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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85화 (85/255)

의무병의 환생 85화

'하지만 눈여겨 볼 건 타고난 재능이나 이해력만이 아니야.'

코델리아의 전투를 지켜본 셰인이 내심 감탄을 흘렸다.

위력이야 배에 오르기 전에 몇 번이고 시험하며 확인한 바.

하지만 연습을 할 때엔 실전에 임하는 자세를 확인할 수가 없다.

지금 코델리아의 활약은 셰인에게 있어 굉장히 의외라 여겨지는 것이었다.

'조준도 완벽하고 지시를 따르는 데에도 거부감이 없어. 뭣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굉장히 침착해.'

사방에서 크라켄의 새끼들에게 휘둘리는 선원들의 비명이, 촉수가 선체를 후려치고 조이며 격동이 일어나는 상황.

그 현장에 서는 것만으로 두려움이 느껴질 법 함에도, 코델리아의 감정엔 흔들림이 없었다.

지시를 수행하고 마나를 모으는 건 물론, 더욱 나아가 자체적으로 다음 타깃을 찾기 까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담력은, 특히나 최전선에선 능력이나 무장 이상으로 중요시 여겨지는 필수요건이라 할 수 있었다.

'위력적인 공격에 타고난 전투센스까지……. 이런 깜찍한 인재를 또 어디서 구할 수 있겠어?'

이런 귀한 인재가 굴러들어오는 시설을 폐기시키려 했다니.

돌아가면 사령관에게도 할 말이 여러모로 많아질 듯하였다.

-쿠루룽!

물론, 그런 잔소리도 무사히 살아돌아갈 수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거겠지만.

"선장님!! 파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격하게 휘몰아치는 파도.

그 사이를 갈라내며 모습을 드러낸 두족류의 흉물이, 끊어진 촉수를 들어올리며 괴성을 지르고 있다.

제 몸이 파괴된 것을 버티지 못한 크라켄이 마침내 본신을 드러낸 것이다.

-키샤오아아!!!

눈동자를 굴리며 사납게 우는 크라켄.

이전처럼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게 아닌, 직접 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며 이곳을 공략하려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처음으로 타깃이 된 건 다름 아닌 셰인.

셰인이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촉수를 마주한 채 쓴웃음을 지었다.

"좀 봐줘라, 이쪽은 전투원이 아니라 서포터라고."

-파앙!!

작렬하는 돌려차기에 밀려난 촉수가 갑판을 대차게 휩쓸었다.

그 자리에 사람이 없는 게 천만 다행일까?

표적이 작기에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저 괴수를 상대로 셰인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체술이란 본디 인간을 상대하는 데에 특화된 것.

이 전투가 적을 쓰러트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만큼, 굳이 무리를 해가며 경지를 해방시킬 순 없었다.

"선생님, 선원들의 구출을! 크라켄의 다리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래, 맡기고 간다!"

코델리아의 외침에 셰인이 미련 없이 자리를 이탈했다.

괴수의 난동과 파도가 더해지며 격하게 흔들리는 선체.

그 갑판의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 셰인이 손과 발이 닿는 대로 사람들을 구해내고, 그마저도 거리가 되지 않으면 붕대를 던져 그들을 제 앞으로 당겨왔다.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의 난전 속에서의 신속한 인명구출.

그건 오직 숙련된 의무병인 셰인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전위대는 마법사를 중심으로 지켜! 손이 남는 인원들은 화약 적재고로! 크라켄이 두 마리나 나온 이상 아낄 상황이 아니다! 최대한 화력으로 밀어붙여!!"

선장의 지시가 혼란스러운 배 안에 울려 퍼진다.

코델리아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 잦아들기 시작한 혼란 속으로.

그로부터 위기 극복의 가능성을 느낀 선원들이 일사분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실 내로 들어간 선원들은 포문을 열고, 소총수들과 기사들이 크라켄의 새끼들을 위주로 토벌을 이어간다.

그리고 갑판의 구석에 선 마법사들은 캐스팅으로 마법을 준비.

그 준비가 위력적인 공격으로 바뀌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런 공백에서 생긴 위협을 코델리아는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모두 물러나세요!"

대괴수의 몸에 냉병기와 총으로 맞서는 건 자살행위.

코델리아가 물러난 선원들의 빈자리를 채우듯 서며, 선체 위로 솟구친 크라켄의 머리를 응시했다.

측면에 돌출된 눈동자 중 하나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위험한 존재임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키샤아아악!!

고함과 함께 휘둘러지는 촉수.

그중 하나를 날려버리는 데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하나가 코델리아의 사각을 노리고 들어왔다.

'이런……!'

왼팔에 마나를 끌어 모았지만 대처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마나의 운용이 빠르다 해도 남들보다 빠를 뿐.

초단위로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선, 충전과 발포까지에 걸리는 그 몇 초마저도 터무니없이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하물며 왼팔에만 회로가 집중되서 강체술 같은 것도 쓸 수가 없어.'

셰인 역시 코델리아가 그 점을 간과했다는 걸 눈치 챈 상태.

그럼에도 셰인은 그녀에게 달려가지 않고, 본래 하던 인명구출에만 집중하기로 하였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결코 혼자서 하는 게 아니고.

그렇기에 자신을 대신할 자는 이 전장에 얼마든지 있다는 걸.

-터엉!!!

그 기대에 부흥하듯 터져 나오는 금속음.

쇄도해오는 촉수를 누군가가 방패를 세워 막아낸 것이다.

"당신은……?"

"사전에 셰인에게 당신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두터운 갑옷을 걸치고 있는 거한의 청년.

성기사단의 최연소 부단장이자, 코델리아와 마찬가지로 셰인과 연을 맺은 자인 레온이었다.

그는 제 휘하의 기사들과 함께 그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 지금부터 코델리아 양을 지키는 데에 전념하라! 그녀야말로 이 배와 선원들을 지킬 수 있는 핵심이란 걸 명심하도록!"

"우오오오오!!!"

우레와 같은 함성.

그와 함께 구축된 방어선을 향해 크라켄이 재차 촉수를 휘둘러왔다.

일대를 부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격.

성기사들의 굳건한 방어조차도, 대괴수가 발휘하는 공격엔 잠깐 버티는 게 고작이다.

반대로 잠깐이라면 버틸 수 있다.

힘겨루기로 넘어가기 전에 이루어진 수초 간의 공백.

그들이 지키는 이가 준비를 마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퍼어엉!!

다시 발포된 마나의 포탄에 촉수가 박살나고, 그를 지켜보던 선원들의 얼굴에 환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이길 수 있어!"

"모두 그녀를 지원해라!"

칼과 총을 쥔 이들은 크라켄의 새끼를 위주로 토벌.

전위는 촉수를 방어하며, 마법사와 포격수는 마법과 포탄으로 위협을 가해 크라켄의 행동을 저지시켜 갔다.

그 전투의 주축이 되는 건 코델리아.

야만족 태생으로써 누구보다도 천대를 받아온 열등생이다.

"이, 이 빌어먹을!!"

그 상황이 류드라에게 있어선 매우 화가 나는 것이었다.

분명 이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 싸움의 중심을 이뤘을 터인데, 어째서 모두가 저 야만족을 위해 싸우고 있단 말인가?

자신에게 향해야 할 열렬한 환성과 관심,지지…….

그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저 하찮은 야만족이 독차지하다니!

'그, 그래. 조금 혼란스러우니까 다들 정신이 나간 거야. 야만족의 피를 이은 녀석 따위에게 의존하다니!'

어떻게든 저 애송이의 마수로부터 원정대를 구해야 한다.

그에 사명감마저 느낀 류드라의 시선이 갑판의 구석으로 향해졌다.

선체의 흔들림에 밀려난 스태프.

자신에겐 더 없이 소중한 물건이다.

'스태프……. 스태프만 있으면!'

류드라가 흔들리는 배를 거닐며 스태프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중도에 몇 번 넘어졌지만, 그 정도의 아픔으론 스태프에 대한 집념은 꺼트릴 수 없었다.

저 스태프야말로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특별하다 여겨지는 이유였으니.

"잠깐 좀 빌려간다."

그런 스태프를 마침 근처를 지나던 누군가가 줍고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인명구출에 힘을 쓰고 있던 셰인이었다.

"어……?"

뒷모습을 멍하니 보는 류드라.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피고, 이윽고 벌어진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 이 새끼야! 어딜 도망가!! 그게 얼마나 귀한 건 줄 알……."

-쿠궁!!

또다시 배가 흔들린다.

촉수의 끊어짐을 버티지 못한 크라켄이 제 몸을 선체에 직접 들이받은 것이다.

"선장님! 크라켄이 날뛰고 있습니다!"

"배를 침몰시킬 생각인가?"

본래 습격의 이유는 거처의 습득과 새끼들을 키우는 데에 필요한 양분을 얻기 위함.

하지만 새끼들은 선전 중인 선원들에게 맥없이 죽어가고, 점거하고자 붙여두었던 촉수들도 모두 끊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대로 있으면 이쪽만 피해를 보게 될 터.

그렇게 가질 수 없게 된다면, 차라리 산산이 부숴 이 바다의 밑으로 수장시켜버리겠다.

크라켄의 난동엔 그런 악마적인 발상이 엿보이고 있었다.

"저, 저거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모두가 기대하는 눈으로 코델리아를 돌아보았지만, 정작 코델리아 역시 얼굴을 심각히 굳힐 수밖에 없었다.

'크라켄의 행동을 저지하려면 본체를 날려 버려야 해. 하지만 촉수보다도 훨씬 두껍고 단단한데…….'

고작 1써클로 만들어진 탄환으로는 어림도 없다.

공격에 마나를 더 투자하면?

아니, 기계란 부품 하나만 사라지더라도 기능을 상실하는 법.

그 방식을 표방한 마력포로 설계한 건 단발식의 공격뿐이며, 그 외의 다른 방식을 이 자리에서 급조해 설계할 순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설계를 할 필요 없이…….

이를테면 '처음부터 완성되어있는 장비'를 보조로 사용할 수 있다면?

"코델리아! 받아!"

멀리서부터 달려온 셰인이 코델리아에게 스태프를 집어던졌다.

류드라가 가지고 있던 스태프.

비록 직접적으로 들은 바는 없지만, 류드라를 몇 년 간 따라다니며 수발을 들었던 몸이다.

그 물건이 어떤 성능을 지녔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외부 내장형 써클.'

스태프 자체에 마나가 흐르는 회로를 만들어 사용자의 써클을 추가로 상승시켜주는 도구.

하지만 8써클의 유저가 그 도구를 든다고 10써클로 오르거나 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마력회로만을 추가 시켜줄 뿐, 의지가 없는 스태프의 회로에 마나를 불어넣어야 하는 건 사용자 본인의 의지니까.

사용자가 다룰 수 있는 마나가 3써클에 불과하다면 3써클의 마나만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정도의 기능이야말로 셰인이 도구를 던져준 이유다.

'육체와 분리된 2개의 써클.'

그건 그 자체로 훌륭한 부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해했습니다."

이윽고 코델리아가 갑판의 한 곳에 섰다.

선체를 부술 기세로 몸을 들이받는 크라켄에게.

그 돌진을 방치한다면 배가 산산조각 나는 것도 시간문제겠지만, 코델리아의 마법은 다른 마법들에 비해 지극히 단순하다.

대부분의 노력을 기초적인 설계에 투자.

이후에는 구축된 마력포에 순수한 마나만을 우겨넣을 뿐인 공격.

그건 지금부터 사용하는 마법 역시 마찬가지다.

'호흡을 다스려라.'

마나의 호흡.

순수한 마나를 다루는 데엔 가장 좋은 집중법.

그를 통해 코델리아는 왼팔에 깃든 마나의 성질을 '유체'로 치환시켰다.

'마나의 성질을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액체는 압력에 큰 영향을 받고, 앞서 존재하는 경로를 따라 흐르듯 움직이는 법이다.

지금 하고자 하는 건 그 흐름을 협소한 곳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8써클에 달하는 마나를.

2써클의 회로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틈새로.

-콰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스태프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기류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것은 고농도의 마나로 이루어진 물리력의 격류.

고압으로 쏘아지는 공격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아가, 그 의지가 흐트러지기 전에 목표지점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적의 몸을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그 속으로 파고든 후에도.

-키요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크라켄.

몸을 파고드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선체에 붙였던 몸마저 밀려날 정도.

단발로 끊어지는 공격이야 거체를 통해 몇 방이고 버텨낼 수 있겠지만, 지금 쏘는 공격은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끊어지지 않는다.

이 팔에 내장된 회로는 8써클.

보통의 마법사라면 자멸할 정도의 마나를, 오직 이 하나만으로 적응할 수 있는 구조를 띠고 있으니.

-콰아아악!!

그 쉴 새 없는 기류를 버티지 못한 크라켄의 머리에 이윽고 구멍이 뚫리고, 크라켄의 몸이 바다 한복판에 나자빠졌다.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시체.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선원들의 얼굴에 하나둘씩 화색이 돌았다.

이내 그 분위기가 배 전체를 뒤덮은 순간.

"해치웠……."

"해치웠다아아아!!!!"

의심이 확신으로.

이윽고 함성을 지른 선원들이 서로의 몸을 얼싸안으며 환희를 내질렀다.

크라켄의 새끼들은 그 외침을 뒤로한 채 바다로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상태.

그 기세에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어미를 잃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인지.

어쨌든 그렇게 배 안의 위협은 완전히 사라지고, 크라켄의 토벌임무도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성공에 모두가 기뻐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철썩!

어느덧 다가온 한 마법사가 코델리아의 볼에 따귀를 갈겼다.

그 소리를 기점으로 정적이 오가는 항해선.

모두의 시선이 향해진 곳엔 험상궂은 인상의 여인이 서 있었다.

"이, 이 빌어먹을 년이……."

류드라 세스타.

그녀가 자신이 제자로 들인 자의 성공을 보며 분노를 표하고 있다.

분명 이후에 이어질 건 자신을 겨냥한 폭언이니라. 코델리아는 뺨을 얻어맞은 이 순간 그러한 미래를 예견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녀의 욕이 시작되리란 걸 아는 순간, 무기력해야 할 오른손엔 자연스레 힘이 실리고 있었다.

"네, 네 주제에! 감히 그 지팡이가 어떤 물건인 줄 알고 사용하고 자빠진 거야! 별것도 아닌 야만족 주제에! 이 빌어먹을……."

-짜악!!

"어, 어어……?"

멍하니.

류드라가 벌겋게 달아오른 제 볼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얻어맞으리란 걸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너, 너어……!"

과격한 숨소리.

당장 울음이나 비명이 터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감정의 격동이었다.

그것을 경계한 누군가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저기, 일단 진정하고……."

"넌 뭐야 이 새끼야!!"

-짜악! 짜악!

손바닥과 손등을 이용한 따귀질.

그에 양쪽 볼을 얻어맞은 남자가 뒷걸음질을 치다, 다시 한발자국을 내딛으며 손을 휘둘렀다.

-파앙!!!!

이어지는 거센 따귀질.

반격에 골이 떨린 것을 느낀 류드라의 코에서 피가 터지고, 이빨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우, 에에……?"

"엄살 부리지 마라. 힘 조절 해서 때렸으니까."

볼을 얻어맞은 셰인이 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류드라를 쏘아보는 눈빛에 깃든 것은 오직 혐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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