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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77화 (77/255)

의무병의 환생 77화

-콰아앙!!

폭발과 함께 퍼져나가는 연막.

그로 인해 갑판이 어지럽혀진 가운데, 해적들이 돛대 위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낙하장치에 매달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도 제국민.

몸엔 예외 없이 폭탄이 매어져 있었다.

"이쪽으로 오지 마!"

"아, 안 돼! 난 죽고 싶지 않다고!"

"어서 폭탄을! 내 몸에 있는 폭탄을 해체시켜 줘!!!"

낙하장치에 의해 느릿하게 떨어지는 선원들.

몸에 매어진 폭탄으로 인해 시한부의 상태이나,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갑판을 향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민간인을 이용한 테러공작.

그것을 눈치 챈 선원들의 얼굴에 갈등이 피어올랐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녀석들!"

"어쩔 수 없다. 배에 오기 전에 떨어트려!!"

"하지만 저 사람들은 민간인……."

"안 쏘면 우리가 죽어!!"

서로에게 욕을 내뱉고, 갈등의 끝엔 언제나 사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장에서 일말의 망설임조차 큰 틈으로 다가오는 법.

총탄은 빗나가거나, 격추했을 때쯤엔 이미 그들의 몸은 배에 가까이 온 상태였다.

"이, 이 폭탄 좀 빨리 떼줘! 제발 살려……."

-퍼엉!!

착지하기 무섭게 폭발해버리는 민간인.

그 위력은 사람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에 불과하나, 문제는 폭발 뒤에 퍼져나가는 연막이다.

"젠장, 눈이 안 보여!"

"콜록!!"

시야와 호흡을 방해하는 연기에 혼란에 빠진 아군들.

그 순간을 기회로 삼은 해적들이 전위대의 틈을 벌리고, 이윽고 갑판 위에 하나 둘 씩 발을 들여갔다.

"크하하하! 우리 선장님께서 드레이크의 목을 원한다!"

"선장을 노려라!!"

"이익! 방어는 실패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라!"

"백병전을 시작하라! 저 녀석들에게 블레이즈의 힘을 보여주는 거다!!"

이내 갑판에서 벌어지는 난전.

그 순간에 맞춘 파도가 암초 사이로 밀려들어와 배를 요동치게 만들고, 그들이 디딘 발판을 기울이며 전투의 혼란을 더욱 가증시켰다.

피와 화약이, 함성과 비명이 어우러지는 처절한 혈투.

갈수록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되지 않기에 이르렀지만, 그 속에도 빛을 발하는 자는 분명 존재했다.

"신이어! 이 부정한 자들에게 천벌을 내릴 힘을 주소서!!"

광명을 뿜는 것은 갑옷을 입은 성기사단.

그 선두에 선 레온이 대방패와 망치를 든 채 주변의 적들을 힘으로 밀어내었다.

"뭐냐 저 녀석!!"

"교쟁이들이다! 저 놈들부터 정리해!!"

이윽고 다수의 해적들이 태양기사단을 노리고 들어왔다.

성기사는 불과 십 수 명.

하지만 아군의 앞에서 벽을 치듯 이루어진 전방위 방어는, 해적들의 침입을 한 발자국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전사들의 활약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은 레온.

"주여! 이 전장을 누비는 전사들에게 꺾이지 않는 의지를 주소서!! 그대의 빛으로 어둠을 밝혀, 이 전장에 선 이들에게 희망을 전파하소서!!"

해적들이 쏴갈기는 산탄총을 갑옷으로 막아내고, 그렇게 무의미한 공격을 시도하는 녀석들에게 망치를 휘둘러 쳐 날린다.

그 중 정통으로 맞은 자들은 머리 위까지 날아가기 일쑤.

성기사 특유의 한계를 넘어선 힘이 야만족들을 넘어서는 것이며, 레온이 휘두르는 해머는 그 힘을 보다 효율적으로 발휘하게 만들어주는 무기였다.

‘자 받아.’

‘무, 뭐냐 이건. 망치?’

‘성기사들 중에서도 쓰는 사람들 있지? 원정하다보면 난전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선 검보다 망치를 쓰는 편이 더 좋을 거야.’

‘……셰인, 아슬란 가문은 검을 쓰는 가문이다.’

‘누가 뭐라냐? 그냥 가문의 위신은 공적인 자리에서 찾아도 충분하다는 거지. 설마 싸움에서 검이 아니면 신성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지만…….’

‘그럼 전장에 나갈 때엔 검보다는 망치를 들도록 해. 뭘 들건 일단 아군을 지켜줘야 신앙심도 유지되는 법이니까.’

그렇게 조언을 해준 셰인은 시간이 날 때면 레온과 대련을 해주었다.

사실상 훈련을 가장한 일방적인 구타였지만, 그 또한 실질적으로 도움은 되었으니 개의치는 않는다.

걸리는 점은 신앙에서 효율을 찾는 태도.

그건 고결함을 중시하는 성직자로선 못마땅하게 여겨야 할 일이겠지만…….

"그래도 난 너를 믿겠다. 셰인!!"

적어도 그 날,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었을 때에 했던 말엔 진심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그로부터 개화된 신뢰는 이윽고 함성이 되어, 이 전장에 선 적들을 몰아내기에 이르렀다.

총성이 들려온 건 그 순간.

-투타타타타!!

아니, 총성이라기엔 너무낟노 맹렬하다.

그에 경계심을 곤두세운 레온이 고개를 돌린 순간, 일대에 있던 선원들의 몸이 우르르 쓰러져 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크하악!"

"무, 뭐냐 저건!"

해적들의 소총사격?

아니, 수십 명이 사격해도 저런 총성이 나올 순 없다.

다급함을 느낀 레온이 방패를 세워 앞장서기 시작했다.

"모두 내 뒤로 숨어요!!"

방패에 부딪치며 튀는 불씨.

위력은 물론 공격의 간격도 이타 소통공격들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뭐야 저거, 총?"

"아니, 기관총이다!!"

당황한 레온과 선원들의 관심이 적들의 갑판으로 향해졌다.

해적선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것은 다수의 총구가 메어진 기계장치.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여러 발의 총탄을 발포해, 겨누어진 부분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이단의 병기다.

배의 손상을 우려하여 대포를 쏘진 못해도, 자그마한 총탄은 지형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도 대량학살을 벌일 수 있다.

"저, 저거! 어서 제거해!"

"연기 때문에 조준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해적들은 폭탄을 매단 민간인들을 추락시키고 있다.

그로부터 퍼져 나온 연기가 시야를 가리는 상태.

설령 쏠 수 있다 한들, 해적들도 기관총이 핵심 전력임을 알기에 그 주변에 방패병들을 배치시켜두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한 소총만으론 기관총을 저지할 순 없다.

"사격으로는 저 장치를 부술 수 없습니다! 폭탄이나 마법사들이 요격해야 해요!"

"갑판의 대포는 저놈들이 점거했어! 쏘지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 벅차다고!"

"마법반! 손 남는 사람 없나!?"

"실드를 전개하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여전히 해적들은 마법포격을 가하는 상태.

그걸 무시하고 실드를 해제했다간 항해선은 순식간에 불태워질 것이다.

"끄아악! 사, 살려줘!"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비명은 계속 들려온다.

추락하는 포로들의 끔찍한 비명소리.

몸에 매어진 폭탄에는 여전히 도화선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안 돼! 저걸 막아……."

"아뇨, 막지 마세요."

한 소총수가 대응하기 전, 누군가가 그 옆을 지나치며 빠르게 전장 사이를 가로질러 갔다.

"인명구출은 제 몫이니까."

사제복의 청년.

난전 속을 유연히 움직이는 모습에 주변의 시선이 빼앗겼지만, 그 존재를 눈치 챘을 때엔 이미 그의 몸은 돛대 위로 도약을 가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벽을 박차고 뛰어오른 순간 펼쳐지는 붕대.

그 끝은 정확히 추락자를 감싸고, 그 몸을 셰인의 앞까지 당겨오기에 이르렀다.

"으, 아아, 살려……."

"조용히 하세요."

몸에 매어진 폭탄을 절개술로 도려내고, 그것을 망설임 없이 적지에 투척시킨다.

위력은 약하지만, 애초에 그 폭탄의 주목적은 연막과 최루효과다.

"으악! 눈이 안 보여!"

"이 자식들! 폭탄을 어디에 떨구는……. 케헥!"

"적들에게 연막이 퍼졌다!"

"모두 연막으로 집중 포화!!"

타탕!!

다시 그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하는 선원들.

혼란에 빠진 해적들은 그렇게 몰살당했으나, 아직도 해적선 쪽에선 많은 해적들이 몰려들고 있다.

전황을 살핀 셰인이 제 품에 안은 이를 공터에 구석진 곳에 내려두었다.

"일어설 수 있어요?"

"으으…. 다, 다리가……. 악!"

"가만히 있어요."

붕대를 단단히 조이고 부목을 대어주는 셰인.

조이는 고통은 크지만, 그 잠시의 고통을 견디니 움직임은 이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그렇게 치료를 끝마친 후, 셰인은 근처에 나뒹굴고 있는 소총을 들어 올려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 이건……?"

"당한 게 있으면 복수도 해야죠. 지팡이로 쓰면서 뒤로 빠져도 상관 안 할 테니까, 아군한테만 쏘지 마세요."

그렇게 일러둔 후 셰인은 그의 곁을 벗어나 난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직후 배후에서 들려오는 총성. 이전에 자신이 내어준 총을 쥔 포로가 적지에 총을 쏜 것이다.

셰인이 그 소리를 신호로 삼듯 제 양 팔을 교차로 들어올렸다.

"참 옛날 생각나네."

적과 아군이 뒤엉키는 최전선은 전생에 수 없이 돌아다녔던 장소.

그런 익숙함이 느껴지는 만큼 적이건 아군이건 손을 뻗는 데에 주저는 느끼지 않았다.

-휘리릭!

손에 휘감긴 붕대가 펼쳐지고, 그 모든 것이 주변의 적들을 거미줄처럼 옭아맨다.

그 찰나의 틈을 노린 셰인이 포위된 아군에게 뛰어가, 그들의 몸에 빠르게 손을 휘둘렀다.

"크흑! 치, 치료가…. 어라?"

"네, 치료 끝났어요."

골절에 부목이, 출혈이 난 상처가 어느 순간 꿰매지거나 붕대가 감겨져 있다.

빈말 없이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진 응급처치.

그 모든 걸 초단위로 끝마친 셰인을 향해 다수의 해적들이 달려들었다.

-우우웅!

측면에서 쇄도하는 공격을 손으로 흘려보내고, 전방의 적이 휘두르는 칼은 반대쪽 손으로 잡아채 잡아당긴다.

그로부터 자세가 커진 적들에게 닥치는 응축된 마나가 실린 주먹질.

-콰아앙!!

물리력의 팽창과 함께 튕겨져 나간 육체.

그를 피하고자 날뛰는 해적들의 진영이 와해된 순간, 셰인이 그 사이로 난입하여 제 몸을 휘두를 준비를 취했다.

"저 교쟁이는 또 뭐야!"

"저 녀석부터 제거해!"

이윽고 해적들의 관심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었다.

셰인이 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입가에 쓴웃음을 그려갔다.

"온갖 해괴한 전략들을 들고 오길래 뭔가 했더만……. 막상 까보니 요란한 빈수레였네."

-휘리릭!

회전하며 나아가는 몸이 공격을 모조리 흘려보내고, 그 사이로 퍼져나간 붕대가 적들의 움직임을 억제해간다.

그렇게 구속된 적들을 잡아끌며 아군에게 눈치를 주니, 그 신호를 눈치 챈 선원들이 셰인의 앞에 끌려온 적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셰인이 그 해적을 등지며 제 주먹을 틀어쥐었다.

"서포터 한 명 한테 그리 신경이 팔리면 쓰나?"

"자, 잠깐……."

-퍼엉!

총성.

그리고 그것마저 삼킬 정도로 거센 마나의 폭음과 연속되는 난동.

그에 맥을 못 추는 적들이 차차 전진을 망설이기 시작했다.

"저, 저 녀석 뭐야! 완전 괴물이잖아!"

"아니, 지금은 혼자다! 모두 포위해!!"

정신없이 싸우다 아군 진영을 벗어난 셰인.

그를 기회라 여긴 해적들이 주변을 둘러쳤지만, 셰인은 그런 해적들의 공격마저 전부 회피하고 있었다.

몸에 감도는 마나의 흐름은 적들의 칼과 육탄공격.

심지어 총탄까지 모두 흘려보내기에 이르렀으니.

"크아악! 어, 어딜 쏘는 거야!"

"이 멍청한 새끼야! 거기 비키……. 케헥!!"

숫자로 어찌 하지 못할 때엔, 붕대를 퍼트려 해적들을 방패로 삼으며 나아가기를 반복했다.

범위가 큰 산탄의 특성상 노리면 아군에게 피해가 갈 위험이 커지는 법.

그렇다고 거리를 좁힌 자에게 기다리는 건 일방적인 구타뿐이다.

"대, 대단하다!! 혼자서 적지를 완전히 헤집고 있어."

"저것이 양배추의 힘인가!?"

혼자서 해적들을 때려눕히는 셰인을 보며 사기를 높여가는 선원들.

확실히 그가 합류한 후부터 숨통이 크게 트이긴 했지만, 정작 그 주축이 되는 셰인의 표정은 좋지 못한 상태였다.

‘부상자들이 더욱 늘어간다.’

분명 전체적인 무장과 지휘체계는 이쪽이 우세이거늘, 정작 우위를 점해야 하는 싸움에서 부상자들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야만족들의 힘이 압도적이어서?

난전상황이니 그 또한 영향력이 적진 않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적들의 핵심병기가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기관총……. 고작 저거 하나 만으로 전황을 뒤집기 이렇게 힘들어질 줄이야.’

하나만으로 소총수 백 명 분의 몫을 홀로 해내며, 뭣보다 마나의 장벽조차 찢어발길 수 있는 난사력을 자랑한다.

이 전황을 바꾸려면 어떻게든 저 기관총을 제거해야  할 터.

교전 중인 선원들 역시 그걸 눈치 채고, 다급히 마법반이 있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마법반! 마법반 중에 여유 남는 사람 한 명만 저쪽으로 마법 쏴봐!!"

"지금 준비 중인 거 안 보여!?"

"하등한 천민 주제에 나에게 명령하지 마라!!"

"뭐야!? 말 다 했어!?"

"상황이 어느 때인데 천민 타령이야!? 같이 수장되고 싶어!?"

"그렇게 되기 싫으면 너희들이 알아서 몸을 대란 말이야!"

마법반과 선원들의 말다툼.

멀리서 듣고 있던 셰인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저 자식들은 바람마법으로 적들을 쓸어버려도 모자랄 판에 발암짓을 하고 자빠졌네.’

마법사들은 대개 귀족출신자들이니 당연할까.

하지만 기본소양이나 다름없는 자부심조차도 상황을 봐가며 부려야 하는 것.

"크하악!"

귀족들과 선원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순간, 잠깐 한눈이 팔린 선원의 몸이 칼에 베여 쓰러졌다.

그를 기점으로 뚫리기 시작하는 방어선.

당연히 적들이 노리는 건 후열의 마법반이다.

‘이런 망할…!’

저대로 해적들의 침입을 허락하면 마법반은 분열.

실드는 해제되고, 주술사들의 포격이 이 배에 다시 떨어져, 항해선은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쪽에서 대처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어!’

발악하듯 혈도를 개방하려는 것도 잠시.

그 순간 마법반을 노리고 드는 이들의 사이를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후드를 걸치고 있는 소녀.

아군을 등진 채로 적에게 뻗어진 손에선 아지랑이가 격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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