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57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온 지 몇 달 안 된 죄수병을, 하물며 미성년의 소년을 장교로 승격시킨다.
그건 이 블레이즈 영지가 만들어진 200년 동안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나는 농담이란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상식을 부수는 건 이 영지에선 일상과 같은 것.
이 영지에 자리한 규율은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기용한다는, 그 하나의 철칙을 기반으로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설령 이단자에 구시대의 잔당이라 한들, 그자가 영지에 위험이 되지 않는다 판단되면 권한이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단 것이다.
"그리고 내 의중이 어떻건, 이 제안은 너에게도 그다지 나쁠 것이 없는 거겠지. 애초에 이단자인 네 녀석이 출세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해봐야, 이 제국에선 유일하게 이곳뿐일 테니까."
그 출셋길을 최고 책임자가 적극 지원해주겠다.
그건 제국의 풍조를 바꾸고자 하는 자에겐 더 없이 매력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 역시 이제껏 마주해온 이단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단의 문물을 제국에 전파하는 것을 노리고 있을 테니까.
"……확실히 메리트가 있긴 하네요."
그걸 갈망하는 만큼, 그에 특화된 부대를 키운다는 제안을 거절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예상했지만…….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툭.
입에 물려진 담배가 떨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제국에서 유일하게 이단이 허락되는 땅에서, 그 땅을 지도하는 군주의 호의를 거절한다는 거니까.
"농담은…… 아닌 것 같군."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에 농담을 할 만큼 눈치가 없진 않거든요."
셰인이 쓰게 웃었다.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거절이라…… 내가 그걸 강제로 명령하면 어떻게 할 거지?"
애초에 상대에게 선택권 따윈 없다.
모병으로 온 것도 아닌 형을 수행하고자 온 상태.
신분이 죄수병인 만큼, 그 신변을 어찌 할지는 사령관에게 달렸다 할 수 있다.
재대 직전에 꼬투리를 잡고 처형을 해도 제국에선 오히려 환영할지도 모를 터.
그건 죄수병인 셰인 스스로가 더 잘 아는 일일 것이다.
"그게 사령관님에게도 아쉬운 결과를 불러일으키리란 걸 열심히 설득을 하겠죠."
그럼에도 셰인은 자신의 태도를 완강히 고집했다.
거부가 아닌 설득이란 말까지 하면서.
"…재미있군."
건방진 태도지만, 상대는 이 상식을 벗어난 영지에서도 처음 보는 이레귤러니까.
그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선 무엇을 우려하는지, 혹은 어떤 변명을 내뱉는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디 한 번 납득시켜 봐라. 왜 내가 내어준 좋은 기회를 제 손으로 내치는지를."
오히려 이 대화를 통해 우려되는 점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를 터.
수틀리는 게 있으면 처형하면 그만이다. 그리 판단한 셰인이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장 큰 이유를 얘기하자면……. 그래요. 제가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이겠죠."
"…진지하게 답한다고 하지 않았나?"
"진지하게 답한 겁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 솔직함이 도리어 사령관의 골을 아프게 만들었다.
"영지에 오자마자 위병대를 때려눕힌 녀석이 할 말은 아니라 생각된다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들이 호송하던 사람들도 죽어나갈 판국이었으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너의 기준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빨리 성직자에게 환자를 보여주는 게 정답이었으니까."
이 시대엔 의술이 없고, 환자는 조금이라도 빨리 성직자에게 맡기는 게 상식으로 여겨지니까.
"그런 차이가 아무리 거슬린다 해도, 그것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평화주의자가 할 일이라 생각하나?"
"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사상과 윤리관이 제각각인데, 고대인인 제가 그 자리에 세워놓고 설득해봐야 이 시대 사람들이 들어주긴 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폭력만큼 합리적인 수단은 없다.
서로가 주장이 다르고, 말이 다르다 해도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에 좋은 수단이니.
"…독재자나 할 말이군."
관점에 따라선 그렇게 들릴 말이지만, 군대처럼 개개인이 무력을 쥔 사회에선 독재체재가 반쯤 강제될 수밖에 없다.
무력을 가진 자는 욕심을 발휘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선 더 큰 무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제국의 군권을 쥔 자에게 있어, 평화주의자가 힘을 갖춰야 한다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 상대는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은연 중 그런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제 조국은 규모는 작지만, 연합국 내에서도 꽤 준수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죠. 교단과 마찬가지로 의술을 배우는 자들의 위험성을 경계했기에, 그들을 통제할 병력을 갖출 필요가 있었거든요."
의학의 위험성.
그건 이 시대를 넘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자라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마나라는 에너지가 존재하는 세계예요. 사용법만 알면 누구나 물질에 마나를 스미게 하고, 그 성질을 이해하거나, 분해하거나, 축출하거나…… 혹은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는 게 가능한 시대죠."
그리고 이 세계에 자리한 모든 학문은 그것을 법칙 삼아 쌓아올린 것.
관련된 분야의 지식을 익힌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조작할 기회가 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되는 건 생명도 예외가 아니죠. 의지와 의지의 충돌이 있을지언정, 그 의지를 억누르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의사는 평화주의자일 것이 전제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조국은 의료대국이 아닌 광기의 나라로…….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그런 끔찍한 마경으로 알려졌을지도 모르니.
"그런 나라에서 익힌 지식을 이 영지에 전파했을 때에 벌어질 일들…….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필요하다면 윤리마저 져버리는 이 땅이, 제 조국이 했던 통제를 완벽히 재현할 수 있을까?’
의학이라는 기술에 뒤따라올 위험성을 통제하고, 거기에 뒤따라올 도덕적인 문제를 판가름 지을 역량이 존재하는지.
공교롭게도 자신이 보아온 영지에선 그런 통제의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러니 자신의 조국이 우려했던 모든 게 이곳에서도 재현되리라.
그런 불안감을 해소해 주지 않는 한, 셰인은 사령관의 제안을 섣불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민이군."
정작 사샤는 그런 셰인의 진중한 고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었다.
셰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죠?"
"말 그대로의 의미다. 네가 말한 통제란, 애초에 이 영지에선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거니까."
"그걸 말이라고……."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다만."
발끈하는 셰인에게 사샤가 대답했다.
"이곳은 아이헨발트라는 멸망한 나라가 아닌 테라스 제국의 블레이즈 영지다."
"……."
"문화도 지향하는 방식도 네가 살던 조국과는 전혀 다르지. 설령 이곳에 편입하려는 지식이 다른 시대에 사용했던 것이라 한들, 그 지식에 맞춰 기존의 체제마저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꼭 말로 해야 아는 건가?"
셰인은 사샤의 올바름이 제 조국과 다를 걸 우려하고 있었다.
그 우려는 너무나도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애초에 사샤의 입장에서, 셰인의 고민은 고려할 대상조차도 못되고 있었으니까.
"물론 네 말대로 지식에는 그에 따른 윤리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상황을 봐가며 고려할 일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붕괴될 위험에 맞닥트리는 이 영지에선 쓸 수 있는 건 모두 써먹어야만 하지. 가능하다면 그쪽이 가진 지식도 전투나 병기를 만드는 데에도 기용하고 싶을 정도다만……."
움찔.
몸이 움츠러드는 셰인.
사샤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설마 그쪽 나라에선 의학이란 학문을 전투에 기용한 적이 없는 건가?"
"……."
"그래, 어떻게든 써먹었겠지. 전쟁이란 그런 거니까."
전쟁…….
전쟁이니까.
전생에도 아주 귀가 딱지에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잔혹하지만 그럴수록 빨리 끝나는 게 전쟁이니, 외도로 들어서는 것 또한 허락이 되는 거라고…….
그런 사상은 지휘자는 몰라도, 전장에 직접 발을 들이는 군인들에겐 혐오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확실히 당신 말대로……. 내 조국에서도 생화학 병기를 여럿 만들고는 했었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것을 기점으로 셰인의 태도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존대마저 해제하면서.
"…하지만 그때 썼던 것들을, 굳이 이 시대에까지 와서 구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진 않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처참했던 시대에도 말이 많았던 짓거리를,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구현하겠다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아무리 이단의 땅이라곤 하지만, 그 위험성을 가벼이 여기는 태도에선 오만마저 느껴졌다.
거기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건 일종의 경고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전 사건을 겪고도 그런 말이 잘도 나오는군."
그럼에도 사샤는 불쾌감 없이 냉정하게, 그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상대 역시 군인이라면, 굳이 권위로 압박하지 않아도 알아서 순응할 거라 판단했으니까.
"예상치 못한 사태에 원정을 나간 이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광경……. 그런 게 한때의 비극이 아닌 일상으로 여겨지는 게 바로 이 영지다. 그리고 그때의 참상도, 결국 이 영지가 가진 힘과 준비가 부족해서 벌어졌던 일이었지."
사샤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네 내던졌다.
"윤리고 평화고 간에, 그 모든 것도 결국엔 사회를 통제할 힘이 있어야만 고려할 수 있는 법이다. 네 녀석은 네가 가진 지식으로 이룰 모든 일들이 깨끗하기만을 바라는 것 같지만, 거기에 따르는 윤리관을 구현하는 것도 필요에 의한 정착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그는 이 전장을 기점으로 자신의 지식을 전파하고자 하는 상태.
진정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 역시 이 땅에 자리한 규율에 어울려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네가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라 해봐야 이 영지뿐이겠지. 그러니 네가 가진 지식을 활용할 장소를 찾고 싶다면, 네 이상을 위해 무엇을 버릴지 정도는 고려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진정 윤리를 져버린 땅에서 무언가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그 전제는 결코 윤리가 되어선 안 된다.’
그 의견은 과거 군인이었던 셰인 역시 이해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면서도, 왜 그녀가 하는 말에 바로 긍정을 내뱉지 못한 것일까?
‘어째서?’
자신은 이 시대의 유일한 의사로써, 이 시대에 의학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거늘.
의학을 전쟁에 써선 안 된다는 최소한의 윤리만을 버린다면.
그리 한다면 이 이단의 땅에서 연구를 하고, 그로부터 얻은 성과를 제국에 가지고 가 인정을 받을 수도 있을 터다.
그런 쉬운 길이 제 앞에 나타났는데, 어째서 자신은 이것을 거부하려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그런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 이건 정말로 간단한 문제다.
만약 자신이 눈앞에 있는 자의 제안을 수락할 사람이었다면,
제 발로 교수대에 목을 걸러 간다는 짓거리도 하지 않았을 테니.
"그래서 대답은?"
침묵 속에서 사령관이 무뚝뚝히 입을 열었다.
자신과 협력하여 지식을 공유하고 병사를 양성할 것인지. 아니면 거절할 것인지.
사령관은 전자가 되길 희망하고 있었다.
상대가 후자를 주장한다면 ‘교육’을 거치게 될 것이고, 그 교육 후에도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통제가 불가능하다 판단되어 처분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잠시 유예를 주도록 하지. 하지만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네가 이용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이쪽에선 너를 그저 잠재적 반동분자로 취급할 수밖에 없으니……."
"그럴 필요 없어."
고개를 가로젓는 셰인.
그 얼굴은 이전과 달리 편안함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이제까지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당신이 한 말을 곱씹어보니 딱 답이 내려지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래, 상대는 이단자다.
설령 200년의 시간을 넘었다 하더라도, 이제껏 마주해 온 자들과 다른 길에 들어설 리가 없다.
어차피 제국에 돌아가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식이 아닌가.
그런 지식이라도 연구하고 싶으니 이런 전쟁터라도 이용해야 할 터다.
이런 전쟁터에서라도 필요한 지식임을 어필하려면, 이제껏 고수하던 윤리관을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얘기가 잘 통하니 다행……."
"자 그럼, 제안에 대해선 대강 이렇게 마무리 지어 보고."
셰인이 사령관의 말을 잘라내며 화제를 전환하였다.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당신에게 한 가지 문제를 내봐도 될까?"
이전까지의 위태로운 분위기가 거짓말이라도 되듯. 아주 가벼운 태도로 행하는 가벼운 질문.
사령관은 거기에 아무런 적의 없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문제라니, 무얼 말이지?"
"전쟁 중에 장교가 죽는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뭐라고 생각해?"
"……."
뜬금없는 질문이다.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사령관의 말문이 막히자, 셰인이 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냥 사소한 잡담 같은 거야. 지금 시대랑 지금이랑 얼마나 다른지를 알고 싶어서."
전장에서 장교가 많이 죽는 이유. 서로가 같은 군인이니 나눌 수 있는 화제였다.
왜 뜬금없이 고대의 군인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건네는 것인가.
흥미가 느껴진 사샤가 그 장단에 어울려주기로 하였다.
"패전했을 때인가?"
"내 때는 아니었어."
최고 지휘자를 제외하면, 전장에서 죽지 않은 장교들은 대개 매국노로 전락해 버렸으니까.
그리고 이 나라는 200년 간 패배해 본 적이 없는 나라.
패전 따윈 애초에 고려대상이 못 될 것이다.
"그럼 저격을 당했을 때인가?"
"그것도 아니지."
"돌림병인가? 포격? 그것도 아니면……."
"……."
연달아 이어지는 추측에, 그의 입에선 이내 부정하나 내뱉어지지 않기에 이르렀다.
그저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릴 뿐.
그 침묵 속에서 흥미는 경계심으로 역전되고, 이윽고 그 감정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사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극상이군."
-쾅!
대답을 대신하는 굉음.
테이블을 뒤집은 셰인이, 그 사각으로 돌아서며 제 팔에 절개술을 시전하였다.
‘폭력은 언제 어느 때에나 최고의 대화수단.’
특히나 제 말을 듣지 않는 상부에게 쿠데타는 최고의 항명이겠지만, 아무리 기습이라 한들 상대는 이단의 땅을 잠식한 우두머리다.
-투콰앙!!!
테이블이 완전히 뒤집어지기 전, 도리어 사샤의 발길질이 그 테이블을 쪼개며 셰인을 강타했다.
그 직후 시야가 잔상이 되기 무섭게 잡혀지는 머리채.
날아가던 몸을 역으로 잡아채고, 그 몸이 벽과 바닥에 무차별적으로 패대기쳐졌다.
"셰인 골드리안."
난동이 끝이 난 후, 사샤가 엉망이 된 집무실의 끝에 처박힌 셰인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물었다.
"지금 네가 암살미수로 즉시 참수되지 않은 건, 너에게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명치를 누른 발에 힘이 실린다.
그것이 고통스럽게 여겨졌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게 뭉개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예정이었다.
"네가 가진 지식과, 네가 추구하는 목적이 이 영지를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 말이다."
손대중은 이단의 군주에겐 무척이나 쉬운 일이고, 그런 그녀가 직접적인 처형을 결정하는 건 그자가 통제할 수 없다 판단이 되었을 때니까.
아무리 상대가 200년 전의 군인이었다 한들 지금은 14살의 애송이.
사령관의 재량으로 제어 못할 존재가 아니었다.
"설마 그런 것도 모르고 하극상을 벌인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건 셰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상대는 이단의 군주.
이전에 마주친 야만족 우두머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자.
전생의 경지를 해방시켜도 이 어린 몸으론 이길 수 없겠지만, 애초에 그 점이 셰인이 노리는 바였다.
자신이 직접 이길 수 없다는 걸 가르쳐준다면, 이 여자는 자신을 두고 계속 ‘손대중’을 행할 테니까.
"그거 좋네……. 이런 약해빠진 찌끄레기라도 이용가치가 있다는 것만 가르쳐주면, 얼마나 개겨도 뒤질 일은 없다는 거니까."
"죽이지만 않을 뿐이지. 그 외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말로 해야 하는 건가?"
"그거면 충분하지, 나 때는 상관한테 보고 올리는 거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는데……."
소위 윗사람이란 듣기 좋은 말만을 듣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아랫사람들의 거짓된 보고만을 듣고 파토가 나는 군대를, 셰인은 이제껏 무수히 봐왔다.
"그런 마당에 영지에 온 첫날부터 사고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노려도 얘기 정도는 들어주신 다는데……. 이 기회를 어떻게 그냥 썩히겠어?"
아무리 항명을 해도 죽을 일이 없다니, 자신과 같은 돼먹잖은 놈들에겐 최고의 상사가 아닌가?
그 의도를 알아차린 사샤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터트렸다.
"……가끔 그런 녀석들이 있지. 처벌을 버티기만 하면 자기가 한 말을 들어줄 거라 믿는 녀석들."
압도적인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이란, 때때로 천 마디의 말보다 더 큰 설득력을 실어주는 법이다.
사령관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이제껏 그런 녀석들을 수 없이 봐왔던 몸이기에.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일이지. 내가 이제까지 너와 같은 녀석들을 얼마나 상대해왔다 생각하는 것이냐?"
이단의 땅 블레이즈.
그곳을 통치하는 군주가 하는 일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녀석들에게 고삐를 채우는 것이다.
상대가 이단자인 이상 강함이고 사상이고 간에, 그 모든 것은 그녀에게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얌전히 투항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네 녀석을 굴복시킬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니까."
이후에 이어질 것은 투항이 이루어질 때까지 반복되는 일방적인 폭력뿐.
그 미래를 앞두고 있음에도, 이단의 소년은 멍이 가득한 얼굴로나마 의연히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당신은 날 굴복시키지 못할 거야. 애초에, 내가 겪은 건 당신이 경험한 거랑 차원이 다르거든."
"……하하."
사령관이 웃었다.
영혼 없는 웃음소리.
거기에 어려야 할 힘은 그의 머리채를 쥔 손에 실려 가고 있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말단 병사가 사령관 앞에서 군번줄 자랑하는 꼴을 보고."
-콰앙!
손이 휘둘러지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난동만이 반복되는 현장.
이 집무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그게 전부였다.
* * *
카일에게 있어 상관의 폭력이란 무척이나 익숙히 여겨지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서열이란 절대적이고, 그 절대성으로 인해 상관의 부당한 처사도 묵묵히 참고 견뎌야만 했으니까.
이 순간 스멀스멀 떠오르는 옛 기억은, 그런 폭력에 대한 익숙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네가 새로 온 부관이야?’
그리고 막 떠오른 기억은 셰인에겐 무척이나 꺼려지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를 불러일으킨 인물에 연루된 사건.
그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 네. 이번에 새로이 아이헨발트 왕국군의 지원부대에 합류한 메디슨 카일이라고 합니다.’
……메디슨 ‘카일’이라니.
이름부터가 그런데 대체 어떻게 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