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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71화 (71/255)

의무병의 환생 71화

"오랜만입니다 셰인 씨. 그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눈웃음을 지으며 셰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메어리.

그 태도를 마주하고 있자니 왜인지 모르게 닭살이 돋는 게 느껴졌다.

"…뭐 잘못 먹었냐?"

"후후, 제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게 의외인 듯하군요."

그럴 수밖에.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볼 때마다 ‘이단녀석!’이라고 소리쳤던 녀석이지 않은가?

나이를 먹을수록 심술을 부리는 일은 줄었지만, 그래도 간혹 지나갈 때마다 눈초리를 주며 ‘이단녀석……’이라고 중얼거리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을 보라.

이제까지의 왈가닥 티를 전부 벗어던진, 순진무구하며 예의바른 아가씨만이 제 앞에 서있다.

메어리가 아닌 메어리란 이름의 다른 누군가…….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께름칙함을 느꼈지만, 정작 메어리는 그런 노골적인 거리두기에도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기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내려주신 힘의 가치를 이해함으로써, 이제까지의 제 행실을 돌아보고 반성을 했기에 그런 것뿐이죠."

"……반성?"

"그래요, 지난날까지의 제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싱긋.

온화한 미소를 지은 메어리가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과거의 저는 이단을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을 키우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체제에 반하는 존재는 그 자체로 악! 그를 처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선을 증명하는 것이라 여긴 것이죠.

흑백논리.

혹은 진영논리라 부르는 것은 교단의 수행원들이, 신성력을 각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먼저 택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무분별한 이단배척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이단을 배척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적이라고 인식할 뿐인…….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이단의 배척……. 그건 그저 이 사회의 안정을 불러오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걸 말이죠."

그리고 신성력을 각성한 메어리는 그것을 깨달은 상태였다.

자신을 사랑하고, 세계를 굽어살피는 신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타인을 향한 이타심을 힘으로 승화시킬 수 있으니…….

이단의 배척이란, 그런 교단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표현의 하나일 뿐이라고.

"그래요, 신앙에 진정으로 우선시해야 하는 건 행동에 진심이 깃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진심을 가지는 데에 필요한 것은, 주님의 믿음 앞에 인간의 지식 따윈 하잘 것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오, 오오!"

제 몸에 빛을 밝히는 메어리를 보며 수행원들이 감탄을 흘렸다.

셰인의 입장에선 꼴사나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얘는 왜 각성을 해도 빡대가리로 각성하냐.’

무지를 신앙으로 덮는다.

셰인은 그 풍조를 싫어하기에 이 시대에 의학을 전파하려 한 것이었다.

그런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메어리는 양 팔을 힘차게 벌리며 신성력을 힘차게 발하고 있었다.

"이 빛! 이 광채!! 저를 뒤덮는 이 기적이야말로 방황하는 이들의 길을 밝혀주며, 그 고통을 사해주는 것입니다! 아아!! 위대하신 분이어! 저의 믿음을 알아주시고, 그 믿음에 보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열광적인 기도와 감사.

주변 수행원들은 거기에 동경을 느꼈지만, 셰인은 차마 동참하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뭐, 신앙도 없는 내가 얘들이랑 어울려서 뭐하겠냐.’

그 후 물러서려는 것도 잠시.

"후후, 가엾은 사람."

셰인의 뒤에서 메어리가 툭 말을 던져왔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셰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굳혔다.

"…나한테 한 말이야?"

"네, 당신에게 한 말이죠."

메어리가 허리께에 손을 모으며 미소를 지었다.

악의가 엿보이지 않았지만, 셰인의 입장에선 비웃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당사자가 바라지 않는 동정이란 그렇게 해석되는 법이니까.

"당신이 이단의 지식으로 많은 이들을 구호해온 것은 저 역시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결국 당신이 하는 건 구호일 뿐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길을 계속 지향한다면 머지않아 한계에 다다르고 말겠죠."

인간은 같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한때 핀들레이도 자신을 구해줄 때에 그런 핍박을 했었다.

그걸 이제껏 생각 없이 ‘이단 녀석!’이라 조잘대었던 녀석에게도 듣게 될 줄이야.

괜스레 껄끄러움이 느껴졌지만, 메어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제 고고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교단에 당신이 전파한 지식이 의무교육으로 편입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단을 당신의 손으로 주무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시죠. 이단인 당신이 뭐라고 떠들건, 신앙을 깨달은 저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아 그러냐."

"그래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저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 현혹 도한 시련이라 받아들이면……."

"걱정마라. 딱히 널 회유할 일은 없을 테니까."

애초에 셰인이 목표로 하는 어느 한 쪽의 몰락이 아닌 공존.

굳이 싸울 필요도 느끼지 못할뿐더러, 자길 싫다 노래를 부르는 녀석을 억지로 설득할 생각도 없다.

괜히 피곤하게 신경전 벌이지 말자, 생각한 셰인이 메어리에게서 툭 관심을 돌렸다.

그렇게 물러나려 했거늘.

"자, 잠깐!"

메어리가 다급히 다가오며 셰인의 소매를 붙잡았다.

다시 돌아보니 이전의 고고했던 태도가 약간 흐트러진, 당혹이란 감정이 그려진 것이 셰인의 눈에 들어왔다.

"마, 말했잖습니까? 괴롭히더라도 별 신경 쓰지 않는다니까요?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제 앞에서 깐족대보시라고요!"

"내가 언제 깐족거렸는데."

오히려 시비를 먼저 건 건 메어리가 주도하는 교단의 꼬꼬마들이었다.

그런 자각이 없는 듯 메어리가 셰인의 앞에 선 채 고함을 질러댔다.

"어, 어쨌든 저는 이제 한 명의 완벽한 신자!! 당신이 뭐라고 하건 절대로 꺾일 일이 없는 몸입니다! 그러니 자, 한 번 저를 유혹해보시죠! 당신이 뭐라고 말을 하건, 그 믿음이 꺾이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도 저에게 더 큰 힘을 내려주시겠지요!"

"그런 거 안 할 테니까 서로 갈 길 가자 좀."

"이제까지 잘만 했으면서 왜 그러는 건데! 어서 내가 신앙을 증명할 수 있게 도우라고! 날 시험하란 말이야!!"

‘이제보니 빡대가리가 아니라 샌드백으로 각성한 거였네.’

종교 행사 중엔 채찍으로 몸을 때리는 고행도 있다던가.

그런 고행으로 이단을 상대하는 걸 선택한 듯했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신성력 증대를 위한 경험치가 될 생각이 없었다.

‘이 왈가닥을 어찌 떨쳐내야 하는……. 음?’

문득 셰인의 눈에 인근 복도를 지나는 한 수녀의 모습이 보였다.

연홍색의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동년배의 수녀.

"베르디, 잠깐!"

그녀의 모습을 보기 무섭게 셰인이 바로 자리를 이탈했다.

이전까지 달라붙던 메어리의 존재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 아아……."

떠나가는 셰인을 보며 탄성을 흘리는 메어리.

셰인의 뒷모습에 뻗어진 손이 허공에서 부르르 떨리다, 이내 힘 없이 바닥으로 늘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수행원이 무의식적으로 속삭였다.

"메어리 또 무시당했네."

"입 닥쳐 포이닉스! 또는 뭐야 또는!!"

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메어리가 베일을 움켜쥐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거기엔 이전까지의 고고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저 녀석. 내가 설교하는데 매번 다른 여자한테만 헤벌레 하고……. 이단 주제에. 이단 주제에!"

그저 난동 끝에 신상의 앞에 주저앉은 채 좌절을 토해내는…….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소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셰인은 의사이며, 그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대체로 병과 상처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신성력에 의한 자가치유력을 보장받는 성직자는 관심 밖의 존재.

반대로 그 비호를 받지 못하거나, 혹은 그런 비호가 소용이 없는 존재에겐 싫어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제 앞을 지나는 소녀가 그랬다.

"베르디."

유일교의 수행원 베르디.

그녀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셰인을 돌아보고 있었다.

베일 밑으로 보이는 분홍색의 머리카락.

그 끝이 어깨 밑으로 몸의 궤적을 타고 곡선을 그리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구슬의 색이 전부 다른 로자리오 역시도.

그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착용하고 있던 장신구였고, 눈동자 역시 여전히 공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베르디가 그러한 눈을 향하며 말했다.

"가까이오지 마세요."

상당히 날이 선 목소리.

그 부정적인 태도를 마주한 셰인이 애매히 웃음을 터트렸다.

"…여전하네."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어요."

베르디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도 제 가슴엔 여전히 손을 올리고 있다.

베르디에게 있어선 버릇과 같은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심장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지금까지 베르디를 진단할 기회를 거머쥐지 못한 상태였다.

아직까지도 제국은 선천적 장애를 저주라 부르고 있고, 베르디는 신성력을 다루지 못해도 여전히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상태니까.

"가까이 오면 어쩔 건데?"

그러니 늘 그렇듯 가벼운 태도로 접근을 할 뿐.

한 발자국을 내딛자 베르디가 몸을 움츠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오면?"

말꼬리를 흐리는 베르디.

떨리는 고개가 서서히 돌아가, 이내 셰인에게로 움직였다.

그리고 말한다.

"…괴롭힐 거예요."

아주 소심한 목소리로.

자길 괴롭힐 거라고.

"아, 그래. 괴롭힘."

그걸 어찌 받아들일까 고민하는 셰인.

그마저도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셰인이 아는 베르디란 소녀는 괴롭힘을 당하면 당했지, 괴롭히는 쪽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으니까.

"괴롭히다니, 어떻게?"

그 부분에 직구를 던지자 베르디가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이……."

이윽고 입에서 내뱉어진 말.

"이단은 나빠요."

"……."

멍한 표정을 짓는 셰인.

베르디는 그럼에도 굴하지 않으려는 듯 셰인을 꿋꿋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초점이 잘 안 맞는 듯하지만, 어찌어찌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려 노력하는 모습.

셰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그래서?"

"이단은 나쁘니까……. 셰인은 나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친해지고 싶지 않아요. 저리 가요."

말을 서둘러 마무리 짓는 베르디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고 속내랑 상관없는 말을 내뱉는 모습.

그게 귀엽게 보이는 한편 심술이 나기도 했다.

"확실히 내가 나쁜 아이이긴 하지지만, 너도 사고뭉치인 건 마찬가지 아니야?"

흠칫. 놀라는 베르디.

이후의 반응이 없었다면 ‘사고뭉치끼리 친하게 지내자’라는 둥 얘기했겠지만, 정작 베르디는 그 말에 상처를 받은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비 맞은 고양이마냥 처량하게 느껴진다.

보다 못한 셰인이 베르디에게 사탕을 내어주었다.

"사탕 줄 테니까 화 풀어."

"……화 안 났어요."

그리 말하면서도 사탕을 받아들이는 베르디.

이후 입에 넣은 박하사탕을 입 안에 굴리고, 평소 일러둔 대로 혓바닥 밑에 녹여가기 시작했다.

박하 특유의 향과 차갑고도 매운 맛. 그리고 약간의 당분.

그 모든 것을 만끽하듯, 베르디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나름 맛있다는 표현이다.

‘실제로는 간식이 아니라 약이지만.’

박하사탕에 함유되어 있는 니트로글리세린.

근 4년간 셰인이 인체에 해를 내지 않는 선에서 조율하며 만든 약이었다.

엄연히 다른 사람들에겐 밝히지 않고 몰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교단에선 아직도 선천적인 질환을 저주라 여기고 있고, 그녀를 치료하겠다 나서는 건 아직은 위험하다 여길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까지 심장질환에 대해 호소한 적이 없다는 건가.’

4년간 제대로 된 검증은 안 했지만, 그날 이후로 부정맥에 따라오는 위험을 호소하는 일은 없다시피 했다.

니트로글리세린이 그만큼의 효율을 낸 건지. 아니면 자라나는 중에 심장기형이 회복된 것인지.

‘뭐, 선천적인 기형이라면 성장하면서 낫는 경우도 있으니까.’

뭐가 됐건 셰인에겐 다행으로 여길 일. 별문제가 없다면 당분간은 더 지켜볼 뿐이다.

앞으로 1년.

그 남은 시간 동안 이 소녀의 증세가 완벽히 호전되길 바라며.

"또 위험한 곳에 갔다 오신 건가요?"

"…그렇지."

평소와 마찬가지로 물음에 답을 해주니, 베르디가 마주쳤던 시선을 거두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마주보지 않아도 어깨가 축 늘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의 대답을 바라지 않았던 것처럼.

"왜? 내가 위험한 곳에 가는 게 싫어?"

"셰인이 싫어요."

"…아, 그쪽이 싫구나."

"그러니까 가까이오지 마세요. 앞으로 사탕도 안 주셔도 돼요."

그리 말하면서도 무정하게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베르디.

처음 만났을 때와는 상당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당시에만 해도 자기 할 말만 툭 던지고 가버리곤 했으니까.

"그렇게 말해놓고 또 주면 먹을 거지?"

그리고 셰인 역시 아직은 베르디를 더 지켜볼 생각인 상태.

그 반응을 긍정적으로 여기며 사탕을 하나 더 내어주니, 주저하던 베르디가 마지못해 손을 뻗었다.

"호의를 거절할 순 없으니까요."

"싫어하면 거절해도……."

"몰라요."

사탕을 입에 머금고 고개를 돌리는 베르디.

"…그런 거 몰라요."

재차 번복한 베르디가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뒤 돌은 모습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홍조.

그 모습을 보던 셰인이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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