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75화
"믿냐고 하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그래, 신성력도 있으니까."
슬쩍 눈치를 교환하며 하나 둘 씩 말문을 여는 선원들.
예상대로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한들, 그들의 존재로 하여금 일단은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 정도는 갖춘 상태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할 설득은 그정도면 충분할 터.
"여러분. 어째서 육지에선 멀쩡하던 몸이, 바다에만 들어서면 저주가 침범해 오는지를 아십니까?"
"그거야 대륙이 축복을 받아서라고 했지."
"바다에 있는 저주가 대륙에 침범하지 못해서……."
그래,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인지하는 괴혈병이란 그런 것이다.
바다에서 장기적으로 체류하면 걸리고, 육지에 내려오기만 하면 바로 회복된다.
그러니 대륙이 축복을 받았고, 그 축복이 바다에서 밀려드는 저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그건 잘못된 사실입니다."
셰인은 그러한 인식을 단호히 부정하였다.
그 순간 선원들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당혹.
아무리 교단에 속해 있지 않다 한들, 그의 발언이 사제복을 입은 자가 결코 해선 안 될 말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셰인은 애초에 사제가 아니다.
그저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에 사제복을 입고 다니고, 이유가 있기에 성직자의 말을 응용할 뿐.
"정확히 말하자면……. 저희가 살아가는 대륙과, 그 위에 세워진 테라스 제국은 축복을 받은 곳이 맞습니다. 다만 인간이 그 축복을 받는 방법은 그 땅에 서는 것이 아닌, 그 땅에서 자라난 피조물을 섭취하는 것이죠."
"피조물을…… 섭취해?"
"대륙에 자라나는 모든 생물들엔 미약한 축복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지가 축복을 받았다…….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아주 틀렸다곤 할 순 없는 비유다.
의학을 모른다면 바다에 이상이 있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
적어도 성경을 작성한 자들의 ‘통찰력’만은, 셰인 역시 틀리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기에 탐구라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는 것.
셰인은 이 점을 노려 그들의 문제가 저주가 아닌, 축복의 결여에서 생긴 증세임을 교묘하게 수정하는 방안을 채택하였다.
"네, 그렇습니다. 동물에게도, 그리고 식물에게도……. 저마다 신성한 물질이 깃들어 있는 것이죠. 저희 인류는 그런 물질을 외부로부터 조금씩 받아들임으로써 주님의 축복을 받아, 이 세계에 만연한 온갖 악재로부터 몸을 보호받을 수 있던 것입니다."
이윽고 셰인이 다시 제 손에 쥔 샌드위치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 신성한 물질은 불에 굽는 둥의 조리가 가해지면 손상되게 됩니다. 순수함을 중시하는 주님의 힘은, 그것을 어그러트리는 압력을 받으면 사그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손상이 가해지면…… 어그러져?"
"반대로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면… 이를테면 날 것을 먹거나, 별다른 가공 없이 보존상태를 유지하면 그 힘은 유지됩니다."
몇 입 배어 물은 자리에 여전히 색을 유지하고 있는 누런 채소.
식초와 소금에 절여졌을 뿐, 양배추는 열흘이 지났음에도 부패되지 않은 채 본래의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꿀꺽, 한 선원이 침을 삼켰다.
"그 말은 라임뿐 아니라 육포처럼 굽거나 말리지 않으면,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까?"
"생선을 날로 먹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행히 머리까지 근육인 건 아닌 듯하다.
바로 긍정을 한 셰인이 뒷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주님은 매우 자애롭기에, 이러한 기적을 누구나 얻을 수 있기 기회를 베푸십니다. 양배추라는 흔한 채소에도……. 아니, 오히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채소이기에 더욱 많은 ‘비타민’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비타……."
"그렇습니다! 비타민입니다!"
펄럭!
양 팔이 벌어지기 무섭게 창밖에 불어오는 바람.
그에 커튼이 펄럭이며 햇빛이 비추고, 셰인의 후광을 더하기 시작했다.
"비타민! 그것이야말로 주님의 축복이자, 대륙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신의 비호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증거!! 가공되지 않아야만 진가를 보인다는 것은 주님이 가진 힘이 순수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며, 가장 흔한 채소에도 깃들어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 오오……."
선원들이 셰인의 말에 감탄을 흘렸다.
어디까지나 그럴싸하게 말한 것이지만, 자고로 진실에 교묘히 섞인 거짓이란 설득력을 크게 심어주는 법이다.
‘생물학 강의를 해도 들어먹을 리는 없을 테니까. 차라리 이런 식으로 당장 납득시키는 게 나아.’
무지를 신앙으로 덮는다…….
그게 풍조가 되는 건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여기고 있지만, 납득을 위한 수단으로써 쓰는 거라면 거리낌은 없었다.
도리어 진단과 치료 중의 과한 교육은 환자의 불신을 키우는 법이니, 이런 식으로라도 애둘러 납득을 시킨다면 보다 효율적인 구제도 가능해질 터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그래! 고작 그거 하나 못 먹는다고 저주에 걸리는 게……."
물론 아무리 신이라는 존재를 긍정해도, 그 존재를 마냥 숭배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인지하는 생물이니.
비타민이 신의 기적이라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결코 완벽한 신뢰는 얻을 수 없다.
그런 의심이 있음에도 목소리는 떨리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건, 불신을 하되 ‘혹시나?’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 꽤나 몸이 수척해지신 것 같군요?"
그 정도의 상태라면 굳이 증거를 찾을 필요 없이, 그 애매한 마음에 쐐기를 박아주면 될 뿐이다.
셰인이 추궁하듯 한 선원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물었다.
"식사는 꼬박꼬박 하고 계시겠지요?"
"그, 그렇죠. 보통 사람들보다 많이 먹는 편인데…. 부족하면 낚시라도 해서 먹고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 먹는데도 날이 갈수록 몸이 부실해지는 게 이상하다 생각되지 않습니까?"
많이 먹을수록 찌는 것이 살이란 것이거늘.
그에 반대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 역시 이제까진 저주라 넘겨왔지만, 실상 그 이유는 전혀 다른 데에 있었다.
"몸이 마르는 것 역시 비타민을 섭취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무, 뭐?"
"거짓말이 아니에요."
비타민의 주역할 중 하나는 단백질의 조직을 유지시키는 ‘콜라겐’의 합성.
그 콜라겐이 생성되지 않으면 단백질의 조직구조는 붕괴하며, 지금 그들이 시달리는 괴혈병과 같은 증세가 생겨나는 것이다.
"비타의 섭취를 소홀히 한다면……."
그러니 지금 하는 말은 사실이다.
채식을 멀리해오며, 육지에서보다도 더욱 고된 노동을 행하는 상마초들이기에 더욱이 간과할 수 없는 진리.
"근손실이 옵니다."
"……?!"
* * *
그렇게 항해 시작 후 3주가량이 흘렀을 무렵.
"양배추! 양배추!"
"양배추! 그는 신이야!"
"신의 축복이 우리에게 내려진다아아!!"
양배추를 삼시 세끼 먹은 선원들은 건강을 되찾고, 매 끼니 때마다 비타민에 대한 찬양을 읊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자신들을 괴롭히던 저주가 양배추 섭취를 시작한 후 씻은 듯 사라진 상태.
그 극복을 체감한 마당에 무턱대고 부정만 할 순 없었다.
"모두 하루 세 번! 끼니를 때울 때마다 비타민을 찬양하라!"
"비타민! 비타민!"
"배추 만세!!"
땡볕 아래, 갑판에 모인 선원들은 양배추 절임을 손에 쥔 채 찬양에 찬양을 반복하고 있었다.
당연한 거지만 교단사람들에겐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저 광경은 다름 아닌 자신들이 믿는 신을 이용해 이루어낸 것이었으니까.
"저, 저 이단 녀석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특히나 가장 과하게 반응을 한 건 3달 전, 신성력을 각성한 후 정식 사제로 승격된 메어리였다.
그녀를 포함한 대다수의 성직자들은 보름 동안 멀미에 시달린 상태, 때문에 셰인이 중도부터 선원들에게 전도행위를 하는 것에 미처 간섭하지 못하였다.
"주님의 축복이 양배추 따위에 들어 있을 리가 없잖아!!!"
대륙의 축복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 축복의 힘이 깃든 건 대지이지 결코 피조물이 아니다.
그것이 성경에 적힌 가르침이거늘. 아무리 선원들이 편식한다 해도 그 내용을 왜곡해 전파하다니!
"이단 주제에 감히 교단의 가르침을 악용하다니……. 저 천벌 받을 사이비 같으니!!"
분명 이 광경을 본다면 다른 성직자들도 마찬가지라 느끼리라.
분명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래도 모두 활력을 되찾았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정작 제 옆에 서있는 성기사, 레온은 그 광경을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메어리가 울컥하며 레온을 쏘아붙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결과가 어떻건 저건 선동이라고! 자기 말을 듣게 하려고 신의 이름을 팔아넘기는 거나 다름이 없단 말이야!!"
"확실히 논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영지 내에서 많은 이들이 셰인에게 큰 도움을 받았지. 적어도 나는 셰인이 했던 일 중 틀린 일은 없다 생각한다."
자신보다도 이른 나이에 신성력을 각성한, 그런 독실한 신자가 신의 이름을 팔아넘기는 행위를 긍정하고 있다
그것을 자각한 메어리의 눈초리가 사납게 변해갔다.
"……레온. 너 설마 이단을 옹호하는 거야?"
"존중할 건 존중하자는 거다."
제국이라면 모를까, 이곳은 교리를 절대적으로 따를 필요가 없는 장소니까.
신앙을 유지하는 선에서 이단을 존중해도 된다는 건, 주교의 자리에 올랐던 크리스틴이 직접 증명한 바였다.
"우리에게 힘을 내려주시는 신님도 옳고, 셰인도 그 점을 존중해 가며 자기 나름대로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이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 제국은 그저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니까.
벽외지역의 가혹함을 어찌 보완하고자 이단을 허락했다곤 하지만, 그 허락 자체가 교리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교리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그걸 완전히 수긍하지 않는다 하여, 주님에 대한 믿음이 소실되었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교단은……. 주님의 힘을 뒤에 업었다는 것만으로 너무나도 많은 변화를 억눌렀던 걸지도 모르지.’
어쩌면 신앙을 가진 자가 고수해야 할 태도는, 그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법이 아닌 변화에 적응하며 신앙을 유지하는 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결국에는 생각으로 그칠 뿐이었다.
존중할 건 존중하자는 말조차, 지금 제 옆에 있는 메어리와 같은 반응을 보일 신자들이 태반이니까.
그걸 바꿀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런 걸 생각하는 것조차도 어쩌면 18세에 불과한 자신에겐 오만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문득 갑판을 누비는 한 수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베르디.’
아직 신성력을 개화시키지 못했지만 멀미에 익숙한 듯, 그녀는 배 안에서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메어리가 베르디를 쏘아보다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신성력도 못 쓰는 애가 여긴 왜 올라온 거람?"
한때 마녀라고 부르며 핍박을 가했던 상대.
이제와선 그런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지금의 그녀가 느끼는 짜증엔 어린 시절과 달리 이유가 있었다.
신성력을 각성하지 못한 베르디가 이 배에 오른 건, 사실상 ‘분수에 안 맞게 위험한 일에 가담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까.
‘베르디…….’
반면 레온은 베르디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어린 신자들을 이끌어주던 자가 떠나기 전에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레온, 당신도 슬슬 알 때가 되었군요.’
‘알 때가 되었다니……. 무엇을 말이죠?’
‘베르디에게 얽힌 이야기입니다.’
주교 크리스틴.
그는 블레이즈 영지를 떠나기 전, 이제까지 소문으로만 돌던 베르디에 대한 이야기를 레온에게 들려주었다.
신성력을 개화시킨 자는 비밀을 엄수하는 태도 역시 갖추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레온은 어째서 교단의 모두가 그 이야기를 비밀로 붙였는지를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놓였던 현장은…….
그저 형을 잃었을 뿐인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절망으로 가득 차있었으니까.
‘베르디는 마녀가 아니야.’
가여운 아이.
그 누구보다도 기적이 필요한 소녀.
하지만 신앙을 가진 이들조차, 타의에 저질러진 금기가 그녀를 타락시킬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교단 소속이 아닌 이에게 들려준다면 어떻게 될까?
"자네 덕에 선원들에게 활기가 돌아왔군. 덕분에 이번 항해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덜게 되었네."
이를테면 저곳에서 선장과 대화를 나누는 셰인에게 전해진다면?
"저도 당분간 신세지게 되었는데 마땅히 해야죠."
"그건 그렇고 저주라는 건 의외로 빨리 풀리는구먼. 이제까지 죽어나간 사람들이 안타까울 정도다만……."
"처음에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거죠. 그리고 괴혈병이 빨리 풀리는 이유는 비타민이 수용성이라, 혈액에 빨리 녹아들어 전신에 전해지는 속도가 빨라서 그래요. 또 비타민이라는 건 정확히 얘기하면 여러 종류가 있는데……."
셰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배의 저주와 관련된 지식을 선장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레온은 그 지식을 존중만 해줄 뿐이었다.
성직자란 지식보다도 신앙을 우선시해야 하는 존재이니.
그리고 그 신앙을 우선시하기에, 레온은 베르디가 가진 사연으로부터 동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셰인이 베르디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면…….’
신앙보다도 지식을 우선시하는 자가 그 과거를 알게 된다면, 그녀를 향한 호의가 어찌 어그러지게 될까?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주먹에 자연스레 힘이 실려 갔다.
이변이 일어난 건 그 순간.
-경보, 경보!! 전방에 해적선이 하나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배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경고음.
그에 갑판에 서있던 모든 선원들이 일사분란히 움직였다.
괴혈병에 빌빌거리고, 그 해결을 축하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 항해도 조용히 하긴 글렀구먼."
그건 그들을 지도하는 드레이크 선장 역시 마찬가지.
해적선을 주시하는 눈엔 세월의 흐름에도 무뎌지지 않은 기백이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