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73화
"이쪽이 선생님께서 쓰실 방입니다."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하게 된 곳은 승객용 선실.
혼자 쓰기엔 조금 넓은 데다 관리도 잘 되어 있는 곳이었다. 항해 중 귀족과 같은 고위층의 인물이 탑승하는 곳이었다.
‘내 살다 살다 이런 대우도 받아보네.’
그만큼 자신이 영지에 가져온 변화가 크다는 거겠지.
그 대접을 자부심으로 여긴 셰인이 선원에게 감사를 전하였다.
"안내해주셔서 고마워요."
"이게 제 일인걸요. 그럼 전 이만……."
"아, 잠시만요."
떠나려던 선원을 불러 세운 셰인이 제 배낭에서 병을 꺼내었다.
둥그런 알사탕이 들어 있는 케이스.
셰인이 그 사탕 중 하나를 꺼내 선원에게 내어주었다.
"이거, 이번에 새로 만들었는데 한 번 맛을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고맙습니다."
보답으로 사탕을 준 게 당혹스러운 것일까.
어쨌든 선원이 감사를 전하며 입에 사탕을 넣고 자리를 벗어났다. 셰인은 홀로 남은 방에 가지고 온 짐들을 정리해갔다.
그 과정은 굉장히 조용히 이루어졌다. 혼자서 쓰는 방이니 당연하겠지만.
‘앞으로 몇 달은 케이미 없이 지내야 하는 건가.’
사령관의 임무를 수행할 때를 제외하면, 상당한 시간을 케이미와 연구를 하는 데에 지냈었다.
그렇게 4년을 보낸 가운데 처음으로 그녀 없이 몇 달을 보낸다.
그 점을 생각하니 조금 허전함이 들었다.
집에 돌아올 때면 늘 반겨주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자니…….
‘민트초코 드실래영?’
-팍!
팔에 힘이 실리며 주먹이 틀어쥐어졌다.
골격과 혈관이 도드라질 정도로 아주 전력을 다해…….
"아, 이게 아니지."
입가의 유열을 지운 셰인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응시하였다.
거대한 배가 나아가자 항구가 멀어지고, 머지않아 시야엔 넓은 바다만이 남게 되었다.
이후 경유지로 삼은 섬에 도착할 때까진 줄곧 보게 될 광경.
그 동안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건 지독한 낭비가 될 것이다.
파도도 잔잔하니 슬슬 이동해도 문제없으리라.
곧 셰인이 선실을 벗어난 후, 가장 먼저 보이는 승객에게 말을 건네었다.
"여기, 선장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 네 이쪽으로 가면 됩니다."
"네 고마워요. 이거 하나 받아가세요."
이후 셰인이 가지고 있는 병에 든 사탕을 하나 꺼내 건네주었다.
사탕 한 알.
뜬금없는 선물에 의아함을 느꼈으나, 선원은 이내 감사히 받아먹었다.
그 후에도 선원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셰인.
성심성의껏 답해준 자들에겐 답례로 사탕을 내어주었지만, 모든 선원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알아서 찾으슈."
"그런 걸 제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합니까?"
"거 바빠 죽겠는데."
뱃일이라는 게 고돼서인지, 아니면 신성력도 못 쓰는 주제에 사제복을 걸치는 것이 아니꼽게 보는 건지.
어느 쪽이건 그런 자들에겐 굳이 사탕을 내어주진 않았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무언가 기준을 잡고 선별을 하는 편이 이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탕 하나로 선별하는 게 우습긴 하다만……. 그래도 일단 필요한 일이니까.’
어찌어찌 안내를 받아 도착하게 된 항해실.
셰인은 그곳에서 창을 보며 조타를 쥐고 있는 이에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혹시 선장님이신가요?"
"아, 난 항해사야. 선장님은 저쪽에 계시는 분이지."
손가락을 향한 곳은 근처 의자에 앉아 잠을 자고 있는 자였다.
선원복 특유의 하얀 모자가 아닌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 모자.
그 앞에는 붉은 매의 마크가 새겨져 있지만, 막상 입고 있는 옷은 권위가 엿보이지 않는 낡은 코트였다.
평화로울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느긋한 노인.
딱 사령관에게 들었던 대로의 인상이다.
"…선장님 맞으시죠?"
조심스레 물어보자 선장이 얼굴을 가린 모자를 슬쩍 걷어내고, 곧 셰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머지않아 셰인을 알아본 듯, 그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래, 그쪽이 그 ‘선생’인가 보군. 사령관이 자네에 대해 많이 들려줬었지."
"셰인이라고 합니다."
정중한 소개.
그를 받아들이듯 선장이 제 몸을 차차 일으켜 세웠다.
육순에 달한 나이.
하지만 모자 밑으로 보이는 눈빛엔 노련함이 엿보인다.
곧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사우전드 블레이즈의 선장인 ‘드레이크 나저러’라고 하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배나 몰고 다니는 뒷방 늙은이지."
일선에서 물러났다니……. 우스운 농담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샤의 말에 따르면, 그는 블레이즈 영지군의 전대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던 자라고 했으니까.
더군다나 그의 현 역할은 최중요 정찰 작전의 중요 운반책.
그런 자를 전직 군인인 자가 어찌 뒷방 늙은이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래 선생 양반. 여기까지 행차하느라 고생 많았군. 여기 주스 한잔하겠나?"
"아,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셰인이 드레이크가 내세운 잔을 받아들였다.
연녹빛을 띠는 음료.
그 위에 띄워진 것은, 장기항해에선 황금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지는 각얼음이었다.
그만큼 내어준 자를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치료를 담당해야 하는 성직자들은 멀미 때문에 배 위에서 활동하기 어려우니까.’
멀미는 시각이나 균형 등에 오류가 생기며 일어나는 증세.
배나 마차 등에 있으면 뇌가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이 크게 증가하며, 이에 환경이 부합되지 않는 괴리감이 더해져 어지럼증이나 구토 등의 증세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력은 이런 증세에도 적용이 된다.
과다하게 분비된 신경물질을 다시 본래 있던 곳에 되돌리는 식으로…….
‘그게 계속해서 나오고 들어가길 반복하니……. 몸이 환경에 적응하지도 못한 채 멀미가 가늘고 길게 지속되는 상태가 만들어지는 거지.’
이를 위해 셰인이 성직자들에게 멀미약을 만들어 최우선으로 배분해 줬지만 글쎄…….
약학을 배척하는 교단원 중에 꾸준히 먹어줄 자가 얼마나 될까?
‘뭐 어쩌겠어. 안 먹으면 자기들이 손해지.’
어깨를 으쓱인 셰인이 주스를 들이켰다.
신맛이 강한 과일주였다.
레몬보다도 훨씬. 너무나도 신 맛이 강한 나머지 쓴 맛이 날 정도였다.
드레이크는 그런 음료도 익숙한 듯 잘 마시고 있었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만끽하던 그가 다시 셰인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겐가? 길을 잃은 건 아닐 테고."
"앞으로 신세지게 된 입장이니 인사를 하러 왔죠. 겸사겸사 상담도 하고요."
"상담이라……."
솔직한 대답에 드레이크가 잠시 턱을 괴었다.
"뭐. 적적한 여행길에 말상대 하나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당분간 함께 할 동행자가 인사성이 밝은 친구인 건 좋게 볼 일이구먼."
이후 드러난 것은 불만보단 호의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주스를 내어주었을 때부터 느꼈지만, 드레이크는 자신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그마치 이전 참모총장의 인정이 아닌가?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셰인이 제 품에서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그럼 얘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이것부터 한 번 평가해주시지 않겠어요?"
"…뭔가 이건."
"사탕입니다. 필요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죠."
유리병에서 꺼낸 알사탕 하나.
그것을 말없이 받아든 드레이크가 사탕과 셰인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굳이 항해실까지 온 이유가 사탕의 시제품을 상담받기 위해서인가?
잠깐 그런 생각을 한 드레이크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한 번 먹어보지."
사령관이 인재라 부른 자가 아무 이유 없이 사탕을 내어줄까?
분명 의도가 있다, 생각한 드레이크가 사탕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흠?"
살짝 찌푸려지는 눈살.
셰인이 걱정하며 물었다.
"이런, 너무 시셨나요?"
"아니, 이 정도는 괜찮네. 그저 사탕이라 하면 대개 달다는 느낌이 많은데, 이건 꽤나 신 맛이 나서 그런 것뿐이지."
오독, 오독.
이빨을 세우니 사탕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다지 힘을 주진 않았다. 사탕치고는 의외로 잘 분해되는 느낌.
맛을 음미한 드레이크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약인가?"
이어지는 의문.
한편으론 경계심마저 느껴진다.
셰인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배의 저주를 막아주는 물건이라고만 해두죠."
* * *
‘배의 저주.’
말 그대로 배 위에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자들에게 따르는 현상이다.
이에 노출될 경우 배에 있는 내내 무기력과 피곤함이 뒤따르며, 그와 동시에 ‘몸이 서서히 붕괴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뼈가 약해져 골절이 쉽게 걸리거나 이빨이 쉽게 빠지고, 체내에선 내출혈이 발생해 빈혈에 시달리다 끝내 사망에 이를 정도.
이런 심각한 병은 오직 대륙의 밖. 즉 배의 위에서만 벌어지며, 제국에선 이것이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을 벗어났기에 생기는 현상이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축복이나 저주의 개념이 아니야. 영양분 결핍에서 생기는 영양실조의 일종이지.’
학적 병명-괴혈병.
비타민 섭취부족으로 신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구성이 붕괴되고, 그로 인해 신체의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면역력이 약해지는 병이다.
수개월에 거쳐 생기를 잃어가는 모습을 가히 저주에 걸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리고 비타민 섭취부족에 의해 생기는 만큼, 비타민 몇 그램만 섭취해도 며칠 내에 회복할 수 있다.
단 몇 그램.
셰인이 가진 사탕으로도 충족할 수 있는 양이다.
"그러니까, 뱃사람들에게 따라붙은 저주가 이 사탕 하나만 꾸준히 먹어도 나을 수 있다는 건가?"
"그렇죠."
대략적인 설명이 끝났을 무렵, 사탕을 모두 먹은 드레이크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비워진 입에서 손가락을 향한 곳은 자신의 이빨.
앞니 중 하나가 빠져 있는 부분을 툭툭 건드리던 그가 크큭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가 없군. 우리 뱃사람들의 고질적인 문제를 이렇게나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니."
"…의외로 쉽게 믿으시네요."
"자네는 아직 신뢰할 수 없지만, 자네를 이 배에 추천한 자는 신뢰하고 있지. 대개 이단자를 짐승 마냥 여기는 그녀도 자네가 하는 말은 믿어도 된다 할 정도였으니."
전 참모총장이라는 건 사령관의 충실한 부하였다는 의미.
자신을 향한 호의를 통해, 셰인은 두 사람의 신뢰관계가 꽤나 돈독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관건은 그 비타민이라는 걸 어디서 구하냐는 것일 텐데……."
"그다지 어렵진 않아요. 신선한 제품이라면 어지간한 곳엔 다 함유되어 있으니까."
채소나 과일은 물론 익히지 않은 생고기에도.
뭐가 됐건 신선한 음식을 먹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신선한 음식이라니. 장기항해에서 무리한 걸 시키는 군."
그래, 문제는 지금 그들의 원정이 바다 위에서의 항해란 것.
배에서는 신선한 음식을 손에 넣을 수 없으니, 장기항해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육포나 치즈, 비스킷과 같은 보존식이 전부다.
그리고 괴혈병의 회복을 돕는 비타민은 수용성.
물에 녹을 정도로 연약하기에 굽거나 찌는 등, 보존식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비타민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액체로 만들면 보관시간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문제는 주스를 달여 마신 선장도 과일이 특효약이라는 걸 알기에 그런 방안을 세운 게 아니란 것이다.
"선장님께서 마신 과일주스는 어떤 과일을 써서 만든 것인가요?"
"라임이라고 하는 신성한 과일을 갈아서 만든 거네."
"라임?"
"고대 항해자들이 어느 섬에서 발견한 과일이지. 그 과일을 먹고 나니 저주가 사라져, 제국에선 축복받은 과일이라 불리는 상태지."
축복 받은 과일.
그것이 현 제국에서 신성력을 제외하고, 저주를 몰아내는 유일하다시피 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상태였다.
그리고 셰인은 라임이란 과일을 오늘 처음 접한 상태였다.
과거는 물론 이 시대에도.
괴혈병의 특효약이라 알려진 과일조차, 그 생산량이 이 대륙에선 무척이나 적다는 의미다.
"뭐, 그래도 이번 항해엔 자네가 있어서 다행이군. 자네가 만든 그 사탕을 배분하기만 한다면……."
"아, 그건 무리입니다. 지금 만든 건 어디까지나 시험작이라 딱 이 한 병 밖에 없거든요."
그마저도 여기까지 오며 승객들에게 나눠주느라 반 이상 거덜난 상태.
이후의 항해가 왕복으로 몇 달은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혼자 먹을 양도 여의치가 않다.
"그럼 방법은……. 음?"
해결법을 알아냈음에도 그걸 시행할 수 없다.
그에 대해 심각함을 느끼던 중, 문득 드레이크가 셰인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유일한 수단이 사라졌음에도 심각함 따윈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
무언가를 눈치 챈 드레이크가 눈을 번뜩였다.
"신선한 음식에 들어 있다고 한다면……. 그렇군. 여기 오기 전에 양배추 절임을 가득 실어달라고 한 게 그 때문이었나?"
"…눈치가 좋으시네요."
역시 전 참모 총장이다.
셰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