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80화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아니, 뭐. 감사는 내가 해야지. 오히려 도움을 받은 건 나였고……. 아, 일단 상처부터 보여줄래?"
일단 연하이니 말은 놓자.
그런 태도에도 코델리아는 개의치 않고 셰인에게 얌전이 왼팔을 보여주었다.
‘역시 팔에 무리가 가해졌나.’
아무리 매직미사일이라곤 하나 그만한 위력의 공격을 팡팡 쏴대면, 마나 자체가 발하는 반동에 팔에 무리가 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리는 건 응급처치가 되어있는 부분.
"처치가 심하게 잘못됐네."
셰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붕대를 다시 묶어주었다.
"이렇게 묶으면 도리어 골절이 난 부분에 무리가 가해져서 상태가 악화될 수 있어. 누구야, 이렇게 처참하게 묶은 게."
"제가 직접 했습니다."
"가능성이 보이네. 조금만 더 연습하면 되겠다."
구급법을 전파해도 개판으로 묶는 놈들이 태반인데 이 정도는 양반이지.
셰인이 붕대를 풀며 코델리아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잠깐 검증해보려고 하는데, 마나 좀 잠재워줄 수 있어?"
"아, 네."
코델리아가 곧 눈을 감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무의식적으로 몸에 이끌리는 마나를 의식적으로 방출하는 것. 마법사들이 명상을 할 때에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비워진 육체에 셰인이 자신이 제어하는 마나를 불어넣었다.
검증술.
마나를 불어넣어 체내의 상태를 살피는 의술이다.
보통은 뼈나 장기의 대략적인 상태 정도에 그치지만, 셰인은 혈도 개방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혈관단위까지 민감히 반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혈관 중엔 마나가 지나는 길이 존재하는 상태.
즉 검증술로 마력회로를 읽어낸다면, 대상이 마나를 발하지 않아도 ‘써클의 개방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단 것이다.
‘매직미사일 하나만으로 3써클에 달하는 위력을 내다니.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이면……. 음?’
검증을 하던 중 셰인의 얼굴에 의문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여러모로 차이가 있는 육체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보아온 환자들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이 애, 마력회로가 왜…….’
"왜 그러시죠?"
코델리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상태를 검증하는 중에 표정이 굳어진 것. 환자 본인으로썬 두렵게 느껴질 법도 할 것이다.
셰인이 쓰게 웃으며 마저 손을 움직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자, 처치 끝났어."
"네, 끝났……. 네, 네?"
갑작스러운 발언에 어리둥절히는 코델리아.
하지만 실제로,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붕대는 완벽하고 깔끔하게 묶여있는 상태였다.
자신이 묶었을 때의 그 고생이 무색할 정도로.
"끄, 끝인가요?"
"뭐, 가벼운 골절에 내출혈 정도니까. 며칠 정도 지나면 움직이는 데엔 문제는 없을 거야. 정 그 시간 동안 못 기다릴 거 같으면 성직자에게 치료해 달라고 해도 되고……."
이후 진단 결과를 들려주면서도, 셰인은 자신이 살핀 코델리아의 ‘마력회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갔다.
‘왜 그 귀족여자가 천대했는지를 알 것 같군.’
이전의 검증술을 보며 살펴본 바, 그녀가 지닌 마력회로의 ‘특이점’은 제국의 상식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이 있었다.
일라이는 그걸 알고 있을까?
"그건 그렇고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마침 그녀와의 관계성도 궁금했던 참. 셰인이 코델리아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일라이라는 사람 알아?"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네?"
제 눈을 껌뻑이는 코델리아.
거론한 이름을 알고 있다는 반응이다.
동생일까? 아니면 친척?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아, 어머니였……."
긍정하려던 셰인의 말이 뚝 끊어졌다.
"…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분이 저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만."
‘말도 안 돼.’
셰인은 바로 부정했다.
그야 일라이와 처음 만났을 당시 그녀의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였으니까.
그때가 8년 전이었으니 지금은 갓 30대에 진입했을 터.
그런 마당에 제 또래의 딸을 낳았다니.
"아니 어떤 정신 나간 페도 새끼가……."
"코델리아!"
일순간 들려오는 외침에 끊어지는 추측.
막 구호실에 들어온 여인의 것이었다.
그것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드레스……. 고된 항해에는 전혀 걸맞지 않은 복장이다.
그런 여인이 손에 쥔 스테프를 코델리아에게 겨누며 호통을 쳐댔다.
"내가 분명히 방 정리를 해놓으라고 말을 했을 텐데? 언제까지 여기서 노닥거릴 생각이야!!"
"조, 죄송합니다, 류드라 님. 그, 치료를 받고 바로 청소하려고 했는……."
"허, 치료? 네깟 년 치료가 내 방 청소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이 년이 거둬준 은혜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밤에 손님 받아들여야 하니까 빨리 침대부터 정리해."
"……."
코델리아가 말없이 자리를 이탈했다.
붕대에 감겨진 팔을 꾹 틀어쥔 채로…….
그 손을 눈여겨보는 가운데, 구호실에 난입한 여성이 셰인을 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선생님~"
‘얼씨구?’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폭언을 했으면서, 지금은 자신을 존칭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을 따르는 수행원에겐 치료마저 허락하지 않다니.
‘이야, 이렇게 대놓고 썅년 냄새 나기 쉽지 않은데.’
여러모로 감탄이 드는 여자다.
정작 상대는 그런 자각도 없이 셰인에게 호의를 표해왔지만.
"아까 전에 구해주신 거 정말 고마웠어요!"
"아뇨, 뭐……. 제가 한건 딱히 없었는데요."
"그럴 리가요~ 위험에 처한 순간 나타나신 다음에 그 야만적인 놈들을 처리하는 게 어찌나 멋있으셨는지~ 거기에서 또 저희를 위협하는 그 이상한 장치를 부수기까지 하고!"
귀족 여인이 셰인의 손을 맞잡은 채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상 그녀를 구한 것도 기관총을 부순 것도 코델리아였거늘.
"아, 전 류드라 세스타라고 해요. 세스타 백작가라고 아시나요?"
"음, 들어본 적은 없네요."
"그럴 수도 있죠~ 선생님 정도 되시는 분께서 신경 쓸 만한 곳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이 나이에 5써클을 달성한 천재 중의 천재랍니다~ 제국에서도 이쪽으로 파견을 가달라 간~ 곡히 부탁을 받아서 이곳에 왔죠.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아, 네. 일단 상처부위를 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아참참, 내 정신 좀 보게~"
곧 류드라가 호호, 웃으며 셰인에게 상처 부위를 내세웠…….
"……."
"어머, 왜 그러시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손가락의 까진 상처를 본 셰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혹시나 더 상처가 있나 살펴보고자 검증술을 펼쳤지만, 그것도 만약을 대비한 거지 기대를 가지고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진짜 귀족출신 놈들은 왜 하나 같이 이 모양인지.’
모든 귀족이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보잘 것 상처에 호들갑을 떠는 것은 하나 같이 귀족들이었다.
물론 위치에 따라선 오만함도 소양이라고 볼 수 있을 터.
그 점을 생각하면 현 제국에 5써클에 오른 마법사란, 이런 호사를 누릴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 중반에 5써클인가.’
과거 카일이 도달했던 6써클은 범인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점.
그 이상인 7써클이 ‘탈인간’이라 불리는 걸 생각하면, 20대에 5써클에 올랐다는 건 만인의 존경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레벨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근데 이 여자, 편법을 썼군.’
3써클.
그것이 셰인이 회로를 직접 검토하며 확인한 경지였다.
그럼에도 5써클로 알려진 이유는 그저 허울좋은 말만으로 속여 넘긴 건 아닐 터.
‘외장형 써클인가.’
셰인의 시선이 측면에 놓인 지팡이로 향해졌다.
배에 막 탑승했을 때에도, 해적들과 전투를 벌였을 때에도 들고 있던 지팡이였다.
분명 이 도구가 이 여자의 써클을 2단계나 상승시킨 물건일 것이다.
마나를 운용하면 2개분의 써클이 추가로 스태프에 생성되는 식으로.
‘비전마법, 가문의 보구……. 그런 것들은 대개 노가다의 산물이었지.’
혈도개방을 통한 써클상승의 원리를 아는 건 과거에도 지금도 셰인 혼자뿐.
200년 전에도 써클의 수를 늘리는 방법을 몰랐으니, 그 수를 늘리고자 한다면 뭐가 됐건 반복적인 시도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외장형 써클은 그런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만들어진 노력의 산물인 셈.
과정을 모른 채 나온 결과를 보존하고 계승한 것으로, 그 맥락은 민간요법에서 파생된 한의학이랑 다를 게 없다.
‘물론 그게 아주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지. 비전이란 칭호가 붙은 것들은 그만큼 효과가 파격적이니까.’
뭐가 됐건 제 할 일만 열심히 한다면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열심히 하는 일에 ‘자신이 눈여겨보는 사람을 핍박하는 일’을 끼워 넣어도 되는 것일까?
"아까 전에 그…… 코델리아라고 했죠?"
"네? 코델리아요?"
류드라가 셰인의 말에 표정을 우그러트렸다.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내면서.
"혹시 코델리아가 저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나요?"
"아뇨, 별로 말은 안했어요. 그냥 제자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허, 제자라니."
"…아닌가요?"
"뭐, 틀린 말은 아니죠. 처음엔 제자로 받아들이긴 했으니까."
일단은 긍정하는 뉘앙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를 깔보기 위한 행위의 시동일 뿐이다.
"근데 까놓고 얘기하면……. 그 녀석을 받아들이는 걸 엄청 후회하는 중이에요."
"…어째서죠?"
"마력불구자니까요. 거두어 들인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1써클에 머물러 있죠."
마력불구자.
비정상적으로 써클의 개방이 느리거나, 아예 써클의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셰인이 현재 3써클.
4년 전에 2써클에 올랐음을 생각하면, 확실히 코델리아의 성장은 마법에 숙달된 사람이라기엔 떨어지는 편이었다.
‘물론 내가 보기엔 마력불구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만.’
제국의 마법체계를 기준으로 하면 1써클이라 할 수 있겠지만, 관점을 달리 본다면 그녀의 자질은 전생의 셰인조차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물론 이 시대는 마력회로의 진실을 모르는 상태.
당연히 마력불구자라 오해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정작 상대의 혐오는 그런 오해나 무지와는 거리를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하기야, 야만족의 피를 이어받은 꼬맹이니 그럴 법도 하겠죠. 선생님께서도 야만족들이 우리와 달리 마나 사용 능력이 형편없다는 건 알고 계시죠?"
"…야만족이요?"
"그래요. 피부가 퍼런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그래도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아서 거두어들였더니……. 막상 결과를 보면 사람 말만 할 줄 아는 유인원이나 다를 바 없었던 거죠."
확실히 피부색 자체는 제국민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
그것을 떠올리는 류드라가 소름이 돋는 듯 몸을 떨기 시작했지만, 정작 셰인이 신경을 쓴 건 피부색이 아닌 코델리아가 지닌 ‘자질’이었다.
‘그 비정상적인 매직미사일은 태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건가.’
외형은 물론이고 제국의 마법체계와는 전혀 다른 마나사용구조.
그것이 태생의 차이에서 비롯된 거라면 모두 납득되는 요소였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셰인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요컨대 그 아이의 출신이 그릇되었으니 취급을 달리했다는 거군요."
"그야 그렇잖아요? 벽외지역에 있는 녀석들은 이 제국엔 있어선 안 될 쓰레기에 패배자들이죠. 주제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침범하려 드는 아둔한 족속들……. 그런 녀석들의 후손을 옆에 두고 괴롭히는 것도, 다른 분들이 보기엔 좋은 볼거리가 되어주겠죠."
볼거리. 류드라는 자신이 거두어들인 소녀를 그런 식으로 비유하며 가십거리로 삼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여자에게 있어서 야만족 태생이란 구실에 불과하다는 걸.
"뭐, 확실히……. 제국에서 살아가는 저희들이 보기에 야만족 출신자들은 혐오스러울 법도 하겠죠."
그런 태도를 일삼는 여자에게 셰인이 바로 긍정을 표했다.
그 순간 화색이 도는 얼굴.
이내 그녀의 몸 상태를 모두 검증한 셰인이, 손가락의 까진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류드라 씨의 말대로, 그런 보잘 것 없는 존재는 옆에 두고 괴롭히는 편이 본보기가 될 테고……. 충분히 다른 분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쩜~ 선생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었……."
"근데 난 서자야 이 년아."
기뻐하던 류드라의 몸이 뚝, 멈춰졌다.
"…네?"
"첩의 자식이라고. 몰라?"
일순간 격변한 분위기.
셰인은 그런 분위기를 유지한 채 류드라를 사나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