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54화
-쿠궁, 쿵!!
주둔지의 입구를 막은 두터운 정문. 그 앞에 모인 야만족들이 성난 괴성을 지르며 문을 부술 기세로 무기를 휘둘렀다.
성기사들은 농성을 하고자 주변의 잡동사니와 가구를 닥치고 끌어 모았다.
하지만 급조한 바리케이드가 뚫리는 것도 시간문제.
서서히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자각한 성직자들이, 제 앞에 있는 시체들을 앞두며 분개를 질렀다.
"젠장, 감시는 분명 철저히 했다 했을 텐데……!"
"사령관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 분도, 감시를 맡으신 분들이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셨겠죠."
모종의 이유로 주둔지에 상주하던 인원들이 몰살당했다.
만약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이 일대의 위험을 사전에 전달했을 터.
-쿠궁!!
그런 암담한 현실에 분개하는 가운데, 돌연 던져진 투창이 건물의 외벽에 처박히며 굉음을 터트렸다.
그 뒤를 잇따르는 야만족들의 웃음소리.
그 비웃음이 주둔지에 일으키는 전율을 일으키는 가운데, 핀들레이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열외 된 사람은 얼마나 되지?"
"황혼기사단과 불사대는 각각 5할씩, 그리고 태양 기사단의 경우 단장을 포함해 8할 이상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성기사단 중 반절 이상이 전멸했다.
하지만 더 참담한 건, 그들이 그들이 아는 가장 명예로운 기사 역시 목숨을 잃었다는 것.
"…아슬란 단장도 당한 건가."
"다행히 사제분들은 장례를 위해 주둔지 인근에 있어 습격에 휘말린 사람은 적지만……."
-쿠궁!!
보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격하게 떨리는 바리케이드.
그 순간 건물 위에서 상황을 보던 사제가 다급히 소리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주교님! 적들이 통나무를 공성추 삼아 문을 부수려 하고 있습니다!"
"저 빌어먹을 야만족들이 기어코 우릴 잡아먹으려 기를 쓰는구나!"
원정의 특성상 구조대가 바로 따라붙을 리도 없다.
사실상 구조의 가능성은 0에 수렴하는 상태.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그들은 이성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이 더욱 열렬히 기도를 읊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돌아보던 불사대의 단장, 팔란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핀들레이가 그를 보며 경악을 토로했다.
"팔란. 무엇을 하려고……."
"핀들레이 주교. 그대도 알고 있을 것이요. 200년 전, 우리의 조국은 야만족들을 정벌한다는 목적을 이루고자 많은 희생을 치러왔음을."
이윽고 그의 검이 바리케이드로, 그 너머에서 문을 부수고자 기를 쓰는 야만족들에게로 겨누어졌다.
"그 흉악한 자들의 후손이 저곳에 있소. 우리의 살을 취해 먹고자 이곳까지 온 것이오. 그런 존재들을 앞두고 손 놓아 죽음을 기다리는 건……. 선조들의 의지를 이어받은 자로썬 결코 용납되지 않을 터!"
"팔란 단장……."
"그러니 우리는, 설령 오늘 이 목숨이 다한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싸움을 택하겠소!"
-쿠구궁!!
이윽고 바리케이드에 균열이 가해졌다.
그 균열이 벌어지며 야만족들의 손이 솟구친 때, 주둔지에 상주한 백여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이 자리에 선 영광스러운 전사들이어! 그대들에게 묻겠다!"
그 선두에 선 팔란이 외쳤다.
"우리는 누구인가!"
""유일교의 신자이자 교단을 수호하는 검입니다!""
"그렇다! 우리들은 교단과 신도들을 지키는 검! 우리의 육체와 손에 쥔 무기는, 신자들의 기도를 현실로 바꾸며 염원을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쿠당탕!
이윽고 고함과 함께 치워지는 바리케이드.
그와 함께 공성추에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가속화되었으나, 성기사들은 굴하지 않고 나아갈 준비를 취했다.
"그러니 두려움을 버려라! 의지를 다져라! 우리를 굽어 살피는 분의 앞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유일신님을 위하여!!""
이윽고 기사들이 문을 박차며, 입구에 몰려든 야만족들과 맞부딪쳤다.
방패로 진을 치고, 그 틈새를 통해 창과 검을 내지르며 그들의 몸을 찢어발긴다.
기습에 당황하는 야만족들.
하지만 그 혼란은 분노와 합세되어, 광기에 찬 난동으로 바뀌었다.
사제들이 그를 주춤거리며 보는 가운데, 핀들레이 주교가 그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멍하니 있지 말고 기도를 외우도록!!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힘을 실어야 한다!"
호통이 들리기 무섭게 사제들이 양 손을 맞대고 기도를 읊어갔다.
전투를 업으로 삼지 못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것뿐.
하지만 힘없는 용기로 어찌 승리를 갈구할 수 있을까?
-크와아아아아아아!!
수천의 야만족들이 산등성이를 기어오르며 괴성을 질러온다.
기사단의 함성을 뒤덮을 기세로.
그런 그들을 경사에서 마주한 성기사들이 유일한 입구로 향하는 경로를 차단했으나, 검과 방패만으론 열 배를 넘는 병력의 공세를 견디는 건 불가능했다.
"크하악!!"
이윽고 선두에 섰던 팔란의 몸이 창과 도끼질에 도륙 내어졌다.
자신들을 이끄는 자가 목숨을 잃은 순간.
그럼에도 불사대의 부단장은, 그 시체를 짓밟고 깃창을 세우며 전진을 명하였다.
"물러서지 마라! 모두 저들을 밀어내!!"
명예를 기려야 할 자의 고고한 유해를 짓밟아서라도, 이 최후의 방어선만은 사수해야 한다.
"유일신님을 위해!!!"
그 집념은 빛이 되어 방어선을 더욱 밝게 비추었다.
신도들은 그 배후에 선 채 빛을 발산하는 데에 가세할 뿐.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소년과 소녀는, 건물의 안쪽에 몸을 숨기며 제 감정을 다스려갈 뿐이었다.
"……협곡이 무너졌어."
그중 한 사람.
레온은 차마 기사단에 합류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의 만류 때문만은 아니다. 한 번 절망을 이겨냈다 해서 두 번까지 버틸 수는 없는 법이니까.
"셰인이 협곡에 남겨졌어. 분명 형님처럼……."
가까스로 되살린 신앙마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선 너무나도 하잘 것 없게 꺼져가고 있었다.
베르디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이대론, 안 돼.’
이대로 있으면 모두가 당한다.
그런 불길한 미래를 직시한 베르디가 방을 벗어나, 주둔지의 지하로 향해 뛰어갔다.
눈치 챈 레온이 베르디의 뒤를 다급히 쫓아갔다.
"베르디, 어디를……. 크윽!"
이내 베르디가 도착한 곳은 유혈이 낭자한 장소.
그 인근엔 주둔지의 습격자들에게 대응하려 했다, 쓰러진 이들의 시체가 방치되어 있었다.
베르디는 그 시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둔지에 상주한 병사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보관한 창고.
그 안을 자욱이 채우는 건 분명 화약 냄새다.
이윽고 베르디의 의도를 알아차린 레온의 얼굴이 창백히 물들어졌다.
"베르디 너, 뭘 하려고……."
"괜찮아."
레온의 저지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베르디.
그러면서도 총을 쥐는 손엔 거리낌이 없었다.
교단에서 다루는 것이 금기로 여겨지는 무기를 쥐는 데엔.
"…난 괜찮아."
그렇게 소녀는 자신을 타이르며, 멍하니 선 레온의 옆을 지나쳐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니 열세에 처한 성기사들이 비춰졌다.
몇몇은 처참히 죽은 상태.
그들의 시체는 성기사들에게, 그리고 보다 많은 야만족들에게 짓밟히며 형체마저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지고 있었다.
그런 시체들은 갈수록 더욱 늘어나리라.
그것을 볼수록, 베르디가 제 품에 껴안은 소총을 더욱 거세게 끌어안았다.
‘……할 수 있어.’
장전 후 방아쇠를 당긴다.
반동만 견딘다면, 설령 갓난아이라 할지라도 영웅을 죽이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저 흉악한 야만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할 수 있어.’
그에 확신을 가지고 총을 들어 올린 순간.
"안 돼!!"
돌연히 난입한 누군가가 베르디의 손에 쥔 총을 낚아채었다.
낯이 익은 얼굴.
베르디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 앙리 수녀님……."
수녀 앙리.
얼마 전 자신이 몸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수녀였다.
그녀가 베르디에게서 뺏은 총을 틀어쥐며, 떨리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대체, 뭘 하려고 한 거야. 이게 어떤 물건인지 몰라서 그래!?"
알고 있다.
십 년 전부터 영지군이 제식 병기로 도입한 후장식 소총.
총구 뒤편에 황동탄피를 넣는 트랩도어형 장전방식을 채택했으며, 총구를 통해 총알을 넣을 때와는 장전속도 면에서 비교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만한 속도로 준비를 거치기만 하면, 마나나 갑옷에 보호받지 못하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짐승도, 그리고 사람도…….
그렇게나 사람을 죽이는 데에 특화된 무기는, 결코 신을 섬기는 자가 쥐어선 안 될 물건이었다.
"전, 괜찮아요."
그럼에도 베르디는 후회를 내뱉지 않았다.
소심하지만 확실하게.
이것이 자신의 의지로 저지른 일임을 밝힌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그 마음을 읽은 앙리가 표정을 구기며 소리쳤다.
"베르디, 이건 절대로 괜찮다 흘려 넘길 일이 아니야. 너, 넌 이제까지 수업도 잘 들었잖아. 잘 새겨들었으니 알고 있잖아? 교단에 몸을 맡긴 순간부터, 교리를 어기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란 걸!"
거기에 타협이나 예외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
신은 어느 때에도 예외 없이 인간을 지켜보고,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속내조차 꿰뚫어 보시니.
그러니 신을 섬기고자 하는 이는 부정을 멀리하고, 진실 된 고행을 거듭하며 개화시킨 믿음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베르디는 그 어떤 수행원보다 그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소녀.
아직 신앙을 개화시키지 못했을 뿐, 그 교리를 이해하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왔다는 걸 앙리는 알고 있었다.
"……어차피 저에게 빛이 내려질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베르디는 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아직 신앙을 개화시키지 못했으니 이 무기를 쥘 자격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소녀에게 앙리가 당황하며 외쳤다.
"그건 아직 네가 믿음을 개화시키지 못해서 그런 거야. 이제까지처럼 열심히 한다면……."
"믿더라도 마찬가지예요."
"베르디! 제발 내 말을 들어!!"
절박함마저 느껴지는 설득.
그것을 보다 못한 베르디가, 제 멱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수녀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
고작 한마디에 설교를 하던 앙리의 입이 다물어졌다.
베르디는 그런 앙리를 여전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허무함마저 느껴지는 눈동자.
그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감정은……. 사춘기의 소녀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뭉개져 있었다.
"그런 일을 저질렀는데……. 어떻게 용서를 받는다는 건가요?"
입에서 내뱉어지는 건 설득조차도 아니었다.
그저 있던 사실을 그대로 얘기하는 것뿐.
교단에 소속된 사람은 물론이고 신앙이 없는 사람도.
더욱 나아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조차도, 이 아이를 악마라 칭해도 이상치 않은 끔찍한 이야기를 소녀는 담담히 고했다.
"주님도 저를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제가 천국에 갈 일은 없을 테니 차라리……."
그렇게 이어지던 체념이었거늘.
그 주장이 끝내 이어지기 전, 앙리가 베르디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안 돼, 베르디."
"수녀님……."
"너만은 안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어린 나이에.
사람이 저지르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금기를 저지른 아이다.
설령 그게 타의에 의한 것이라 한들, 그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는 한 이 아이는 평생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이 아이를 축복받은 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타의에 의해 죄를 저지른, 이 아이가 구제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모두가 믿고 있기에.
"베르디, 주님께선, 네가 진심으로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면 분명 용서해주실 거야."
그 분은 올곧은 이들에겐 언제나 관대함으로 대해주니까.
"하지만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고……. 네가 네 손을 더럽혀도 되는 자라 단정지어버리면, 넌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게 돼."
아무리 끔찍한 죄라도 거듭하면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
그리고 주님께서 아무리 인간을 사랑할지언정, 그 자애는 덧없는 신앙을 가진 자와 그들이 구제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결코 금기를 반복하는 자에겐 내려져선 안 된다.
죄악에 익숙해진 자들은, 그런 신의 대행자들의 마음과 노력을 무참히 짓밟기에 이르니…….
"네가 죄를 반복할수록……. 우리가 본 것과 같은 빛을 볼 이리 없어지는 거야."
그것을 가르쳐주는 자의 빛이 베르디의 볼을 보듬어주었다.
신성력.
그 힘을 가진 이들은 베르디에게 그녀와 같은 말을 누누이 반복해왔다.
설령 용납 받을 수 없는 죄를 의도치 않게 저질렀다 해도,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진실되었다면 분명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빛을 스스로 거머쥐는 날이 온다면 분명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그 의도를 안다고 어찌 마음에 품을 수 있을까?
"그래도, 이대로 있으면 모두 죽게 돼요."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죽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죽어갈 것이다.
그 미래를 앞둔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천당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뿐.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천당에 가는 시기가 지금이 되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아이가, 아직은 천당에 갈 자격이 없는 자신이 대신 손을 더럽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그 사실을 계속 되뇔 무렵, 이내 앙리가 베르디를 놓아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직후 이어진 건 기도 따위가 아니었다.
기도를 행해야 할 손이 향한 곳은 총이었다.
"앙리 수녀님, 무얼……."
철컥.
장전음이 울려 퍼졌다.
굉장히 조잡한데다 벌벌 떨려오기까지 하는 손짓.
하지만 기계장치란 서툰 재주를 효율적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주여."
이윽고 장전된 총이 창가로 향해지고.
"그대의 믿음을 배신한 나를 용서치 마소서!"
-타앙!
배교의 선언과 함께 당겨진 방아쇠에, 한 발의 총탄이 야만인들에게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