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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86화 (86/255)

의무병의 환생 86화

"얼씨구, 눈빛 보게? 설마 자기가 맞을 거라곤 생각도 안 하고 손이 나간 거야?"

"이, 빌어먹을……."

"빌어먹을은 내가 할 말이고요 이 무지성 빡대가리년아. 네 앞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손 가는 대로 무조건 맞아줘야 하는 병신 샌드백이라도 되는 줄 아냐?"

막힌 부분이 뻥 뚫리듯 터져 나오는 비아냥.

난생 처음 들어보는 모욕에 류드라가 볼을 움켜쥔 손을 격하게 떨었지만, 셰인의 입장에선 전혀 꿇릴 게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보라. 자신이 류드라에게 뺨을 날렸음에도 간섭을 하는 자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못마땅한 시선을 향한 곳은 코델리아와 셰인을 먼저 폭행한 류드라 쪽이었다.

"이, 첩의 자식 따위가…….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그런 냉담한 시선이 가득한 자리에서, 류드라는 제 평가가 저하되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듯 분노를 토해내었다.

첩의 자식.

기껏 생각해낸 욕이 달랑 그거라는 것에 처량함이 느껴졌다.

"지 애비가 얼마나 오냐오냐 키웠으면……!"

"선생님."

욱한 마음에 시동을 걸려는 것도 잠시.

코델리아가 셰인의 앞을 가로막으며 류드라와 대치하였다.

얻어맞아 배로 부풀어 오른 뺨.

그럼에도 코델리아는 고통에 내색하나 하지 않고 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셰인이 화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래, 자신은 고작 뺨 한 대 이지 않은가?

여기선 줄곧 수모를 당해온 자에게 맡기는 게 나을 것이다.

"코델리아……."

"류드라 님."

대치하는 가운데 코델리아가 류드라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존중을 담았던…….

"아니, 류드라 씨."

종자로 들어가며 취하던 존칭마저 내버린 채로.

"당신은 제가 활약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것 같군요."

"그, 그야 당연……."

"하지만 류드라 씨. 당신은 자신이 이번 싸움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렇게 단호히 질문을 건넬 뿐.

그 물음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한 류드라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코델리아를 쏘아보았다.

"무슨……."

"당신이 이번 싸움에서 무얼 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해 묻는다.

자신이 이번 싸움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뭘 묻나 했더니……!"

그 물음에 류드라가 울컥하며 목에 힘을 주었다.

"네가 활약했다고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아!? 애초에 처음 크라켄을 쓰러트렸던 건 다름 아닌 나였……."

"아뇨, 처음의 활약도 주변에 다른 마법사분들이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자신만만히 말하는 류드라에게 돌아오는 반박.

일순간 숨이 멎는 가운데, 코델리아가 제 손에 쥔 스태프를 보란 듯이 내세워주었다.

"그마저도 이 스태프가 없었다면 당신은 크라켄을 쓰러트릴 만한 화력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당신 혼자서는, 가문의 비전마도를 쓰는 데에 필요한 방대한 마나를 견뎌내지 못할 테니까요."

코델리아의 말대로다.

의지가 없는 스태프는 자체적으로 마나를 끌어 모을 수 없으니까.

2써클의 추가회로를 얻는다 해도, 본체가 3써클에 불과한 이상 다룰 수 있는 마나 역시 3써클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류드라는 그런 부족한 마나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충당해왔다.

언제나 그녀가 활약하는 전장은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스태프가 없던 당신은……. 모두가 위기에 처한 마당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죠."

써클이 높은 만큼 경험이 많고, 그러니 위기 상황에서 대처도 수월히 해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모두가 믿었음에도, 정작 그녀는 손에서 스태프가 떨어진 것만으로 단숨에 무능력자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그녀를 쏘아보는 눈빛엔 그런 불만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영지군이 당신의 권력놀음을 방치한 건 모두가 당신이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당신이 저희들을 보호해줄 거라 여겼기 때문이지, 당신이 정말로 존귀한 존재라고 여겨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것도 자각하지 못하는 옛 주인이 가증스럽게 여겨진다.

그 타당한 분노조차 류드라의 입장에선 가소롭다 여겨질 뿐.

"이, 야만족이……."

"입 벌리지 마세요. 밤꽃냄새 나니까."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 이어진 비아냥.

그 의미를 이해한 류드라가 말문을 틀어막으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왜 그렇게 놀라시죠? 당신의 방을 이제껏 정리해 온 게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매일 아침이 될 때면 땀과 점액으로 범벅이 된 시트를 빠는 게 일상이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씻는 것조차도 귀찮다는 이유로 향수와 화장으로 떼우니, 냄새가 나지 않다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평소의 행실은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의 활동까지.

그 모든 것이 정녕, 만인의 모범이 되야 할 위대한 마법사가 보여야 할 모습이란 말인가?

"진리를 탐구해야 할 마법사를 자처함에도 발전할 생각 따윈 쥐뿔도 없이, 그저 도구가 만들어준 휘광에 심취해 자가발전을 게을리 할 뿐인 사람……. 그렇게나 쉬운 길만 찾길 바라는 당신은 마법사보단 뒷골목의 창부가 더 어울리겠죠."

콰득.

앞니가 입술을 찢는 소리.

그 고통조차도 모멸감에 휘둘려 이성을 마비시켜갔다.

"코델리아아…. 네가 감히……. 거둬준 은혜도 모르고……!"

"은혜 같은 소리 집어 치워!"

버럭, 울려 퍼지는 목소리.

줄곧 무뚝뚝한 표정을 짓던 코델리아가, 처음으로 감정적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그 예상외의 모습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류드라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하지만 다잡은 이성으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서 있는 것……. 힘이 풀리려는 다리를 펼치는 게 고작이다.

코델리아 역시 그런 모습을 보곤 제 분노를 누그러트리고 말았다.

"……류드라 씨, 제가 온갖 수모를 겪고도 당신을 따른 건, 그저 당신 같은 형편없는 마법사도 천재 소리를 듣게 만들어주는 비법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였을 뿐이었습니다."

용서한 게 아니다.

고작 이런…….

이런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더 이상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작 그 비법을 알고 나니, 그다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한 점의 미련 없는 손짓으로.

그렇게 코델리아로부터 줄곧 소중히 여겨온 보물을 건네받으니, 이제까지 가치있다 여겨왔던 보물이 하찮은 나뭇가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위상이 아닌 허영만을 드높여주는 도구로.

"자, 잠깐……."

그것을 자각한 류드라가 코델리아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그때에 코델리아는 이미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였다.

"류드라 씨. 저는 당신과 다릅니다."

한편으론 시원해보이기까지 하는 목소리.

"이제는……. 그런 편법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엄연히 전장에 설 수 있는 한 사람의 군인이자 마법사가 되었어요."

그러한 태도로, 코델리아가 곧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야만족 태생의 열등생.

그러한 존재를 향한 혐오와 무관심이 자리했던 장소는, 지금에 와선 선망과 동경이 대신해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한 평가가 자부심으로 느껴질 법 하거늘, 정작 코델리아는 그 영광을 마냥 스스로의 것으로 삼지 못하였다.

셰인 골드리안.

그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자신은 여전히 우둔하고 발전 없는 야만인으로 남았을 테니까.

"그러니 오늘 제가 받게 될 모든 영광을, 저를 이 자리로 이끌어주신 참된 스승에게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는 코델리아.

그 대상이 된 셰인이 의외인 듯 눈을 벌려 뜨다,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구제한 소녀가 감사를 전하는 상황.

그걸 사양하는 건 그 자체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테니까.

-짝짝짝짝.

이윽고 갑판에 모인 모두가 셰인과 코델리아를 향한 박수를 보내었다.

그 갈채에 예외된 건 한 사람.

뒤늦게 보잘것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한 범재뿐이었다.

* * *

두 마리 분의 크라켄을 토벌하는 데에 성공한 원정대.

하지만 정작 항해선에도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되었고, 인해 원정대는 잠시 원정을 지체시켜서라도 배의 수복에 힘을 쓰기로 하였다.

그렇게 다시 경유지로 돌아가 작업을 이어가는 중, 드레이크는 원정대에게 한 가지 경고를 건네었다.

'이후의 원정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는 위험으로 가득 찰 것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자들은 돌아가라.'

한 마리라 여겼던 크라켄이 두 배로 늘어났다.

자칫 대처가 잘못되었다면 원정대 역시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터.

그런 예상치 못한 일이 이후 원정에 몇 번이고 반복될 수도 있다.

그에 적지 않은 원정대원들이 위기감을 느꼈고, 그리 적지 않은 인원들이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건 류드라 역시 마찬가지.

코델리아에게 반박 하나 못하는 자신이 한심해서인지, 주변 사람들이 제 무능한 모습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해서인지.

어느 쪽이건 류드라는 끝내 원정대를 이탈했고, 다시 항해가 시작되었을 때쯤엔 그녀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바다에서의 원정 후 한 달 하고 반의 시간이 흘렀다.

"자, 모두들. 오늘 항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볍게 술자리라도 가져볼까?"

"럼주 가져와!"

슬슬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의 밤. 잠시 배를 멈춰세운 선원들은, 내일의 항해를 준비하기 전 가벼운 연회를 가지기로 하였다.

이후 도착하게 될 섬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마음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런 작은 연회에는 성직자들도 드물게 참여한 상태.

교리상 도수가 낮은 포도주나 성수만 마실 수 있지만, 배에는 그들을 배려했기에 럼주 뿐 아니라 성수도 적잖게 실어 넣은 상태였다.

셰인을 앞둔 수녀가 들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성수가 든 병이었다.

"셰인 씨."

수녀 메어리.

평소에 자신을 '이단 녀석'이라고 불렀던 녀석이, 지금은 성수병을 든 채 정중히 이름을 부르고 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같이 한 잔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뭐?"

"마침 모두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으니 이 기회를 빌어 함께 성수를 마시자고 했습니다."

싱긋 미소를 짓는 메어리.

평소의 사나운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심지어 존대까지 하면서.

"성인식 전에 술 마시면 안 되는……."

"술이 아니라 성수입니다."

"아니, 성수도 제국법상 분류는 주류잖아."

"정식 사제라면 마셔도 괜찮답니다. 그리고 제가 허락하니,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당신도 제 지도하에 허락이 되겠지요."

마치 연장자가 모범을 보이듯 취하는 태도.

마주한 셰인이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관심을 돌려버렸다.

"됐어, 술 마시면 손이 둔해져서……."

"됐으니까 이쪽으로 와요!"

"야야 잠깐."

물러서려는 셰인을 강제로 잡아끄는 메어리.

그 손아귀에 굉장히 힘이 실려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물러가면 갈 길 가버렸을 터인데도.

'……내치면 나중에 더 귀찮게 굴겠지.'

그렇게 마지못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가운데, 메어리가 의기양양 미소를 지으며 성수를 쥔 손에 힘을 실어 넣었다.

'셰인 골드리안. 당신이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레온이 말했듯 그가 가진 마음만은 신자들에게 못지 않는 수준.

그럼에도 메어리는 그를 마냥 존중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그 신념의 근간은 결코 제국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니까.

'올곧은 신념도 방향이 제대로 되어야 의미가 있는 법……. 당신이 지향하는 바의 근간에 이단이 포함되어 있는 이상,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른다면 머지않아 제국에 큰 혼란을 초래하겠죠.'

이단의 문화를 추구하되, 하다못해 제국에서 중시하는 교리와 신앙을 우선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의 메어리가 셰인에게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이 술자리를 빌려, 제 직접 당신을 철저히 교육시켜드리도록 하죠!'

신을 섬기는 자로써 이단자를 교육하고, 그로 하여금 신앙을 개화시키도록 도움을 주겠다.

메어리는 그렇게 마음을 먹으며 셰인과의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이 이단녀서어억~~!!!"

그 원대한 계획은 꽐라가 되며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야."

"뭐~~ 왜애애~~ 사람 술 마시는 거 처음 보냐?"

"아니……."

"사실 그래~ 나도 이제까지 마셔본 적이 전혀 없었거드은~~ 푸하하하하!"

주정을 부리는 메어리를 앞둔 셰인이, 제 손에 쥔 성수병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마시고 취하다니. 대체 간이 얼마나 안 좋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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