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78화
-퍼어엉!!!
이윽고 소녀의 왼손에서 뿜어져 나온 공격이 주변의 해적들을 무참히 밀어내었다.
순수한 물리력으로 이루어진 거센 폭발.
그로부터 생긴 틈을 노린 성기사단이 해적들을 가로막아주었다.
소녀가 틈을 벌어준 덕에 마법반의 안전이 보장된 셈.
그에 감사를 느껴도 모자랄 판에, 마법반에 속한 귀족 마법사는 자신을 지켜준 소녀에게 도리어 화를 내질렀다.
"이 멍청한 년이 왜 이제야 오는 거야!"
"죄송합니다, 류드라 님."
"닥치고 빨리 몸이나 대!! 내가 이 배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몰라!?"
마력을 모으는 것조차 잊은 채 호통을 치는 귀족여성.
확실히 마법사가 귀중한 전력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구해준 자에게 할 발언은 아니라 생각되었다.
‘따지고 싶은 건 많지만…. 상황이 영 좋지 않은 게 문제군.’
다시 마법반을 노리고 밀려들어오는 해적들.
이전의 습격에 집중이 흐트러져서인지, 실드를 뚫고 들어오는 마법공격도 드문드문 보이고 있다.
아무리 강체술로 몸을 보호할 수 있다 해도 버틸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그렇게 차차 위태롭게 변해가는 방어선을 보완해 주는 건, 이전에 마법반을 지키고자 난입했던 후드의 마법사였다.
-퍼펑!
쏘아진 마력의 포탄이 적들을 밀어낸다.
순수한 물리력을 쏘아 보낼 뿐인 기술.
그것을 보는 셰인이 저도 모르게 경악을 흘렸다.
‘뭐야 저거. 매직미사일 맞아?’
매직미사일.
마나를 뭉쳐 쏘기만 하면 되는 기본 중의 기본기로, 별 다른 준비를 거치지 않으니 보통은 위력이 저조한 게 기본이다.
하지만 정작 소녀가 쏘는 공격은 적중하는 순간 뼈가 부러지거나 파열되는 등, 보통의 마법사와 비교했을 때에 터무니 없는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시선 돌리기가 아니라 전투용으로도 충분히 사용할 만하겠는데?’
원리가 어떤지는 나중에 알아도 된다.
재빠르게 주변을 정리한 셰인이 곧 후드의 소녀를 불러 세웠다.
"거기 잠깐."
잠시 자리에서 거동을 멈추는 소녀.
이후 고개를 돌리자, 후드 밑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푸른색의 피부가 셰인의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모습이다.
‘분명 배에 막 올랐을 때 짐을 옮겼던……. 그래, 코델리아라고 했던가?’
셰인으로썬 기억할 수밖에 없는 자였다.
귀족 마법사를 따르던 이가 그녀를 두고 ‘덴 가문의 사람’이라 지칭했으니까.
"당신은…?"
반면 상대가 셰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군인 것 뿐.
하지만 통성명은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
"자기소개는 나중에 하고, 용건부터 간단히 말할게."
이윽고 코델리아를 앞둔 셰인의 손가락이 적의 해적선으로, 그 위에 장치된 기관총으로 향해졌다.
"저쪽까지 가는 동안 지켜줄 테니까, 사거리에 가면 저 기관총을 요격해줘."
"네? 무슨……."
"같이 갈 수 있는 지 없는지만 대답해."
지금은 편히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다.
다급한 태도에 망설이던 코델리아가, 이내 제 왼손을 굳게 틀어쥐었다.
"…해보겠습니다."
"얘기 빨리 풀리고 좋네."
미소를 지은 셰인이 붕대를 펼치며 전방으로 달려갔다.
전위를 지키고 있는 자의 이름을 외치며.
"레온!!!"
"우오오오오오!"
함성과 함께 난입해 오는 거센 망치질.
그 기세를 버티지 못한 적들의 진영이 와해되는 가운데, 셰인이 코델리아와 함께 뚫린 진로를 나아가며 붕대를 펼쳐갔다.
다가오는 적들을 묶고 내동댕이치며, 그마저도 뚫고 들어오는 적들을 체술을 이용해 제압한다.
"지금이야, 쏴!!"
그로 인해 안전이 보장된 코델리아가 신호에 맞춰 적들에게 마나를 사출시켰다.
고작 매직미사일.
물리력을 뭉쳐 쏘아 보낼 뿐인 공격.
그 위력은 불덩이나 벼락보다 떨어져야겠지만, 그 떨어진 위력조차도 거진 3써클에 준하고 있었다.
그런 공격을 캐스팅도 없이 즉발로, 심지어 간격을 두지 않고 갈기는 상황.
사실상 걸어 다니는 인간대포나 다름없는 진군이다.
‘덕분에 길 뚫기가 수월해졌어.’
이내 셰인의 발이 해적선과 항해선을 잇는 나무판자에 올려졌다.
마침 건너오려던 해적들의 얼굴에 그려지는 당혹.
"이,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이밀어!?"
"여긴 우리 구역이야!"
"당장 꺼져!!"
콰앙!
무자비한 돌격으로 판자에 오른 적들을 밀어내는 셰인.
"닥쳐. 이젠 내 구역이니까."
길을 열어낸 셰인이 곧 적들의 갑판에 선 채로 목적지를 주시하였다.
탄약통에서 꺼낸 총알더미를 기관총에 매다는 해적들에게.
"자, 잠깐! 뭐야 저놈들!"
"이익! 어서 막아!"
"아, 안 돼! 여기서 인원이 뚫리면……. 크윽!!"
난입자에게 너무나도 과도히 이목이 집중되어서일까?
항해선에 침범한 해적들이 슬슬 밀리기 시작하고, 도리어 선원들이 나무판을 타고 해적선으로 진입하기에 이르렀다.
기관총의 장전을 노린 기습.
사격을 이어가면 다시 밀어낼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셰인과 코델리아의 협공을 먼저 견제해야 하기에 쉽지 않았다.
"망할! 저 녀석들 대체 뭐야!"
"저걸 어떻게 막으라고!"
근접하면 난잡한 체술이.
멀리서 견제하려 들면 무지막지한 위력의 매직미사일이 날아든다.
철벽의 방어를 자랑하는 이동대포.
그것을 뚫을 기회를 모색하지 못한 해적들은 끝내 도망치기에 이르고 말았다.
"이런 쓸모없는 새끼들!"
기관총수가 욕을 내질렀지만 이미 장전은 끝난 상태.
그렇다면 총구의 머리를 그들에게로 돌리면 될 뿐이다.
"그래! 아무리 강해봐야 결국 사람새끼지!"
"바로 스펀지로 만들어버려!!"
지이잉.
기계음과 함께 서서히 회전하는 총열.
그를 맞닥트린 셰인이 왼손에 집약시킨 마나를 해방시키며 붕대를 펼쳤다.
"안 됐네. 그거 이미 공략 끝났는데."
풀려난 붕대가 전방으로, 실려있는 마나를 통해 회오리치듯 움직인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붕대를 기반으로 한 마나의 소용돌이.
제 아무리 맹렬한 난사라 하더라도, 가벼운 투사체인 이상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무, 뭐야!?"
난사된 총탄이 도탄 되듯 사방으로 날아간다.
그 반사공격에 당황하여 사격마저 멈춘 순간, 셰인이 배후에 따라붙은 코델리아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이야! 쏴!!"
-퍼엉!!
즉발로 이루어진 마력의 포격.
그 공격이 기관총을 강타해 총신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정밀한 기계인 만큼 바로 고치지는 못할 터.
그리고 기관총이 마비되었다면 승기는 이쪽으로 기울게 된다.
"해적선을 점거해라!!!!"
이윽고 역으로 해적선에 오르기 시작하는 선원들.
그들을 방어하고자 해적들이 달려들었지만, 이미 핵심 병기가 사라진 이상 승패는 명확한 것이었다.
* * *
"해적선을 침몰시켜라!!"
해적들을 완전히 몰아낸 후, 이윽고 원정대는 해적선 안에 내장된 폭약을 터트리고 그 자리를 이탈하였다.
밑창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유입되는 해수는 배를 침몰시키기에 이를 터.
이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해적들은 사실상 도망갈 곳도 없어졌으니, 살아남은 자들은 항해선 내에 포로가 된 채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이 빌어먹을 해적 녀석들!"
"너희 때문에 우리 동료들이 죽었어!"
무고한 사람들을 테러에 이용한 것도 모자라 제 동료들을 살해하기까지.
당장이라도 총살을 강행하고 싶지만, 현 선장의 방침상 포로로 삼은 해적들은 제국의 재판소에 회부시킬 예정이었다.
대개 강도에 대한 처벌은 책임자는 사형, 그 부하들은 잘 쳐줘도 무기징역이 대부분이다.
그런 앞날이 두려울 법함에도, 정작 해적선장은 도리어 그들을 향해 역정을 내고 있었다.
"닥쳐라 제국의 노예들!! 우릴 이렇게 만든 게 정녕 누구인지를 몰라서 그러나!?"
해적단을 이끈 선장이 발끈하며 두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기겁하며 총을 겨누는 선원들.
그 총구를 맞닥트렸음에도 선장은 분노를 누그러트리지 않았다.
"그래, 이 제국의 노예녀석들, 콩고물이나 좀 받아먹으니 살 만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어떤 취급을 당해서 이렇게 된 건지는……!"
"나는 잘 알고 있네, 친구."
선원들의 사이로 누군가가 발걸음을 옮겨왔다.
사우전드 블레이즈의 선장인 드레이크 나저러였다.
"오랜만이네, 에드워드. 이번 침공에 기용한 장비들을 보니 근래엔 꽤나 벌이가 좋은 듯 하군."
"오오, 그래 드레이크. 이 배는 네가 이끌고 있었지! 이 빌어먹을 배신자 녀석!!"
해적선장, 에드워드가 드레이크를 보자마자 격노를 토해내었다.
충혈 된 눈동자에 벌게진 코. 그를 상징하는 하얀 수염마저도 파르르 떨리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이번 습격이 원한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으리라.
"이 쓰레기 자식! 남들에게 선장 소리 들으니까 네가 뭐라도 된 줄 알겠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네가 비겁한 배신자 새끼란 건 달라지지 않……."
-타앙!
총성과 함께 솟구치는 핏줄기.
다리에 힘이 풀린 에드워드가 고꾸라지자, 드레이크가 그의 다리에 겨눈 머스킷을 거두며 눈높이를 맞추었다.
"……에드워드."
옛 친구를 내려다보는 노장의 눈빛은 냉정으로 벼려져 있었다.
목소리 역시 건조하게.
"이제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하지. 그 물음에 답을 해주면 재판소에 설 때까지는 편의를 봐주겠다 약조하겠네."
적어도 교수대에 목을 매기 전까진 얌전히 내버려두겠다고 선언한다.
사형이 예정된 흉악범에겐 파격적인 자비.
그것을 대가로 걸은 드레이크가 에드워드에게 질문을 건네었다.
"배의 항해 경로는 어디에서 들었나?"
"……."
"원정계획은 어디까지 알고 있지? 잠수정은 어디에서 구했나? 더군다나 해적단원들이 야만족들로 이루어져 있던데, 저들은 또 어느 경로로 고용한 건가?"
"내 불알이나 빨아 씨발……!"
-콰앙!
관자놀이를 강타하는 머스킷의 손잡이.
어디까지나 군의 장교가 범죄자에게 가하는 매몰찬 폭력이었다.
결코 옛 지인을 향한 분노 따위가 아닌.
"시작하게."
그건 이후에 내려지는 명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밧줄에 묶인 채 끌려가는 에드워드가 비명을 질러대었다.
"드레이크!! 네가 이런다고 제국이 달라질 것 같으냐!? 네 녀석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나와 내 동료들이 너를 지옥에서부터 저주할 것이다!!!"
패배자의 아우성일 뿐이다.
그것을 뒤로하며 한숨을 내뱉을 무렵, 드레이크의 눈에 사제복을 입은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셰인 골드리안.
그런 이름을 지닌 청년이 끌려가는 에드워드를 보며 물었다.
"뭘 하시려는 거죠?"
"……별거 아니네. 3분 정도 바다에 빠트린 다음 배 밑창에 질질 끌어댈 뿐이지."
밧줄에 묶은 채 3분 동안 빠트린다니. 그래봐야 그냥 물고문이 아닌가?
그런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드레이크가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 보여주었다.
"배 밑에 이런 게 가득 붙어 있긴 하지만."
단단한 껍질은 조개의…….
아니, 따개비다.
주로 암초나 항구 밑, 혹은 배의 밑에 붙어 있는 생물의 단단한 껍데기.
"……아."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달은 셰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평평한 벽도 아니고 따개비가 무수히 박힌 바닥에 사람의 몸을 쓸어내린다.
사실상 마차에 사람을 매단 채 거친 돌바닥을 질주하는 거나 다름없는 짓거리……. 아니, 물속이기에 더욱 심하다.
‘끔찍하군.’
조국에서 고문전문가들을 다수 마주해온 셰인조차 그런 생각이 드는 형벌이었다.
"용골 쓸기라고 하는 형벌이지. 워낙에 잔인하기에 제국의 법으론 흉악범에게나 간간이 하지만……. 저 녀석은 천 번을 죽여도 시원찮을 악당이니 본보기론 괜찮지 않겠나?"
드레이크가 입에 시가를 한 대 물고 성냥으로 불을 지폈다.
그 후 고개를 돌린 곳은 갑판의 한 구획.
전투에서의 전사자들과 더불어, 해적들의 농간에 희생된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곳이었다.
"주여, 부디 이들에게 안식을 주시고……."
"또한 부득이하게 살생을 범한 이들의 죄를 사해주소서."
종교인들, 그리고 동고동락했던 선원들.
처음의 경박했던 모습조차도 제 동료의 죽음 앞에선 엄숙함에 감춰져 있었다.
당연히 본보기는 확실히 보여야 할 터.
하지만 그런 처사와 별개로, 드레이크의 마음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옛 동료를 저리 취급해도 되는 겁니까?"
"갈라진지도 벌써 30년이네."
선장은 담담했다.
해적의 입에서, 한때 함께 해적질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붙으려야 붙을 수가 없지. 내가 속했던 배의 선장을 영지에 넘겼던 게 나니까."
배신을 공훈으로 삼아 제국의 장교가 되었으니, 같은 자를 따랐던 에드워드의 입장에선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라도 그를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증오를 받을 걸 알면서도 그는 왜 해적을 그만둔 것일까?
속죄인가, 아니면 후회?
이어지는 설명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