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82화
일라이 덴.
그녀가 라인하르트 성에서 맡은 역할은 시종이었지만, 정작 가사노동에 대한 조예는 깊다고 할 수 없는 몸이었다.
시력이 나쁜 주제에 안경은 매일 같이 잊어버리고, 시종장이 한눈을 팔 때면 간혹 식기를 망가트리는 일도 있었다.
그것도 실수로 떨어트린 게 아니라, 실수로 손가락에 힘을 주었기에……. 심지어 그건 금속제 식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금속마저 손가락의 힘만으로 부숴버리는 터무니 없는 괴물.
그런 사람에게, 셰인은 질리언이 부재중일 때면 간혹 제 훈련을 봐달라 도움을 청하곤 하였다.
서로 거리가 좁혀진 건 그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한참 대련을 끝낸 후엔 휴식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적지 않은 편이었다.
그 중 대부분은 별 의미가 없는 시시한 잡담이었다.
‘도련님. 뜬금없으실 지도 모르지만……. 진지하게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부탁이라니요?’
‘저를, 한 번만 『버려진 자들의 어머니』라고 불러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이유는……. 저도 멋진 별명을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주인님의 선조님께서 가진 『제국의 검』이라는 이명처럼 말이죠.’
‘…….’
…그래, 대개는 정말 쓸데없는 대화였다.
그 쓸데없는 말을 쓸데없이 강조하며 예고도 없이 툭툭 내뱉는데, 어찌 사람으로써 당혹스럽지 않고 배기겠는가?
‘저에 대해 아는 자들은, 저를 『변경 굴지의 단두대』라고 부르곤 합니다.’
‘어……. 멋진 별명이네요.’
‘그다지 마음에 드는 별명은 아닙니다. 제가 상대했던 자들은 두 합 이상 버티지 못했다 하여 붙은 별명이니까요.’
목 자르는 단두대가 아니라 ‘단 두 대’로 싸움을 끝낸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거였다.
시종일관 무뚝뚝한 일라이지만, 유독 그런 별명이 누군가의 입에서 내뱉어질 때면 눈살을 찌푸리곤 했었다.
‘솔직히 저는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귀염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뭣보다 저와는 전혀 안 어울리니까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요.’
‘기왕 별명이 붙는다면 제가 입고 있는 시종복처럼 나긋하고 풋풋한 느낌이 드는……. 이를테면 모성애가 느껴지는 별명이 저에게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양심상태 괜찮아요?’
대련 때마다 가드가 늦으면 곤충마냥 머리/가슴/배로 분리되어도 이상하지 않았거늘.
그런 여성에게 모성애가 느껴진다 말을 하면 누구나 어이없게 느낄 것이다.
‘그래도……. 그런 별명으로 불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강경히 자신의 의사를 주장했다.
단두대 같은 험악한 게 아닌, 좀 더 부드러운 별명으로 불러달라고.
‘그러니 저를 한 번만.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버려진 자들의 어머니』라고 불러주시지 않겠습니까?’
‘…….’
솔직히 얘기하자면…….
셰인은 그게 멋진 별명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라는 말만을 보고 모성애라는 게 느껴지나 싶기도 하고, 또 그게 어떤 경위를 타고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전혀 종잡을 수 없기도 했고.
결국엔 ‘그저 평소와 마찬가지로 또 이상한 생각을 했구나’ 하며 장단을 맞춰줄 뿐.
‘후후, 그래요. 전 어머니예요.’
하지만 그런 낯간지러운 별명을 소리 내어 불러주니, 그녀가 만족스럽게 웃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때는 그저 장단에 맞춰주니 기뻐한다고 여겼거늘.
그녀에 대한 사정을 알고 나니, 왜 그때 그런 별명으로 불러 달라 했는지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별명이 고아원장을 그럴싸하게 부른 거였을 줄이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둥 엉뚱한 소릴 하던 사람이지만, 그 또한 군인으로 살며 쌓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건 그때 불리기를 바란 별명도 마찬가지.
스스로의 정체성을 군인이나 시종이 아닌 ‘보육원장’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는 자로써의 사명을 느끼기기에…….
당시의 그녀는 그렇게나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그런 사람이니.
셰인은 라인하르트보다도 앞서, 세실을 치료하고자 했던 비밀을 그녀에게 공유했던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군에서 활동하며 제대일을 기약하고 있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를테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거나 교수대에 목이 걸렸다면, 그녀가 자신의 부재를 대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그렇군요."
그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코델리아가 한결 개운해진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저는……. 어머니께선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께선 군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을 지니고도, 개인적인 이유로 이 영지를 벗어난 것이었으니까요."
그것도 제국이 적대하는 야만족들의 후손이 아닌가.
그런 존재들을 그저 동질감과 대의만으로, 자신을 길러준 양어머니의 투자를 모두 마다하며 돈을 벌고자 떠난 것이다.
도덕적으론 몰라도 대의적으론 실격인 행동.
전직 군인인 셰인에게 있어서도, 일라이의 행동은 마냥 옹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래도 선생님께선, 이런 험난한 곳까지 와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하고 계시죠."
일라이 덴은 선한 사람이다.
본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져버렸다 한들, 그 영지를 벗어날 당시의 마음이 올곧았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인정해주신 건, 세간의 시선과는 별개로 어머니께선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향하고 계신 거라 생각합니다."
잘못된 게 있다면, 그건 그녀가 책임을 짊어진 장소가 인륜을 져버린 땅이였다는 것 뿐.
그런 곳에서라도 지켜야 할 게 있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치욕을 감수하며 제 소신을 이루고자 자신의 책임을 과감히 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의지는 이 순간을 빌어, 셰인을 통해 코델리아에게 전해졌다.
"어머니께서 유지시킨 시설이 영지군에게도, 더욱 나아가 제국에도 의미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니 마법사가 되기로 했던 거였죠. 마도를 주축으로 쌓아올린 시대이니, 마법사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진로라고 여겨서……."
10년 이상 마주한 적이 없음에도 일라이는 여전히 단델라이언을 기억하고, 코델리아 역시 그녀가 다시 단델라이언을 이끌어 주리라 믿고 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거닐며 고난을 감내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약속의 장에서, 서로가 보내온 삶과 그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
그 유대의 결과가 언젠가 빛을 발했으면 좋을 테지만…….
"하지만 저로썬 힘들겠죠. 아직 저는 1써클에서 단계가 상승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으니……."
그래, 코델리아가 가고자 하는 마법계는 철저하게 재능으로 판별되는 곳이니까.
하지만 코델리아가 다루는 강력한 매직미사일이란……. 비유를 하자면 산수와 같은 것이다.
수십 자리 수의 사칙연산을 초단위로 계산하는 건 굉장한 일이지만, 그걸 아무리 잘한다 해도 수학적으로 재능이 있다 인정받을 순 없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마법의 위력이 얼마나 되건, 써클을 올려 다른 마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마법사로써 인정을 받을 순 없다는 것이다.
"코델리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시대에 평가되는 재능.
셰인은 이 시대보다도 더 가혹한 전장을 경험해왔으며, 그런 셰인의 눈에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대단한 인재라 여겨지고 있었다.
"잠깐 손을 내어줄 수 있어?"
지금의 요청은 그에 필요한 재능을 개화시키기 위한 것.
"손을……?"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셰인은 진지하게 코델리아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할 수 있다면 그 재능을 개화시켜줘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의도는 순수하게 자신과 연을 맺은 사람을 위함.
그 눈빛의 진지함을 읽은 듯, 곧 코델리아가 셰인의 뻗어진 손을 움켜쥐었다.
곧 셰인이 거기에 마나를 주입했다.
"으윽!"
"가만히 있어."
지금 행한 건 검증술.
이전에 코델리아의 팔 상태를 보았을 때에도 행했던 거지만, 그때와는 파고드는 부분이 전혀 다르다.
그때엔 팔을 기점으로 전신으로 마나를 퍼트렸지만, 지금은 전신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마나를 오직 코델리아의 팔에만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만큼 왼팔에 한해선 정밀한 검사가 가능하기에.
그리고 그건 코델리아가 가진 ‘태생적 특이점’을 보다 수월히 감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역시나.’
이윽고 검증을 마친 셰인이 팔에 불어넣은 마나의 제어를 시도했다.
-꾸드득, 득.
팔 내부에 스민 셰인의 마나가 내부를 헤집기 시작했다.
괴로움을 느낀 코델리아의 얼굴이 우그러졌다.
"윽!"
"좀 더 참아."
"하, 하지만……."
"조금이면 돼."
지금의 셰인이 거치는 건 코델리아의 재능을 개화하는 데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물론 코델리아로썬 무엇을 하는지를 모른다.
그저 제 어머니의 지인이고, 그녀를 인정해준 자이니 신뢰를 할 뿐.
"……좋아, 끝났어."
다행히 처치는 문제없이 이루어졌다.
마나가 팔을 들쑤신 충격이 기묘하게 느껴져서일까, 코델리아가 제 팔과 셰인을 번갈아가며 둘러보았다.
"무엇을, 하신 건가요?"
"별 거 아니야. 그냥 네 팔에 자리한 마력회로에서 꼬여있는 부분을 정리해준 거지."
"마력회로를……?"
코델리아가 눈을 껌뻑였다.
셰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마력회로라는 건 모두가 있다고 믿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부류에 속하는 존재니까.
반대로 그걸 알고 있다면 제어하는 법도 터득할 수 있는 법.
이는 상대의 마력회로를 직접적으로 제어하는 건 물론, 잘못된 체계를 강요받아 ‘망가진 회로를 재구성’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단 것이다.
"말로 하는 것보단 직접 체험해보는 게 낫겠지. 마나를 한 번 끌어 모아봐."
"아, 네."
코델리아가 셰인의 지시를 따르고자 제 팔에 마나를 끌어 모았다.
-우우웅.
진동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의지를 받아들인 마나가 물리력을 뛰며 주변의 빛을 왜곡시키는 현상이다.
그 반응이 보통은 격하게 이루어져야 할 터임에도…….
"어, 어라?"
이윽고 생성된 ‘써클’을 본 코델리아가 당혹을 흘렸다.
그 또한 예상했던 반응.
셰인이 코델리아를 보며 물었다.
"코델리아. 네 경지는 1써클이지?"
"네, 1써클에서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예요."
"그 외의 특이한 점은? 이를테면 1써클인데도 받아들이는 마나의 양이 많다거나, 마나를 쏘아 보낼 때의 출력이 쌔다거나 하는 걸 느껴본 적 없어?"
못 느꼈을 리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해적들을 저지할 당시 자신을 따라오진 않았을 테니까.
"그건……. 제가 많이 연습해서 그런 걸 거예요.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 그거라도……."
"아니, 네가 쐈던 매직미사일은 연습한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야."
써클의 상승은 흔히 경지의 개방이라고 한다.
상승할 경우 마나의 운용도가 높아지는 건 물론, 마나를 육체에 받아들이는 양도 증가하기 때문.
반대로 그 상승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결코 순차적으로 증가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써클의 개방 없이 마나의 출력이 상승했다는 건, 본래 개방된 경지가 모종의 이유로 억지로 틀어 막혔다는 뜻이 될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해 줄게."
곧 셰인이 코델리아의 팔에 나타난 흐름을 감지하였다.
팔을 기점으로 외부에 순회를 이루는 고리.
마나를 다루는 자라면 누구나 생성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정작 코델리아의 팔엔 복수의 고리가 생성되어 있었다.
그 개수는 자그마치 8개.
"코델리아, 네 경지는 이미 8써클에 다다른 상태야."
이론상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레벨이다.
"……네?"
"거짓말이 아니야."
곧 셰인이 코델리아의 왼팔을 쥐고, 그 팔을 코델리아의 눈앞에 가져다주었다.
그녀가 직접 제 눈으로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도록 하기 위해.
"너는 보통 사람은 전신에 분포되어 있어야 할 마력회로가, 이 왼팔에 전부 밀집된 상태야."
마력 회로의 밀집.
그것이 코델리아의 선조가, 벽외지역이란 마경에 적응하고자 거듭해 온 진화의 결과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