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83화 (83/255)

의무병의 환생 83화

써클이란 마법사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수단.

마력회로에 마나가 지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힘이, 마나를 운용하고자 의지를 발휘하는 순간 어느 한 곳을 기점으로 생성되는 고리를 의미한다.

물론 현 시대에도 그 회로의 위치를 자세히 아는 건 셰인뿐.

이는 야만족과 제국민 간의 회로에 차이가 있다는 걸 아는 것도, 오직 이 시대에 셰인 뿐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마력 회로가 밀집되었다니. 이런 건 나도 전혀 예상 못했는데.'

벽외지역 태생이라도 그 근본은 제국민과 다르지 않은 대륙의 인간일 터인데. 어째서 그들의 마력회로는 한쪽 팔에만 밀집되도록 진화를 거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꼬여있는 마력회로를 건드린 것만으로 8개의 고리가 생성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란 그녀가 속한 민족의 마력회로는, 써클의 개방만으로 8써클의 경지가 동시에 해방되는 구조를 띠고 있단 것이다.

마나에 입문하자마자 최고의 경지를 해방시킨다……. 마경에 적응하기엔 딱 좋은 진화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마당에 다른 부위에 써클을 개방하려 시도를 하니, 마력 회로가 꼬여버려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지.'

고작 매직미사일만으로 골절이 일어난 것도 그것 때문.

그런 문제가 셰인이 내부를 손봐줌으로써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확실히 굉장하긴 하지만, 신체부위의 한 곳에만 써클을 형성할 수 있다면……. 아무리 출력이 높더라도 결국 다룰 수 있는 마법은 1써클에 한정되었다는 것 아닌가요?"

"…뭐, 확실히 그렇긴 하지."

마법이란 마나를 이용해 현상을 조작하는 학문.

그저 힘의 흐름을 이용하기만 하는 게 아닌 이상 도구를 다루듯 운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왼손에 생성한 써클이 주축을 이루되, 오른손의 써클로 그 마나의 흐름을 안정화시키거나, 다리에 흐르는 마나가 균형을 잡아주는 등.

그런 식으로 각 부위에 발현된 써클을 적재적소로 사용해야만 불과 번개를 일으키고, 지진과 같은 재해를 인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망치 하나만 가지고는 벽을 뚫을 순 없지만, 그 반대쪽 손에 정을 쥔다면 깎아내기 수월해지는 거랑 같은 맥락이지.'

여러 개의 도구를 동시에 사용하면 당연히 능률이 오르고, 그 도구들을 조합하다보면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진다.

반대로 한 쪽에 마나가 밀집되었다는 건 망치 하나의 크기만을 크게 키운 것 뿐.

파괴력은 높아지겠지만 들기도 쉽지 않고, 뭣보다 반대쪽 손에 정을 쥘 때와 달리 벽을 뚫을 수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런 응용을 거치지 않아도 당장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태라 할 수 있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애초에 그런 거 없어도 위력을 뽑아낼 수 있다면 캐스팅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으니까."

충분한 힘에는 기술이 필요 없다는 말이 있다.

마력회로가 꼬여있었을 때에도 3써클에 준하는 매직미사일을 구사한 몸.

그런 그녀가 전장에 나설 때, 공격을 위해 굳이 3서클의 마법을 익힐 필요가 있을까?

보통의 마법사보다 훨씬 빠르고, 그러면서도 난사까지 가능한 수단을 포기하면서?

"마력회로가 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는 건 결코 태생적 한계라고 말할 게 아니야. 오히려 너만이 가진 특이점이지."

습격을 당했을 때 마법사가 할 수 있는 대처란 하찮은 위력의 매직미사일이 전부.

하지만 가장 빨리 쏠 수 있는 그 마법의 출력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망치와 정을 같이 들 것 없이, 거대한 망치 하나만으로도 벽을 부숴버릴 능력을 가진 자가 있다 쳐보자.

거기에 더해 그걸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달아' 휘두르는 것도 가능하다면?

"그래, 코델리아. 넌 속도가 중시되는 최전선에선, 누구보다도 막강한 마법사로 활약할 자질이 있는 거야."

8써클의 마나를 응용 없이 활용하기만 해도, 그녀는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원거리로 퍼부을 수 있다.

그건 최전선에서 활약해온 군인에겐 더 없이 탐마저 나는 재능이라 할 수 있을 터.

"확실히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제 태생은 마냥 단점이라고 할 순 없겠죠. 하지만……."

그런 격찬에도 불구하고 코델리아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평가는 결국 고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까.

"이런 재능을……. 세상이 받아들여줄까요?"

모든 시대엔 요구하는 기준이 있다.

그런 재능의 기준이 현 시대엔 고차원적인 마법을 다룰 가능성.

고작 매직미사일을 잘 쓰는 마법사 따윈, 잘 쳐줘도 '마법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을 게 뻔한 일이다.

"……쓸데없는 고민이지."

그럼에도 셰인은 그 부분을 보잘 것 없는 문제로 넘겼다.

"세상은 제국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달리, 제국이라는 틀에만 갇혀 지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 * *

그 날의 만남 후 며칠 뒤.

섬에서의 휴식과 준비를 끝마치고 다시 출항을 준비할 무렵, 셰인은 드레이크의 호출을 받고 선장실로 향하게 되었다.

"아, 그래. 자네 왔는가?"

"호출이 있어 왔는데……. 뭔가 지시할 게 있으신 건가요?"

"지시보단 주의사항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네. 이후에 지나칠 항로에서 마주할 괴수에 대한 거다만……."

괴수.

그 또한 바다에서 마주하게 될 위험 중 하나이다.

벽내 해안이 해적들이라면 벽외지역에서의 주요 적은 괴수가 될 터.

하지만 바다에서 괴수라 불리는 이들은 육지와는 그 급이 다르다.

괴수를 칭하는 기준이 사람 몇 명을 먹어치우는 정도가 아닌, 배 하나가 침몰시킬 정도의 위험을 지니고 있느냐로 결정이 되니까.

"자네는 저번 해적들과의 전투에선 꽤나 많은 활약을 보여줬었지. 그런 능력을 이 항해선을 위협할 괴물에게도 통용되는지를 묻고 싶어서 말이네."

"괴수라고 한다면……. 아쉽게도 전 활약할 곳이 적겠네요."

셰인은 무투파이며, 무투란 인간을 대상으로 구사하는 것이다.

배 하나를 통째로 무너트릴 정도의 괴수라면 상성이 나쁠 수밖에 없다.

"기껏 해봐야 인명구조에 평소보다 더 힘을 쓰는 정도겠죠."

"그거라도 해준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구먼. 워낙에 위험한 괴수인 만큼 이쪽도 패를 여럿 강구할 필요가 있으니."

아무래도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는 게 많은 듯하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의 전문분야는 대인전이다.

괴물을 상대하고자 한다면 기술보다는 화력에, 주로 마법사나 병기의 도움을 빌려야 하는 법.

그리고 그런 문제라면 이 배에선 별로 문제되진 않을 것이다.

"괜찮을 겁니다. 저희 마법반이 워낙에 유능해야 말이죠."

바다에서 등장한 대괴수.

며칠 간 해온 수행의 성과를 확인하기에 딱 좋은 적이 아닌가?

* * *

세스타 백작가는 3대 전부터 몰락의 길을 거닐고 있었다.

이유는 본가와 분가 사이에서의 항쟁으로 인해.

분가의 반란은 귀족사회에선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그 사태를 미처 수습하지 못한 가문은 상당수의 비전을 유실하고 말았다.

그 후 가세는 크게 기울기 시작했고, 세스타 가문의 가주들은 가문을 되살리고자 비전을 되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다.

무수한 투자와 시행착오.

그 시도는 마침내 류드라의 대에 와서야 성공하였다.

'류드라. 그 스태프의 기능을 철저히 비밀리에 붙여라. 현 제국에서 그 비전과 지식을 보유한 건 고대에 유실된 기록을 복원한 우리 가문뿐이니…….'

외장형 써클 스태프.

그 스태프의 도움 덕에, 류드라는 언제나 동년배의 마법사들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뽐낼 수 있었다.

그것을 자각했을 때 류드라가 느낀 건 다름 아닌 도취감이었다.

'나는 특별해.'

외장형 써클은 현 시대에 오직 세스타 가문 만이 보유한 기술.

그것을 자신의 대에서 복원했다는 건, 그 자체로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 해도 무방한 일일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마법사가 될 거야. 언젠가 이 제국의 모든 마법사들의 위에 서게 될 거라고.'

블레이즈에 온 것은 그 시기를 더 빨리 앞당기기 위해서였다.

단시간에 공을 세우기에 이곳만큼 적합한 곳은 없으니…….

그렇게 공을 세운 현재, 그녀는 자신보다도 격이 낮은 자들을 짓밟을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르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보다 높이 올려줄 발판들을 짓밟고 오를 수 있는 위치까지.

그런 대상은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 찾아온 야만족에게도 적용되는 바였다.

그것이 당연할 터임에도…….

"코델리아…… 이 년은 며칠 전부터 대체 어딜 싸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근 며칠 전부터 그 야만족 노예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물론 섬에서 준비를 하는 동안엔 자유시간이라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우전드 블레이즈의 방침이다.

자신을 스승으로 모셨다면 언제나 제 곁에 붙고, 시키는 일을 모두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 기집애가 거두어준 은혜도 모르고…….'

며칠 간 잡일을 할 녀석이 없어져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그에 분개하는 류드라의 곁에 남은 건 전속 시종들.

류드라의 비위를 맞추는 비열한 인상의 남정네들이었다.

"아휴, 아가씨, 너무 성내지 마시죠~ 원래 덴씨 성을 가진 녀석들은 다 그 모양이라니까요~"

"뭐 하나 제대로 성실하게 하는 바가 없죠~ 그 시설에서 나온 녀석들이 영지 내에서 얼마나 악명이 높은지~"

그들의 아부가 오늘따라 신경이 긁히는 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도리어 그들의 말에 도취감을 느꼈음에도.

'어중간하게 똑똑하고, 어중간하게 욕심에 충실한 녀석들.'

자신이 시킨 지시는 교묘히 회피하고,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을 쉽게 쟁취하려 든다.

그런 태도 또한 평소에는 자신을 치켜세워 주니 방치하고 있지만, 정작 잡일을 담당하는 녀석이 사라지니 그들에 대한 짜증이 커져가는 게 느껴졌다.

'코델리아, 코델리아……!'

이윽고 항해가 시작되는 날.

류드라는 항해선의 입구에서 구둣발을 딱딱거리며 선원들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배에 오르는 이들 중 익숙한 얼굴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표적을 발견했다.

"코델……."

그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후드를 뒤집어 쓴 푸른 피부의 소녀.

그 옆을 나란히 걷고 있는 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허, 못 본 새에 뭘 하나 했더니, 그새 남자 하나 물고 앵겨 붙었다 이거지?'

셰인 골드리안.

자신의 호의를 거절한 것도 모자라 모욕감까지 안겨준 남자.

그래도 가문이 뛰어나고 영지에서도 성과를 내니 선심을 써줬거늘, 정작 그 호의를 내치고 어울리는 게 하찮은 야만족 따위라니.

'끼리끼리 논다는 게 이런 때에 하는 말인가 보군.'

상대할 가치도 없는 녀석들.

그렇게 생각한 류드라가 자리에서 코웃음을 치며 등을 돌렸다.

한 점의 미련하나 없이.

류드라에겐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 * *

준비가 끝난 후, 사우전드 블레이즈는 예정했던 대로의 항해에 나서게 되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리버스 해역을 가로지른 끝에 도착하게 될 섬의 주둔지.

하지만 목적이 정찰인 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할 필요가 있으며, 그 기간을 줄이기 위해선 중도에 처리하고 갈 문제가 있었다.

"지금부터 예정했던 대로 크라켄의 토벌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겠다."

섬을 벗어난 후 이틀이 지난 뒤.

드레이크는 선원들에게 줄곧 예고해왔던 토벌임무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소문에 따르면 문어랑 비슷하게 생겼다던데, 그 크기가 지금 우리가 타는 배에 준하는 수준이라더군."

"문어라는 건 그거죠? 악마의 물고기라 불리는……."

"그래, 바다에서 가장 괴이한 생물이지."

두족류.

문어나 오징어, 낙지와 같은 생물들은 제국에 있어 혐오해 마지않을 존재였다.

뼈 하나 없이 흐물흐물 거리는 몸으로도 잘만 움직이다니. 그야말로 살아 있는 송장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가장 위험한 건 외형 따위가 아니다. 이 크라켄이란 괴수에겐 위장을 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지.

"위장이라면……?"

"버려진 배나 무너진 선박에 몸을 숨기고, 다른 배의 선원들을 유인해낸단 것이다."

괴수 주제에 위장하여 사람을 꾀어낸다니.

도저히 어류라곤 생각할 수 없는 악마적인 발상에, 선원들이 하나 둘 씩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갈 곳은 크라켄의 존재를 확인한 후 항해를 철저히 금지시킨 상태다. 즉 그곳에 뜨고 있는 배를 발견한다면 십중팔구 크라켄일 가능성이 농후하단 것이지."

"굳이 잡을 필요가 있는 겁니까?"

"우회해서 가도 상관없지만, 우리가 가고자 하는 항로는 이후에도 정찰이나 원정 등에도 쓰이게 될 귀중한 곳이네. 그런 곳에 떡하니 있는 괴물을 방치하고 가긴 좀 그렇지 않겠나?"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무척이나 손해라 할 수 있는 일.

당장 그곳에 정찰을 가야 하는 그들에게 있어, 그 항로를 틀어막는 괴수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못 되었다.

"토벌계획은 아주 간단하다. 서식지를 발견하면, 화력으로 밀어붙여 쓰러트린다."

"그게 끝입니까?"

"이 이상 화끈하고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나?"

야수라면 습성을, 군대라면 전력과 지형 등을 분석한 후 전략을 짜면 된다.

하지만 대괴수는 기본 크기부터가 군함과 비등한 수준.

그런 거대한 존재를 쓰러트릴 마땅한 방법은, 가능한 모든 화력을 쏟아 붓는 게 전부다.

즉, 이번 토벌은 마법반의 독무대라는 것.

"류드라. 자네에게 마법반의 지휘를 맡기도록 하지."

"맡겨주시지요."

류드라가 자신만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스태프를 틀어쥐었다.

그녀는 이 배에 탑승한 마법사들 중 유일하게 '5써클'에 올라있는 자였다.

기사나 외부 고용 용병 중 5써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공격에 특화된 원소계 마법을 쓸 줄 아는 5써클의 마법사는 류드라가 유일하다시피 한 바.

류드라는 이번 토벌이 끝나면, 자신을 우러러보는 시선이 더욱 선명해지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을 무시했던 그 빌어먹을 소년병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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