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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81화 (81/255)

의무병의 환생 81화

삐질삐질.

직설적인 말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듯, 류드라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 그……."

골드리안 가문은 제국 최고의 재벌가.

비록 셰인은 그 가문의 서자이긴 하지만, 오히려 서자이기에 지위가 낮은 백작가에겐 연을 맺을 기회가 주어졌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죄수이긴 해도 영지에서 여러모로 성과를 거둔 자.

그가 집필한 교본이 여러모로 제국에 파장을 일으킨 만큼, 제국에 돌아갔을 때에도 전과를 불문하고 성공이 보장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래도 선생님께선, 골드리안 가문이시고, 또 가문과 별개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셨잖아요? 분명 제국으로 돌아가면……."

그리고 류드라는 그런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쯧, 혀를 찬 셰인이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꺼져."

"무슨……."

"까진 상처에 반창고 하나 붙여줬으면 됐지 뭐 그리 구구절절 말이 많아? 뒤에 사람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빌어먹게도 이 여자는 아주 건강한 상태다.

반창고를 붙일 것도 없는 걸 상처랍시고 보여준 것도 모자라, 그걸 빌미로 자신에게 수작질을 부리려고 했지만.

그런 괘씸한 짓거리에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한 사람이니, 셰인은 일단 그녀를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그 무관심이야말로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대의 자비.

이 이상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면 마냥 가만히 있진 못하리라.

"아, 네. 조, 죄송합니다……."

다행히 그 정도의 눈치는 있는지, 류드라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자리를 떠나갔다.

그 뒤로 뿌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추가로 온 환자들을 보살피는 게 더 중요하니까.

"저기, 일단 선생님께서 데려오라 해서 데려왔는데……."

"정말 치료해 줄 생각입니까?"

이후 선원들이 데리고 온 것은 부상을 입은 해적들이었다.

사형은 아니라도 노역장에서 썩을 녀석들.

엄연히 노동력으로 쓰일 놈들인 만큼 치료는 해야겠지만, 정작 성직자들은 이런 악인들에게 자비를 베풀면 신앙을 시험받게 된다.

이 배에서 그들을 치료해줄 수 있는 건 셰인이 유일하단 것이다.

"걱정 마세요. 딱 지랄 안 할 정도로만 치료할 테니까."

살아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보여야 본보기가 되는 법.

이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필요한 일이리라. 생각한 셰인이 그들에 대한 처치를 바삐 이어갔다.

그 손짓은 류드라의 상태를 볼 때보다도 더 거침없었다.

* * *

해적의 습격 후 며칠 뒤, 항해선은 해역의 중심부에 위치한 섬에 도착하게 되었다.

보통은 해로를 이용한 무역루트로, 그리고 벽외지역의 해안으로 입성하기 위한 경유지로도 쓰이는 곳이다.

워낙 많은 위험이 있는 만큼 군사주둔지로써의 역할도 출중한 상태.

원정대는 그곳에 상주하는 제국군에게 해적들을 위탁한 후, 며칠 간 휴식을 거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자, 오늘 하루는 신나게 먹고 마셔라!"

늦은 밤 식당에 모인 원정대원들이 대대적으로 만찬을 벌였다.

여러 술을 섞어 만드는 도수 높은 폭탄주, 거기에 향신료로 범벅이 된 자극적인 음식들까지.

이후에 있을 위험이 큰 만큼,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만찬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동참하는 건 아니다.

호전적인 성향의 귀족출신의 군인들은 그들과 어울려 지내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섬의 유흥시설에서 시간을 보내었다.

사제들은 늘 그렇듯 교회에 신세를 지는 상태.

셰인 역시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향한 곳은 난파의 항구.

한때 항구로 쓰였으나, 해류의 특성상 난파된 배들의 부속이 자연스레 모인다 하여 폐기된 장소였다.

그곳에서 앞서 기다리던 소녀가 셰인을 돌아보며 반가움을 표했다.

"아, 오셨군요."

"뭐, 약속 잡았으니까."

이후에 이어질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

남들의 발길이 잦은 배 안쪽보단 야외에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전처럼 누군가의 난입으로 대화가 중도에 끊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 다시 한 번 저의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곧 코델리아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었다.

"저의 이름은 코델리아 덴. 블레이즈 영지에 위치한 시설인 ‘단델라이언 보육원’ 출신으로, 현재는 잠시 그곳을 벗어나 류드라 님의 밑에서 수행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보육원?"

"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저의 어머니, 일라이 덴은 단델라이언의 보육원장이시죠. 그분의 성이 ‘덴’이기에, 보육원에서 자라난 모두들 그 성을 쓰고 있습니다."

‘아, 보육원장.’

바로 코델리아와 일라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요컨대 일라이는 보육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녀가 부양하고자 하는 ‘가족’이라는 건 보육원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긴, 아무리 영지가 막장이라도 10살짜리 꼬맹이랑 결혼하는 미친 녀석은 없겠지.’

진짜 그런 녀석이 있다면 찾아가서 거세부터 했으리라.

코델리아가 마저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선, 단델라이언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요?"

"아니. 영지 내의 시설에 대해선 나도 잘 몰라서……."

개인적으로 연구다, 치료다 뭐다 하여 바쁜 몸.

제 전공과 관련이 없는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셰인을 배려하듯, 코델리아가 자신의 머리에 쓴 후드를 벗어 맨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제까진 숨기고 있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어?"

"역시 놀라시는군요."

적색의 짧은 단발에 푸른색이 감도는 피부. 그리고 호박색의 눈동자.

하지만 흰자가 있어야 할 곳은 검은색이며, 귀는 매우 뾰족하다.

제국민은 물론, 상식적인 선에서의 인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몸이다.

"단델라이언은……. 벽외지역에 버려지거나 고립된 아이들을 모아둔 곳입니다."

벽외지역 출신의 후손.

그 정체는 이전에 류드라로부터 들은 바가 있기에 의외라 여기진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건 자신이 아는 자도 거기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

"혹시 일라이도?"

"…네, 어머니께서도 그 보육원의 출신이셨죠."

벽외지역 출신…….

그녀의 무력을 아는 자라면 누구나 납득이 갈 만한 출생의 비밀이었다.

소년병 시절에만 해도 전설이라 불렸던 몸이었으니까.

‘그리고 돌이켜보면……. 일라이가 라인하르트에게 신세를 진 건 가족을 부양시킬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했었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발언엔 어폐가 있는 발언이었다.

그녀는 표면상으론 사령관의 수양딸이었고, 몰락귀족이 아닌 한 권력자를 부양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부양해야 할 것이 영지 내의 시설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

그 부분을 보다 제대로 납득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혹시 그 보육원. 영지에서 운영하는 걸 반대하고 있는 거야?"

"…애초에 태생이 다른 만큼 키우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요."

단델라이언은 벽외에서 거두어들인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

그리고 야만족들은 외형은 물론 타고난 정서나 신체능력에도 제국민과 차이가 있다.

그만큼 관리가 어려울뿐더러 세간에서의 차별어린 시선도 적잖게 섞여있을 터.

그런 문제를 무릅쓰며 막중한 예산을 투자하기에, 시설을 운영했을 때에 얻은 성과가 미미한 것도 적잖은 문제로 여겨졌을 것이다.

"당시엔 많은 말이 오가던 결정이었습니다. 그 보육원이 없어진다면 벽외지역에서 발견한 아이들은 영지군에서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되고, 그건 여러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할 일이었으니까요."

전쟁과 무관한 아이들이라 해도 야만족의 피를 이었으니까.

그 아이들이 자라나 훗날에 영지군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 보통은 아이를 발견한다 해도 그 자리에서의 처분을 결정해야 한다.

그건 베테랑 군인이라도 정신적인 부담이 생기는 일.

그런 문제를 보완하고자 보육원을 만들고, 그곳의 아이들을 아군으로 포섭하는 건 마냥 나쁘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지 상태가 워낙에 막장이어야 말이지.’

당장 성벽이 무너질 만한 위기가 1주일에 한 번씩 들이닥치거늘, 시설 몇 개를 운영할 정도의 자금을 어찌 고아원 하나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시설이 철거되려던 걸 반대한 게 일라이였다는 거야?"

"네, 어머니께선 자신이 자라난 고향이 무너지는 걸 원치 않으셨고, 그렇기에 모두가 관리를 포기했던 그 시설을 직접 물려받기로 결정하셨죠."

그것이 일라이가 누누이 돈이 필요하다 했던 이유.

그리고 이제까지의 얘기를 정리해보자면, 사실상 모두가 손을 뗀 그 보육원의 후견자가 되어준 게 ‘라인하르트 가문’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사샤가 싫어할 만도 하겠네.’

성과를 보지 못했던 시설에서 겨우 발굴해낸 인재를 데려갔을 뿐 아니라, 그 시설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은 마당에 유지금을 대주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그걸 어찌 질리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 명 단위의 적군을 홀로 쫓아낼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성경은 물론 200년 전에도 그런 신화는 본 적이 없다.

그런 강함을 가지고 있으니 라인하르트도 눈독을 들인 거겠지만 어쨌든.

"그럼 일라이가 영지를 벗어난 후엔? 외부로 나간 상태라면 대신해 재정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텐데……."

"존이라는 분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모를 리가 없다.

사령관의 부관이자 영지군의 참모총장.

사령관의 명령을 직접 수행하는 자신과도 여러모로 안면을 틀수밖에 없는 자다.

그런 그가 일라이를 대신해 보육원을 보살피는 역할이라니.

경박한 남자치곤 제대로 된 일을 하는가, 싶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럼 일라이가 어머니면 존은 아버지인가?"

"네?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주세요."

농담하듯 내뱉었거늘, 정작 코델리아는 바로 정색하며 셰인을 쏘아보았다.

검은자위 속의 호박색 동공이 크게 벌어질 정도로.

누구라도 불쾌감을 느낀다는 걸 알 만한 반응이었다.

"그분은 봉급이 들어오는 날이면 매일 같이 환락가로 전진하시는 분이에요. 얼마나 많이 들락거리는지 창관의 귀빈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만나는 여성분들에게 추파를 던지기까지 하죠. 저를 포함한 단델라이언의 아이들에게도 ‘예쁘게 자랐구나!’ 같은 식으로 성희롱을 툭툭 던지시고요."

"……예쁘다는 건 성희롱이라기엔 좀 그렇지 않아?"

"그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그런 겁니다. 그 사람은 신용이라곤 쥐뿔도 찾아볼 수 없는 ‘주길럼’이기까지 하시니까요."

"뭐……? 죽일놈?"

"주길럼입니다. 주식 길드 회원을 부르는 명칭이죠."

"아, 주식길드……."

그러고 보니 주식을 좀 하고 있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있다.

주길럼이란 별명은 처음 듣지만……. 어감이 나쁜 걸 봐선 안 좋은 의미로 말하는 듯하였다.

"참모로서의 능력은 출중하나, 그 외의 부분에선 여러모로 문제가 많으신 분입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저를 포함한 단델라이언의 아이들은 그분의 존재 자체를 인류의 해악이라 여길 정도죠."

무뚝뚝한 어조로 불쾌함을 줄줄이 읊어가는 코델리아.

과한 폭언이 아닌가 싶겠지만, 셰인 역시 존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한 상태였다.

‘그 녀석. 사령관한테 농담질 하는 것도 그렇고, 사적인 부분의 평판은 나사가 빠져 있으니까.’

그럼에도 능력은 출중하니 드레이크의 뒤를 이은 거겠지만.

"반대로. 어머니께선……."

존의 뒤를 이은 평가는 일라이에 대한 것.

그녀에 대해 거론한 코델리아의 얼굴이 차차 시무룩하게 변해갔다.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나쁜 일이 있던 것일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지금의 모습은 그녀와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선생님께선……. 어머니를 만나보신 적이 있으신 거지요?"

10년.

그 당시 코델리아는 고작 6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나잇대 아이들은 자아가 서서히 확립되어가는 시기.

당연히 어미처럼 따랐던 자라 한들 기억이 희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나 희미하니 궁금할 수밖에 없으리라.

함께한 시간도 그리 많지 않고, 혈연으로도 맺어지지 않은…….

그런 완전한 타인을 위해 객지로 향하며 노동을 하는 분이 어떤 분인지.

"선생님이 보기에,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한편으론 불안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자신이 그녀에게 품은 생각이, 객관적인 시점에서 보았을 때의 평가와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같은 인간으로써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단 신세진 입장이니 가르쳐주긴 해야겠네.’

그 부분을 떠올리고자 과거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되짚어보았다.

영지군에 속하기 전보다도, 재판을 받기 전보다도 오래 전의.

라인하르트 가문에 신세를 졌을 때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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