."
이후 줄줄이 이어지는 보고.
그 후 마지막으로 장식한 건 사샤가 예의주시를 명했던 소년에 대한 정보였다.
"그리고 골드리안 가문의 서자가 최근 연구반과 이래저래 어울려 지내고 있다고 하더군요."
"……연구반?"
"정식으로 병과를 이전한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서로가 가진 이단의 지식을 공유하고 협조하는 정도죠. 일단 연구반 측에서도 셰인이 낸 성과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성과가 나온다면 굳이 간섭할 필요는 없겠군."
중요한 건 그 성과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보고에 올렸다는 건 눈에 띠는 걸 발견했다는 거겠지?"
"네, 이런 걸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곧 존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걸 꺼내 보여주었다.
종이를 소재로 한 패치.
그 얇은 부분을 반으로 떼자, 안쪽에 접착제가 발라진 부분이 노출되었다.
그로부터 맡아지는 시원한 향에 사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뭔가?"
"아아~ 이건 파스라고 하는 부적입니다. 붙인 곳에 진통효과를 준다고 하더군요."
거들먹거리는 존.
그를 보던 사샤가 눈살을 찌푸리며 시가를 씹어 물었다.
"부관. 상사를 향한 경박한 태도는 군기의 흐트러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주의하도록 하죠."
웃음을 동반한 긍정에선 설득력이 느껴지질 않았다.
참모를 맡을 정도의 유능함이 없었다면 징계를 먹였으리라.
사샤가 그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파스를 작게 찢어 손등에 붙여보았다. 오랜 시간 펜을 쥐며 욱신거렸던 통증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사샤의 눈이 매섭게 변해갔다.
"……아편을 사용한 건가?"
아편.
엄연히 마약으로 분류된 것으로, 인간의 감각을 죽이는 그 성분은 지하도시 내에서도 그 유통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비밀리에 쓰는 녀석들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그것이 양지에 들어서는 순간 사용자의 대토벌도 고려해야 할 정도.
혹시나 이 소년이 그걸 사용한 게 아닌가, 심각히 여겼지만 존이 그 기세에 몸을 떨며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뇨. 박하의 추출액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허브나 식용으로도 쓰니, 피부에 붙인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겠죠."
박하.
향신료에도, 요리에도 많이 쓰이는 재료이다.
입안에 감도는 그 시원함이 피부에 이런 효과를 낸다 하면 이해 못할 건 없었다.
한편으론 그걸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발상이 놀랍다 생각되었지만…….
"그리고 지금은 파스에 이어 이런 걸 만들고 있다 하더군요."
이후 새로이 내어진 것을 본 사샤가 의외인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건 뭔가?"
"반창고……. 라는 물건입니다. 여기 이 테이프의 안쪽에 작은 붕대를 부착시킨 것이죠."
접착 성분은 파스보다 약하지만, 그 소재는 종이를 이용한 패치가 아닌 얇게 가공한 고무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잘한 외상에 붙여 쓰는 용도라 하던데……."
"외상이라면……. 생채기를 감싸 출혈과 상처의 확장을 억누르는 용도인 건가."
"네 그런데 파스라는 것만큼 파격적이진 않군요. 가벼운 상처 정도야 신성력으로 어렵지 않게 회복할 수 있는데, 그다지 효율이 좋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파스와 달리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부관.
그를 보던 사샤가 살짝 혀를 차며 되물었다.
"자네 눈엔 그렇게 보이나?"
"네?"
의문을 표하는 존.
사샤가 그런 존의 앞에 반창고를 펄럭이며 제 의견을 얘기했다.
"신성력에 의한 치유는 어떤 상처나 병에도, 심지어 생화학 테러에 의한 현상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지. 그리고 단점으론 증상이 어떻건, 모든 질환에는 동일한 양의 신성력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신성력을 사용한 치유에 중요시 여겨지는 건 병의 분류가 아닌 규모. 육체가 얼마만큼의 손상이 입었냐는 것이다.
이는 즉 피부가 까진 상처와, 중요 장기의 미세한 손상에 쓰이는 신성력의 양이 같다는 의미.
‘자잘한 손상을 회복시키는 데에 위급환자를 살릴 정도의 신성력을 사용한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낭비라 여겨질 일.
그렇다고 작은 상처를 회복시키지 않고 둘 경우 상처가 덧나거나, 그 상처를 기점으로 더 큰 상처로 확장될 수 있다.
"즉, 그런 사소함에서 비롯된 문제를 이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거군요."
"약간의 고무와 양모만 있으면 만들 수 있으니, 생산가가 싼 것도 장점이군."
뭣보다 교리에 어긋나는 점이 없다는 게 좋다.
그리고 예상컨대, 그가 파스를 제작한 이유는 이 반창고라는 물건을 영지민들이 경계심 없이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리라.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물품부터 차근차근 제작하며, 이후에 만들 이단 문화의 접근성을 높여간다는 건가……. 머리를 좀 썼군.’
사샤로썬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 영지에 몰려들어 이단의 문화를 연구하는 자들은, 그 중 대다수가 이단 문화의 장점만을 주장하며 패악질을 부리기 일쑤니까.
그 위험성을 경계하여 처형한 자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
하지만 이 소년은 그들과 달리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걸 강요하지 않고, 주변에 맞추며 차근차근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풍조의 방향을 조금씩 변화시켜간다.
그건 지휘자에게 있어, 개인의 강함이나 유능함 이상으로 탐이 나는 재량이었다.
"5년……. 그 정도만 영지에 둘 수 있는 게 아쉬울 정도군."
"그 소년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부관으로썬 참 질투가 납니다만……."
"부관. 내 누누이 말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신뢰를 죽이는 법이다."
무심히 말하며 서류를 돌아보는 사샤.
존이 그를 쳐다보다 쓰게 웃으며 집무실을 벗어났다.
"그럼 보고도 끝났으니 전 이만 퇴근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유흥가에 가는 건가?"
"아휴~ 뭐 이곳에서의 유일한 즐거움이니까요."
그런 유흥마저 허락하지 않으면 병사들의 사기는 곤두박질을 치겠지.
"적당히 즐기고 돌아오도록."
"물론이죠~"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군모를 고쳐 쓰는 존.
그런 그가 집무실을 벗어나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침 용건이 있어 사령실에 들어선 사제였다.
존이 그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짓곤, 눈만으로 인사를 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곧 그의 옆을 지나친 사제가 사샤를 마주했다.
"사령관님. 크리스틴입니다. 슬슬 순례시기가 찾아와 상담을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만……."
"……후우."
새로이 입에 담배를 문 사샤가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배후에 있는 창문으로 보이는 성벽, 그 너머를 응시하는 사샤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벌서 그때가 왔나."
셰인 골드리안이 합류한 후 사망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성과는 앞으로도 증가하겠지만, 그 역시 살리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무수히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안식을 빌어줄 때.
그건 사후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들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