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53화 (53/255)

의무병의 환생 53화

고작 한 대.

고작 그것만으로 가드를 한 팔이 비틀어질 기세로 밀려났다.

강체술로 막았는데도 충격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것이다.

‘무슨 놈의 힘이……!’

팔을 빼는 게 늦었다면 그대로 팔이 부러졌으리라.

그리고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진 공격을 앞둔 상황에, 가드의 중도포기는 곧 직격을 의미한다.

-쿠당탕!!

도끼질에 밀려난 몸이 벽에 처박힌 채 쓸려나갔다.

그에 휘둘리는 셰인을 향해 달려든 우두머리.

쩌억 벌어진 입은 당장 달려들어 제 몸을 물어뜯을 것만 같다.

"…좀 봐줘라. 이 쪽 본업은 서포터라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낀 셰인이 다급히 전방으로 팔을 내세웠다.

회절. 손 주변의 마나를 회전시켜 적으니 공격을 흘려보내는 방어기.

그 범위에 들어선 녀석의 돌진이 비틀어졌지만, 동시에 셰인의 표정도 왈칵 구겨지고 말았다.

-삐끄극.

팔의 관절이 굽혀지며 울려 퍼지는 관절의 마찰음.

회절을 사용하는 중, 팔과 이어진 마나가 당겨지며 팔에 적잖은 부하를 가한 것이다.

-쿠궁!!

거구가 그의 옆을 지나쳐 벽에 처박혔다.

돌진을 흘려보내는 데엔 성공했지만, 아직도 팔의 얼얼함이 가시질 않고 있다.

‘환경의 차이가……. 같은 인간 간의 격차를 이렇게 벌릴 수 있는 건가?’

그래, 상대는 마경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적응해 온 자들.

그들 중 정점에 오른 우두머리라면, 과거 전쟁터에서 굴러먹은 강자들에도 꿇리지 않는 힘을 지녔을 것이다.

"크와아아아아아아!!!"

그런 존재가 다시 괴성을 지르며 셰인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쿠구궁, 쿠궁!

땅에 맞닿은 도끼의 날이 잡아끌리고, 대찬 붕괴음의 뒤를 따라 갈려나간 파편과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양옆이 가로막힌 협곡에 맹렬히 울려 퍼지는 메아리.

그것이 고막을 뚫고 들어와 두개골 속을 간질이고 혼란을 유발하는 가운데, 셰인이 그 심정을 가라앉히고자 제 호흡을 다스려갔다.

‘심호흡.’

체내에 마나를 받아들이고, 다스리고, 축적시켜간다.

우두머리가 들이닥친 건 그 흐름이 안정을 이루었을 때.

-후웅!

그 직후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해내고, 우두머리의 측면으로 돌아선 셰인이 제 주먹에 질끈 틀어쥐었다.

‘무호흡.’

심호흡 동안 축적된 마나를 체내에 빠르게 순환시키는 과정.

그로부터 비롯된 힘이 양 주먹을 빌어, 이윽고 무자비한 난타를 자아내었다.

투파파파팡!!

체내 마나의 성질을 탄성으로 바꾸며 행하는 난격.

아무리 체격 차이가 있다 한들 이 정도의 난타라면 무시하지 못할 터.

"크르륵!!"

우두머리 역시 당황한 듯, 마저 반격을 가하려던 몸의 자세가 크게 흐트러지게 되었다.

후웅. 뽑혀져 나온 도끼의 궤적이 셰인의 머리 위를 지나치고, 그 빈틈을 노린 셰인이 자신의 주먹에 힘을 끌어 모았다.

-퍼엉!!

4써클의 마나가 집약된 강탄.

그 필살의 공격이 복부에 적중한 우두머리가 밀려나는가 싶었지만, 이내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두 다리로 제 몸을 고정시켰다.

"크히히……."

여유가 가득한 웃음소리.

입가에 묻은 피는 충격에 의한 토혈이 아닌, 이전에 먹은 누군가의 것이었다.

그 피로 진해진 미소를 마주한 셰인이 입꼬리를 일그러트렸다.

"이 새끼, 벌크업을 대체 얼마나 쳐해댄……."

-쿠광!!

머리를 노리고 들어온 도끼질.

두 팔로 행한 가드가 무색하게도 셰인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우두머리는 그 몸을 도끼로 쳐날리고, 멀찍이 떨어지는 셰인을 추적하듯 달려들며 손아귀를 펼쳐왔다.

-휘리릭!!

회절을 통해 손을 밀어내기 무섭게 들이닥치는 도끼질.

그 도끼가 셰인의 팔과 충돌하며 다시금 굉음이 터져 나왔다.

-퍼엉! 퍼엉!!

공방을 주고받는 내내 울려 퍼지는 폭음.

그것은 서로가 지닌 마나의 충돌에 의한 것이었다.

마법에 대한 조예가 없으리라 여겼던 야만족 역시 엄연히 마나를 다루는 존재였다.

그저 그것을 다루는 조예가 없을 뿐. 하지만 충분한 힘에는 기술이 필요 없다.

육체가 되는 대로 펼치는 난동은 마치 짐승이 펼치는 사냥법과 같았다.

아니, 짐승보다도 훨씬 과격하고 난잡하다.

"크와아아아아아!!"

그 기세가 막 터져 나온 고함을 기점으로 증폭되는 상황.

피부가 벌겋게 물들어지고, 얼굴 너머로는 푸른 혈관이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선명히 엿보이는 심장의 박동에, 셰인의 얼굴에 격한 당혹이 그려졌다.

‘뭐야 이건…….’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면모.

그것을 눈에 새기는 것만으로 위기감이 가증되고, 긴장에 목이 메말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전까지 박투를 벌였던 이제까지 쌓인 충격과 더불어, 생리적인 공포에 의해 떨림이 가증되기에 이르렀다.

‘5써클로 올려야 하나?’

상대는 강하다.

전성기에도 상대하고자 한다면 꽤 애를 먹었을 녀석. 더군다나 이런 힘겨루기에서 체급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4써클만 해도 적잖은 후유증이 동반되며, 5써클 이상에서 장기전으로 가면 몸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그 경지를 올리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지금 하는 것이 결투가 아닌 살육전이기에.

한 번의 승리를 거둔다 한들, 그 이후의 싸움과 생존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쿠궁!!

하지만 상대는 마경에 적응한 괴물.

그러한 존재가 가하는 공격을 버텨내기엔, 14살의 육체는 너무나도 나약하다.

"이런 씹!!"

위기감을 버티지 못한 셰인이 쇄골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혈도개방-5써클.

제국에서도 수준급의 강자에 드는 반열의 경지.

하지만 올리는 타이밍이 늦어버렸다.

-쿠과강! 쾅!!

회피가 아닌 가드.

그마저도 녀석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정통으로 직격한 공격에 대차게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콜록."

암벽에 부딪친 세인의 입에서 깊은 숨이 터져 나왔다.

토혈…….

아니, 어디까지나 볼 안쪽이 찢어져서 흐르는 피다. 내상은 생각보다 그다지 심하지 않다.

문제가 있다면 사지가 일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 자세한 상태를 파악하고자, 셰인은 제 몸에 감도는 마나를 차근차근 되짚어 느껴갔다.

‘왼쪽 상완골 탈골.’

우득.

오른손으로 빠진 어깨의 뼈를 끼워 맞췄다.

신경을 태우는 통증이 어깨부터 머리를 비집고 들었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정강이뼈 골절.’

휘리릭.

염동력에 움직이는 붕대가 다리를 단단히 조였다.

균열부가 뭉쳐지는 감각.

격통이 밀려들어왔지만, 그것만 견뎌내면 움직이는 데엔 지장은 없으리라.

‘출혈이 좀 있지만……. 지혈하면 괜찮아.’

점혈을 이용해 출혈을 멈추고, 손가락 끝에 불을 지펴 상처부위에 가져갔다.

꿰매기엔 시간이 여의치 않기에 한 응급처치.

감염과 쇼크의 위험이 있지만, 지금은 상황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폐나 심장은 문제가 없어. 머리는…….’

휘청.

벽에 처박힌 몸을 바로잡으려던 순간 몸이 비틀거렸다.

‘…염병할 주마등.’

사람은 죽음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이제까지의 생을 빠르게 돌아본다고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군인에겐 굉장히 익숙한 개념.

그로 인해 떠오른 잔상 중 가장 선명히 그려지는 건…….

‘대장. 거기 계신가요?’

환청.

거기에 동반되는 잔상은 사방에 여럿 쓰러져 있는 인간.

그 사이에 흰 가운을 입은 채 주저앉은 여인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

‘대장, 저 열심히 했어요.’

그래, 분명 자신의 부하였다.

그런 부하 중 한 명이 폐허가 된 주둔지에 널브러진 무수한 시체를 앞두고,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그 중심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묻고 있다.

‘대장, 어째서 전…….’

-쿠궁!!

그 기억이 벽에 후려치기 무섭게 껒꺼져갔다.

떠올리고 싶지 않다.

아니, 지금 떠올리면 안 될 기억이다.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셰인이, 암벽을 파헤친 주먹을 허공에 휘둘러 시야의 잔상을 지워갔다.

"진짜……. 환생이란 게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네."

그 순간 마주하게 된 건 잔상 너머에 있던 적. 손에 쥐어진 육중한 돌도끼는 여전히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그를 마주한 순간 얼굴에 그려진 건 공포가 아닌 자조.

"이딴 유인원 하나 상대하는 데에 거지같은 기억까지 끄집어내고……."

전생이라면 이런 놈에게 고전하지 않았으리라 여겼으니.

그 생각이 이윽고 그의 엄지를 목으로 가져가게 만들었다.

심장에서 뇌로 직통하는 혈.

오직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자만이 마나를 흘려보내는 게 가능한 곳이다.

‘6써클.’

검을 쥐었다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마법을 연마했다면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할 경지.

그리고 환생 이전의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경지다.

-콰앙!!!

그 경지를 해방시킨 셰인이 다가온 우두머리의 복부를 강타했다.

이제까지의 단 한 번도 밀리지 않았던 괴물의 몸이 처음으로 나가떨어진 순간.

"……켈룩."

내상을 입은 것일까.

각혈을 토해낸 우두머리가 몸을 바로잡으며 셰인을 응시했다.

-쿠구구, 구궁.

그 주변의 대기가 요동치고, 땅울림이 협곡에 메아리치고 있다.

만물에 스며든 마나가 셰인의 의지에 반응하여 모여드는 것.

그런 마나의 유동이 자아내는 물리력만으로 온몸이 삐걱거릴 정도다.

전생에 도달한 경지를 받아내기에, 이 몸은 너무나도 나약하다.

"크르륵, 카아악!!"

그만한 강함을 마주했음에도, 우두머리는 기가 죽긴커녕 도리어 쾌활히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보다 강한 힘을 마주하며 호승심을 발휘한 것일까.

"야, 유인원."

셰인 역시 웃음을 유지한 채.

셰인이 우두머리를 향해 피로 적셔진 손가락을 겨누며 말했다.

"내가 어지간해선 사람 죽이면 잠자리가 뒤숭숭해지는데……. 내 기준에서 넌 사람새끼가 아니니까 그런 거 느낄 필요 없겠지?"

"크르르, 카하하하하학!!!!"

셰인의 도발에 야만족의 우두머리가 광소를 터트렸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 소통 따윈 되지 않지만, 녀석이 어떤 말을 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전력으로 붙어보자.’

-쿠궁, 쿠궁.

곧 녀석의 주변에도 진동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진동이 일어나는 간격이 심장의 박동과도 같다.

기사나 마법사와는 다른, 야만족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고유의 마나증폭법이다.

‘마나에 의한 심장의 펌프질.’

물리력으로 심장을 강하게 마사지하여, 온몸의 혈류가 흐르는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다.

점혈법을 통한 써클개방의 원리를 생각하면 확실히 파격적인 강화다.

써클이 늘어나진 않더라도, 단시간에 신체가 받아들이는 마나와 그 순환속도가 비대하게 증가한다는 거니까.

‘하지만 점혈개방이랑 달리 수명에 지장이 가는 방식이야.’

심장 박동은 인체에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현상.

쓰면 쓸수록 심장은 물론 몸에도 큰 부하가 가해질 테지만, 세인이 그런 녀석의 사정을 고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제 수명까지 깎아내며 이룰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이 쪽도 그만한 수를 강구해야 한다는 것뿐.

"크오아아아아아아아!!!"

도끼가 치켜세워짐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함성.

그 기세를 키워가는 괴물이 달려오는 가운데, 셰인이 벽을 등진 채 호흡을 다스려갔다.

‘심호흡.’

행한 것은 기술의 사전준비.

6써클이라면 현실의 대격변을 일으킬 마법도 노릴 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마법사가 아닌 무투파였다.

무투에 의한 마나의 운용은 지식이 아닌 움직임에 더 큰 옇야을 받고, 그에 동반되는 현상 역시 응용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물리력으로 그치는 법.

즉, 공격의 위력은 얼마나 압축시키고, 일순간에 얼마만큼의 마나를 해방시키는 가로 결정된다.

‘제4자세-투로.’

그 힘을 축적시키기 적합한 자세를 잡았다.

오른손을 뒤로.

왼발을 뒤로 빼내며 두 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린다.

그러한 상태에서 마나를 운용하며, 체내에 흐르는 마나를 천천히 늘려간다.

흡수된 마나를 방출시키지 않은 채. 체내의 마나의 흐름에 맡기며 순환에 순환을 지속…….

의지에 반응하는 마나의 성질을 탄성으로 바꿔, 순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압력으로 마나를 압축시켜간다.

마치 구겨진 용수철을 한 공간에 밀어 넣듯, 그런 식으로 제 육체가 받아들이는 마나의 한계량을 강제로 늘리는 것이다.

-꾸드득, 드득.

그것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몸이 찢어지는 게 느껴졌다.

체내의 모세 혈관이 하나 둘 씩 터지며 전신에 도드라지는 피멍.

겨우 지혈시켰던 부분에선 다시 피가 왈칵 치솟고 뼈마디는 삐걱거린다.

그것을 악착같이 버틴 셰인이 치켜뜬 눈을 전방으로 향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의 도끼가 세인의 몸을 가를 기세로 휘둘러졌다.

때가 왔다.

셰인이 곧장 제 주먹에 집약시킨 힘을 전방에 퍼부었다.

‘마투술-기본(基本).’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으로.

최대한 올곧게 내지를 뿐인.

그저 그것만이 전부인 주먹질.

-콰아앙!!

그로부터 비롯된 파공성이 협곡에 울려 퍼지고, 그 파장이 이윽고 우두머리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 * *

-쿠구궁.

돌연히 들려온 붕괴음.

주둔지 내에 있던 베르디가 그 소리에 놀라며, 황급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협곡지대.

아니, 이전까지만 해도 협곡이었던 곳이다.

‘무너지고…. 있어?’

인간에겐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이 마주보며 생성된 지형이, 어느 순간 돌연히 붕괴되어 주변을 휩쓸고 있었다.

가히 재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그러한 광경이, 이 순간 느끼는 베르디의 불안을 크게 가증시켜갔다.

‘……셰인.’

그를 떠올리며 가슴께를 움켜쥐는 것도 잠시.

"팔란 단장님!! 적들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부터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베르디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건물 밖으로 향해졌다.

모래바람 너머로 엿보이는 무수한 그림자.

수천에 달하는 대군이 주둔지로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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