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52화
벽외지역.
구시대의 잔당과 더불어, 마물이라는 해괴한 존재가 득시글거리는 대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인간 역시 강해질 필요가 있고, 그를 넘어 윤리관을 버리며 야만성을 개화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 그들을 습격한 이들이 바로 그런 야만족들이었다.
"키야아아하하!!"
동굴 밖으로 빠져나오기 무섭게 터져 나오는 괴성.
그와 함께 언덕 위에 존재하는 야만족들이 기사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질주를 준비하던 성기사들의 얼굴에 당혹이 그려졌다.
"단장님! 적들이 공격해 옵니다!"
야만족들의 힘은 제국민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
그러한 힘으로 던져지는 투창은 모래바람에도 굴하지 않으며, 그 위력은 바위나 갑옷의 견고함도 뚫어버릴 정도다.
하지만 성기사들과 합류한 자는 그 속도와 힘에 반응할 수 있는 자.
-휘리릭!
투창이 던져지기 무섭게 천의 마찰음이 들리고, 두 개의 하얀 천이 투창의 궤적을 가로막았다.
"저건……."
"붕대?"
성기사들의 말대로, 투창을 휘감은 건 셰인이 다루는 마나에 의해 제어되는 붕대였다.
전장에 나서고자 무장조차도 버린 의무병이 유일하다시피 무기로 사용하는 장비.
"크윽!!"
그 붕대를 마나를 실어 넣어 제어하는 셰인이, 붕대의 끈을 짧게 쥔 채 다리의 축을 돌리며 힘을 실어 넣었다.
그 순간 휘감긴 투창의 경로는 비틀어지고, 이윽고 그 창끝이 아군에게서 벗어난 순간 붕대를 감은 힘을 해제.
역으로 날아간 투창은 야만족 한 마리의 머리를 정확히 날리고, 그 배후의 야만족들까지 쓰러트리기에 이르렀다.
"피할 생각 하지 말고 뛰어!!"
투창에 주춤거렸던 뜀박질이 다시 이어진다.
야만족들은 여전히 그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동료 한 명이 쓰러졌음에도.
그들은 그 죽음을 애도하기보단, 도리어 복수심을 발휘하듯 투창에 힘을 실어 넣고 있었다.
후웅, 쉬학!
살벌한 쇄도음과 함께 사방에서 다가오는 흉기들.
그 사이로 셰인의 손에서 풀린 붕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요동은 이윽고 마나의 돌풍이 되어,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투창을 밀어내었다.
"크와아악!!"
그런 양상이 몇 번이고 반복되니, 답답함을 느낀 야만족들이 비명을 지르며 언덕 아래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원거리에서의 공격이 안 통한다면 가까이에서 가면 될 뿐.
그런 판단 하에 이어지는 대군의 돌진에, 셰인은 누구보다도 빨리 튀어나가 그들의 사이에 난입했다.
-퍼콱!!
돌발적으로 던져진 돌에 함몰되는 선두의 안면.
그 돌발적인 기습에 주춤거리는 사이, 셰인이 그들의 사이에 난입해 사지를 휘둘렀다.
주먹을 이용한 안면 가격.
팔꿈치를 이용한 경추 분쇄.
돌려차기로 턱뼈를 부수기까지.
"캬, 크아악!!"
일순간 다수가 제압당한 순간. 잔뜩 흥분한 녀석이 셰인에게 달려들었다.
그 무기가 충돌하기 전, 셰인의 어깨가 녀석의 가슴팍에 맞닿을 준비를 취했다.
-콰앙!!
몸통박치기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마나의 기폭.
그가 부딪친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우수수 무너져 내렸으나, 그 빈자리를 뛰어넘듯 무수한 야만족들이 쇄도해왔다.
셰인이 쯧, 혀를 차며 제 몸을 손가락으로 쑤셨다.
"…더럽게 바글거리네."
‘혈도 개방-3써클.’
제국에선 숙련되었다 일러지는 마나유저의 경지.
-투콰강!!
그 마나를 증폭시켜 행한 난동질에, 야만인들이 산발하며 멀리 떨어졌다.
고작 3써클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전차와 같은 위세.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적들의 사기는 빠르게 하락하며, 그렇게 습격이 뜸해진 틈을 노린 성기사들이 전방을 가로막는 야만족들에게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적들을 베고 길을 열어라!!"
투쟁심에 발해지는 신성력.
그것은 한계를 넘어선 힘에 동반되는 부담마저 회복시키며, 그 위세는 마경에 적응한 야만족들에 견줄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적 열세를 넘어서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 이대로 내버려두면 포위될지도 모른다.
위기감을 느낀 셰인이 측면을 벗어나며 소리쳤다.
"레온! 뒤로 달려!!"
"으오오오!"
지시가 내려지기 무섭게 레온이 배후로 돌진을 가했다.
마나를 몸에 두른 채 부닥치는 레온.
직후 휘둘러진 검격에 야만족들이 하나 둘 씩 쓰러졌으나, 야만족들은 희생에 개의치 않고 레온을 죽이고자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공세의 파도를 앞둔 순간 숨이 멎으며 발길이 주춤거린다.
셰인이 레온의 곁으로 다가온 건 그 순간.
"피하지 말고 휘둘러!!"
적들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가운데 회피의 포기를 지시한다.
그게 당혹스러울 법 함에도, 그 망설임도 잠깐으로 그치며 검이 휘둘러졌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들과 합류시키기까지, 함께 합을 맞춰 적들을 쓰러트려온 셰인의 능력을 신뢰하기에.
-퍼엉!!
마나의 기폭에 와해된 야만인들. 셰인이 그 사이로 붕대를 펼치고, 거기에 마나를 실어 넣어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매서운 채찍질에 주춤거리는 적들.
레온은 그 틈 사이로 정확히 검을 내질러, 그들의 숨통을 차례차례 도려내었다.
"캬아악!"
분개한 야만족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양 측면에서 정확히 동시에.
셰인은 그런 야만족들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역으로 양 손에 있는 붕대로 몸을 감아 서로를 뒤엉키게끔 손을 써두었다.
그마저도 저항하려고 아득바득 힘을 쓰는 야만족.
그중 헐거운 부분으로 나아간 야만인이 마주한 건, 자신의 목을 향해 정확히 쏘아지는 한 줄기의 빛이다.
-서걱!!
그대로 야만족의 목을 도려낸 레온이 쓰러지는 시체를 걷어차고, 그 뒤를 잇따르는 야만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셰인은 한 발자국 먼저 적들에게 다가선 상태.
-퍼펑!!
휘둘러진 난타 한 방 한 방에 퍼져나가는 물리력.
그 순간에도 손에서 뻗어나간 붕대는 적들을 휘감아 구속하고, 그 중 일부를 제 옆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궤적을 읽고 휘둘러진 검은 정확히 명치에 적중.
급소를 맞은 야만족이 꺽꺽대다 이내 숨통이 끊어졌다.
"협곡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모두 뛰어!!"
후방의 적들을 와해시킨 직후, 셰인이 다시 선두에 합류하며 기사들의 보조를 이어갔다.
그 옆에서 합을 맞추던 팔란이 셰인을 보며 경악을 토로했다.
‘이 소년, 대체 정체가 뭐냐.’
분명히 육체와 마나적성 모두 정식 성기사들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그런 체급의 차이를 현란한 체술로 극복한다는 것과, 그를 통해 다수의 적을 저지하며 아군에게 활로를 열어준다는 점에 있었다.
‘그저 공격의 기회를 마련해주거나 활로를 여는 것만이 아니다. 이 소년은…… 자신과 아군을 지켜내면서도, 이 난전의 흐름을 완벽히 이끌어내고 있어!’
초근접 상태에 이르기에 적들은 시선을 사로잡고, 특유의 회피동작은 적들의 사력을 다한 공격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것도 성기사처럼 몸을 부딪치는 것만이 아니다.
적의 공격을 유도하되, 그 공격을 빗맞추게 유도하여 최종적인 피해를 줄이는 어그로 탱킹.
그러면서도 포위망이 형성되면 마나의 기폭으로 날리거나, 붕대를 넓게 펼쳐 홀로 다수의 행동을 저지하기에 이른다.
그 모든 것은 적을 죽이는 게 아닌 적의 행동을 저지함으로써 아군을 보호하고, 더욱 나아가 그들에게 공격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
초단위로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소년은 그런 활동을 실수 한 점 없이 완벽히 해내고 있었다.
‘피해를 받기 전에 먼저 적을 제압하여 아군을 지키는 전투법이라니……. 이런 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정면승부를 추구하는 성기사는 물론 용병도, 투사들이나 심지어 야만족들 중에도, 그 누구도 이런 위태롭고 살 떨리는 기교를 보여준 자는 없었다.
그런 이질감이 이단의 기술에서 비롯된 것을 자각했으나, 그와 함께 함에도 신앙을 해친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혐오가 자리해야 할 곳을 채우는 건 소년에 대한 믿음.
그로부터 비롯된, 역경을 버텨낼 수 있을 거란 호승심이었다.
"우오오오오오!!!"
함성과 함께 휘둘러진 대검이 야만인들을 도륙내고, 이윽고 펼쳐진 길을 나아간 팔란이 협곡의 너머로 부상자와 호송자들을 인도하였다.
"좋아! 이곳만 지나면 합류할 수 있을 거다!"
"배후는 제가 막을 테니 그 틈에 모두 뛰어……."
-쿠광!!!
레온의 고함에 대답하기 무섭게 굉음이 들려왔다.
지나가고자 하는 협곡의 위쪽. 소리가 들려온 곳에 무언가 충돌해 있었다.
거대한 바윗돌이다.
이제껏 산맥을 누비던 중에 몇 번 마주해 온, 원정대의 혼란을 초래했던 요인 중 하나가 절벽의 위에 처박혀 있었다.
"암벽이 무너진다!!!"
충격에 함몰되는 암벽의 일면.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여기서 멈추면 길이 막혀 퇴로가 차단되어버린다.
"모두 달려!!"
다행히도 호위와 부상자들은 낙석지대를 벗어나는 데에 성공했지만, 후방에서 호위를 하던 레온과 셰인은 미처 안전권에 들어서질 못했다.
‘이대로 있으면 둘 모두 고립되거나 깔려 죽는다.’
그 생각은 둘이 동시에 떠올렸지만, 행동이 먼저 이어진 건 다름 아닌 셰인이었다.
어깨에 마나를 실어 넣어 행한 밀치기.
그 대상이 된 레온의 몸이 낙석지대 바깥까지 튕겨져 나갔다.
‘셰인……?’
날아가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는 레온이 셰인을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자신을 밀어낸 후, 망설임 없이 낙석지대로부터 등을 돌리는 소년의 뒷모습.
-쿠과강!!
이윽고 낙석이 땅을 강타하며 굉음을 터트렸다.
사방을 채우는 모래먼지.
그것이 게워지며 나타난 건 바윗돌이 쌓아지며 만들어진 벽이었다.
넘으려고 하면 못 넘을 것도 없지만, 그때까지 뒤에서 따라오는 적들이 기다려주지 않는 게 문제일 것이다.
"미안하게 됐다. 직업병 때문에 아군 죽는 건 못 보거든."
곧 셰인이 혼자서 추적해오는 야만족들을 마주했다.
정확히는 그들의 사이를 가로질러오는 야만인 한 마리를.
-쿠궁.
아니, 단순한 야만인 한 마리가 아니다.
붉은 피부나 도드라진 혈관은 마찬가지이나, 덩치는 그들보다도 한층 더 거대하기에 이른다.
그런 덩치에 힘을 실어 넣은 발돋음에 땅이 희미하게 울릴 정도.
마치 인간이 아니라 곰이라도 보는 것 같다.
"…네가 이놈들 대가리냐?"
그리고 예상컨대, 저 녀석이 바로 이 산맥에 바윗돌을 던져 원정대를 어지럽힌 장본인이리라.
그 확신에 찬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노골적으로 무시하듯, 그저 자신의 손에 쥔 것을 입으로 씹어 먹을 뿐.
-쩌접. 쩍.
수녀복으로 추정되는 것의 소매에 감싸인 손.
우두머리는 그런 손에 입을 가져가며 살점을 물어뜯는 것도 모자라, 통째로 입에 구겨 넣으며 뼈를 씹고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함께했던 누군가를 먹어치우고 있다.
‘수렵을 통한 식량습득.’
그것이 자신들을 습격한 이유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크히히, 하하하!"
우두머리가 뜯어 먹힌 손아귀를 내세우며 괴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뒤를 이어 무언가 말을 걸어왔지만, 언어가 전혀 달라서인지 셰인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그것이 자신이 아닌 제 부하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만 파악할 뿐.
야만족들이 협곡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자신의 싸움을 방해하지 말라는 둥 말을 한 듯 싶었다.
"이야……."
그 구도를 만든 자를 마주한 셰인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그 직후 내뱉은 건 일종의 감탄.
"저건 같은 사람이라기엔 너무 씹새낀데."
그를 넘어, 식인문화를 지향하는 자에 대한 극심한 혐오였다.
"크르라아아!!"
그 웃음을 도발로 받아들인 듯, 곧 우두머리가 성난 비명을 지으며 셰인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밀려드는 위기감에 셰인의 손가락이 자연스레 몸으로 겨누어졌다.
‘혈도개방-4써클.’
제국에서도 강자의 반열에 드는 경지.
-퍼콰앙!
그로부터 비롯된 가드가.
우두머리의 공격 한 방에 무참히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