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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64화 (64/255)

의무병의 환생 64화

"다녀오셨어요 셰인~ 회의는 잘 됐나요?"

"엿만 오지게 먹고 왔습니다."

"평소랑 똑같네요~"

연구실로 돌아오니 동료가 얄미운 소리를 내뱉어왔다.

케이미 케미스트리.

셰인이 사용하는 연구실을 공동명의로 등록한 자로, 4년 전부터 서로의 연구를 돕고 성과를 공유해온 협력자였다.

지금에 와선 그녀도 스승의 밑에서 벗어나 핵심 연구원으로 승진한 상태.

셰인이 업무차 밖으로 나갈 때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이 연구실에서 셰인과 함께 성과를 공유하는 데에 투자하고는 하였다.

즉, 케이미는 3년 이상 숙식을 같이 해온 동거인이라는 것.

"후후, 셰인."

케이미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몸에 걸친 가운에 손을 올렸다.

스르륵 내려가니 드러나는 굴곡이 도드라진 일상복.

안경의 밑으로 보이는 눈빛에는 색이 살아 있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지치신 것 같은데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아니면 목욕부터? 그것도 아니면……."

그런 여인이 제 입가에 손가락을 올리며 속삭이다, 이내 제 품에 손을 집어넣으며 옷섶을 뒤적였다.

그 손가락이 이내 가슴팍으로 향해지고…….

"마침 새로운 제조식을 만들었는데 좀 봐주시겠어요!?"

이윽고 그 속에서부터 돌돌 말아놓은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내용물은 으레 그렇듯 악필로 적혀 있는 화학식. 새로이 만들려는 화약의 레시피였다.

"이번에는 질산에 황산을 섞고, 거기에 셀룰로스를 물들여서 써보려고 해요! 이름하야 무연 화약 니트로셀룰로스! 이 화약이 가설대로 된다면 보통 화약이 터졌을 때 생성되는 연기나 불순물이 최소화될 텐데~!"

"나중에 볼 테니까 책상에 올려놓으세요. 전 한숨 좀 잘 테니까."

신나서 떠드는 그녀의 몸을 툭 밀친 셰인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히며 나타난 건 무지막지한 서류로 어질러진 방.

근래엔 밤샘작업이 많았기에 정리를 하기에도 여의치가 않았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정말 지친다 진짜."

침대에 몸을 눕힌 셰인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4년.

이 영지에 온 지도 그만한 시간이 흘렀다.

앞으로 출소까지 1년밖에 안 남은 셈이지만, 정작 잠자리에 들려는 셰인의 얼굴은 그다지 좋지 못한 상태였다.

‘역시 4년으로는 어림도 없나.’

4년간 이룬 게 없냐 하면 절대로 아니다.

3년간 집필하고 출판한 책은 제국 내에서도 여러모로 호평을 받았으며, 그 교본을 사전에 영지군의 의무교육에 편입하니 생존률 역시 크게 증가하였다.

사망률이 줄어든다는 건 그만큼 숙련된 병사가 쌓이고, 그건 즉 훈련시간과 인력충당에 의한 예산이 감소한다는 것.

실제로 영지의 발전은 셰인이 온 후 영지의 발전도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병사들이 자신보다 어린 셰인을 ‘선생님’이란 존칭으로 부르는 건, 생존과 발전 양측 모두에 기여를 한 감사와 존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이상이 큰 만큼 아무리 개선을 해도 아쉬운 것투성이다.

대표적으로 수면제, 진통제, 항우울제 등.

제국에서 악용되리라 여겨, 철저히 금지된 약들의 사용은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한 인식을 어떻게든 완화시키고자 ‘생활의약품 연구직’이라는 걸 창설했지만, 허가받은 약이라곤 가벼운 감기약이나 소화제 등……. 상비약으로나 구비하던 물건들이다.

‘아이헨발트에서 그런 건 소견서가 없어도 약국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었지.’

상비약이라도 있으면 생활이 편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전문치료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다.

당뇨치료제인 인슐린, 혹은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

그 모든 것은 특유의 부작용과 중독성으로 인해, 아이헨발트에서도 엄연히 자격을 갖춘 자들만이 취급하는 것이 허락되었었다.

통칭 전문의약품.

전문이란 말이 들어갈 정도로 취급에 주의가 필요한 만큼, 치료에 기용하기 위해선 지도층의 협조를 반드시 구해야만 한다.

‘교단만 문제인 게 아니야. 그런 약들이 안정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관리체재도 갖춰야 하지.’

약학과 의학에 대한 지식이 아직 보편화되어있지 않은 시대.

그런 상황에서 전문가 한 사람의 말만을 듣고 따르면 무지한 자들, 혹은 악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통제의 구멍을 뚫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현 시점에선 마약성 약물의 유통은 금지하는 게 옳다.

분명 그럴 테지만…….

‘하다못해 이 영지에서만큼은 허락해 줬으면 했어.’

모르핀.

강력한 부작용이 뒤따르지만, 그만큼 효과도 강력하여 기적이라 불리는 시술도 성공케 하는 진통제다.

교리에는 어긋나겠지만, 교국을 표방하는 나라의 국민 모두가 신앙에 의한 안식에 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앙의 대체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 상태.

구급법이 널리 전파되고도 죽어나가는 병사들이 많기에, 더욱이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곳에 있는 게 내가 아닌 스승님이었다면……. 콜라 같은 편법 없이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피오 아스클레.

오늘따라 그녀에 대한 부재가 더욱이 크게 느껴졌다.

환생 후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금의 셰인은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언제나처럼 그녀의 그림자를 뒤따르기만 할 뿐.

‘스승님은 과연 어떤 방법을 썼을까.’

그렇게 오늘도.

셰인은 그녀의 가르침을 수면제로 삼으며 잠에 들어갔다.

* * *

밤은 늦게, 아침은 일찍.

셰인에게 잠이란 그런 것이었다.

언제 잠을 자더라도 태양이 뜰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눈이 떠지는……. 늘 수면부족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고질병.

‘그땐 밤낮 가리지 않고 환자가 들어와서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야 했으니까.’

반대로 자신과 동거하는 여자는 낮밤이 일정하지 않다.

밤샘 작업이 일상적인 연구원의 고질적인 직업병이라 할 수 있으리라.

"셰인~ 저번에 공장에서 주문한 거 왔어요!"

오늘은 낮에 자려나보군.

목소리를 따라 공동 연구실로 나가니, 다용도 테이블에 상자가 하나 올라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제작반에 발주한 물품의 샘플이 들어온 것.

케이미는 그 샘플이 담긴 상자를 멋대로 뜯어 내용물을 살피고 있었다.

‘괜히 건드리다 저번처럼 망가트리면 어쩌려고.’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런 철없는 모습이 썩 나쁘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교단과 달리 자신의 연구를 무작정 배척하진 않으니까.

"으에에, 이게 뭐야."

하지만 정작 샘플을 보는 케이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한 상태였다.

케이미가 눈살을 찌푸린 채 셰인을 돌아보았다.

"셰인. 공장에서 잘못 보낸 거 같아요."

상자에서 꺼낸 것은 얇은 종이…….

아니, 종이보다도 훨씬 얇고,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재질을 가진 물건이었다.

셰인이 제작반을 통해 새로이 주문한 ‘붕대’였다.

"셰인이 주문한 건 분명 지혈용 붕대 아니었나요? 근데 이건 붕대로 쓰기엔 너무 얇은……. 우앗!?"

손가락으로 툭툭 당겨대던 붕대가 반으로 갈라졌다.

멋대로 건드리다 망가진 꼴이지만, 실제로 케이미의 말대로 붕대라기엔 내구성이 매우 떨어지는 물건이었다.

여러 겹을 쓰더라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게 내구성이 형편없기에 가지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제대로 만들었네요."

"네? 이렇게 잘 찢어지는데?"

"이 정도가 좋은 거예요. 너무 질기면 흡수력이 떨어져서 지혈이 안 되거든요."

셰인이 오기 전, 제국에서 붕대란 계륵으로 여겨지는 물건이었다.

지혈이야 신성력이란 훌륭한 치유수단이 있으니 잠깐 막는 정도면 충분하고, 그 정도에만 쓰는 물건을 재차 빨아가며 쓰는 것도 무척 번거로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구급법이 도입된 상태.

각 병사들이 붕대를 의무적으로 지참할 필요가 있었지만, 정작 붕대의 주 소재가 되는 양모나 실크의 생산지는 영지의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유통이 쉽지 않은 만큼 생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

지금 그들이 앞둔 건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훨씬 값싸면서도 편히 생산할 수 있는 붕대의 대체품으로 쓸 물건이었다.

"내구성은 떨어지지만 흡수력은 양모보다 5배는 더 좋아요. 뭣보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한 번 쓰고 부담 없이 버리기도 좋다는 장점이 있죠."

"아, 이거 종이랑 같은 소재를 쓴다고 했죠?"

종이.

제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물품이며, 이는 블레이즈 영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단이라 해도 이곳에 존재하는 학자의 수만 해도 마탑보다 훨씬 많고, 그들 모두가 종이에 글을 적거나 기록을 쌓고 자료를 공유하니까.

그리고 현재 셰인이 손에 쥔 붕대의 소재는 목재 펄프.

종이와는 중간까지 제조공정이 같은 소재다.

"음, 이 붕대의 이름이 뭐라고 그랬죠? 종이랑 같은 소재인데 종이보단 구리니까…. 똥종이?"

‘센스 하고는.’

케이미의 처참한 센스에 셰인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셀루코튼이라고 해요."

"셀루코튼?"

"종이의 소재가 되는 재료인 목재 펄프를 구성하는 셀룰로스를 섬유(cotton)의 형태로 만들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죠."

"으음, 뭔가 부르기 힘든 이름이네요. 입에도 착 감기질 않고……."

"정 부르기 힘들면 다른 식으로 불러도 돼요. 이를테면……."

잠시 머리를 굴리는 셰인.

이후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건 과거 전쟁시절에 쓰였던 이름이었다.

"…네, 티슈가 좋겠네요."

티슈.

생물의 조직구조를 뜻하는 의학용어(Tissue)로, 이 티슈는 전쟁 당시 아이헨발트에서 붕대보급량을 충족시키고자 개발한 물건이었다.

그걸 이 시대에 구현하기까지에 4년…….

참으로 오래 걸렸다 싶었지만, 이마저도 구급법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았다면 만드는 것이 크게 미뤄졌을 것이다.

"이야~ 셀룰로스를 이렇게 만드는 법도 있구나~!"

티슈를 이루는 재료가 셀룰로스라는 건 그녀에게도 의외라 여겨질 것이다.

어제 그녀가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맡겼던 설계도, 발화시 연기가 나지 않는 ‘무연화약’의 후보로 꼽히는 게 질산을 함유한 셀룰로스였으니까.

의약품도 화약도 결국 화학을 기반으로 하니 돌고 도는 법.

그것이 약을 연구하는 셰인과, 화약을 연구하는 케이미가 4년간 함께 할 수 있던 이유였다.

"후후, 역시 화학은 대단해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도 이렇게 공통점이 생기다니. 연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민트와 초코를 더했을 때에 최고의 간식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티슈를 내려다보며 감탄을 내뱉는 케이미.

반대로 셰인의 표정은 팍 구겨졌다.

"…그걸 아직도 먹고 있어요?"

"그야 물론이죠! 셰인 덕분에 찾아낸 인생 간식인데……. 아! 마침 딱 맞게 얼었네요!"

케이미가 실실대며 냉동고에서 간식거리를 꺼내었다.

액체질소를 이용해 간식거리를 얼려먹는 건 화학반 최대의 사치.

하지만 그렇게 꺼내어진 물건은, 셰인의 입장에선 끔찍하기 그지없는 독극물이었다.

"셰인도 드실래요?"

"혼자 많~이 드세요."

박하에 카카오를 더해 만들어진 민트초코 빙과.

케이미는 그걸 최고의 간식이라 말하고 있지만, 셰인의 입장에선 미각을 망가트리는 독성을 함유하는 무언가였다.

독을 그토록 경계하는 제국이거늘, 저 민트초코에 대한 유통이 이 영지 내에서 소소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경악스러울 정도다.

‘모르핀은 안 되는데 왜 저건 되냐고.’

궁시렁궁시렁.

폐기물을 퍼먹는 케이미를 보며 한탄을 흘리는 것도 잠시.

-부그르르~

무언가 끓어오르는 소리.

정확히는 탄산이 끓는 소리다.

그 익숙한 소음에 셰인의 고개가 뒤로 향해졌다.

"케이미.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민초에 콜라 넣어서 먹으려는데……."

"그걸 왜 넣어 미친년아!"

보다 못한 셰인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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