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69화
셰인이 만든 콜라의 주목적은 소화 보조제 겸 자양강장제.
어디까지나 약주를 표방한 것이지만, 정작 영지민들의 취급은 알콜이 없는 맥주와 같은 간식거리였다.
‘이 놈들은 피로 좀 회복하라 만든 걸 간식거리로 돌려먹질 않나, 이제는 그걸 교외까지 퍼트려서 독극물을 만들고 자빠졌네.’
물론 석회수는 독극물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문제는 돌가루가 첨가된 물이 해롭다면서도 가벼이 마셔버리는 태도다.
이런 풍조가 다른 부분에도 적용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탄산 때문에 석회수를 마셔서 다행이지, 복어독이 성형에 쓰인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되겠어?’
복어에 함유된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호흡근까지 정지시키는 마비독이며, 이 치사율은 청산가리의 5배에 해당한다.
1그램도 채 안 되는 양으로도 2~3명을 죽일 수 있는 수준.
심지어 해독제라고 할 것도 없기에, 복어독 섭취자는 호흡확보 후의 자연회복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물건이 외모를 가꾸는 데에 쓰인다는 게 알려지면 귀족여자들은 혼기에 가까워질수록 떼죽음을 당하겠지.’
그리고 남자들은 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복어가 정력에 좋다며?’같은 말을 하며 용기백배 챌린지 리그를 벌이다 떼죽음을 당할 것이다.
‘……역시 이런 인식을 뜯어고치는 건 블레이즈 영지만으론 한계가 있어.’
도리어 제국에는 변경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상황.
이곳에서 이룬 성과들이 제국에 단시간에 편입되길 바라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근본적으로 제국을 뜯어고치기 위해선, 추후 제국 밖으로 나간 후의 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둬야 할 것이다.
그것을 되새기는 셰인이 한숨을 내뱉고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잠시 여기로 와주세요."
대략 환자들의 처치가 끝난 후, 셰인이 자신이 가진 가방에서 연금술 키트를 꺼내었다.
각종 플라스크에 소형 증류장치 등.
셰인이 그 장치들을 사람들의 앞에 늘여놓은 뒤, 주민에게 가져오라 부탁한 석회수를 플라스크에 담아갔다.
"뭘 하시려는 겁니까?"
"콜라 만드는 법을 가르쳐드리려는 거예요. 할 일 다 끝나면 이거 두고 갈 테니까, 제가 없을 때엔 가르쳐 준 대로 따라하시면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이걸 두고 간다고요?"
"이런 건 귀하지 않습니까?"
"괜찮아요. 저도 이젠 연금술에 익숙해져서 쓸 일이 없거든요."
연금술은 만물에 스민 마나를 통해 그 성질을 분석하고, 그것을 분해하는 것을 기초로 하는 학문.
마나에 대한 조예와 지식이 있다면 도구가 없어도 충분히 구사할 수 있다.
"중고이긴 하지만 사용하는 데엔 문제가 없으니, 사용법만 아시면 몇 년은 더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리 말한 셰인이 증류장치 안에 석회수를 집어넣었다.
정밀한 설계를 통해 내부에 넣고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 석회가 분리되고, 순수한 물에 이산화탄소가 첨가된 탄산수가 분리되었다.
이렇게 분리된 탄산수를 마나를 이용해 차게 식힌 뒤, 코카잎이나 콜라원액을 섞고, 카라멜이나 벌꿀 등의 단 맛을 내는 물질을 집어넣으면 콜라가 완성된다.
‘하지만, 지금은 마땅한 재료가 없으니 대체재를 찾아야겠지.’
어차피 콜라가 각광받는 건 단 맛과 탄산의 조합 때문이지 않은가?
카페인이나 타우린 등,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는 요소들은 전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여기에 과즙을 타서 먹었다 했죠? 과일 있나요?"
"아, 네. 있긴 한데……."
곧 주민들 중 일부가 과일을 가져왔다.
아니, 정확히는 그 껍질이다.
"먹다 남은 걸 모아둔 겁니다. 보통은 말려서 간식으로 먹거나 하는데……. 이번엔 거기에 즙을 짜서 타먹었었죠."
"지금은 과일이 마땅한 게 없는데, 이걸로도 가능합니까?"
"네 뭐……. 단맛만 낼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겠죠."
곧 셰인이 제 앞에 모인 과일껍질에서 즙을 짜내고, 그로부터 응축된 과즙을 탄산수와 섞어내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액체에 도드라지는 색.
그것을 본 주민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오, 오오…. 우리가 만들었을 때랑 전혀 달라."
"색이 깔끔해요!"
과일색을 띤 주스가 탄산을 머금은 채 끓어오른다.
코카잎도 콜라나무도 첨가되지 않았으니 피로회복 효과는 누릴 수 없겠지만, 간식거리로 삼는 조건으론 충분할 터다.
"무, 뭐죠 이건? 입 안에서 엄청 톡톡 쏘는데!"
"물이 좋으니까 맛이 엄청 깔끔해졌어!"
"새콤달콤한 맛!"
"목이 따끔한데 엄청 상쾌하고 시원해!"
"환상적이야!"
한데 모인 주민들이 하나 같이 감탄을 흘려대었다.
겨울날에 차게 식힌 음료를 먹고 있음에도 호평일색.
그런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쟈드한테도 만들어줬었던가.’
쟈드 브링시커.
라인하르트 성에 신세를 졌을 적,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셰인을 납치하고자 했던 조직의 수장이다.
당시 세실을 위해 만든 약주를 아주 맛있게 먹었던…….
‘그냥 먹고 떨어지라고 줬던 건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지.’
그때의 물건이 설마 이렇게까지 각광받을 줄이야.
정말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선생님! 이거 음료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콜라라고 부르면 돼요?"
"콜라가 안 들어가는데 그렇게 부르긴 뭐하네요. 그냥 과일탄산주라고 하세요."
"에에, 형 센스 없다."
"얘가!"
어미가 아이를 야단쳤지만 아무래도 좋다 생각했다.
딱히 이름에 대해서 고심할 만큼 대단한 물건은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주민들은 셰인이 만든 음료를 진중히 여기듯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그래도 그런 단순한 이름은 좀 그러네요. 이왕 지을 거면 좀 더 근사하게 지어줍시다!"
"그래요, 환상적인(fantasy)맛이니까 ‘판타 주스’라고 부르는 건 어떱니까?"
"그거 좋네, 판타 주스!"
판타 주스.
그것이 셰인이 만든 과일탄산주에 붙게 된 이름이었다.
너무 거창한 이름이 붙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뭐, 그건 제쳐두고.
"저기 여러분, 애초에 그거 소화제 편하게 먹으라고 만든 약주예요. 탄산이라는 게 산 성질이 강해서 충치도 많이 생기고, 또 과당을 함축시킨 거라 너무 많이 먹으면 당뇨에도 걸릴 수 있으니까……."
"모두 우리를 구해준 선생님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리고 판타 주스의 탄생을 기리며! 오늘 하루 연회를 즐깁시다!"
"우오오!!"
주의사항을 들려주기 무섭게, 마을 주민들이 환호를 내지르며 축제분위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충고를 하던 셰인이 어찌할까 고민하다,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주스잔을 들어올렸다.
"그래 뭐, 문제 생기면 성직자들에게 가겠지."
술도 담배도 합법인데 탄산음료로 무슨 문제가 생길까?
웃음이야말로 최고의 보약인 법.
그렇게 셰인은 부대에서의 수습이 오기 전까지, 마을사람들과의 조촐한 축제를 즐겼다.
* * *
"…보고는 그걸로 끝인가?"
"네, 뭐…."
대략 뒤처리를 마친 후, 셰인은 블레이즈 영지에 다시 복귀하여 사령실로 향하게 되었다.
셰인을 독대한 것은 초로의 여인.
나이가 있음에도 관리가 잘 되어서인지 얼굴에 주름은 거의 보이지 않으나, 검은 머리카락에는 듬성듬성 흰머리가 보이고 있었다.
사샤 블레이즈.
현 영지의 사령관이자 노장의 반열에 든 여인은, 대략적인 개요를 들은 뒤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떼어내며 작게 한숨을 흘렸다.
"아주 잘해줬다."
회백색의 연기와 함께 내뱉어진 것은 칭찬.
입가에도 만족스러운 웃음이 그려져 있다.
옆에서 함께 보고를 듣던 부관, 존이 의외인 듯 살짝 눈을 벌렸다.
"드문 일이네요. 사령관님께서 부하에게 칭찬도 해주시고."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니까."
다시 입에 담배를 문 그녀가 배후에 있는 성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 마을에 있는 석회는 성벽을 보수할 때에도 많이 쓰이는 물건이지. 보급이 늦어지면 그만큼 방어선의 보수가 더뎌지는 만큼, 정상화를 빠르게 할수록 좋은 일이다. 거기에 더해 반란군의 간부까지 잡아냈는데 평가를 높이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네 뭐, 그렇긴 합니다만, 한 사람만 편애해주는 건 다른 병사들이 질투를 하지 않을까, 걱정 되서 그런 거죠."
"그럴 만한 성과를 내었으니 보상을 준 거다. 특히나 이번엔 생화학 테러 방책에도 의도치 않은 성과를 내었으니."
곧 사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려두었다.
셰인이 붕대를 대체하고자 만든 물품. 셀루코튼이었다.
"이 직물. 연구반의 얘기를 들어보니 방독면의 필터로 쓰기에도 충분한 성능을 가지고 있더군."
영지군에 있어 가장 위험시 여겨지는 것은 생화학병기.
별 다른 교전도 없이, 가스를 살포하는 것만으로 대량의 인명살상이 날 수 있는 반란군의 주 테러 방법이다.
근 4년간 그에 대한 방책으로 방독면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지만, 막상 만들어진 방독면은 필터의 생산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였다.
‘호흡이 가능하면서도 독을 차단하며 유사시에 교체도 간편한 물건.’
그런 물건을 만드는 데엔 현재의 기술력으론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자되는 마당에, 공장을 지나던 연구반이 셰인이 의뢰했던 셀루코튼을 접하게 된 것이다.
조직구조상 생화학 병기의 주 특성인 미세물질을 걸러내기도 좋소, 뭣보다 종이와 같은 공정으로 제조되기에 단가도 매우 싼 물건을.
"값비싼 필터에 비해 효과는 떨어지겠지만, 유사시에 병사들에게 쥐어주어 위기를 벗어나는 데엔 부족함이 없겠지."
죽지만 않으면 신성력으로 어찌어찌 살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힘이 존재하는 진영에 셀루코튼을 필터로 쓴다는 건 셰인도 찬성하는 바였다.
물론 그대로 쓰는 건 힘들겠지만.
"반란군을 몇 번 상대하며 느꼈던 건데, 그 녀석들이 주로 쓰는 생화학 테러는 ‘염소가스’가 주를 이루는 것 같더군요."
"아, 화학반에서도 얘기를 했었죠. 그들이 살포하는 가스는 염소와 숯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존이 옆에서 셰인의 추측을 긍정해주었다.
숯에 함유된 일산화탄소를 염소와 합쳐 만들어지는 것이 ‘포스겐’이라는 염소가스.
이 포스겐은 물에 닿을 경우 염화수소로 분리되며, 이 염화수소의 수용액이 바로 염산이라 불리는 물질이다.
그리고 인간의 폐에는 기본적으로 습기가 자리한 상태.
즉, 흡입하는 순간 폐 내부에 염산이 퍼지며 끔찍하게 죽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화학반 사람들은 해부학에 대한 지식은 모르니, 만드는 법은 알아도 그게 어떻게 인간의 몸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는지를 모르지.’
물론 대처법 자체는 생물학적 지식이 없어도 할 수 있다.
요는 염소가스의 주 성분에 반응하는 물질을 찾으면 된다는 거니까.
"셀루코튼을 필터로 쓴다면, 거기에 암모니아를 적셔서 쓰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요."
"암모니아?"
"암모니아는 염소에 반응하고 결합하는 성질이 있으니까요. 다이너마이트 생산공장이 활발히 가동 중이니 암모니아 정도야 쉽게 구할 수 있을 테고요."
암모니아도 독성을 함유하고 휘발성이 강해 필터를 빠르게 오염시키겠지만, 이번에 필터의 소재로 쓰이는 셀루코튼은 생산도 편하며 쓰고 버리는 ‘1회성’을 전제로 한 물건이다.
양산에 특화된 만큼 필터를 갈아 끼우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으니, 암모니아의 오염에 대한 단점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후후, 그런가."
그 점을 수긍한 사샤가 웃음을 터트렸다.
희미하지만 확실히 드러난 감정. 사샤에겐 보기 드문 모습이다.
그 점을 의외인 듯 쳐다보는 가운데 사샤가 눈짓을 했다.
"부관, 곧장 연구반에 고문을 구하고 오도록. 이에 대한 논의는 차후 회의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이내 부관이 군모를 바로잡으며 방을 벗어났다.
-딸칵.
문이 닫히는 소리.
그를 기점으로 사령실엔 사야와 셰인 단 둘만이 남게 되었다.
사샤가 입에 문 담배를 지져 끈 뒤 셰인을 마주쳤다.
"정말, 당신에겐 여러모로 도움만 받는군요. 카일 선배님."
노인이 소년에게.
그리고 사령관이 일개 소년병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존대를 고한다.
"…그거 좀 안 하면 안 되냐?"
그리고 셰인 역시, 이전까지의 똑 부러지게 보고하던 태도를 거두고 있었다.
사샤는 그 태도를 불쾌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대하는 것이 그녀가 바라는 바였으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만큼은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기로 했으니까요."
"그거야 나도 이해하지만, 그러다 실수로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목격자야 사살하면 그만이죠."
"야야 그런 소리 가볍게 하지 마라 좀."
도저히 소년병과 사령관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관계.
그렇기에 남들의 눈이 들지 않은 곳에서만 허락되는 태도였다.
"카일 선배님. 영지를 대표해, 언제나 이 영지를 위해 봉사해주신 당신에게 감사를 전하겠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것은 이단의 군주가 취하는 부드러운 미소.
그건 오직 이 시대에 셰인 만이 마주하는 게 허락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