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84화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크라켄이 숨어 있다고 추측되는 곳입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난파선이 가득 떠있는 장소.
하지만 그 분포가 매우 비정상적이다.
보통이라면 가라앉거나 파도에 휩쓸려 흩어져야 할 터임에도, 난파선들은 무언가에 고정이라도 된 듯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만약 크라켄의 존재를 모른다면 호기심으로, 혹은 난파된 배에 남아 있는 보급품을 손에 넣고자 접근했을지도 모를 터.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곳에 크라켄이 상주한다는 정보를 접한 상태였다.
"선장님! 저 배입니다! 저 배의 틈에서 희미하지만 살덩이가 꿈틀거리는 게 보입니다!"
"마법반! 준비는 되었습니다!"
"모두! 마나를 류드라 님에게로 전이시키십시오!"
이윽고 갑판에 선 수십의 마법사들이 마나를 끌어 모았다.
군체형 마도.
다수가 모여 분담해 수식을 외우고, 주축이 되는 마법사에게 마나를 전가하는 식으로 발동되는 마법이다.
마나를 전가하는 것은 수준 낮은 마법사도 할 수 있지만, 중심이 되는 마법사의 경우에는 그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에 받아들인 마나를 버티지 못해, 몸 내부에 스민 마나가 물리력으로 전환되어 몸을 터트려버리는 '리바운드' 현상이 일어나게 되니.
"류드라, 준비되었습니까!?"
"물론이죠!"
하지만 5써클이라면 그만한 힘을 받아들이고도 심신을 유지할 수 있다.
곧 류드라가 의지를 발휘하자, 자신에게 집약된 마나가 대기에 퍼지기 시작했다.
의지가 연결된 마나가 공기를 잡고, 그것이 의지에 맞춰 무수한 방향으로 흩어진다.
모든 공기가 상반된 방향으로 흩어지며 형성되는 난기류.
그것이 마나의 막에 뭉쳐지며 압축되고, 이윽고 구체에 가두어진 흉악한 소용돌이가 완성되었다.
'세비지 토네이도.'
구체로 응축시킨 칼바람을 쏘아 보내, 닿는 모든 것을 갈아버리는 가문의 비전마도.
-콰가가각!!
그 공격이 이내 난파선을 휩쓸며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갈아버렸다.
파편 사이로 퍼지는 거무죽죽한 피와 살덩어리.
난파선 안에 숨어든 크라켄의 것이다.
"좋아! 류드라 님께서 크라켄을 쓰러트렸다!!"
"아니, 아직 꿈틀대고 있어!"
"모두 포격 개시!!"
-퍼퍼펑!
마력을 충전한 마법사들과, 함선에 자리한 화기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 순간 박살난 배에서부터 새튀어나오는 촉수들.
하지만 이미 포화는 시작되었고, 그 저항이 무색하게도 몸뚱이는 박살난 배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아버렸다.
남은 것은 그 괴수가 남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욱한 피 뿐.
그것을 보던 한 선원이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그 순간 바다에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콰아아!
물보라와 함께 솟구친 것은 거대한 촉수들.
바다 밑에서부터 함선의 갑판에 오를 정도의 크기를 지닌 촉수가, 이윽고 선원들의 앞을 강타하며 배를 짓눌러갔다.
"선장님!! 크라켄이 다시 부활했습니다!!"
"누구야! 해치웠냐고 한 녀석이!"
"이게 내 잘못이냐!?"
다행히 당장의 공격에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강대한 힘에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은 혼란을 가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배를 후려친 촉수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기에 더더욱.
"아니, 부활이 아니야!"
"또 다른 크라켄이다! 또 다른 크라켄이 매복하고 있던 거다!"
장수를 하는 괴수들은 대개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괴수들도 엄연히 생물의 범주에 속하는 존재다.
짝짓기를 하거나 새끼를 돌볼 때엔 함께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 편.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설마 난파선의 밑에 붙어 있었던 건가?"
"괴물 새끼가 아주 작정하고 준비했군!"
"마법반! 어서 요격 준비해!!"
"아, 안 됩니다! 저 정도의 크라켄을 다시 날려버리기까지엔 시간이……. 으아악!"
선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더 많은 촉수들이 배 곳곳을 뒤덮기 시작했다.
갑판 뿐 아니라 벽과 돛대, 심지어 선실……. 이윽고 배의 전부를 구속하기에 이른 상황.
"크라켄이 배를 완전히 결박했습니다!"
"이대로 침몰시키려는 건가?"
"아니, 침몰시키진 않을 거다."
배에 몸을 숨겨 사냥을 하는 만큼, 귀중한 위장수단인 배를 부수는 일은 없을 터.
하지만 그게 선원들의 안전이 보장된다 할 일은 못 되었다.
"뭐, 뭐야 이건!"
"크라켄의 새끼다! 크라켄의 새끼들이 이 배에 침범한 거야!"
-데샤아악!
육식성을 가진 크라켄의 새끼들이, 촉수 아래에 감춰진 입을 드러내며 선원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촉수 안쪽에 숨겨져 있는 새의 부리와 같은 입.
그 치악력은 강철마저 우그러트리는 수준에 이른다.
"모두 무기를 들어올려!"
"이익, 젠장!"
이윽고 착검을 한 소총을 들어올리는 선원들.
다행히도 새끼 자체는 제압하는 데에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빨판의 흡찹력이 강하긴 하지만, 목을 휘감거나 숨통을 틀어막지 않는 이상 치명적이라곤 할 수 없다.
달라붙더라도 총기를 이용해 머리를 날려버리면 그만.
하지만 새끼들에게 대응하는 이 순간에도, 크라켄은 배를 조이는 힘을 늘려가고 있었다.
"포박 때문에 마력엔진을 쓸 수 없어요!"
"후퇴하려면 다리부터 잘라내야 합니다!"
"저 두터운 걸 어떻게 자르라고?"
"마법반! 빨리 바람마법으로 저 촉수들을 잘라내!!"
"하고 있으니까 명령하지 마!"
어떻게든 대처하려 했으나 이미 진영은 붕괴된 지 오래.
마법반 역시 크라켄의 새끼들로부터 안전할 순 없었고, 이내 캐스팅마저 포기한 채 도망치기에 이르렀다.
그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건 이전 포격공격을 주도했던 류드라였다.
"무, 뭐야! 다들 어디 간 거야!? 나, 날 지켜! 날 지키라…. 꺄악!"
사방에 가득 찬 문어괴물들.
그들로부터 힘겨이 도망치던 류드라가 제 치맛자락을 짓밟고 꼴사납게 갑판을 굴렀다.
그 충격에 힘이 풀려버린 손.
손아귀에 쥐어졌던 스태프는 멀리 날아가 크라켄의 새끼들 속에 섞여 들어갔다.
"아악! 내 스태프!!!"
자신을 누구보다도 특별하게 만들어준 물건.
저것이 없으면 자신은 결코 위대한 마법사가 될 수 없다.
그 다급함에 뻗어진 손을, 주변에 모여든 크라켄의 새끼들이 가차 없이 휘어 감쌌다.
"꺄, 꺄아악!"
사방에 보이는 것은 촉수 더미 속에서 딱딱대는 이빨들.
머지않아 그것이 제 살을 씹으리란 걸 안 순간 류드라의 얼굴이 창백히 물들어졌다.
"안 돼! 제 제발 누, 누구 없어!? 도와……. 꺄아아아악!!"
애걸복걸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자신이 처한 것과 같은 상황이 배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는 상태다.
귀족도 평민도 전사도 성직자도, 예외 없이 위험에 처한 마당에 그녀를 구하고자 달려들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촤아악!!
날카로운 무언가가 쇄도하며 류드라의 몸을 옭아맨 문어들을 갈라내었다.
마나가 어린 붕대의 측면은 그 자체로 길게 늘어진 칼날이라 할 수 있으니.
그것을 다루는 자를 마주한 순간 류드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선생님! 저를 구하러 온……. 꿰엑!"
류드라가 기뻐하기 무섭게, 그녀의 뒷덜미를 잡은 손이 선원들에게 휘둘러졌다.
꼴사납게 바닥을 구른 류드라.
난생 처음 겪어보는 고통과 수치감에 몸이 떨려왔지만, 셰인은 그녀를 선원들에게 맡긴 후 관심을 완전히 꺼버렸다.
"방해되니까 저기 구석에 처박혀 있어. 지금부터는 내 제자가 활약할 시간이니까."
"제, 제자……?"
제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누군가가 류드라의 옆을 지나쳐 셰인에게로 다가섰다.
후드를 뒤집어 쓴 푸른색 피부의 소녀.
아니, 그 후드도 벗어나 뾰족귀와 붉은 머리카락이 드러나 있다.
특유의 호박색 눈동자는, 정확히 갑판을 덮고 있는 다리 중 하나로 향해져 있었다.
"코델리아."
"네, 선생님."
대답하는 코델리아.
셰인이 곧 코델리아가 주시하는 촉수를 향해 손가락을 향하며 말했다.
"쏴."
단 한 마디.
-퍼어어엉!!
그 직후 이어진 공격에, 배를 휘어감던 크라켄의 다리 하나가 무참히 날아갔다.
"어, 어어?"
폭음이 울려 퍼진 직후.
갑판에 선 모든 이들의 관심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해졌다.
그렇게 시선을 집중시킨 채, 그 폭발이 무엇에 의해 일어났는지를 제 머릿속으로 되새겨갔다.
'코델리아가 왼손을 뻗고 마나를 방출시켰다.'
눈에 보인 건 그게 전부였다.
저런 자세로 다룰 수 있는 건, 응용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물리력의 파동인 '매직미사일'에 불과한 공격.
'그런데 어떻게?'
별 다른 캐스팅도 거치지 않았거늘, 어떻게 매직미사일만으로 저런 현상을 일으킨단 말인가?
"두 발째 장전."
그런 당혹과 의문에도 불구하고, 셰인은 또 다른 촉수를 지목하며 조용히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모두의 상식과 예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엎듯이.
"쏴."
-콰강!
또 다시 일어난 거센 폭발과 함께, 이윽고 코델리아의 손이 겨눙어진 두 번째 촉수가 끊어졌다.
두 개의 촉수가 떨어져나가니 차차 돌아오는 배의 균형.
이윽고 안정화된 상황을 파악한 선원들의 얼굴에 환희가 피어올랐다.
"돼, 됐어! 이 정도면 할 만하다!"
"누가 제거한 거야!?"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일단 새끼들부터 다 죽여!!"
다시금 배에 침투한 크라켄의 새끼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속행해간다.
하지만 류드라를 포함한 마법사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이전의 그 공격은, 마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다면 누구나 어이없게 볼 광경이었으니까.
'순수한 마나만으로 저만한 위력을 낸다고……?'
마법이란 현상조작의 힘.
그건 공격마법 역시 마찬가지이며, 매직미사일과 같은 저급한 마법을 제외하면 모든 마법은 '응용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물질의 분해에 의해 발생하는 열기나 전류…….
혹은 대지나 바람에 마나를 스미게 만들어 제어해 가하는 질량 공격 역시도.
'그런 마당에 캐스팅도 거치지 않고 순수한 마나로……. 고작 매직미사일 만으로 저런 게 가능하다고?'
불가능하다.
그것이 이 시대엔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퍼어엉!!
코델리아는 그 상식을 깨부수듯 재차 마나의 포탄을 쏴대며, 크라켄의 촉수들을 하나하나 날려버리고 있었다.
벌써 갑판에 오른 촉수 중 절반 가량이 끊어진 상태.
그것을 지켜보던 셰인이, 멍하니 서 있는 마법사들의 생각을 읽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불가능하지.'
보통은 마력회로가 신체 곳곳에 분산되어 있으니까.
아무리 써클이 높아도 각 회로가 위치한 곳이 떨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신체 내에서의 연계는 각 혈관이 이어진 '2개' 정도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즉, 고등급의 마법을 쓰기 위해선 마나를 체내가 아닌 체외에서, 외부로 방출시킨 후 융합시켜 운용해야 한다는 것.
즉 써클이 높을수록, 역설적으로 마나 운용에 낭비되는 마나량도 높아진단 것이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굳이 마법을 쓸 때 마나를 방출하지 않아도 돼.'
왼팔에 모든 회로가 집약되어 있어 각 회로간의 연계가 자유로우니까.
비록 한 곳에 밀집되어 서로 다른 도구를 다루듯 쓸 순 없지만, 반대로 한 곳에 밀집되어 있기에 쓸 수 있는 방식도 존재한다.
그건 셰인이 과거 상대한 바가 있던 반란군, 바스타드가 지닌 '기계팔'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각 써클의 마나를…… 부품처럼 활용하라는 건가요?'
'그래, 네 팔을 하나의 기계장치처럼 여기는 거야.'
바스타드는 4써클의 마나유저였지만, 그 마나를 자신의 기계팔에 밀집시키는 식으로 사용하였다.
주입된 마나가 장치를 거치며, 자연스레 탄환으로 변환되어 사출되도록.
그렇게 만들어진 난사는 마나가 흩어지기 전, 대상에게 적중해 위력적인 공격으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그 또한 일반적인 마나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광경.
하지만 그건 결코 속임수 따위가 아니며, 원리를 파악한다면 이쪽도 구현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이다.
'총기의 구조 정도는 알고 있지?'
'아, 네. 일단 군에 속하면서 여러모로 알아보았으니까요.'
'그럼 총의 총열이 긴 이유가 뭔지도 알겠네.'
'네.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화약이 폭발했을 때의 힘을 단방향으로 퍼트려, 납탄이 받는 힘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죠.'
허공에서 화약이 터졌을 때와, 협소한 구멍 안에서 화약이 터졌을 때.
전체적인 에너지의 총량은 똑같겠지만, 방출되는 방향으로의 힘은 후자 쪽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물리법칙은 물리력 그 자체를 다루는 마나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터.
'그럼…. 순수한 마나를 이용한 공격의 위력을 높이려면, 마나가 방출되는 부분을 협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요?'
'그래, 몇 개의 써클을 써서, 공격이 방출되는 공간을 협소히 줄여가는 거지.'
그 외에도 팔을 보강해 반동을 약화시키거나, 팔 내에서 마나가 뭉쳐지는 부분의 공간을 확장시켜 '탄창'과 같은 개념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각 써클을 분리된 도구가 아닌 부품으로 삼고, 그 부품을 잘 짜맞춰 '하나의 도구'로 쓰듯 연계를 하는 것.
그리 한다면 적은 양의 마나라도 고효율의 공격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보통의 마법사처럼 각 써클을 분리된 도구로 쓰는 게 아닌.
다수의 부품을 하나의 도구로 조합해 쓰는 식으로.
'단 1써클. 공격에 쓰이는 마나는 그 정도면 충분해.'
'……1써클이라니.'
'자그마한 납탄도 총에 넣고 쏘면 철판을 뚫어버리는데, 고작 1써클의 마나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위력이야 판이하게 달라지겠지.'
도구를 이루는 부품의 설계가 정밀하다면, 설령 사소한 것이라도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방출시킬 수가 있다.
거기엔 응용도 캐스팅도 필요가 없는 법.
일단 준비가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마나가 모이는 대로 쏴대면 되니, 난사나 조준에도 별 부담이 되지도 않을 터이다.
'마침 내가 요새 공학에 대해서도 좀 관심이 있거든. 어떻게 써클을 활용해야 하는지 정도는 조언해 줄 수 있을 거야.'
기계로 신체를 대체한다.
그 결과물을 보았을 때 개인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판단을 했고, 코델리아에게 전수한 것은 그 경험을 살려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팔에 자리한 마력회로를 매개로, 각 써클을 부품으로 삼아 마나를 방출시키는 생체 마력포.
그것을 소유한 자는 최전선에서도 활약이 가능한, 이 시대에 유일무이한 '전투 특화형 마도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