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45화
모든 생물은 정해진 수명을 벗어날 순 없고, 식사와 수면 역시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그건 성직자들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바.
고행의 일환으로 금식을 일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신성력에 의해 육체의 붕괴를 더디게 만들 뿐.
오히려 경건한 정신과 육체를 만들고자, 유일교의 신자들은 식사를 필수적인 의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행합시다."
기도를 끝낸 후에야 맞이하는 아침식사.
식당에 모인 신자들은 빵과 스프를 앞둔 채 기도를 드렸다.
그 행위는 고요히 이루어졌지만, 아이들의 수군거림마저 억누를 순 없었다.
"너희들, 그거 들었어? 슬슬 순례원정을 시작한데."
한 아이가 화제를 던지자 다른 아이들이 그에 관심을 보였다.
"순례원정이 뭐야?"
"성벽 밖으로 나가서 시체들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러주는 거래."
"성벽 외에도 주둔지가 몇 개 있는 거 알지? 거기까지 왕복해서 시체를 회수하고 온데."
"위험하지 않아?"
성벽 안쪽에서만 해도 성벽 밖의 참혹함을 간접적으로 볼 정도다.
그런 안전한 구역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다니.
겁이 많은 아이들로썬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행사였다.
"우리도 나가야 하는 거야?"
"아니, 정식으로 성직자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거야. 우리들 같은 수행원들은 참가할지 말지 자유라고 하네."
"그래도 고행을 쌓으면 신성력을 빠르게 개화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난 안 갈래. 빠르게 개화할 수 있어도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
"성기사단 전원이 호위하니까 위험은 그리 크진 않다는데."
"그리고 순례 시기도, 성벽 밖의 감시원 분들의 보고를 받고 안전한 시기를 정해서 하는 거야."
"으으, 그래도 안 갈래."
그래, 아무리 성직자가 되고 싶다지만 큰 위험을 무릅썼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성벽 안에서 죽는 사람들도 꺼림칙하게 여기는 아이들에게, 그 밖으로 나가 위험을 부담하며 장례를 치르는 건 감정적으로도 생리적으로도 버거운 일이었다.
반대로 그런 환자들을 상대로도 무감각하게 대응하는 녀석이 있다.
크리스틴을 보조하며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온 소년이 그랬다.
"저 녀석은 갈까?"
이윽고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해졌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식사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소년.
그 게걸스러운 모습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였다.
물론 치료에 연구에 단련까지 하느라 식사시간도 아까운 입장이지만, 그가 이단이란 딱지를 달고 있는 이상 아이들의 이해를 바라는 데엔 무리가 있었다.
"……먹는 거 참 품위 없네."
"자기가 무슨 성기사야?"
"신성력도 못 다루는 주제에."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입 닥쳐 포이닉스."
메어리의 일갈에 깨갱하며 물러나는 포이닉스.
으르렁거리던 메어리가 곧 그에게 관심을 거두고, 멀리서 식사 중인 셰인을 쏘아보았다.
그 순간에도 자신들이 마녀라 지칭하는 녀석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이단에게로.
‘마음에 안 들어.’
메어리가 신경질적으로 빵을 씹어 먹었다.
* * *
메어리는 가난한 남작가 출신.
역사는 깊으나 선조가 큰 빚을 지어 작위도 떨어지고, 현재엔 이름과 시골마을 정도의 영지만이 겨우 남은 가문이었다.
어떻게든 그 빚을 해소하고자 맏아들을 명문가의 서녀와 혼약을 맺었지만, 그마저도 가문을 일으켜 세울 만큼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결국 맏아들에게만 모든 것을 투자한 결과 메어리에 대한 관심은 옅어지게 된 것.
그런 무관심은 이윽고 교단에 신변을 위탁하기에 이르렀고, 그런 가정사를 가졌기에 메어리는 남들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블레이즈의 영지에 온 것도 교단에서의 성공을 꿈꾸고, 누구보다도 빨리 출세를 하기 위해.
그런 조급함은 사춘기의 소녀가 거치는 민감한 성질에 더해져, 이단을 향한 혐오를 더욱 가증시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그 혐오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집단에 속해 있을 때에 한정되어 있다는 걸.
"어……."
사제들의 부탁을 받아 홀로 창고에 들어선 메어리.
필요한 물품을 찾고자 하는 그가 마주한 건, 메어리와 마찬가지로 구호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찾아 창고에 들어선 셰인이었다.
"이, 이단 녀석!!"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목소리.
하지만 지금 주변엔 자신에게 동조해줄 아이들이 없다.
뒤늦게 공허함을 자각한 메어리가 제 입을 양손으로 감추었다.
‘이단은 위험한 존재다.’
그 레온조차도 이 자에게 어찌 못하지 않았던가?
그가 흑심을 품는다면 자신은 그에게 좋을 대로 놀아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야 한 짓을 할지도 몰라. 어른들이 읽는 소설처럼!’
물론 셰인은 그런 생각 따윈 쥐뿔도 안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렇게 부르냐?"
"무,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반사적으로 돌아온 답에, 셰인이 무심히 대답하며 마저 창고를 둘러보았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
무시하는 것일까.
위험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석연찮았다.
‘이단 주제에.’
그래, 관계되지 말자. 피차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
그렇게 생각할 무렵 셰인이 메어리를 돌아보았다.
"야, 주근깨."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메어리가 표정을 구기며 셰인을 쏘아붙였다.
"주근깨라고 부르지 마! 이 이단 녀석!"
"네가 셰인이라고 불러주면 나도 이름으로 불러줄게. 그리고……."
말을 멈춘 셰인이 메어리에게 손을 뻗었다.
화들짝 놀란 메어리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정작 셰인의 손이 뻗어진 곳은 메어리의 머리 위였다.
손을 내렸을 때 보인 것은 선반에서 떨어진 목제 상자였다. 모서리가 뾰족하기에 머리에 맞으면 위험했으리라.
"물건 꺼낼 때는 조심해야지."
"우, 읏!"
메어리가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단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수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그런다고 내가 감사할 거라 생각해? 어차피 다치더라도 신성력으로 치료하면 그만인데."
"…너 신성력 못 쓰잖아."
"이, 입 다물어! 지금만 못 쓰지 얼마 안 있으면 개화할 거라고!"
다른 아이들보다도 더 열심히 기도하고, 사제들의 말에도 꾸준히 귀를 기울여왔으니까.
하지만 셰인이 보기엔 메어리의 노력이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확신은 지금 발언을 들음으로써 더욱 굳어져 있었다.
"너, 하루에 쓸 수 있는 신성력이 한정되어 있는 건 알고 있지?"
"무, 뭘……."
"뭐, 기도하면 다시 보충된다고 하지만 기도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잖아. 모든 잡념을 다 지우고 몇 시간 동안 명상을 해야 하는 건데……."
"…그, 그렇지만."
"그리고 성직자 본인도 무적이 아니고……. 환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힘도 들고, 그럴수록 다른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도 장애가 생기지."
손에 쥔 상자를 선반에 내려둔 셰인이 마저 비품창고를 뒤적여갔다.
"그런 게 누적되면 치료할 수 있는 환자를 놓치는 경우도 있는 거야. 이제까지도 많이 그랬고."
회의감이 적잖아 묻어난 말이었다.
도저히 자신의 동년배가 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마치 어른 성직자들이 내비칠 만한 감정.
‘뭐, 뭐야 이 녀석. 지금 나한테 충고하는 거야?’
그런 모습조차도 민감한 시기의 소녀에겐 짜증으로 다가올 뿐이다.
‘가, 같잖게 배려하고 있어. 이단 주제에…….’
이단은 나쁘다.
메어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앞으로도 그 마음을 유지할 예정이었다.
물론 이단문화를 존중하는 크리스틴을 존경하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처럼 될 수는 없다.
절대다수의 성직자들이 이 영지에 오고서 이단문화의 폐해를 본다.
그리고 이 영지를 들린 이들은 열에서 여덟은 이단심문관이 되어, 제국 내에서 이단의 문화를 일삼는 이들을 처형하려 한다.
이 영지에서 이단이 허락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단의 문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이 제국에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오는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메어리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의학이라는 흉측한 걸 숭배하는 녀석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왜 그런 걸 진지하게 수용하려는 거야?’
그렇게 싫어하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모두가 잘못되었다 말을 하는 문화를, 이 녀석은 진지하게 옳다고 믿고 있다는 걸.
"…너도 성 밖에 갈 거야?"
메어리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셰인이 상자를 마저 뒤적이며 되물었다.
"문제 있어?"
"다, 당연히 있지. 우린 아직 어리니까. 참여해 봐야 어른들의 덜미만 잡을 거고……."
반쯤은 공포가. 그리고 반쯤은 걱정이 깃든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소년을 향한 걱정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원정에서 어린아이의 뒷바라지를 해줄 어른들에 대한 걱정…….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밖에 얼마나 위험한 게 많은 줄 알아? 시도 때도 없이 마물들이 습격해오고, 반란군들도 어딘가에 매복해서 습격기회를 잡고 있어."
"나도 알아."
"가장 무서운 건 성벽 인근에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오는 망조의 짐승이란 녀석이야! 그 녀석이 얼마나 흉측한지 알아? 머리가 세 개나 있는데, 그중 두 개가 양손에 달려 있는데다 막 입에서 불도 뿜고 울음소리도 캬오오! 한다고! 군인 분들이 떼로 몰려들어도 쫓아내는 게 고작이라던데, 그런 녀석이 원정대를 습격하기라도 하면 너 같은 건 바로 잡아먹힐 거야!"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마저 상자를 뒤적이며 툭 내뱉는 셰인.
그 말에 메어리의 얼굴이 새빨간 홍당무마냥 물들어졌다.
"거, 걱정해줄 리가 없잖아! 내가 미쳤다고 널 걱정하겠어!? 그, 그냥 널 지키려고 하다가 순례하시는 분들에게 해를 끼치면……."
-툭.
소리와 함께 메어리의 말이 멈춰졌다.
그 순간 머리에 맞닿은 느낌.
셰인이 메어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었다.
"무슨……."
발끈하며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이후 셰인의 얼굴을 마주보자마자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 때문에.
"딱히 자괴감 같은 거 느낄 필요 없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
"난 간다."
머리를 쓰다듬은 후, 셰인이 자신이 꺼낸 비품들을 들고 창고를 벗어났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메어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이후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준 부분을 움켜쥐면서.
"이단 주제에 건방져……."
그렇게 속삭이며 솟구쳐 오르는 울분을 삼켜갈 뿐.
* * *
순례 원정.
교단에 속한 이들 중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한 전원이 성벽 밖으로 나아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체를 회수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종교적 행사이다.
치유담당자들이 대부분 자리를 비우는 만큼 그 시기는 환자의 수가 적을 때와 더불어, 적들의 습격 주기에서 예외 된 때를 시기로 잡아야 한다.
만약을 대비하여 벽외 주둔지의 경계와 내부 치안 수준 역시 크게 높여야만 할 정도.
당연한 거지만 정식 사제들에게도 버티기 버거운 고행이며, 아직 나이가 어리고 신성력이 개화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강제되진 않는다.
반대로 어린 나이에 신성력이 개화되었을 경우…….
이 또한 참가가 강제되진 않지만, 대개 신성력을 개화했다는 건 신앙을 증명하는 걸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레온 아슬란.
어린 나이에 신성력을 개화한 그가 이 원정에 참여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셰인 골드리안. 역시 네놈도 참여하는군."
그래, 정말 짜증나게도.
기껏 꼬맹이들에게 해방되는가 했더니 주근깨보다 더 성가신 녀석이 함께할 줄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안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
이윽고 셰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해졌다.
구석진 부분에서 서 있는 베르디.
그녀는 셰인을 제외한 수행원 중, 유일하게 순례 원정에 참여하길 희망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