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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65화 (65/255)

의무병의 환생 65화

셰인이 콜라를 만든 건 어디까지나 소화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

피로회복과 자양강장 효과를 겸하는 약주의 용도였지, 결코 폐기물에 첨가할 간식거리로 만든 게 아니었다.

"아니 콜라를 왜 거기에 붓는데요!? 대체 왜!?"

"네? 소화제를 음식이랑 같이 먹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내가 몇 번을 말해! 소화제는 그 옆에 있는 알약이지 콜라가 아니라니까!? 애초에 탄산은 소화에 도움 안 된다고!"

실제로 탄산수는 소화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소화가 잘 되는 느낌이 든다, 하여 소화제의 체감도를 높이고자 집어넣은 것뿐.

실 성능을 따지면 소화제와 달리 ‘일반의약품’조차도 되지 못한다.

"그치만 셰인이 만든 약이라는 건 쓰고 맛이 없는걸요?"

"…약은 원래 좋은 걸수록 입에 쓴 거예요."

"반대로 달달한 건 뭐든 간에 간식으로 먹을 수 있죠. 냠~♬"

이후 케이미가 콜라에 적셔진 민트초코를 한 수저 퍼먹었다.

얼굴에 도는 황홀함.

셰인으로썬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은 식성이었다.

‘저게 만에 하나라도 이 대륙에서 유행하면 내 성이 골드리안이 아니라 골리앗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가로젓던 중.

-똑똑.

아직 해가 뜨기엔 조금 이른 시간, 입구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각에 올 사람이라면 발주품을 가져오는 배달부, 혹은 사령관이 보낸 심부름꾼 정도다.

‘배달부는 이미 왔으니 심부름꾼이겠지.’

문을 열고 나가니 노크를 한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밑부분에 편지 한 장만이 남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신출귀몰하게.

"참나…. 같이 다닌 지 4년째면 얼굴 보일 때 되지 않았나?"

이 영지에 처음 왔을 당시, 요주의 인물로 찍혔던 셰인은 외출할 때마다 감시자가 따라붙게 되었었다.

그리고 그 양상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상태.

이제까지 많은 것을 이루긴 했지만, 아무래도 분야가 분야다보니 만약을 대비해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겠지.’

물론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 셰인의 신분은 정식 군인이 아닌 죄수병이다.

사사건건 항명을 했다간 머리에 납탄이 박혀도 이상하지 않은 입장.

‘신경 쓰지 말자. 저 녀석도 할 일을 하는 건데.’

그렇게 감시자의 존재를 외면한 셰인이 연구실로 들어오며 편지를 훑어보았다.

사령관이 직접 내린 명령서.

그것을 읽던 셰인의 표정이 왈칵 우그러졌다.

‘사샤 그 녀석, 또 귀찮은 걸 시키고 자빠졌네.’

하지만 군대에선 서열이 전부고, 짬이 안 찬 녀석은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법이다.

선택지가 없는데 궁시렁거려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출동하시는 거죠? 짐은 챙겨뒀어요. 늘 가져가는 것들로요."

"또 폭탄 구겨 넣은 거 아니죠?"

"히히, 가면서 테스트 해주시면 좋잖아요~"

"테스트는 무슨. 저번에 가방에서 갑자기 터지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투덜거리며 창고에 들어간 셰인이 정돈된 배낭을 살폈다.

서류가방보다 묵직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글래드 스톤 백.

셰인은 그 배낭 안에 있던 폭탄을 전부 빼버린 후, 가벼워진 가방을 어깨 너머로 짊어지며 창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녀올 테니까 주무시기 전에 연구실 정리 부탁드릴게요."

"네~ 오늘 하루도 신나게 즐기고 오세요~"

"……누가 들으면 놀러가는 줄 알겠네."

쯧, 혀를 차며 방을 나서는 셰인.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케이미가 쓰게 웃으며 후식의 섭취를 이어갔다.

"우리 동생. 어린 나이에 참 고생이 많은……. 아, 엎질렀다."

실수로 엎어진 그릇에 쏟아진 액체가 서류를 적셔갔다.

그를 어찌 할까 당황하는 가운데, 케이미의 눈에 옆에 놓인 붕대의 대용품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로 닦아도 되겠지?"

쏟아진 액체를 닦아내는 케이미.

급한 대로 손을 뻗은 것치곤 흘린 액체가 굉장히 잘 흡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끔 종이로 닦았을 때보다도 훨씬 더.

"오, 이거 걸레로 쓰기 좋네~ 단가도 싼데 그냥 쓰고 버리는 걸레로 써도 되지 않을까?"

콜라를 머금은 티슈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블레이즈 영지는 제국의 끝단에 위치한 장소.

제국 내에서도 가장 고립되어 있는 곳이며, 교외지역 역시 본 영지와 상당한 거리가 있어 왕래가 쉽지 않다.

겨우 만든 통행로마저 겨울처럼 눈이 내리는 때엔 통행에 제약이 생길 정도.

당연히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길을 뚫거나, 눈 위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이동수단은 여럿 강구해 놓은 상태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늑대 썰매.

현재 셰인이 이용하는 이동수단이다.

"좋아, 프레이즈. 이쯤에서 멈춰."

-아우.

셰인의 지시에 자리에 멈춰서는 늑대. 벌어진 입에서 내뱉어지는 헥헥거리는 숨이, 찬 공기를 만나 김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옳지, 착하지."

셰인이 그런 늑대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어주고, 이후 품에서 꺼낸 간식을 그에게 내어주었다.

"자, 여기."

-아우.

작게 울부짖은 프레이즈가 셰인의 손을 물었다.

이빨은 세우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장난일 뿐이니까.

‘진짜 이 녀석이 맹수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

쉐도우 울프.

제국 내에서 가장 위험시 여겨지는 야수 중 하나로, 성체에 달한 개체의 크기는 돼지에 버금간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 덩치로 민첩하게 달려와 몸을 찍어 누른다 생각해보라.

그 위세는 어지간한 위험종에 꿇리지 않을 것이다.

‘정작 사샤는 그 무리를 애완용으로 쓰고 있지만.’

프레이즈는 사샤가 애완용으로 기르는 쉐도우 울프 중 하나.

엄연히 그 무리에 속하는 존재로, 어디까지나 자신이 인정하는 부하에게 유사시에 대여해 주는 것이었다.

그중 프레이즈는 셰인이 멀리 임무를 나설 때마다 호출에 응해주는 존재.

4년이 지난 현재엔 파트너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우우.

"그래그래, 일 다 끝나면 놀아줄 테니까 돌아가면서 사람들 불러와줘. 알았지?"

-우.

갈기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게 울부짖은 프레이즈가, 곧 눈 덮인 언덕 너머로 달려 나갔다.

영리한 아이이니 잘 찾아갈 터.

이후 일이 대강 정리되었을 때쯤엔 분명 증원을 데리고 와줄 것이다.

"자, 그럼 어디 시작해 볼까?"

이후 셰인이 산등성이를 내려가고, 밑에 보이는 경치를 마주하게 되었다.

교외에 위치한 광산지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으로, 마을 곳곳엔 광물을 담는 수레와 그것을 끌기 위한 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셰인에게 이번에 주어진 임무는 그런 마을을 둘러보고 오는 일종의 ‘정찰’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최전선보다도 훨씬 더 깊숙한, 적지 한 가운데에 홀로 기어들어가는 임무.

‘하지만 혼자서 처리할 수 있으면 처리하고 오라고 했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하리라.

곧 셰인이 산을 내려가고, 이후 방책에 둘러싸인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누가 접근한다."

초소와 입구에 서있던 이들이 셰인의 존재를 눈치 챘다.

"숫자는?"

"한명…. 매복은 없어 보여."

"경보 울릴 것도 없겠네."

"성직자인가?"

"내가 가서 확인해 보지."

서로 대화를 나누던 보초들.

그 중 한 명이 곧 셰인에게로 차근차근 다가왔다.

"이봐 사제 형씨. 혹시 길이라도 잃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선 별 다른 적의가 보이지 않았다.

밑으로 늘어트린 주먹이 질끈 틀어쥐어져 있다는 걸 알지 못 한 채.

"전도 중인 거 같은데 운이 없네. 여기에 신 같은 걸 믿는 녀석들은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먼 길 온 수고가 있으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는……."

-콰앙!

다가온 자의 안면에 처박힌 주먹.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한 한량이 눈밭을 구르다 축 늘어졌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심각성을 눈치 채며 손에 무기를 들어올렸다.

-철컥.

노리쇠의 장전음과 함께 겨누어지는 장신의 총구들.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통해, 셰인은 그들이 단순 오합지졸이 아니라는 걸 파악해내었다.

‘반란군……. 더 살펴볼 것도 없겠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교외지역엔 훈련된 병사들이 배치되고, 주기적으로 군부대가 순찰을 돌기도 하니까.

그들과의 연락이 끊어진 시점에서, 이번에 문제를 저지른 놈들이 적잖은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이 새끼가! 사제로 위장했구나!"

"투항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고작 한 사람.

하지만 범상치 않음을 느낀 듯, 반란군들이 셰인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셰인이 자신의 주먹을 들어올렸다.

"자, 반란군 친구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딱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게슴츠레 뜨여지는 눈.

예리한 눈빛에 주눅이 드는 가운데, 셰인이 그들에게 늘 그렇듯 제 경고에 쐐기를 박았다.

"투항하면 살려주고……. 투항 안 하면 딱 살려만 준다."

환생 후 18년.

그는 여전히 불살을 일삼는 평화주의자였다.

* * *

혁명단-푸른 화살.

그들은 제국을 상징하는 붉은 매를 부정하며, 그 매를 떨어트린다는 목적 하나로 제국 곳곳에서 공작을 펼치는 반란 세력이었다.

그 집단을 상질하는 심볼을 거는 조건은 ‘제국에 대한 대항심’ 하나뿐.

현재 광산마을을 점거한 반란군 역시 그것을 사명으로 삼은 자들이었다.

"이, 이 빌어먹을 반란군 새끼들이……. 케헥!"

복부를 얻어맞은 병사가 피를 토해내었다.

한때 이 부근을 정찰하고 있던 영지군 중 하나.

그를 포함한 병사들은 반란군들의 기습에 모두 제압되어, 현재엔 광산의 내부에서 구타를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과의 교전에서 반란군 몇 명이 사망했다는 이유로.

"걱정하지 마라. 죽이진 않을 거니까."

"이후에는 평생 노역장에서 살거나 인체실험에 쓰이겠지만 말이야."

키키킥.

동굴 내에 울려 퍼지는 반란군들의 비열한 웃음소리.

그를 듣고 있던 제국군이 분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이 빌어먹을 녀석들!"

"너희들에게, 신의 천벌이 내려질 것이다."

"신의 천벌 좋아하네."

"그 놈의 신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서 이 짓거리를 하는 거야 이 교쟁이 자식들아!"

저주를 퍼붓는 제국군을 역으로 욕하며 핍박을 가하는 반란군들.

반란군의 수장인 바스타드는 그들을 무심히 쳐다보고, 후드에 감싸인 제 손을 조용히 들어올렸다.

손아귀에 쥐어진 것은 로켓.

그 해치를 열자, 두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그를 반겨주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에 대한 그리움이야말로 그가 반란군에 들어선 이유였다.

‘이쟈벨,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 씁쓸함을 제국군의 피와 비명으로 달래는 것도 잠시.

"바스타드 님! 큰일났습니다!"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는 제 부하의 것이었다.

로켓을 집어넣은 바스타드가 그를 돌아보았다.

"영지군에서 증원이 온 건가?"

작전은 용의주도하게 이루어졌다.

내부의 스파이를 통해 정찰간격과 연락체계를 모두 분석했고, 습격 사실이 본대에 알려지지 않도록 주변 통제도 철저히 행했으니.

물론 그런 사태 또한 영지군 측에선 대비를 한 바.

그들은 순찰지역에 도달할 때마다 통신용 마수정으로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교외지역 정찰대에 생긴 문제를 즉각 파악하는 방책을 세운 상태였다.

당연히 그 사건지로 병사를 보내는 건 예견된 수순.

하지만 그런 방법도 규모를 키우면 준비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아, 그……. 대대적으로 몰려온 건 아닙니다. 한 명인데……."

그래, 결국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선 정예병 몇 명을 추려 보내는 게 고작.

하지만 싸움에선 숫자란 절대적이며, 파견된 소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퇴각속도를 늦추는 등의 훼방이 고작일 것이다.

그 정도야 상정 내의 일.

바스타드는 자신이 기른 부하들이 그 위기를 극복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어지는 보고를 듣기 전까진.

"그게, 지금 사제 한 명이 찾아와,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며 저희 단원들을 몰살시키고 있습니다."

"…뭐?"

"그……. 웬 광신도가, 뜬금없이 나타나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며, 저희 단원들을 몰살시키고 있다 했습니다."

보고를 들은 바스타드가 눈을 껌뻑였다.

사제복?

어머님 안부?

"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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