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56화 (56/255)

의무병의 환생 56화

‘대장, 굳이 저놈들을 구해야 해요?’

상부에서의 지시를 받고 구출작전을 수행하던 중, 위기에 처한 동맹군을 앞둔 카일에게 한 부하가 그런 질문을 건넨 적이 있었다.

상당히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당시 습격당한 자들은, 자신이 속한 왕국군과도 잦은 마찰을 일으켰던 곳이었으니까.

‘그래요, 우리보고 서폿차이네 떠들어댄 놈들이라고요.’

‘신성력이 그렇게 거지같으면 회복하러 후방으로 빠지기 전에 확실하게 킬캐치를 해야지.’

‘무리하게 적지로 다이브치다 뒤져놓고 왜 애꿎은 힐러 탓이나 하고 자빠졌냐고.’

‘서폿 차이로 밀리면 그 진영은 그냥 져야 하는 거 아니야?’

‘적들 성기사들은 맨날 최전선에 사는데 우리 전위대는 어디서 대체 뭐하고 있냐~~!!’

……정말로 깐족거림 하나만은 대륙의 정점을 달리는 놈들.

카일이 담당한 의무부대에 들어온 자들은 대개 그런 녀석들이었다.

그가 이끄는 자들은 그저 의사여서만은, 혹은 군인이여서만은 안 되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저흴 모욕하는 놈들을 굳이 살리고 싶지 않아요.’

그런 녀석들이니 자존심이 강할 수밖에 없겠지만, 카일은 부대의 대장으로써 그들을 이끌 의무가 있었다.

부하들을 구슬리되, 때로는 그 자존심을 찍어 누를 필요도 있단 것이다.

‘야이 새끼들아. 군인이 감정적으로 나서면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상부에서 자결하라 명령하는 게 아니면 까라는 대로 까야지.’

‘아니, 그래도…….’

‘니들 기분이 수틀린다는 이유로 항명을 밥 먹듯이 해대면 교수대에 목 걸리는 건 책임자인 나야 이 새끼들아. 니들이 나 없이 전장에 나가면 화살받이밖에 더 되냐? 엉?’

자신의 감정보다도 타인의 목숨을 우선시해라.

그건 자신과 부하는 물론 아군에게도 적용되는 바.

카일은 그런 자신의 마음가짐을 자신의 부하들에게 누차 강조해 들려주었다.

‘정 이유가 필요하면 그냥 이렇게만 알아둬.’

설령 살려야 할 아군들이 신성력과 의술을 비교하며, 자신들에게 핍박을 가한다 하더라도.

‘저놈들이 아무리 개새끼들이라도 우리 개새끼들이라고.’

동맹이란 문화와 역사가 다르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그런 사소한 분쟁을 감내해야만 성립되는 것임을.

* * *

"…내가 개자식이라도 당신들 개자식이라서 그렇죠."

그 깨달음을 솔직히 말하니 그들의 얼굴에 하나 둘 씩 의문이 떠올랐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성직자. 하물며 이제껏 이해와 존중을 멀리 하며, 자신들의 정의만을 추구해온 자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셰인은 제 의견을 멈추지 않았다.

"출신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아는 게 다르다 해도……. 결국 우리는 같은 진영에 소속되고 있죠. 같은 적을 앞두며 싸웠고, 그리고 싸움이 끝난 후엔 이렇게 같은 자리에 모여 있어요."

"무슨 말을……."

"진짜로 적이라면 바로 칼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마당에, 그래도 대화라는 걸 나눌 여유는 있는 거잖아요."

"……."

"……당신들도 그걸 아니까 저를 죽이지 않는 거겠죠."

결국에는 공공의 적을 눈앞에 둔 사이가 아닌가?

서로를 멸시한다 한들, 다른 목적이 있다 한들 최소한의 협력은 필요하다.

그것이 셰인이 그들을 구한 이유의 전부.

세상을 선악으로만 나누는 성직자들에겐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셰인과 같은 군인에겐 상식으로도 여겨졌던 일이다.

"나도 당신들 싫어요."

물론, 결국엔 서로에 대한 혐오를 깔고 들어가는 동맹이다.

그렇기에 셰인 역시 그들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감언이설로 속이려 해도.

서로가 다른 것을 추구하는 이상 어중간한 배려는 오히려 독이 될 테니까.

"그래도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 3할을 넘는 사람들이 교단에 속해 있고, 또 이 나라가 그걸 지지하고 권장하니까……. 그런 곳이라도 살아가야 하니, 당신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좀 해보려는 거지."

그의 목적은 제국을 멸망시키는 게 아닌, 이 제국을 변화시키는 것이니까.

그러니 척을 지더라도 결코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다.

풍조에 순응하면서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선, 무턱대고 증오만을 품어선 안 될 터이다.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내 주변 사람들 정도는 지킬 줄 알아야지. 이 정도면 댁들 구할 이유로 충분한 거 아니에요?"

그러한 의견을, 셰인은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주장하였다.

그 말이 교단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오만하게 여겨질지 알지 못한 채.

"……멍청한 녀석. 그런 몰골로 누구를 지킨다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이냐."

뿌드득.

핀들레이가 이를 갈며 비탄을 터트렸다.

"구원이란 건, 우리 인간이 쉬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오직 이 세상을 만드신 주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그건 오만한 소년을 향한 비난이었고, 동시에 교단에 소속될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향한 자학이었다.

모두가 구원을 바라기에 만들어진 것이 교단인 것을…….

이 소년은 그런 원대한 이상을 조롱하듯, 개인이 짊어지기조차도 버거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고 있었으니까.

"네 녀석이 아무리 강하고 많은 것을 안다 해도……. 결국 그 역량은 한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네 녀석은 그걸 망각하고 오만에 도취된 결과가, 지금의 네 꼴이라는 걸 알아야만 해!"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가능하다 말하는 모습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신념이.

"그러니 앞으로도 살고자 한다면 알아두는 게 좋을 거다. 지금의 네가 이렇게 된 것이 네가 벌인 방만의 대가라는 걸."

인간의 나약함을 전제로 쌓은 교리와, 그것을 섬기는 교단을 부정하는 것이라 여기면서도 너무나 올곧게 느껴지기에.

차마 그를 향해 겨누어진 빛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주교님……."

"아무 말도 하지 말게."

핀들레이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게 비난이건, 옹호건 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떨리는 손으로나마,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일을 결행할 뿐.

"우리를 구해줬다 해도 엄연히 이단이라 부를 자네. 그런 그에게 손을 뻗는 건 필요한 일일지라도, 그 필요가 신앙에 해를 가한다면 그 또한 시련이라 부를 일로 다가오겠지."

그럼에도 핀들레이는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주교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독실한 신자가, 이단을 향한 자비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래, 이걸로 나 역시 그대들과 같은 죄인이 된 게야."

이곳에 있는 모두가 부정을 저질러놓고도, 오직 혼자만이 떳떳함을 주장할 순 없으니.

"자네들이 저지른 일에 비하면 크다곤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같은 죄인이 된 입장에, 어찌 그대들을 꾸짖을 수 있겠나?"

자신이 존중하는 이들의 부정을 감내하기 버거웠기에……. 그는 이단자를 향한 경의로 그들의 죄를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안심하진 말게. 이 상황에서 눈을 돌리고, 누구에게 말하지 않는다 한들……. 우리 스스로가 오늘에 범한 죄를 기억하고, 하늘 역시 우리의 죄를 지켜볼 테니까."

치료를 이어가는 핀들레이의 손에 떨림이 잦아들었다. 차차 망설임이 사라져간다.

"그것이 두려울지언정, 그럼에도 감내하며 살아가겠다면……. 결코 오늘의 일을 잊으려 하지 말게. 이 날을 매 순간 되새기며 고해를 반복하게. 그리 한다면, 그대들은 결코 타락의 길에 들어서지 않을 테니."

그렇게 그는 제 충고에 차차 끝맺음을 고하였다.

이 혼란 또한 하나의 시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길 간절히 빌며.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수단으로, 배교를 택한 이들이 구원받는 길이라 여기면서.

"……신이어."

그 말을 깊이 새겨들은 한 신자가 손을 모았다.

"부정을 저지른 우리를 용서치 마소서."

이어지는 것은 고해였으나.

그건 죄의 용서를 갈구하는 것이라 할 순 없었다.

제 죄를 인정하면서도 살아가겠다는, 그렇게라도 신앙을 유지하겠다는 마음.

그로부터 비롯된 빛은 작았지만, 그 빛을 발하는 건 혼자만이 아니었다.

"허나 알아주십시오. 금기를 범하기 이전, 그대를 섬겼던 우리의 신앙은 진실되었음을."

또 다른 신도가 기도를 읊는다.

"이 세상을 이롭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진심임을 알아주소서."

그 옆에 있는 이가 뒤를 잇고.

그렇게 모두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간다.

"우리에게 내려질 빛이 천당으로 향하는 길을 비추지 않을지언정, 그 빛을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쓰이는 것을 허락하게 해주소서."

"그 빛으로 이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서."

"그대의 자비를, 이 고결한 신념을 가진 소년을 비추어 주소서."

그렇게 모든 신자들의 몸에서 흐르는 희미한 빛이 하나로 모이고, 이윽고 그것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교리가 절대적이지 않은 곳.

오직 개인의 마음만이 신앙을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인 땅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준 소년을 향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심을 발한다.

""이 소년의 올곧음을, 이 세상이 받아들여주는 날이 오기를 허락해 주소서.""

그것은 이단자를 위한 찬송가.

부정을 저지르기에 허락되는 빛이 이윽고 소년을 감싸고, 그 상처를 차차 달래어갔다.

그 광경을 멀찍이 지켜보는 소녀는 성경의 한 구절을, 한 성자가 남겼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방향이 어긋날지언정, 그 신념만은 올곧은 자를 마주했다.’

그 방향의 어긋남이란 그릇됨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름에서 비롯된 것인가.

어느 쪽이건, 그 올곧음을 인정하는 노력 역시 순교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신앙이 없는 소녀는.

은연중 그러한 깨달음을 차차 쌓아가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제3주둔구역의 병력 몰살과 성기사단의 궤멸적 피해, 그리고 잠시 물러났을 뿐 인근을 배회하는 수천 명의 야만족들의 발견까지……."

제 손에 쥔 서류의, 제3주둔지의 습격 사건의 보고서를 읽는 사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같이 영지군에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간과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린 원정대의 피해가 전멸이 아닌 반파로 그쳤단 것이다.

"수천의 대군이 고작 500채 안 되는 성직자들을 마주한 것만으로 물러났다……. 그 이유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쓰러져서라고 보고서에 적혀 있군."

이윽고 사샤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해졌다.

몸 곳곳에 반창고와 붕대를 두르고 있는 소년에게로.

사샤가 그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걸 14살의 애송이가 일으키는 게 가능하다 생각하나?"

접대용으로 내어진 허브차를 태연히 마시고 있는 소년.

"…이미 일어난 일인데 거기에 어떻게 불가능을 논하겠어요?"

태연한 목소리였다.

마치 이전에 겪은 참극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듯.

그 태도를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부관, 존이 어깨를 으쓱이며 사령관을 돌아보았다.

"뭐, 셰인의 말대로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그 왜, 세상엔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당장 15년쯤 전만 해도 소년병으로 이루어진 정예부대가 있었고……."

"부관. 지금 이 서류에 적힌 일은 천재가 아니라 괴물이 되어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고작 14살의 아이가 이런 일들을 일으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정작 당사자인 셰인은 그 말을 모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기만 할 뿐이었다.

"저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지 않나요? 영지에서도 저희가 없는 동안 심한 일을 당했던 거 같은데."

"뭐, 제 생각도 마찬가지긴 합니다."

창문을 슬쩍 돌아보던 존이 사샤를 대신해, 이전 사태에 대한 피해를 설명해주었다.

"당시 성벽을 습격했던 대형종 마물은 결국 처치하지도 못했죠. 수만 명이 달려들어도 쫓아내는 게 고작이었으니……."

셰인 쪽에선 성직자 수백 명이 죽었지만, 이쪽은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그 때에 살아남은 성직자들도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고자 휴식 없이 투입된 상태.

부관의 입장에선 그런 상황에, 일개 죄수병을 따로 불러 심문을 하는 건 못 마땅히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관으로써의 입장.

"…이번에 너희 쪽에서 벌어진 피해는 엄연히 ‘내부에 숨어든 반란군’을 감지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순례 원정의 목적지였던 제3주둔구역.

그곳은 본래 최소한의 수비와 감시병력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내부에 숨어든 스파이의 존재를 간과한 나머지 끝내 전멸에 이르고 말았다.

정보의 왜곡은 때때로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유도하는 법.

사령관의 입장에선, 피해를 수복하는 것 이상으로 반동분자의 색출을 더 우선시할 수밖에 없단 것이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너도 제대로 답을 해줘야 할 거다."

그만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반란 분자의 조사는 철저히 해야 할 터.

"셰인 골드리안. 네 정체가 뭔지에 대해서."

지금의 독대는 그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

그 의도를 알아차린 셰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말하긴 좀 그러네요."

"…일개 죄수병이 상관에게 불복종을 하겠다는 건가?"

"‘지금은’이라고 했어요."

셰인이 존을 힐끗 쳐다보았다.

밝히는 건 ‘단둘이’있을 때에 한한다는 것.

어찌 할까 고민하던 사샤가, 이내 부관을 향해 손짓을 했다.

"…어쩔 수 없죠."

일개 죄수병과 사령관이 독대를 한다.

거의 전례가 없다시피 한 일이지만, 전례가 없는 일을 저지른 건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사령관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괜찮으리라.

그 신뢰를 남기며 부관이 자리를 벗어나고, 이내 이 방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그 후 긴 침묵이 흐른 뒤 셰인이 얘기를 시작했다.

"전 200년 전 사람입니다."

많은 고민을 거친 후에 내린 답이었다.

* * *

사샤 블레이즈.

그녀는 자신보다도 전장에서 굴러온 경험이 많은데다, 제국의 상식을 벗어난 일들을 여럿 접해온 사람이다.

그런 자가 제 존재를 의심하는 걸 넘어 경계심까지 품은 상태.

어중간한 거짓말은 금세 간파할 것이며, 숨기려는 시늉이라도 했다간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의심한 시점에서 정체를 밝히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겠지만, 셰인은 그것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이상에 동참해준다면, 자신의 목적 역시 더욱 수월히 진행될 테니까.

"……요컨대 네가 이제껏 해온 일들은 200년 전의 경험을 빌려 이룩해냈다는 건가."

이내 모든 설명을 들은 사샤가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도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백이거늘.

"놀라지 않으시네요."

그런 직설적인 발언에도 별달리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태연한 모습이다.

"상정 내의 일이다. 이런 걸 비밀이라 여긴 게 우스울 정도로군."

"…혹시 저와 같은 사람을 마주하신 건가요?"

"환생이란 케이스는 처음 본다만, 200년이 넘어 묘지 밖을 빠져나와 벽 밖을 돌아다니는 언데드나 그 비슷한 건 본 적이야 많지."

"언데드를 환생자랑 비교하는 건……."

"200년 전에 존재했던 육체도 살아 움직이는데,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이 돌연히 제국 어딘가에서 태어날 수 없다 단정 짓는 게 이상한 것 아니겠나?"

이단의 군주에게 있어선 새로운 오컬트의 등장조차도 일상일 뿐이었다.

거기에 동반되는 건 경악이 아닌 소소한 호기심, 그리고 어떻게 이용해 먹을 수 있냐 일 뿐.

"200년 전 적국에 속한 병사라……."

이내 사샤가 다 태워진 시가를 재떨이에 내던지고, 새로운 시가를 입에 물며 라이터의 불을 지폈다.

"…제국이 원망스러운가?"

다시 말문이 열린 건 한 모금의 연기를 머금었을 무렵.

셰인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처음엔 그랬죠."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원망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때와 지금의 제국은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 제국의 의지를 이어받은 것이 지금의 나라지."

"저도 그때랑은 사람이 달라졌죠. 14년은 2번째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도 긴 시간이니까."

물 흐르듯 이어진 대답은, 정말 자신이 하는 말에 거짓이 없음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물론 속이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지금의 말만으론 의심이 아주 풀렸다곤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당장은…….

당장 눈으로 보기엔, 그가 제 휘하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적어보였다.

"셰인 골드리안. 이번 성과를 빌어 너에게 제안을 하겠다."

그러니 지금의 제안을 하는 데엔 일말의 거리낌도 존재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제안은 분명 제 의도대로 이루어지리라.

"부대를 하나, 키워보지 않겠나?"

자신에겐 이단자들을 회유할 수단이 넘쳐나고.

이자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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