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49화 (49/255)

의무병의 환생 49화

-쿵!

사령실의 문을 박차는 소리.

평소라면 예의가 없다 징계를 먹였겠지만, 정작 서류를 들고 온 부관의 표정이 좋지 못한 상태였다.

곧 존이 사샤를 향해 외쳤다.

"사령관님, 방금 막 전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전서구?"

서류를 훑던 사샤가 입에 물은 시가마저 떼어내었다.

그 정도로 존의 보고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개 먼 거리에서의 통신은 전파를 감지하는 통신용 마수정으로 행하는 것이며, 전서구는 그런 마수정을 사용할 수 없을 때에나 쓰는 것이니까.

이를테면 멀리에 있는 주둔지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때.

"……출처는?"

"제3주둔지. 얼마 전의 교전에서 대량 사상자가 발생해 순례원정의 목적지가 된 곳입니다."

사샤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존이 그런 사샤의 앞에서 전서구가 보낸 편지의 내용을 간추려 설명해 주었다.

"전해진 내용에 따르면, 주둔지 내에 일원으로 잠입한 반 제국세력의 스파이가 통신장치를 파괴하고, 이후 외부에서 불려온 증원과 함께 주둔지의 점거를 시도…. 그 과정에 쌍방 모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럼 현재 제3주둔지의 생존자는……."

결론을 물으려던 때.

존이 그에 대한 답을 대신하듯 편지의 내용을 펼쳐 보여주었다.

"이 모든 내용이……. 혈서로 적혀 있습니다."

피를 이용해 적혀 있는 문자는 겨우 알아보는 것만이 가능했다.

그들의 싸움이 얼마나 처절하고, 그 문자를 쓰는 자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이 소식을 전하려 했는지를 가르쳐 주는 요소였다.

‘반란군이 주둔지를 점거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나, 전서구를 보낸 것을 끝으로 마지막 남은 병력도 사망했다.’

그 덕에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 감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순례원정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전서구에 의한 보고는 어느 정도 유예를 둔다는 것이다.

‘즉, 하루 간의 공백 동안 제3주둔지 인근에 무엇이 도사리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 현 원정대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주둔지 인근에 대형 마물이 둥지를 틀거나, 추가로 진입한 반란군이, 혹은 도적떼가……. 그 인근을 누비는 야만인들과 충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후발대를 선별해 보내도록."

"최단경로로 간다 해도 병력을 이동시키는 데엔 하루는 족히 걸릴 겁니다."

"보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들은 이 영지의 중요한 지원부대다. 만약 사태가 터진다면 사상자는 더욱 늘어나는……."

-쿠구궁!!

지시 중에 일어난 땅울림.

사샤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사령실의 통신장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수정에 손을 올리기 무섭게 그와 연결된 고철 스피커에서 소음이 터져 나왔다.

-경보! 경보!!! 북서쪽에서 대형 마수가 대군과 함께 몰려들고 있습니다!

-크기만 해도 20미터를 넘습니다! 저런 덩치가 충돌하면 성벽이 붕괴될 겁니다!

-전 병력을 북서쪽으로 집결시켜야 합니다!

-사령관님, 지휘를!!

"……반란군 녀석들에게 운이 따르나보군."

하필 이 상황에서 전병력을 요구하는 돌발사태가 터지다니.

그에 존이 굳어진 얼굴을 한 채 입꼬리만을 치켜세웠다.

"까놓고 얘기하면 흔한 일상이지만요."

빈말이 아니다.

벽외지역에 자리한 마경에 도사리는 무수한 위험들.

그러한 곳을 막는 방어선에선 무엇을 하건,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건 예상외의 사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수습하려는 행동마저 비웃듯 더 큰 위험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

"성벽이 붕괴될 위험에, 핵심이 되는 치유부대는 멀리 떨어진 상태……. 그런 현 시국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사샤의 직설적인 물음에, 존이 군모를 고쳐 쓰며 대답했다.

"일단 기도부터 하죠."

경박한 사내이나, 지금의 말 만큼은 농담이라 받아들일 순 없었다.

신앙이 없는 자조차 절체절명의 순간에 허상의 존재를 찾는다.

그것은 인간의 무력함과,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가혹함에서 비롯된 절망적인 현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니…….

* * *

-쿠궁.

땅울림과 함께 번뜩이는 정신.

축 늘어진 몸에 서서히 힘이 돌아오고, 그와 동시에 머리에서 통증이 밀려들어왔다.

"……윽."

갑작스러운 기상에 의한 후유증이 레온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힘겨이 숨을 몰아쉬는 레온이 두 다리를 펼쳐 일어나며 생각에 잠겼다.

"대체 뭐가……. 일어난 거지?"

레온은 떠올렸다.

주변의 정찰과 호위를 위해 잠시 본대를 벗어나, 제 형과 함께 산등성이를 내려가고 있었던 걸.

그때에 자신은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은 사소한 잡담이었다.

교단이나 전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상적인 대화.

어느 형제들에게나 흔히 있는 우애의 다짐은 레온과 라이너의 사이에도 존재했다.

이변은 그 순간 일어났다.

‘단장님! 야만족들이 이 산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숫자만 해도 터무니없는 양입니다! 어서 주둔지로 대피해야 해요!’

멀리서부터 한 성기사가 달려오며 외친 때, 그 직후 그들의 발치에 거대한 그림자가 그려졌다.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바위.

그것이 땅에 충돌하고, 그들이 디디고 있는 산을 무너트려 산사태를 일으켰다.

그 후 의식을 잃고, 정신이 드는 지금에 이르렀다.

"모두들, 어디에……."

얼마나 의식을 잃은 것인지.

그 공백기를 뒤늦게 자각한 레온이, 현기증에 비틀거리는 머리를 바로잡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흐릿한 시야에는 여전히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먼지가 보였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맡아져오는 쇠비린내.

바윗돌의 파편더미에 튀어나와 있는, 누군가의 손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아……."

그 손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들과 함께 이곳에 왔던 기사들 중 한 명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낀 레온이 파편에 파묻힌 손으로 차차 다가섰다.

그 존재가 행여나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아닐까 우려를 하며.

"레온, 정신 차려!"

그 순간 누군가가 난입하며 레온의 몸을 낚아채었다.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것은 자신을 앞서가는 한 청년의 모습.

이전까지 떠올리고 있던 자신의 형이었다.

라이너 아슬란.

그가 레온의 손을 잡아끌며 어딘가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형님, 무사하셨……."

안도를 내뱉으려는 것도 잠시.

문득 주변에 파편에 깔려 있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지가 겨우 튀어나오거나, 아예 짓뭉개져 죽어 있는 사람도 있다.

일대를 뒤덮은 산사태.

대자연의 격동을 버텨내기에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했다.

설령 신의 비호를 가진 자조차도.

"지금은 달리는데 집중해!!"

레온과 달리 라이너는 그에 관심조차 두지 못했다.

그저 제 동생의 숨이 붙어 있음에 감사하며 달리기만을 할 뿐.

하지만 레온은 차마 그 의지에 찬동할 수 없었다.

자신을 이끌고 있는 손과 더불어, 제 형의 몸 곳곳에서 흐르는 피가 선명하리만큼 눈에 보였으니.

‘형님, 피가…….’

대체 어디서 다친 것인지.

그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난입해왔다.

"크하하하하하!!!"

괴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주변의 언덕에서 뛰어내린 다수의 그림자.

모래바람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건 하나같이 붉은 피부를 지닌 거인이었다.

근육에 도드라진 파란 핏줄들. 충혈된 눈동자와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보통의 사람보다도 머리 하나는 큰 체급의 괴이한 인종.

교본에서 본 적이 있던 벽외지역에 상주하는 야만족이다.

"레온! 뒤로 물러서!!"

"저도 가세를……. 윽!"

배후에서 느껴지는 살의.

레온이 황급히 검을 뽑아 응수를 가했다.

까앙! 소리와 함께 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야만인이 휘두른 돌도끼와 검이 충돌하며 일어난 소리였다.

"크하하하하!!!"

유쾌한 웃음소리.

그로부터 도저히 이전에 있었던 참극이 연상되질 않는다.

아니, 이들이 이 상황을 일으켰다 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

교단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 온 부정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비켜!! 이 야만인 녀석!!!"

쿠직!

힘겨루기 끝에 녀석의 복부에 칼을 찔러 넣는 데에 성공했다.

피를 토해낸 야만족이 바르르 떨며 저항하다,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를 내동댕이친 레온이 다급히 라이너에게로 달려갔다.

"형님, 괜찮……."

-털썩.

라이너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발치엔 적지 않은 수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혼자서 다수의 야만인을 쓰러트리는 데에 성공한 것.

그만큼 무훈이 대단하단 것이나, 정작 그들의 표적이 되었던 라이너의 상태는 좋지 못한 상태였다.

"허억, 허억……."

홀로 다수의 야만인을 도륙내는 데엔 성공했으나, 그의 몸 곳곳에선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다수가 휘두르는 무기를 몸으로 받아내며 응전을 벌인 결과 데미지가 축적된 것이다.

"혀, 형님……."

레온이 다급히 쓰러진 라이너에게 다가갔다.

가빠지는 숨소리.

라이너가 기침과 함께 토를 쏟아내며 레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레, 온……."

"고, 괜찮아요. 형님! 제가 치료해 드릴 테니까……."

나이는 어려도 정식 성기사의 자격을 따냈을 정도로, 그 역시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

그 치유의 힘을 제 형에게 발휘하려 했지만…….

"왜, 왜 신성력이……."

어째서인지 손에 빛이 흐르지 않는다.

분명히 이전까지만 해도 제 몸의 부담을 치료했던 신성력이, 제 형을 치료하려는 순간엔 쥐죽은 듯 종적을 감추었다.

신성력이 바닥난 것일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이건…….

"……레, 온."

혼란을 느끼는 가운데 들려오는 목소리.

쓰러져 있는 라이너가, 힘겨이 뻗어진 손으로 레온의 볼을 쓰다듬으며 내뱉은 것이었다.

그의 손에선 여전히 신성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 손으로 볼을 쓰다듬으니, 이전의 교전에서 난 상처가 빠르게 나으며 출혈이 멎어갔다.

이런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하는 것일까.

레온이 이를 질끈 깨물며 라이너의 몸을 제 몸에 업었다.

"형님, 괜찮아요. 일단 본대에 합류하면……."

-쿠궁!!

땅울림소리.

레온의 고개가 황급히 위쪽으로 향해졌다.

어디선가 날아든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근처의 산봉우리에 처박힌 것이다.

그 여파로 추락하는 낙석이 경사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 여파가 주변을 수라장으로 만든 때, 레온의 질주에 더욱 박차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낯익은 목소리.

분명 원정대에 참여한 수녀가 내뱉은 것이다.

"신이시어!! 신이시어!!!"

"부디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아아아아악!!"

그런 목소리가 뛰어가는 중에 수도 없이 주변을 가득 채워갔다.

하지만 레온은 그들에게로 다가설 수 없었다.

자신의 몸과 형을 데리고 가는 것조차도 버거운 상태였으니.

‘왜.’

그런 레온의 머릿속엔 한 가지….

단 한 가지 의문만이, 쳇바퀴를 굴리듯 떠오르길 반복할 뿐이었다.

‘왜 저들은 신을 애타게 부르짖는 것인가?’

위기의 순간에 어째서 신을 찾고 있는 것인가.

신은 언제 어느 때에나 자신의 신자들을 지켜보고 있거늘.

신앙이 남아 있다면 빛은 존재하고, 그 빛이 그들의 고통을 삭혀줄 터이거늘.

‘그런데 왜…….’

하지만 소년의 몸에서 빛은 흐르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절체절명의 상황에, 그를 향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왜……. 우리는 이런 상황에 놓인 거지?

-쿠궁!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디디고 있는 땅에 균열이 가해졌다.

일순간 시야에 들어온 건 제 앞에 처박혀 있는 두터운 목창.

그 위력은 주변의 지반을 무너트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쿠당탕!

이윽고 레온의 몸이 대차게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온 몸이 아프다.

신성력이 있었다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버텨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레온은 신성력을 다룰 수가 없었다.

꺼져가야 할 고통이 사그라지지 않으니, 그 고통이 더욱이 선명히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제 옆에 쓰러진 가족.

"형, 님. 형님…!"

레온이 다급히 그에게로 기어갔다.

호흡이 멈췄다.

부서진 갑옷의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지만 심장의 박동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럼에도 손끝에는 여전히 신성력이 발산되지 않았다.

빛이 보이질 않는다.

‘어째서.’

또다시 떠오르는 의문과 함께 주변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전에 목창을 집어던진 것과 동류라 추정되는 야만인들의 잔상.

모래바람을 가로지르는 그들이 창과 도끼를 들어 올리며 레온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가학심을 마주한 레온이 제 형을 앞둔 채 속삭였다.

"신이어. 왜……."

그 절망감이 내뱉어진 순간.

-퍼엉!

폭음이 울려 퍼지고, 어두워졌던 시야가 다시 일깨워졌다.

폭압에 갈라진 모래바람.

그 사이에 나타난 것은 이전에 주변을 가득 채웠던 야만인들이 아니었다.

"……살아 있었냐?"

피칠갑이 된 손과 사제복을 걸치고 있는 금발의 소년.

야만인들을 일순간에 몰살시킨 그가 레온을 마주하고 있었다.

레온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셰인……?"

"……혹시나 싶어서 왔는데 완전 개판이 되어 있네."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마치 이런 비극이 일상인 것처럼.

그렇게 쓰러진 라이너를 훑어보던 셰인이, 이내 레온의 상태를 진중히 점검하기에 이르렀다.

"어디 부러진 곳은 없어서 다행이네. 일단 일어나. 주둔지까지 가서 어떻게든 수를 짜내면……."

막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도 잠시.

자신을 저지하는 힘을 느낀 셰인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셰……."

고꾸라진 채 손목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레온.

"셰인……."

그 입에서 제 이름이 내뱉어졌다.

절박한 목소리로.

"형을……. 살려줘."

그 소년이 외면하고자 했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에게 손을 쓸 것을 부탁한다.

"제발, 너, 너라면 할 수 있지? 너, 넌 죽은 사람도 살려낸……."

"늦었어."

하지만 셰인은 그 손길을 냉정히 쳐내었다.

풀려 있는 동공에 멈춰진 숨소리와 전신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

이제는 출혈이 나지 않을 정도로 체내의 피도 남지 않았다. 눈으로만 봐도 치사량의 출혈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추락하면서 머리를 쌔게 부딪쳤다.

뒤통수가 깨지며 흐르는 뇌수.

그 뒤를 이어 눈에 들어온 창백한 얼굴은, 누가 보더라도 죽은 자의 것이었다.

"왜……."

의학에 지식이 없는 자라도 그건 알 것이다.

이 소년 역시, 자신의 형을 따라 전장에 나가며 죽은 자들을 여럿 보아왔을 테니.

"아, 아니지? 늦었다니……."

그럼에도 소년은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형의 죽음을.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극을 부정하며, 자신을 찾아온 소년을 구제책으로 삼았다.

"레온. 네 형은……."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반쯤 풀린 다리로나마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레온.

그런 레온이 곧 셰인의 몸에 추하게 매달렸다.

반쯤 실성한 채, 불규칙적인 호흡으로 말을 더듬거리며.

"너, 넌 죽은 사람도 살렸잖아. 그래서 크리스틴 주교님도 너를 인정해준 거고……. 그, 그런데 어째서……?"

"……."

"내, 내. 가 교, 단의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널 욕하고 그래서……. 그, 그건 내가 사과할게. 전부 다 사과할 게, 앞으로도 이단이란 말 하지 않을 테니까……."

다부진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

제 강함과 신앙에 자부심을 가졌다 한들, 그 역시 14살의 소년에 불과함을 가르쳐주는 요소였다.

"제발……."

그런 소년이 말했다.

차마 더 보기 힘들 정도로 애처로운 목소리로.

"제발, 형을 살려줘……."

"……."

그를 보고 있던 셰인이 밑으로 늘어진 손을 틀어쥐었다.

이후 무거운 숨을 흘리고.

"의술도."

그 뒤를 이어 내뱉은 건, 그의 조국이 멸망할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신성력도……."

동시에 신성력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있음에도, 이 시대에 의술이라는 게 필요하다 생각한 이유였다.

그래, 지금 그가 내뱉은 건.

"죽은 사람은 못 살려."

모든 인간이 꿈꾸고 있음에도, 그저 꿈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그런 비원에 대한 자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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