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87화 (87/255)

의무병의 환생 87화

성수.

각종 약재와 과일 등을 이용해 카페인이나 타우린 등. 자양강장과 피로회복 효과가 있는 물질들이 다수 첨가된 주류이다.

그 효능은 탄산이 없는 콜라에 알콜을 조금 첨가한 수준.

성분은 마약과 같지만, 그 농도가 매우 희미하기에 과음하지 않는 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이런 걸 마시고 취하다니, 대체 간이 얼마나 안 좋으면……. 켁!"

어이없어 하던 셰인의 숨통이 일순간 턱 막혀버렸다.

이전까지 주정을 부리던 메어리가 술병을 쥔 채 벌컥벌컥 들이키는 게 보였기에.

"야, 야…….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많이 마시기느으은~~~! 다드을~ 이렇게 마시는데 무슨 숴릴 하는 거야아아~ 하하하하하!!"

아니, 보통 술병을 병나발 불 듯 마시는 건 백주대낮부터 술집에 들어가는 백수 정도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제지해야 할 신자가 도리어 주정을 부리다니.

"글고 마랴아~ 내는 이미 신성력을 각성했단 말이여어~ 신성력이 뭔지 알아!? 저어어~ 기 하늘에 있는 주님께서 내리주시는 성스러운 힘이라고~~! 상스러운 힘이 아니라~~!!! 하하하하!!"

'신은 뭐하냐, 얘한테 신성력 안 뺏어가고.'

하지만 비종교인인 셰인의 기도는 당연히 쥐뿔도 먹히지 않았다.

메어리가 딸꾹질을 하며 셰인을 올려다보았다.

"상스러운 녀석……."

"……뭐?"

"너 말하는 거야 너어~! 매번 볼 때마다 여자나 후리고 있잖아아아~~"

"야, 술 취한 건 알지만 없는 말 지어내지는 마라 좀. 내가 여자를 언제 후렸다고……."

"구라치지 마아~!!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는데 어디서 거짓말이야 이 씨ㅍㄹ색깔아아아!!

혀까지 꼬는 메어리가 낄낄대며 셰인에게로 상체를 내밀었다.

입가에서 풍기는 알콜 냄새.

그 농도가 미미하여 조금 향긋하단 생각마저 느껴졌지만, 반대로 말하면 고작 그 정도에 취해버렸다는 뜻이 된다.

'얘 사실 술 취한 척 연기하는 거 아니야?'

아니, 수녀가 되어서도 왈가닥 기질이 여전히 남아 있는 아이가 아닌가?

자존심 강하기론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사춘기의 소녀.

그런 애가 흑역사로 남을 만한 짓을 장난삼아 저지를 리가 없다.

이건 진짜 취한 거다.

"히히, 그러니까 우리 애기이~ 솔직하게 누나한테만 솔직하게 말해바~ 그 연구실에 있는 언니랑은 어디까지 간 거야? 응?"

"가긴 뭘 간다고……."

"시치미 떼지 마아아~!! 남녀가 한 방에 있는 데에! 그것도 거의 같이 살다시피 하는 데에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없잖아아아!!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 여자한테 상식을 논하지 마.'

폭탄광에 독극물도 좋다고 퍼마시는 여자인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부외자인 메어리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런데 너는 그렇게 여자를 끼고 살면서도……. 또 다른 여자한테 눈독이 들고 있지이……."

"내가 언제……."

"베르디 말이야~ 베르디이! 너 말이야! 예전부터 베르디 가슴만 보고 다니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움찔.

움츠러드는 셰인의 몸.

메어리가 정색하며 셰인을 쏘아보았다.

"뭐야. 진짜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맞잖아! 베르디 가슴만 본 거 맞잖아아아!"

틀린 말은 아니다.

셰인이 베르디에게 관심을 가진 건 베르디의 심장질환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니까.

물론 메어리가 말하는 건 '성적인 부분'이겠지만, 아무래도 선천적 장애를 저주로 취급하는 교단원이니 진상을 밝히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애~ 너도 남자다 이거지이? 막 산봉우리 마냥 큰 가슴이 그리 좋다 이거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러치! 다 큰 어른이면 이제 맘마통에 관심 팔리는 건 좀 졸업할 때가 된 거 아니야~?"

"…맘마통은 또 뭐야."

"가슴이 조으면 내가 보여주께에~ 자, 여기여기, 여기."

"야 잠깐."

"자 여기 봐라~ 가슴이다 가슴! 만져보라고! 히히히!"

"야!!!!!"

옷을 벗으려는 메어리에게 호통을 치는 셰인.

그에 깜짝 놀란 메어리가 딸꾹질을 하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상당히 놀란 눈치…….

뒤늦게 제 실책을 자각한 셰인이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래서 애들은 상대하기 싫어다니까.'

정신적 나이로 치면 마흔은 넘게 차이나지 않은가.

반성하자, 생각하며 벌어진 옷섬을 조용히 추슬러주니, 메어리가 그 모습을 보며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또 왜 그래."

"너 고자야?"

셰인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야, 아무리 내가 큰 소리쳤어도 그렇지 막말을 하면……."

"고자도 아니면 여기선 달려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자고로 귀족남자로 태어났으면 막! 넘뜨리고! 침대에 데리고 가서 막! 어 막!? 으쌰으쌰 하면서! 이 여자 저 여자 다 후려야 하는 거 안니야~!?"

"……귀족을 대체 뭘로 보는 거야."

귀족은 나라가 공식으로 지정한 정치적 집단이자, 그 권한을 세습제로 물려주는 가문을 칭하는 것이다.

그런 관습이 지속되다보니 날 때부터 권력을 가진 게 당연한 줄 알고, 그렇기에 부패하는 귀족들이 생기는 것일 뿐.

그 모두가 류드라 같은 악덕귀족인 건 아니란 말이다.

"사실 고자짓 하는 것도 다 연기지~? 그렇지 않고서야 또 여자를 꿰일 리가 없잖아~~ 이번에는 또 뭐냐. 그 파란 피부? 귀도 뾰족하고……."

"야야, 인종차별은 하지 마라. 아무리 코델리아가 벽외 출신이라도 제국에서 자랐는데……."

"인종차별 한 적 없어! 그냥 네가 조슬 조때로 놀리니까! 내가 이케 막 술까지 마시면서 훈계 하는 거자나! 근데 그렇게 이 여자 저 여자 후리면서 왜 나한테는 안 해? 대체 왜!?"

"…뭐?"

"으에에에에에에에엥!!!"

급기야 훌쩍임은 서러운 울음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아니, 거기서도 모자라 바닥에 대짜로 뻗은 채 외쳐대고 있다. 마치 시장가의 중심에서 장난감을 사달라 징징대는 어린애처럼.

"셰인 골드리안은 바보야아! 구라쟁이! 말미잘! 해파리! 제국의 수치! 쓰레기! 흐에엥!!"

"……에휴."

셰인이 제 얼굴을 움켜쥐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메어리의 체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일까?

땡깡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잠들어버렸고, 머지않아 그런 메어리를 부축하기 위해 사제들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아직 정식 사제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저희가 방에 가서 재울게요."

"아 네……. 고생하세요."

이내 사제들이 등을 돌렸을 무렵, 셰인이 제 앞의 성수병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여간 쟤는 신성력을 각성해도 저 모양이냐."

그렇게 날뛰었음에도 신성력은 멀쩡히 나오는 상태.

그런 걸 보면 교단에서 말하는 올바름이란 게 무엇인지, 그 경계선이 애매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저 정도가 허용선이라도 자신이 신앙이라는 걸 가질 일은 평생 없겠지만.

'…조금 둘러볼까.'

평소라면 책이라도 보다 잤겠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술을 마시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타입이었다.

도수가 낮은 성수라곤 하나 알콜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내일이면 원정대의 목적인 벽외 주둔지에 도착하기도 하니, 기분전환 겸 바닷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진 않다 생각되었다.

'가끔은 나쁘지 않겠지.'

밤하늘도 좋고, 바람도 상쾌하며, 파도도 잔잔하다.

야외나 선실 내부의 복도를 거닐며 마주하는 것은 익숙한 사람들.

술자리를 가지던 중, 셰인을 마주한 선원과 군인들이 하나같이 반가움을 토로하였다.

"아, 선생님. 같이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진 못했거든요."

"아, 참참. 그랬었지."

"가끔 까먹는다니까. 하하!"

농담하듯 흘려 넘겼지만, 그렇게 떠나가는 셰인을 보는 눈엔 종종 경의와 선망이 보이고는 하였다.

어린 나이에도 여럿 성과를 이룩했으니 당연할까?

하물며 코델리아가 자신에 대한 찬사까지 남겼기에, 이 배에서 그가 가진 위상은 더욱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인 코델리아는 현재 전문 마법사들과 어울려 지내는 상태.

"이전에 했던 그 마력포 말인데. 대체 어떤 원리로 이루어진 겐가?"

"매직미사일을 그렇게 쓰다니. 잘만 운용하면 공격수들에게도 정식으로 채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조언을 해줄 수 있겠나?"

하나하나가 영지군에선 내로라하는 마법사들.

그런 이들이 자신을 격찬하는 게 어색한 듯, 코델리아가 잔뜩 긴장하며 시선을 회피해되었다.

"아, 아뇨. 오히려 배워야 할 건 제 쪽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문득 근처를 지나는 셰인과 코델리아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 코델리아에게 슬쩍 손을 흔들어주니, 그것만으로 긴장이 누그러진 듯 코델리아의 몸에서 떨림이 잦아들었다.

"괜찮다면,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지 않겠습니까?"

"물론이고말고. 자, 이쪽으로 오시게나."

이후 마법사들이 코델리아와 함께 선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똑 부러지고 어른스러운 면이 있는 아이니까.

서로 다른 마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게 불안하지만, 그것도 이단의 영지라는 비상식적인 공간에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일 것이다.

'이젠 내가 없어도 되겠지.'

흐뭇이 쳐다보던 셰인이 코델리아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 후로 또 얼마나 배를 누볐을까, 문득 익숙한 사람을 한 명 마주하게 되었다.

배의 뒤편에 위치한 공간에서 선 노인.

노트를 손에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건, 케이미의 스승이자 셰인의 후견인인 파라켈쿠스였다.

"아, 셰인인가?"

"아 네, 파라켈쿠스 씨……. 오랜만에 뵙네요."

"하긴, 같은 배에 있었는데도 볼 일이 없긴 했지."

셰인도 그도 일단은 학자니까.

선장의 지시를 수행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방에서 연구를 하느라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런 그가 밖으로 나온 건 의외라 여겨지는 일이었다.

"뭘 하고 계신 건가요?"

"밤하늘을 보고 있지."

"아, 그러고 보니 천문학을 연구하신다고……."

천문학.

하늘의 별을 관측하고, 그 기록을 통해 하늘의 움직임을 분석해내는 학문을 일컫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셰인과는 연이 없는 학문이었다.

공학조차도 기계를 신체로 대체하는 등으로 의료와 엮었지만, 저 하늘의 별을 알아간다는 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으니까.

'근데 그건 연금술도 마찬가지 아닌가?'

파라켈쿠스는 저명한 연금술사.

영지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전공분야는 화학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영지에 오고부턴 천문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였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존중만 하고 각자 할 일이나 열심히 하자, 하며 넘길 뿐.

이번에도 대강 그런 식으로 넘기려 했을 무렵, 누군가가 파라켈쿠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교수님. 여기 가져왔어요."

"아 그래, 고맙다."

지도와 서적 등을 다가온 이에게서 건네받은 파라켈쿠스.

그자는 셰인에겐 굉장히 익숙히 여겨지는 자였다.

"……셰인?"

수행원 베르디.

그녀 역시 의외인 듯 셰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베르디, 네가 왜 파라켈쿠스 씨와……."

"내 허리가 쑤시다고 말하니 그 아이가 수발을 자처했지. 나는 몇 번이고 필요 없다 말했다만……."

말꼬리를 흐리며 베르디를 돌아보는 파라켈쿠스.

배에서 할 일을 찾아 헤매던 베르디에게 도움을 받은 듯 했지만, 정작 그의 얼굴에 생긴 건 곤란함이었다.

"또 시키실 일은 없나요?"

"아니, 이제 도움은 충분하니 됐다. 나는 당분간 여기서 별을 관찰할 테니, 너는 셰인과 함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하거라."

그렇게 파라켈쿠스가 하늘의 관측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베르디가 그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셰인을 쳐다보았다.

아주 물끄러미.

셰인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자릴 좀 옮길까?"

* * *

배의 측면에 위치한 야외 복도.

별다른 장애물 없이 탁 트인 장소로, 경치를 감상하거나 망을 보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곳의 난간에 기댄 채 망망대해를 쳐다보고 있을 무렵, 베르디가 슬쩍 셰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사탕은 안 주시는 건가요?"

"아, 미안. 이번 원정에선 만들어둔 게 없네."

"……."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베르디.

늘 주던 게 없어지니 허전한 듯 했다. 혹시나 싶어 물었다.

"꽤 마음에 들었나봐?"

"…싫어해요."

"내가 싫다는 거지?"

"아뇨, 셰인이……."

습관적인 대답이 턱 막혀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리니, 베르디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려 버렸다.

"화났어?"

"화 안 났어요."

"화 난 거 같은데……."

"화 안 났어요."

"…미안해."

"사과하지 마세요."

토라진 듯 번복해 말하면서도 차마 심한 말은 하지 못하는 소녀.

평소다운 모습이다, 생각한 셰인이 마저 바다에 그려진 별자리를 응시해갔다.

말문이 열린 건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우리가 만난 지 벌써 4년 정도 됐나?"

"……그렇죠."

"짧았네. 4년."

"전 길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밖에.

셰인에겐 반백년이 넘는 인생 중 일부일 뿐이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에겐 인생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나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베르디는 여전히 처음 마주했을 때의 모습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학적이고, 고독하고…….

그렇기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모습.

그럼에도 섣불리 손을 뻗을 수가 없는 건, 경솔히 건드렸다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처음 만났을 때 그런 말을 했던 것인지.'

그 사소한 거 하나 묻지 못한 채, 어영부영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셰인."

다가설 수 없으니 하다못해, 지금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이 소녀가 스스로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렸다.

"듣고 싶으신가요?"

그 시기가 찾아왔다고.

셰인은 이 순간, 자신을 돌아보는 베르디의 말을 들으며 그 사실을 직감하였다.

"제가 왜, 블레이즈 영지에 죽으러 왔다 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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