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55화
고작 손가락 굵기의 납탄 하나. 고작 그런 납탄을 날려보내기 위한 화약.
하지만 사람을 죽이기엔 그거면 충분하다.
-타앙, 타앙!
그러한 공격이 장전과 방아쇠를 당기는 걸 반복하는 것만으로 계속 이어진다.
가늠쇠를 쓰는 법도, 반동을 제어하는 법도 고려하지 않은 사격.
하지만 그런 무차별적인 공격도 바글거리는 야만족들을 죽이기엔 충분했다.
‘저것은 무엇인가.’
‘번개를 쏘고 있다.’
‘사술이다! 저 외지인들이 사술을 다루고 있다!’
총의 존재를 모르는 존재들이 전진을 머뭇거린다.
그 폭음에 당황한 건 신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앙리! 자, 자네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소란을 뒤늦게 들은 성직자들이 기도를 멈추며 앙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 중 호통을 친 건 주교인 핀들레이였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 한들 금기를 범하다니! 내 자네의 신앙을 언제나 높이 사왔거늘 어찌 이런……."
"주교님."
앙리가 총구를 거두고, 자신을 꾸짖는 핀들레이를 돌아보았다.
눈동자에 그려진 건 체념이었고, 동시에 외도에 들어설 각오를 한 독실한 신자의 각오였다.
앙리가 그러한 눈으로 제 곁에 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주교님께서도, 이 아이의 사정에 대해서 알고 계시겠지요?"
창백히 질린 얼굴로, 제 입을 손으로 감추고 있는 어린 수녀에게로.
그보다도 어린 나이에 금기를 범할 수밖에 없던 아이를 보던 앙리가, 이내 그 소녀를 등지며 총을 틀어쥐었다.
"저는……. 차마, 이 아이가 금기를 범하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앙리……."
"저희는, 신이 내려주는 빛의 따스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구제해 주며…… 우리들의 가치를 드높이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고통조차 시련으로, 죽음조차 안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그분이 자신들을 천당으로 인도해 주리라 믿기에.
그들은 생애 마지막까지 금기를 범하지 않음으로, 인간으로서의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니.
"하지만……. 이 아이는 아닙니다."
아직 베르디는 그 기회를 거머쥐지 못했다.
그런 구원받지 못한 자가 버젓이 있는데, 어찌 이 순간 자신들만을 위해 인생의 종언을 고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설교는 이 상황을 모면한 후 받겠습니다."
이윽고 앙리가 총구를 다시 창가에 내밀었다.
몇 번이고 이루어진 행동에선, 이미 망설임 따윈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부디 주교님께선, 저와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기를……!"
-타앙!!
실수가 아닌 자의임을 증명하듯, 앙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더욱 거세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모두가 직감했다.
그녀는 생은 자학으로 끝을 맺으리라고. 누구보다도 큰 광명을 추구한 만큼, 금기를 저지른 그 생애의 끝엔 더없이 어둡고 고독한 어둠만이 자리하리라고.
그를 동정함에도 차마 이 자리에 선 누구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아니, 그 반대로.
무언가를 결심한 사제들이 지하로 내려가 장비를 챙겨오기 시작했다.
"자네들, 지금 무얼 하려는 건가!?"
"주교님. 죄송합니다."
"허나 이것으로 당신을 지킬 수 있다면!!"
-타타탕!!
창문을 통해서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진다.
총구의 배수만큼이나 증가한 납탄의 세례.
소수에 불과한 자들이 보다 많은 이들의 숨통을 앗아가는 가운데, 야만족들이 공포를 분개로 억누르며 투창을 내던졌다.
쿠궁!
건물의 외벽에 처박힐 정도의 위력을 가진 투창.
그 매서운 일격에 한 성직자가 어깨를 얻어맞으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를 치료하고자 나서는 자는 없었다.
도리어 그 공백을 메우고자, 빈자리를 채운 성직자가 투석구에 끼워 넣은 폭탄을 전력으로 던질 뿐.
-퍼펑!
뜯겨진 몸과 산발하는 핏줄기. 유혈보다도 진한 공포와 광기에 찬 비명.
차차 밀려가는 방어선을 지키던 성기사들에겐 활로가 열렸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차마 그 상황을 승기로 굳히지 못하였다.
그저 먹구름에 가려진 어둑한 하늘만을 허망히 쳐다볼 뿐.
"어찌 이런 짓을……."
"어찌 신을 섬기는 자가, 전통과 규율을 어기려 드는가……."
금기를 범하여 이 순간을 극복한다 한들, 그들의 삶에는 앞으로 끝없는 의심과 시련이 자리할 것이다.
그것을 버텨내지 못한다면 축복이 따를 일은 없으리라.
천당으로 떠나가지 못하고, 그 믿음에 대한 위안을 품에 안으며 살아가지 못하리라.
그걸 누구보다도 절실히 실감하는 건, 다름 아닌 총을 쥐고 있는 사제들이었다.
-철컥!
한 발의 총알을 장전하고.
-타앙!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목숨이 하나씩 사라진다.
가치 있고 고결해야 할 생명이하찮게 꺼져가고, 피가 묻어야 할 손도 깨끗하다.
살육을 범한 순간 느기는 그 찝찝함마저 방아쇠를 당기는 손짓 한 번에 털어낸다.
‘그것이 반복될수록 살생에 익숙해지는 것을 느낀다.’
결코 신앙을 가진 자가 해선 안 될 짓이다.
이런 무기가 평화의 시대에.
자신들의 고향에 이런 무기가 들어서선 안 될 터이다.
"주여!! 부디 저희의 목소리를 들어주소서!!"
그것을 깨달은 신자들이 절규를 부르짖었다.
부정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낼 정도로. 목에 피가 고일 정도의 처절한 기도를 읊으며.
"부디 우리가 타락의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용기를 주소서!"
"그 거룩한 은혜로 우리들의 두려움을 지워주소서!"
"허나 이 부정을 용서치 마소서! 그대를 배반한 우리를 이끌지 말되……."
"구원받지 못할 자를 구원하기 위한 힘을 내어주소서!!"
총성마저 지워버릴 기세로.
그 비통한 기도문을 등진 앙리가 손에 쥔 폭탄을 틀어쥐고, 그 심지에 불을 지폈다.
"설령 이 손이 더럽혀져도…."
-콰득!
이윽고 창가에 얼굴을 내민 순간 날아든 투창.
그것이 머리를 정확히 꿰뚫으며 한 여인의 생명을, 그것을 불태우며 내지른 기도문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손끝에서 떨어지는 폭탄의 심지의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그 심지가 뇌관을 태우기 전.
또 다른 신자가 그 폭탄을 주워 던지며 힘차게 외쳤다.
"이 땅에 빛이 있으라!!!"
그 비탄조차 죽음이 반복될수록 폭음과 총성에 삼켜져갔다.
-타앙, 콰강!!
갈수록 더욱 과감하고 맹렬히.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이들이, 그 구원의 수단으로 복수를 택하는 데에 거부감을 지워간다.
그것이 얼마나 그릇된 일인지, 베르디는 그들의 얼굴에 차차 그려져 가는 유열을 읽는 것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만……."
그를 마주하는 소녀가.
신앙을 개화시키지 못한 소녀가, 신앙을 잃어가는 이들을 향해 절규를 토해낸다.
"제발 그만해요……."
-콰강!!!
그 서러운 비명마저 폭음에 삼켜진다.
그를 억누를 수 없음을 자각한 베르디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무력한 손엔 아무것도 쥐어지지 못했다.
그 손에 쥐려고 했던 것마저 다른 이가 대신 잡고, 죽음에 대한 각오마저도 다른 이가 대신하였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공허한 손아귀를 틀어쥐는 소녀가 서글픔을 흘려갔다.
‘대체 왜…….’
저주조차 되지 못하는.
그런 보잘것없는 한탄만을 되뇌면서.
‘주님은 어째서……. 저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가요?’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렇게 금기를 범해버린 자신의 사정을 배려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자신을 지키고자 순교자나 죄인이 되어가길 택했다.
세상은 그 또한 축복이라 여기지만, 그렇게 포장해도 결국 소녀 스스로는 그것을 죄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을 유발하는 스스로의 존재 자체가 그릇된 것이라고.
‘그러니 날 위해주지 말아요.’
어차피 구제되지 못할 아이가 아닌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봐야 빛을 거머쥘 리가 없는 아이이지 않은가?
그것을 그들도 알고 있을 터이거늘, 왜 그들은 그런 하찮은 녀석을 구제하고자 신앙마저 져버리려 하는 것인가?
‘제발, 그만해요.’
그런 사무친 절망감을 가슴께에만 파묻는 가운데.
-뿌우우우우~!!!
어느덧 소란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도 폭음도 아니다.
그보다도 훨씬 선명한…….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으리라 여긴 뿔피리 소리.
그것이 이 주둔지의 인근에 높이 솟아오른 산봉우리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한 야만인이 내지른 신호.
그것을 들은 순간 미친 듯이 몰려들던 야만족들의 행동이 일제히 멈춰지고, 이윽고 이전의 전투가 무색하게도 자리에서 등을 돌려갔다.
그렇게 하나 둘 씩 떠나간다.
이전에 불어 닥친 폭풍이 거짓말처럼 잦아든다.
"적들이, 물러난다……."
"어째서?"
뿔피리가 퇴각신호라는 건 알았지만, 왜 굳이 이 상황에 퇴각을 택한 것일까?
그저 총과 폭탄을 위협적으로 여겨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가운데, 이윽고 부상자들을 마주한 성직자들이 정신을 차리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일단 부상자들을 안으로!"
사제들이 총기를 내던지고 주둔지 안으로 들여온 성기사들의 상처를 봐주었다.
살아남은 자는 반절에 못 미치는 수준.
좀 더 전투가 이어졌다면 그마저도 회수하지 못했으리라.
그에 안도를 느끼는 가운데 한 사제가 외쳤다.
"저쪽에 누군가 다가옵니다!"
시체만이 남은 전장에 들이닥치는 모래바람.
그 먼지에 가려진 실루엣이 느릿하게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경계심을 느낀 한 성직자가 황급히 소총에 총알을 장전했다.
이윽고 그 총의 방아쇠에 힘이 실리기 직전, 누군가가 총구를 가로막고 뛰쳐나가 그림자를 향해 다가섰다.
"베르디! 안 돼!!"
만류했음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박차를 가한다.
행여나 총이 발포될까 두려워하며, 자신이 마주한 자의 이름을 서둘러 부르짖었다.
"셰인!!"
그 외침에 안도를 느낀 듯.
이윽고 걸어오던 소년의 몸이 시체밭 위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숨이 끊어진 건가?
아니, 의식은 남아 있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주듯,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소녀를 향해 두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셰인, 무사해서……."
그를 내려다보던 베르디가 흐느낌에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저 바닥에 쓰러진 그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조아릴 뿐.
‘살아 있어, 살아 있어…….’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주던 이의 생존에 안도를 느끼는 때, 레온이 베르디의 옆을 지나쳐 셰인의 몸을 들어올렸다.
그 얼굴엔 분한 감정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을 밀어낸 녀석이 이런 몰골로 나타난 걸 용서하지 못해서였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한 건, 그 역시 셰인의 생존을 기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와주세요!"
이윽고 레온이 성직자들에게 셰인을 보여주었다.
성직자들이 그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죠 이 아이?"
"몸에 성한 곳이 없어요!"
출혈은 없지만 온몸이 피멍으로 가득 차있다.
한쪽 팔은 관절을 구분 짓지 않을 정도로 흐물거릴 정도.
겉보기와 달리 출혈이 적은 것도 상처를 전부 지져서 막았기 때문이다.
당장 몸에 난 화상자국만 봐도 쇼크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거늘…….
‘아니, 이미 몇 번이나 죽었다.’
적어도 교단 사람들의 기준으론 그랬다.
찢어진 가슴팍에 엿보이는 화상자국.
쇼크로 멈췄던 심장을 몇 번이나 스스로, 제세동술을 이용해 강제로 뛰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처참한 꼴이 되면서도 소년은 의식을 잃지 않고,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그런 소년을 보며 동정을 느낌에도, 정작 그들 중 누구도 치료에 선뜻 나서질 못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금기를 범함으로써 스스로의 신앙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죽음조차도 각오하며 지켜야 할 것이 교리인 것을, 생존과 복수의 수단으로 살육을 택하고, 그렇게 광기가 자신들을 침범하는 것을 허락해버렸으니…….
그런 자신들이 이단의 문화를 추구하는 소년을 치료한다면, 위태롭게나마 유지되는 신앙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이, 어리석은 녀석……."
그에 갈등하는 성직자들의 사이로 누군가가 발걸음을 옮겨왔다.
"그 몰골은…. 대체 뭐냐."
이전까지 부상자들의 치료를 전담하던 핀들레이 주교.
누구보다도 독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 그는, 야만족들이 물러난 이 기회를 살려 축적시킨 신성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이단을 위한 힘이 아니다.
그래선 안 될 터이다.
"그런 꼴이 되어서까지 여기에 온 건 무엇을 위해서냔 말이다!"
그 점을 직시한 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건 진심어린 경멸.
"이렇게나 추한 몰골로 목숨을 부지하는 게 네가 추구하는 사술의 가능성이란 것이냐!? 그런 상태로 살아 있음을 주장한다는 게,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사령술과 다를 게 뭐냔 말이다!"
"주교님, 지금은……."
"그런 몸으로 이곳에 온 건 설마 우리에게 치료를 부탁하기 위함이더냐? 참으로 가증스럽구나. 이단자 주제에 가증스럽기 짝이 없어!"
주변 신도들의 만류에도 핀들레이는 폭언을 멈추지 않았다.
다 죽어가는 소년에게 할 말이 아니었지만, 신자들은 그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교단의 교리를 맹신해 온 자.
영지에서의 활동이 끝이 나면,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 그 믿음의 대가를 받을 게 예정된 이였다.
그런 자가 다 죽어가는 이단자를 보며 좋은 소리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게 비참한 꼴이 되어가면서……."
그것이 당연함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여겼던, 그 고지식한 태도가 이 순간 무너지고 있다.
손에 어리고 있는 빛이 사그라지고, 그를 쏘아붙이던 표독스러움마저 사라지며.
"그런 추한 문화를 적대시하는 우리를 도운 이유가 무엇이더냐……?"
이런 몰골이 되어서도.
소년의 손에 쥔 누군가의 머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볼 뿐.
그때가 돼서야 사제들은, 어째서 야만족들이 중도에 물러났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우두머리……?"
이전까지 판을 치던 녀석들보다 더 크고, 흉측하게 우그러진…….
누가 보더라도 저들을 이끌었던 우두머리임을 알 수 있는 증거물.
소년은 그런 머리를 든 채 야만족들의 사이를 활개 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이 따르고 지지하던 이의 죽음을 가르쳐주어, 그들을 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가르쳐준 건 스스로의 생존만을 위해서인가?’
굳이 그런 무리를 하지 않고 홀로 도망쳤어도 되었을 터다.
애초에 무리를 한다 해도, 척을 지는 그들이 치료해 줄 거라고 확신조차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런 노력을 한 마당에 욕을 먹은 것이 억울할 법함에도.
"……이유가 뭐겠어요."
정작 셰인은 그들에게 원망 한 점 없이, 그저 덤덤히 말할 뿐이었다.
과거 전장에서 살며 느껴온 작은 깨달음 하나를, 이 순간을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