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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79화 (79/255)

의무병의 환생 79화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제국은 뱃사람들을 썩 좋게 보질 않는다네. 바다로 나간다는 건 축복받은 땅을 마다하는 어리석은 일로 받아들여지니까."

배를 타고, 낚시를 하며, 해로를 통해 무역을 펼친다.

하는 일이라곤 농민이나 상인과 다를 바 없지만, 그 배경이 대지가 아닌 바다라는 것만으로 짙은 혐오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저 영양분 결핍에 의해 생긴 병은, 그 실체를 모른다면 그런 인식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

"그리고 대개 배를 이끄는 선장들은 귀족출신들이지. 그들이 선원들을 취급하는 수준은 노예나 다름없었고……."

가치 있는 물건은 모두 선장이 독차지하고, 임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며, 대중의 눈에 띠지 않는 배라는 환경을 빌려 인간으로써 어찌 못할 학대까지…….

그로부터 비롯된 원망이, 제국의 눈이 들지 않는 망망대해에선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뻔한 일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부조리에서 비롯된 악의마저 용납해줄 정도로 주님은 어리석은 분이 아니시지."

어떤 이유에서건 죄를 저지른 자란 대중에겐 악으로 여겨지는 법.

그러니 사람은 제 처지에 순응하는 법을 익히거나, 악이 되더라도 그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제 옆에 있는 자는 그 각오를 도중에 포기한 자였다.

"처음 뱃일을 했던 곳의 선장을 죽였을 때만 해도 혁명가라도 된 줄 알았지. 그마저도 현상금이 걸려 어느 항구에도 안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현실을 깨달았고……. 그런 비루한 몸으로나마 살기 위해선 무고한 사람들을 위협해야만 했지."

해적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육지에 상륙하지 못해 신선한 음식을 먹지 못하니 괴혈병은 일상적.

그러다 돌림병이라도 돌면 선원 모두가 몰살될 것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거야 외도에 들어선 이상 감수해야 할 일이었지만……. 딱 하나 참아내지 못하는 게 있었네."

"…그게 무엇이죠?"

"나와 같은 녀석들이 항구에서 끝도 없이 밀려오는 광경."

겁이 난 것도 아니다.

속죄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과 같은 이들이 늘어나는 광경이 싫었기에.

"바다는…… 도피처가 아니야. 우리가 사는 땅 외에 무엇이 있는가, 좀 더 많은 세계를 탐구하고자 나서는 곳이지."

부조리에 저항하다 악으로 전락했음에도, 여전히 처음 배에 올랐을 때와 같은 바다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으니…….

그렇기에 그는 전과자라도 출세의 길이 열린 곳을 찾아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줄이고자 노력해온 것이다.

"하지만……. 저 녀석의 말대로야.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 혼자선 그런 인식을 바꿔낼 수가 없었지."

이윽고 배 위로 올라온, 해수에 젖은 고깃덩이를 본 드레이크가 착잡함을 곱씹어갔다.

파르르 떨리는 몸은 그저 사후 경직일 뿐.

그런 옛 친구의 비참한 최후를 바라보는 얼굴엔 많은 주름이 그려져 있었다.

드레이크가 그런 얼굴로 셰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만약 자네가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거쳐온 세월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네?"

"분명 그랬을 게야. 자네가 저주의 실체를 밝혀주지 않았다면."

이윽고 드레이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괴혈병에 의해 이빨이 빠진 잇몸 부분을 툭툭 건드리면서.

"고맙네. 내가 이끄는 이 배에 승선해 줘서."

30년.

그 시간 걸쳐 악연에 대한 결착을 내었음에도, 그의 얼굴에선 회의감은 전혀 엿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라도 이 제국에 만연한, 바다에 대한 혐오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접했으니까.

‘이런 시대에도…….’

그 감사를 전해들은 셰인이 저도 모르게 손을 떨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드레이크 나저러.

제국의 부조리를 바꾸고자 범죄가 아닌 더욱 어려운 길을 택한 자.

그 세월이 무색하게도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만들어낸 변화를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은 아주 작겠지만, 그조차도 모든 게 어두운 장소에선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법이다.

그러한 빛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게 밤하늘이라는 게 아닌가?

셰인에게 있어, 그와 같은 이들이 제국 곳곳에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환자들 치료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 네 금방 갑니다!"

물론 그에 대해서 마냥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부상자가 가득한 현장에 자신은 빠질 수가 없었으니까.

"그럼 전 이만……."

"그래, 고생하게."

그렇게 헤어진 뒤, 드레이크가 그가 떠나간 셰인의 흔적을 뒤쫓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참 이상한 일이로군. 나이도 어린데, 왜인지 모르게 알맹이가 느껴진단 말이야."

마치 동년배의 친구라도 마주한 것처럼.

왠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 * *

‘네 원수를 사랑하라.’

성경에 적힌 그 문장은, 한때 야만족들의 고결한 신념을 마주한 한 성자가 남겼던 말이었다.

그 자의 신념이 옳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신념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라.

그건 같은 진영에 속한 아군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바.

"으흐흐~ 수녀누님~"

설령 그 자가 음흉한 모습으로 자신의 손을 쓰다듬는다 해도, 같은 길을 거니는 자임을 안다면 결코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

항해선에서 치료를 담당하는 성직자 중 한 명.

메어리는 그 사실을 속으로 끝없이 되뇌고 있었다.

"아휴~ 이런 막 굴러먹던 놈을 치료해 주셔서 어찌나 고마운지~ 아! 저녁에 시간 있으면 저랑 같이 술 한 잔 하지 않겠습니까? 안주로 양배추절임은 어떠신지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송구하게도 그때엔 교단에서의 일정이 잡혀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교단에선 성수 말고는 다른 주류를 접하는 게 금지되어 있는 터라 술자리를 가지는 것 역시도……."

"아휴~ 그래도 좀 시간을 내서……."

"작업 그만 걸고 비켜라 좀."

메어리에게 추근대는 선원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자 부상을 입은 채 구호실에 방문한 선원들.

해적들과의 항쟁에서 부상을 입었음에도, 뱃사람 특유의 포악함은 변치 않고 그려져 있었다.

"그래! 언제까지 치료받을 생각이야!"

"다 받았으면 저리 비켜 이 변태 새끼야!"

"너만 수녀님이랑 행복한 시간 보내고 싶은 줄 아냐!?"

"닥쳐 이것들아! 이 때 아니면 언제 여자손을 잡아보겠냐!?"

"뭔 소리야! 창관에 네가 마누라 소리 하는 사람만 40명인 거 누가 모를 줄 아냐!?"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

메어리가 그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 뱃사람들은 교양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군요.’

그런 자들을 치료해야 하다니, 귀족출신인 자신이 어쩌다 이런 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예전이라면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그런 의구심마저도 시련이라 여기기에 메어리는 신성력을 각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요, 이것을 견디는 것 또한 시련이겠지요. 주님, 부디 이 방탕한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고, 언젠가 자신의 그릇됨을 깨닫게 해주시길…….’

"야, 주근깨. 바쁜 중에 딴 짓 하지 마."

한창 양손을 맞잡고 집중하던 중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환자의 몸을 봐주고 있는 사제복의 청년.

하지만 자신과 달리 신성력 하나 쓰지 못하는 자다.

셰인 골드리안.

메어리가 늘 ‘이단녀석’이라 부르는 자였다.

"주근깨라고 하지 마!! 이젠 그다지 티도 안 나는데 왜 자꾸 그렇게 부르는 건데!?"

"그래, 얼굴 예뻐져서 좋겠네."

비꼬던 셰인이 메어리를 나무라듯 쏘아보았다.

"근데 지금 돌볼 환자가 천지인데 기도할 시간이 있냐? 정 신성력이 필요하다면 치료할 때 쓰는 신성력을 줄이든가 해라 좀."

구급법이 퍼진 후, 아주 심각한 상처가 아니라면 신성력보다는 환자의 자가치유력에 의존하게끔 방침이 바뀐 상태다.

물론 괴혈병은 자가치유력을 떨어트리긴 하지만, 그것도 선원들이 셰인의 대처법을 잘 따라줌으로써 해결된 상황.

셰인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준 제 업적을 높이 사며, 그로부터 생긴 여유를 환자의 치료에 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 어? 예, 예쁘다고?"

하지만 메어리는 비꼬듯 한 말에 감동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것을 팍 구겨진 얼굴로 보자, 메어리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리며 앙칼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치,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널 좋게 봐줄 거 같아? 그렇게 말해도 네가 이단을 지향하는 이상 내 태도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환자나 받아, 이 녀석아.’

신성력을 각성해도 철없는 건 여전하네.

끌끌 혀를 차다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셰인."

옆에서 누군가가 소매를 잡아당기며 이름을 불러왔다.

"이렇게 묶으면 되는 건가요?"

수행원 베르디.

메어리와 달리 신성력을 쓰지 못하는 그녀는 응급처치법을 익히고, 나름대로 셰인의 옆을 보조하며 환자들의 치료를 이어가고 있었다.

부목을 묶은 모습을 본 셰인이 감탄을 흘렸다.

"오, 괜찮은데?"

응급처치법을 널리 전파해도 붕대 하나 못 묶는 사람이 가득한 시대.

그런 이들을 전선에서 여럿 보아온 셰인에게 있어, 베르디의 처치는 제 부관으로 삼아도 될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었다.

"의외로 열심히 연습했나보네."

"전 신성력을 쓸 수 없으니까, 맨 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익혀두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 말하는 베르디가 셰인의 지도를 받으며 환자의 몸을 봐주는 작업을 이어갔다.

상처를 꿰매고자 하면 실을 내어주고, 붕대가 필요하면 붕대를 내어주는 식으로.

그렇게 제 가르침을 잘 따라준 셰인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직자들이 다 너 같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저는 싫어요."

"……아."

뒤늦게 제 실책을 자각한 셰인이 탄성을 흘렸다.

상태가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베르디는 여전히 자학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자신과 같은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다니.

"미안해, 내가 실언을 했네."

"셰인이 싫어요."

"…아, 그쪽이었냐."

"치료에 집중해 주세요."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야."

피식, 웃음을 터트린 셰인이 마저 환자의 환부에 난 총알을 적출해주었다.

신성력을 쓰지 못함에도, 성직자를 상징하는 옷을 걸친 두 사람.

‘신앙심도 없으면서…….’

메어리는 그런 두 사람에게서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치료활동을 이어가길 언 수 시간 째.

"우웁……."

활동이 슬슬 막바지에 들어섰을 무렵 메어리가 구역질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신성력으로 회복되었던 멀미증세가, 신성력이 바닥남으로써 다시 심하게 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오래 버틴 축이었다.

다른 성직자들은 진작 벗어난 지 오래, 오히려 멀미가 덮쳐옴에도 근성으로 버틴 메어리가 대단하다 생각될 정도였다.

"제가 메어리를 선실에 바래다주고 올게요."

"그래 부탁할게."

이후 베르디가 메어리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난 후, 셰인은 마저 남아 환자들의 치료를 이어가기에 이르렀다.

뒤에 오는 환자일수록 상태가 양호한 이들.

그 정도라면 가벼운 처치만 거쳐도, 신성력 없이 자연치료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하였다.

그렇게 환자들의 처치를 이어가니, 어느 순간 구호실엔 셰인과 마지막 환자만이 남게 되었다.

"팔을 봐줄 수 있을까요?"

"아 네. 봐드릴……. 어?"

그녀를 알아보고 내뱉어진 탄성.

하지만 여인은 진작 셰인의 정체를 눈치 채고 있었다.

"자기소개는 나중에……. 라고 하셨죠?"

그때 갑판에서 만났던 후드의 소녀, 코델리아였다.

그녀를 뒤늦게 알아본 셰인이 탄성을 흘리며 웃음을 지었다.

"셰인이라고 해. 그땐 협조해 줘서 고마웠어."

"아뇨. 필요하다면 나서야죠. 오히려 선생님 같은 대단하신 분께서 필요로 해주신 데에 감사마저 느낄 뿐입니다."

코델리아가 그리 말하며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그렇다 해도 체격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

‘연하인가.’

자세히 보니 베르디나 자신보다도 나이가 좀 더 어린 듯 했다.

16살 정도.

소년병이야 블레이즈 영지군에선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지만, 그보다도 더 독특히 여겨진 건 피부색이었다.

황색도, 흑색도 아닌 푸른 빛.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생기는 청색증과도 거리가 멀다. 분명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리라.

그런 소녀가 곧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제 소개를 행했다.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현 영지군에 소속된 견습 마법사, 코델리아 덴이라고 합니다."

일라이 덴.

제 기억 속에 있는 자와 같은 성을 지닌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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