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48화 (48/255)

의무병의 환생 48화

블레이즈 방어선은 제국의 최전선이나, 변경지대에 활동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찰이나 대규모 작전 등, 벽외에서의 활동을 목적으로 세워둔 주둔지는 존재하는 상태.

하지만 정작, 그 주둔지의 인근에 도착했을 때 반겨준 건 공허한 모래바람 뿐이었다.

"마중 나온 자는 없는 것 같군."

"감시에도 인력을 여럿 투자해야 하니 어쩔 수 없겠죠."

"마지막 보고에선 주변에 위험이 감지되지 않았다 하니 괜찮을 겁니다."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는 핀들레이 주교.

이내 그가 선두에 서서 주둔지로 걸어가는 가운데, 이전 순례원정을 경험했던 사제들이 성직자들과 성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제3주둔지에 머무르는 병사분들과 얘기를 나누고 올 테니, 머무를 준비가 끝나는 동안 인근을 돌며 장례를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신의 수습과 화장은 그 다음에 진행할 예정이니……."

대략적인 과정이 끝이 난 후,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각자 자신들이 맡은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미처 회수되지 못한 시체들을 찾기 위해.

그리고 성기사들은 그 작업을 행하는 동안, 만약의 위험에 대비해 주변을 정찰하고 호위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럼 난 형님과 함께 주변을 정찰하고 오겠다."

당당히 말한 레온이 성기사들을 따라 언덕 아래로 사라졌다.

그들을 배웅해준 후 셰인이 향한 곳은 주둔지가 아닌 야외.

아직 수행원이기에 시신의 수색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럼에도 셰인은 사제들과 함께 움직이기로 하였다.

주변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보이는 시체들을 지나치기엔, 무수한 시체를 마주해왔던 전생의 기억이 덜미를 잡고 있었으니까.

"같이 가도 될까요?"

주변을 둘러보려던 때 베르디가 다가오며 물었다.

별 다른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셰인에게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낯선 땅에 감도는 죽음의 냄새.

마치 이 상황에 무얼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둔지에서 쉬고 있지 그래?"

"모두 일하는데 저 혼자 쉬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굳이 날 따라올 필요는 없잖아. 다른 사제분들을 따라가도 되고."

"……."

베르디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대답이 돌아오기까지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분들의 곁엔 제가 없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예상대로 부정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의견이었다.

성직자들이 자신을 역귀마냥 여긴다 생각해서인가?

그에 대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말해주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해."

여기서 거절하면 이 애는 혼자서 겉돌게 되겠지.

지금은 곁에 있어주는 걸로 족하다, 생각하며 발이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누비는 가운데 곳곳에 보이는 전투의 흔적들.

부서진 무기와 갑옷조각, 유혈…….

화약이 폭발한 흔적도 적잖게 보인다.

바위턱에 뚫려 있는 구멍은 총알에 의한 것일까?

그런 흔적들을 쫓던 끝에, 셰인은 언덕 아래에 펼쳐진 구릉지에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앞에 두고 있는 건 시체였다.

몸의 절반이 날아가거나, 목이 잘리거나, 또는 심장에 관통상이 있거나, 칼이 박힌 채로 죽거나…….

그런 이들의 시체가 이 구릉지 안에 수십 구가 널브러져 있다.

"……땅이 척박해서 다행이네."

수분이 적은 지대가 아니었다면 부패가 크게 진행되었을 테니까.

그 장소를 나아가려던 중, 문득 옷자락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뒤따라온 베르디가 셰인의 소매를 잡은 것이다. 그 안색은 창백하게 물들어져 있었다.

"무리해서 따라올 필요 없어."

"……."

베르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시에 손아귀에 실리는 힘.

그 의사를 존중하듯, 셰인이 베르디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참상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덧 멈춰 세워진 발걸음. 셰인이 제 앞에 있는 자를 유심히 쳐다보다, 이내 무릎을 굽혀 그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 역시 시체였다.

검을 쥔 채 쓰러진 자.

주변에 있는 자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베르디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시는, 분인가요?"

"……아니."

처음 보는 사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성벽 내에서 치료를 했을 때에 한 번쯤 얼굴을 마주봤을 수도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환자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는 재주는 없었다.

하루에도 무수한 환자들이 오고가고, 그들 모두가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기에.

하지만 그런 그라도, 처음 마주한 시체로부터 알 수 있는 건 있었다.

"그래도……. 용기 있는 사람이었겠지."

얼굴에 그려진 절망감.

하지만 그건 결코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바닥에 질질 끌린 무릎께의 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상반신이 향한 곳은 뒤쪽의 주둔지가 있는 곳이 아닌, 적들이 있으리라 추측된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손에는 아직도 검이 쥐어져 있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검을 놓지 않고, 도리어 마지막의 순간까지 힘을 주면서.

그것이 사후의 경직으로 더욱이 굳어져,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올 때까지 계속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시체들도.

모두가 그렇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지키고자 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는 건, 누군가에겐 죽는 것보다도 더욱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라는 건가.’

자신이 보기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도리어 자신이 문제로 여기는 부분에서 가치를 발굴하고, 그 가치는 애국심을 남겨 그들에게 순교라는 행동을 유도하였다.

그 흔적을 앞둔 셰인이 양손을 한데 모으며 눈을 감았다.

기도였다.

입 밖으로는 아무런 기도문도 읊지 않았지만, 분명히 희생자들을 애도하기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 모습을 유일하게 지켜보는 건 오직 베르디뿐이었다.

"……."

베르디가 말없이 셰인의 옆에 자리를 잡고, 똑같은 자세로 시체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신앙이 없는 자에겐 결국 시늉일 뿐.

정적 속에서, 베르디는 드문드문 셰인을 바라보며 그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셰인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는 이단의 지식을 숭배하는 자.

그게 거짓말이었다면 이곳에 오는 동안 기도를 하며 제 신앙을 증명하거나, 혹은 그런 태도라도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죽은 자를 애도하는 셰인의 태도에선 진심이 느껴지고 있다.

‘신앙이 아니라면, 대체 뭘까?’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베르디는 알지 못했다.

먼 옛날.

제 스승을 마주하기 전의 카일이 그랬듯이.

* * *

‘카일. 당신은 앞으로 살면서 많은 죽음을 보게 될 거예요.’

돌격대에서 후방으로 좌천된 후.

카일이 피오의 제자로 들어갔을 적에 들었던 말이었다.

"그야, 우리가 치료하는 사람들은 대개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이니까요’

이후 마주하게 될 죽음은 전장에 널린 시체도, 죽여야 하는 적군도, 머지않아 죽을지도 모르는 아군도 아니라고.

그래, 의사가 된 후부터 마주하게 될 죽음은 전장이 아닌 수술대의 위이다.

수술대 위야 말로 그들의 전장이었다.

‘수술대에 오른 사람들이 삶을 갈구할 때, 그 기로에서 바른 길로 인도해주고 싶다는 간절함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많은 실패를 겪게 되겠죠. 그 이유는 하나로 한정되지 않을 거예요. 능력의 부족일수도 있고, 실수일수도 있고, 시간이 부족해서……. 혹은 운이 없어서…….’

그렇게 여러 요인으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무색하게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 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에겐 무력함과 절망으로 다가오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광경을 마음에 두는 걸 미련한 짓이라고 여겨요. 그런 실패에 뒤따라오는 안타까운 감정을, 그 애도하는 행위를 비효율적이라 여기며 조롱하는 자들도 적지 않죠. 그리고 그건……. 의술을 배우는 자에겐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감상이에요.’

생명의 원천이라 여겼던 심장의 박동조차도 근육의 작용에 의해서란 걸 알았을 때.

영혼이라 여겼던 것은 그저 뇌의 신경신호로, 몸 곳곳의 중추신경이 피의 순환을 통해 만들어진 에너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맥락을 놓고 보면 그저 정밀한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의사가 정의하는 죽음이란 영혼의 소실이 아닌 ‘망가짐’으로 귀결된다.

인간에 대해 알아간다.

그 행위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죽음을 유기물질로 이루어진 기계장치의 정지 정도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의학을 배운다는 건 그런 거예요. 그 자체로 인간의 혼과, 그 그릇이 되는 육체의 완벽함을 강조하는 신앙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죠.’

그러니 의사는 신성력을 다룰 수 없다.

그리고 피오 역시 그런 신성모독적인 행위를 하는 자.

의학을 추구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지식에서 비롯된 오만함을 부정하려 들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세태를 긍정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살리지 못한 환자의 시체의 얼굴을 덮어주며 더 없는 쓸쓸함을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저희가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 해도, 그것이 삶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볼 수 있을까요?’

타인의 죽음에 아픔을 느낀다.

그건 엄연히 의사가 가져야 할 태도였다.

죽음을 조롱하는 지식인이 아닌.

그 지식을 빌어 살리는 자로써 갖춰야 할 깨달음, 그리고 마음가짐.

‘안다는 것이 모든 것의 통제로 이어지진 않아요. 인체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해서, 그에 뒤따라오는 본능을 억누를 순 없죠.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은, 자신이 죽고 난 후의 세계가 여전히 지속되기를 무의식적으로 빌어요. 허무적이고 염세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도, 무의식적으론 종말 이후에도 세계가 존재하기를 비는 거예요.’

피오는 그 감정을 자신이 애도하는 시신을 향해 밝혔다.

자살한 동료를.

지식에 오만을 가지고 수술대에 섰다, 무수한 죽음을 보고…….

그들을 살리지 못한 자책감을 버티지 못한 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를 앞두면서.

‘그리고 지식을 가진 자는,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감정을 대면했을 때에 더욱이 민감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인간의 최후란, 내가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공허하고, 두려운 것이구나, 하면서…….’

피오는.

자신을 새로이 뒤따를 자가 그와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카일. 사람을 살리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그렇기에 자신의 깨달음을 간곡히 전달했다.

‘진정으로 우리의 삶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건 인간에 대해 알아간다는 게 아닌, 통제되지 못한 본능에 뒤따라오는 감정을 타이르기 위한 행위를 부정한다는 것을요.’

알 수 있는 건 육체뿐이다.

그 외에,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은 아직도 미지에 감싸여있고, 분명 미지에 감싸인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 모든 걸 안다 자부할 수 없으니.

인간은 자신이 앞둔 미지의…….

그로부터 비롯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관에 꽃으로 수를 놓고, 그를 묻어놓은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비석에 시와 이름을 적고, 그림으로 그들의 흔적을 남기고, 진혼가를 부르면서…….

그런 상징적인 의미로 기억에 각인시키며, 마음 한구석에 누군가의 죽음을 쌓고, 쌓아가며…….

‘그런 식으로라도 인간은,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이 찾아올 때를 겸허히 수용하고자, 죽음이란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이라 이해하고, 그리고 알리기 위해.’

그래.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멸망한 나라의 환생자로서 한때 적으로써 여겼던 자들의 후손을….

그저 흘러가듯 마주한 이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이유로는,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니 내 당신들의 용맹함과 희생을 기억하겠습니다.’

그 기도문을 속으로 읊으며.

이내 묵념을 끝마친 셰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후에도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이들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크, 큰일입니다!"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순례 원정을 이끌었던 고위사제 중 한 명.

셰인이 심각함을 눈치 채고 베르디의 손을 붙잡았다.

"셰인……?"

"…느낌이 안 좋아."

시체 밭을 거닐고, 이윽고 다시 언덕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눈에 들어온 건 소동을 듣고 몰려든 사제들.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주둔지 쪽에서부터 뛰쳐나온 고위사제가 그들의 사이에서 다급히 외쳤다.

"모두 이쪽으로 모이세요! 제3주둔지에 상주하던 인원인 전부……."

-콰득!!

뛰쳐나오던 중 들려오는 파열음.

그와 함께 그의 몸에서 유혈이 터져나왔다.

모래바람을 가르고 날아든,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몸을 꿰뚫은 것이다.

"커헉!!"

그 공격에 복부가 꿰인 성직자가 바닥에 고꾸라진 채 숨을 꺽꺽대었다.

복부를 관통 당했지만 다행히 즉사는 면한 상태.

주변에 성직자가 다수 있는 만큼, 즉사만 아니라면 회복할 순 있다.

그렇기에 셰인은 그에 대한 걱정을 접으며 현 상황에 대한 분석을 행했다.

이곳을 노리고 투척공격을 가한 정체불명의 습격자를 견제하고자.

-쉬힉!

그 과정에서 들려오는 쇄도음에, 셰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측면으로 움직였다.

모래바람을 뚫고 들어온 무언가.

그것이 정확히 베르디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다.

-콰즉!!

셰인의 손이 날아든 목창을 정확히 낚아채었다.

빠르고 묵직한 충격.

손바닥의 가죽이 조금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뒤늦게 알아차린 베르디가 숨을 삼키며 셰인을 돌아보았다.

"셰인, 손이……."

"어떤."

악력에 의해 부서진 목창.

그와 함께 격노에 찬 셰인의 시선이 모래바람 너머로 향해졌다.

"어떤 개새끼들이 장례 중에 훼방질이야."

연막 너머에서 기웃거리는 다수의 그림자.

이 땅에 또다시 유혈이 흐르게 되리란 걸 알리는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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