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47화
"모두 적들을 쓰러트려라!"
"한 녀석도 배후로 보내지 마라!!"
성기사들은 신성력과 마나가 어린 무기를 연이어 내리찍었다.
마물들의 공격은 그들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
설령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곳에 상처가 난다 한들, 전투에 열의를 다할수록 발휘되는 신성력은 그들의 몸을 더디게 만드는 부상을 빠른 속도로 지워갔다.
그리고 마차 밖으로 빠져나간 사제들은 그들을 위한 기도를 읊었다.
"주여, 그들의 지켜주시길."
기도문들이 사방에서 들려왔지만, 그 기도 자체가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진 않았다.
신성력에 의한 치유는 접근한 상태에서 빛을 쬐는 식으로 행해야 하는 것.
별 다른 방어구도 없는 사제들이, 난전 상황에서 치료를 접근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전투에서 강함보다 중요한 건 사기.
미처 싸우느라 기도를 읊지 못하는 성기사들에게, 성직자들의 기도문은 그 열의를 더욱 북돋아 주는 것이다.
"유일신님을 위해!!"
쿠궁, 쩌억!
기도문의 사이로, 맹렬한 전투에서 비롯된 살벌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셰인은 그 모든 것을 마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전투는 제대로 하는데…….’
진영유지도 제대로 되어 있고, 누구 하나 한눈팔지 않고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충실하고 있다.
평화의 시대라 한들 전쟁터에서 굴러온 이들. 패기만큼은 전생에 마주했던 성기사들에게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문제는 200년이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수준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
‘어쩔 수 없겠지. 성기사들에게는 전투는 의식에 가까우니까.’
유일교는 전통을 중시하며, 그 경향은 가르침과 문화뿐 아니라 전투방식에도 적용되는 바였다.
그리고 200년 전엔 총기 따윈 시험작으로나 겨우 존재했던 것.
옛 전투에서 사용한 건 엄연히 냉병기와 마법뿐이다.
의식에 사용하는 도구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듯, 전투 역시 의식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허락되는 무기는 냉병기 뿐이란 것이다.
‘뭣보다 교단에선 허락되지 않은 살생은 금하고 있으니까. 살생 자체에 특화된 총기는 고려대상조차도 되질 못하지.’
그래, 유일교는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자이며, 모든 성직자들은 가축을 제외한 살생을 금하고 있다.
전투 자체를 의식으로 여기는 성기사나 심문관들조차도 호위, 토벌, 처벌 등의 정당한 상황에서만 살생이 허락될 뿐.
그 외의 상황에서 허락되지 않은 살생을 할 경우 교리에 어긋나며, 이는 곧 사후에 천당으로 향할 수 없다는 엄벌로 이어지게 된다.
‘아쉽네. 뒤에 있는 성직자들이 기도가 아니라 총을 다뤘다면 전투가 좀 더 수월히 이뤄졌을 텐데.’
그런 교리를 지킬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거겠다만.
-카르르, 카악!!
그런 씁쓸함을 느낄 무렵, 유독 도드라지는 마물의 울음소리와 함께 진영 중 한 곳이 살짝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얼굴을 내민 것은 늑대의 형상을 지닌 마물.
그 존재가 벌어진 입으로 무수한 촉수를 퍼덕이며, 성기사들의 사이를 뚫고 내부로 난입해왔다.
성기사단이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당장 잡아!"
"이런, 늦었어!"
대열을 이탈하면 여러 마수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난입한 마수가 사제를 노릴 터.
그를 어찌 할까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표적이 된 수녀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이전까지 셰인의 옆에 서 있던 베르디.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는 먼저 위험을 눈치 채고 몸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아, 안 돼!"
표적이 된 수녀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었다.
얼굴에 그려진 절망감은 자신이 표적이 되었을 때보다도 더욱 짙었지만…….
-퍼엉!
그 직후 폭음이 울려 퍼지고, 달려든 마물의 몸이 멀리 튕겨져 나가 나자빠졌다.
뒤늦게 수습에 나선 기사가 그런 마물의 목에 칼을 쑤시며 사건지를 돌아보았다.
몸을 던진 베르디의 앞을 가로막은 건 셰인이었다.
"……셰인?"
"앙리 수녀님! 베르디를!!"
표적이 되었던 수녀. 앙리가 베르디의 몸을 감싸고, 황급히 마차 쪽으로 달려갔다.
진영의 돌파로 인한 혼란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멀리서 마물과 겨루고 있던 레온이 소리쳤다.
"셰인! 괜찮은가!?"
"괜찮으니까 앞에나 집중해. 아까처럼 흘려보내지 말고."
"내가 흘려보낸 게…. 우옷!!"
"집중해라 레온!"
레온의 기겁에 옆의 기사들이 마저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한 난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몇몇 마물들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
그것을 쓰러트리는 것은 셰인의 몫.
"뒤쪽 호위는 저한테 맡겨요!"
처음 뒷수습에 나선 성기사들조차도, 셰인이 맨 주먹으로 마물을 쓰러트리는 것을 본 후 마저 자신의 활동에만 집중하였다.
그러한 협력이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계속 이어졌다.
* * *
해가 저문 후.
마물이 득시글거리는 땅이나, 야행성을 제외한 마물들은 달밤 아래에서의 활동이 심하게 제한이 된다.
빛이 사라진 밤이야말로 휴식에 적합한 때라는 것.
셰인은 그 기회를 빌어 마련된 야영지를 누비다, 환자들을 보살피는 장소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괜찮다면 제가 뼈를 좀 봐드려도 될까요?"
"……아니, 괜찮다."
골절상을 입은 성기사가 셰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자신을 봐주는 사제에게 팔을 맡겼다.
신성력에 의해 치료되는 뼈는 빠르게 붙었지만, 제대로 접골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적지 않은 고통이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성기사는 묵묵히 그 치료를 받아들였다.
그 광경을 비효율적이고 껄끄럽다 여겨 감질을 느끼는 것도 잠시.
"방해하지 마라 이단 녀석."
성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난입해왔다.
셰인을 유독 적대하는 고위층의 사제인 핀들레이 주교였다.
표독스러운 눈빛을 마주한 셰인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도와주려고 한 거예요."
"그게 안 된다는 거다."
핀들레이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 원정에서의 모든 고통과 고난은 일종의 고행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 고행을 견딤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주님에게 증명하는 것이거늘……. 거기에 신앙심도 없는 네놈의 그 알량한 배려가 얼마나 큰 훼방이 되는지를 알려줘야 아는 것이냐?"
그리 충고를 하곤 핀들레이가 마저 성기사들의 치료를 이어갔다.
주교급답게도 보통의 성직자들보다 선명한 빛.
그만한 신성력을 본 셰인이 쓰게 웃으며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누가 주교 아니랄까봐. 말하는 것도 안젤라랑 똑같네.’
고위 사제일수록 부정과 부패와 거리가 멀다고 했던가.
제 입장에선 재수 없는 놈조차도 이 사회엔 정의라 받아들여지는 거겠지.
더군다나 이곳에 있는 성직자만 해도 400명.
베르디를 제외한 모두가 의술보다 효율 좋은 치유수단을 보유한 만큼, 사실상 셰인이 나설 거리는 없다 봐도 무방했다.
‘할 일이 그만큼 없어져서 좀이 쑤시지만……. 뭐, 휴가라도 낸 셈 치자.’
앞으로 갈 길이 먼데 쉬는 시간도 있어야지.
그 후 치료와 식사를 마치고, 성직자들은 취침에 들기 전 모닥불을 앞둔 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빛은 모닥불보다도 더욱 선명히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셰인은 그런 빛을 등진 채로 밤의 고원을 거닐었다.
어차피 교단에 속하지 않으니 기도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며.
그렇게 밤거리를 거닐던 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위턱 뒤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베르디?"
바위 뒤편에 쪼그려 앉아 있는 어린 수녀.
수행원이지만 신자임에도, 그녀는 기도에 참여하지 않은 채 홀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모닥불과 신성력이 어우러지며 밝혀지는 빛마저 거부한 채.
"아……."
베르디가 셰인을 보자마자 탄성을 흘렸다. 무언가 죄의식이 든 듯 시선을 회피하면서.
어쩌면 이전의 전투에서 몸을 던졌던 걸 떠올린 것일지도 모르지.
우물쭈물하던 베르디가 힘겨이 입을 열었다.
"셰인, 아까 전에는……."
"떽."
셰인의 손날이 베르디의 머리를 가격했다.
조금 힘을 실린 공격.
갑작스러운 공격에 얻어맞은 베르디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이후 머리를 움켜쥐며 셰인을 휘둥그레 뜬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
셰인이 베르디를 쏘아보며 물었다.
화가 잔뜩 난 목소리.
눈물이 찔끔 나오는 가운데, 베르디가 셰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드디어 괴롭혀주시려는 건가요?"
"……이런 건 괴롭힘이 아니라 꾸지람이라고 하는 거야."
죽을 위험을 치워가면서 괴롭히는 건 변태나 할 짓이지.
그리고 괴롭히는 행위에 왜 ‘드디어’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셰인이 작게 한숨을 내뱉고, 베르디의 머리를 매만져주며 훈계를 이어갔다.
"베르디 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원래는.
베르디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엔 이런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전의 행동은 그런 셰인이 세운 규율마저 어기게 만들 정도로, 선을 넘어도 크게 넘은 일이었다.
"넌 너무 자기 몸을 헤프게 다루고 있어."
단순히 지키는 걸 넘어 제 목숨을 내던지는 짓거리였으니까.
그 누구라도 스스로가 고기방패가 되길 자처한다면, 하물며 그게 어린아이라면 누구라도 말리고 볼 것이다.
"그건……."
"물론 이유야 있겠지."
이해는 된다.
처음 마주했을 때만 해도 자기 살릴 노력으로 남들을 살리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묻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존중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제 몸을 던진다.
그것이 신앙에서 기인했다면 그 숭고함을 존중하며 ‘순교자’라 칭해줬을 테지만.
"하지만 그 존중이란 게 네 행동을 방치하는 걸로 이루어질 순 없는 거야.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 거고."
베르디가 몸을 던진 건 신앙 같은 이유가 아니었으니까.
자학에서 비롯된 미련 없는 자기희생.
그건 종교인은 물론이고, 신앙이 없는 자들도 결코 존중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실제로 베르디가 몸을 던졌을 때, 마물의 표적이 되었던 수녀는 자신이 노려졌을 때보다도 훨씬 더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던가?
"교회사람들은 너를 불쌍하게 봐서 조심하는 거 같겠지만……. 그런 이유로 꾸짖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하는 행동이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어."
"……."
"…베르디. 넌 네가 하는 일이 얼마나 주변에 민폐가 되는지를 알아야 해.
베르디가 말없이 셰인을 올려다보다, 이내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할 말이 없는 건지.
아니면 죄의식이 드는 건지.
그런 모습을 보니 괜스레 약한 마음이 들었다.
‘망할…….’
자신이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약했던가.
자학감을 느낀 셰인이 베르디의 머리에서 손을 때며 화제를 돌렸다.
"기도에는 참여 안 해?"
"네, 저는……. 오히려 방해가 될 테니까요."
그럴 리 없다 생각했다.
성직자들이 베르디를 여기는 태도는 자신과는 다르니까.
혐오가 아닌 동정.
그런 걸 느끼는 마당에 어찌 기도에 참여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길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을 자기가 왈가왈부할 순 없으니…….
"그럼 끝날 때까지 여기서 시간이나 보내지 뭐."
그렇다면 하다못해 그 곁에 서 있어주기라도 하자, 생각한 셰인이 챙겨둔 소형 램프에 라이터로 불을 지폈다.
그 빛에 의존한 셰인이 제 손에 쥔 수첩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제까지 한 연구를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베르디가 그를 멀뚱히 쳐다보다, 그가 오기 전에 그렇듯 조약돌을 내려다보았다.
그럼에도 그의 잔상이 지워지질 않는다.
시야에서 사라졌음에도 셰인의 등이 떠오른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신의 곁에 서고, 위험에 빠지면 제 몸을 던져 지켜주는…….
‘착한 사람.’
그래, 객관적으로 본다면 셰인은 그런 말이 어울리는 자였다.
이제껏 마주해 왔던 성인들과 같은 모습을…….
그래, 이제까지 만났던.
세간에서 흔히 ‘순교자’라 칭하는 이들처럼.
‘그러니 날 돕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려 하던 입이 끝내 다물어졌다.
많은 순교자들을 마주해왔기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제 신념을 고수했기에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그걸 알기에 베르디는 그저 양손을 모으고, 달빛을 올려다보며 기도를 드릴 뿐이었다.
‘부디 셰인이 이 원정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기를.’
원정 내내 그러한 기도만이 속으로 되뇌어졌다.
* * *
순행과 노숙이 반복되길 며칠.
모래바람이 만연한 산맥지대에 도착했을 무렵, 선두에 선 성기사들의 눈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비춰졌다.
언덕이라기엔 각지고 정교한 그림자. 그들이 목적지로 삼았던 장소였다.
"도착했습니다. 이번 순례원정의 목적지인 제3주둔지입니다."
그곳은 벽외 조사를 위해 세워둔 주둔지.
무수한 위험이 들끓는 벽외지역 내에 얼마 되지 않는 제국군의 거점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