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90화
삐걱, 삐걱.
선체의 흔들림에 요동치는 방.
그 요동에 휘둘리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메어리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힘겨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 뭐야. 무슨 일이야……?"
어지러운 정신으로나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마지막 기억은 술을 마셨을 때. 하지만 성수를 입에 댄 후부터는 어째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사람만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
'서, 설마 그 녀석.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걸 탄 거 아니지? 자는 사이에 이상한 짓을 했다거나…….'
당사자가 듣는다면 변호사를 고용할 정도의 오해였다.
그런 자각도 없이 메어리가 몸을 둘러보았지만, 그마저도 주변이 너무 어둡기에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창밖에서 비춰야 할 희미한 달빛조차도 보이지 않기에.
"뭐야, 창밖은 또 왜 이리 어두운……."
-쿵.
의문을 느끼는 때에 선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몸을 움츠린 메어리가 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누, 누구세요?"
-쿵, 쿵. 쿵.
대답을 대신하는 두드림.
손이 아니라 어깨를 이용해 들이받는 것 같다.
불길함을 느낀 메어리가 문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섰다.
"저, 저기……."
-쾅!!
갑작스러운 충돌.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한 문이 쓰러지고, 그와 함께 사람 한 명이 방 안에 난입해왔다.
아니, 사람이 아니다.
깡마르고 썩어문드러진 신체.
몸 곳곳에선 희미하게 검은 아우라가 치솟고 있다.
언데드.
분명 그렇게 정의될 존재다.
"꺄아악!"
이윽고 언데드가 입을 벌리며 달려든 때, 메어리 또한 비명을 지르며 언데드에게 손찌검을 날렸다.
콰득!
볼을 얻어맞고 뜯겨져나가는 머리통.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을 내려다본 메어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 무…… 어?"
주먹으로 사람의 머리통을 날리다니.
아무리 상대가 시체꼴이라도 그런 게 정녕 가능한 일일까?
'아, 아니. 언데드라면 괜찮을 거야. 확실히 언데드는 신성력에 취약하다 들었으니까.'
부정한 존재를 성스러운 힘으로 멸한다는 건 성경에도 나오는 이야기.
그러니 신성력을 보유한 자신이 언데드를 쓰러트린 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시 여겨야 할 건, 언데드가 왜 뜬금없이 배에서 튀어 나오는지에 대해서다.
-딱, 딱, 딱.
의구심을 해소하려는 가운데, 바닥에 떨어진 언데드의 머리통이 홀로 이빨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히익! 뭐야 이거! 몸이랑 떨어졌는데 어떻게 말을 하는 건데!?"
아무리 머리를 부수지 않는 한 끝 없이 움직이는 게 언데드라지만, 정작 그 머리의 활동을 유지시켜주는 몸과 분리된 상태였다.
그런 마당에 의식을 유지하는 것도 모자라 숨소리까지 내다니.
-캬아악!!
……아니, 지금은 머리가 끊어진 언데드에게 반응할 때가 아니다.
복도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보이는 희미한 그림자……. 분명 언데드일 것이다.
아직 자신을 눈치 채지 못한 듯하지만, 이대로 방에만 박혀있으면 또 이전처럼 자신을 쫓아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 해.'
자신의 안전도 신경 써야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이 된다.
이후 방을 빠져나온 메어리가 복도를 거닐며 선실의 문들을 하나 둘 씩 열어젖혔다.
"누, 누구 없어요? 아무도 없나요?"
행여나 언데드들이 몰려올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속삭이며.
하지만 그런 소리에 반응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뭣보다 주변이 어두워 뭐가 있는지도 보이질 않는다.
"주, 주님, 부디 길을 밝혀주세요……."
양 손을 맞잡으며 기도문을 외우는 메어리.
곧 그녀의 몸에서 새어나온 미약한 빛이 어두운 복도를 밝혀주었지만, 정작 눈에 들어온 건 복도 한 편이 피칠갑이 된 관경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그림자는 살덩어리일까?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굳이 이런 곳에 가고 싶지도 않다.
그런 혐오감을 느끼며 발걸음을 돌리려는 것도 잠시.
"사, 살려…. 주어어……."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피가 가득한 복도의, 그와 이어진 선실 중 한 곳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목소리에 쇠약함이 묻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위험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망할……. 이러면 그냥 갈 수 없잖아!'
깊게 한숨을 내쉰 메어리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현장으로 돌아갔다.
구둣발에 밟히는 끈적이는 감촉을 무시하며.
그렇게 빛을 비추며 나아간 끝에 도착한 방에, 메어리가 슬며시 고개만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저기, 괜찮은……."
-쩌접.
대답을 대신해 돌아오는 섬뜩한 소리.
고기를 씹는 소리였다.
"……."
메어리가 말없이 방을 살폈다.
충격에 의해 무너진 문.
방 곳곳의 가구는 무너져 있으며, 입구 부근엔 손도끼 한 자루가 떨어져 있었다.
무기보단 비상 탈출용으로 쓰이는 도구다.
그 도끼에 묻어난 검은 자국은 피일까?
"아……."
반사적으로 내뱉은 탄성.
그와 함께 방구석에서 살을 씹어 먹는 거인이 메어리를 돌아보았다.
선혈과 살점으로 얼룩진 입.
그와 함께 번뜩인 눈동자가 검은 아우라 속에서도 붉은 빛을 띠었다.
-……사, 사르…….
그 존재가 살점이 묻은 입을 벌리며 말했다.
-살르, 려줘어어…….
아니, 말이 아니라 흉내다.
상대는 언데드.
본래 있던 혼은 이미 이승을 떠난 지 오래이며, 그들의 모든 행동은 살아생전의 활동을 반복할 뿐인 것이다.
지금의 발언도 그저 살아있을 적에 목숨을 갈구했던……. 그런 안쓰러운 흔적일 뿐.
-살려주어어어…….
그런 안타까운 존재가 처량히 발걸음을 옮겨오는 가운데, 바닥에 쓰러진 자의 얼굴에 메어리의 시선이 미쳤다.
치료를 할 때 작업을 걸어왔던 용병이었다.
방정맞고 난폭하지만, 그래도 이 배를 지키고자 언제나 사지로 나서고자 했던 용기 있던 사람.
그런 이의 탁한 눈동자가 이 순간 메어리에게 향해져 있었다.
'왜…….'
언데드들이 처들어오고, 아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아마도 그런 일들이 이 배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지나온 길에서 본 유혈만으로도 거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그 의문에 답을 해줄 자는 공교롭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초에 위험한 항해였고, 언제 문제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만 알 뿐.
그래, 지금의 이건…….
그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지금 일어난 것에 불과한 일이다.
그것을 자각한 메어리의 손이 이내 바닥으로 향해졌다.
-살려…….
"…주여."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도끼가 손에 쥐어진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눈을 감은 그녀의 마음속엔 오히려 냉정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 당신의 시련을 받아들이나이다."
손에 쥔 도끼 역시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자신의 입장과 현 상황을 저울질하며 행동한 결과.
"제 그대에게 무한한 사랑을 표할 것을 허락하되, 그대는 저를 위한 사랑을 표현하지 마소서. 그대를 향한 마음은 저의 것이나, 그대의 자비는 모두를 위한 것이니……."
의지할 사람도 없고, 재액을 마주한 건 오직 자신뿐.
죽음의 두려움조차 신앙을 통해 극복을 해야 하는 것이 신자라고는 하나, 그건 어찌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며 체념을 갈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한, 그 순간에 꺾이지 않을 용기를 가지기 위한 것이다.
"허나 그 순리를 거스르는, 부정한 존재에게 장례를 치르는 것만은 허락해 주소서."
하물며 저들이 인간이 아닌 송장이라면.
그 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장송을 치러야 한다.
그걸 위해 손을 더럽히는 걸 마다해선 안 될 터이다.
"부디, 이 부정한 자를 정화하는 이 순간만은, 이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허락해주기를!!"
희생자를 추모하며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그것을 위해 손도끼를 머리 위까지 치켜 올린 순간.
-타앙!!
배후에서부터 들려온 폭음.
그와 함께 옆을 스쳐지나간 무언가가 언데드의 미간을 꿰뚫었다.
그으으…….
적중한 언데드는 숨소리만을 흘리다 절명하였다.
자신보다 몇 배는 더 큰 거구가 무색하게도 부질없이.
"무, 무슨……."
-철컥.
당혹을 느끼는 가운데, 뒤에서부터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티잉.
노리쇠를 당기며 빠진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역시.
그 소리가 언데드보다도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몸을 부르르 떠는 가운데, 메어리의 배후에 선 누군가가 말을 건네어왔다.
"메어리."
익숙한 목소리.
거기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눈에 들어온 건,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얼굴이었다.
"괜찮으세요?"
베르디 하트리스.
아직 자신과 달리 신성력을 각성하지 못한 수행원.
그럼에도 그 얼굴엔 한 점의 공포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왜……."
그 태연함은 손에 쥐어진 무기 때문인가?
"왜, 네가……. 그걸 들고 있는 거야?"
소총.
영지군에서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적들에 대비하고,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병사들을 전력으로 삼고자 제식병기로 채택한 무기다.
교단에 속한 자가 들어선 안 될……. 그런 무기를 지금 제 앞의 소녀가 들고 있었다.
"……."
베르디가 말없이 제 손의 총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메어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이해한 듯이.
그럼에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은 건, 그것을 쥔 것 자체가 그녀의 의지이기 때문이었다.
-크르륵, 캬하악!
이런 상황에.
손에서 총을 놓는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으니까.
"일단 여길 벗어나죠. 제가 길을 열어드릴게요."
"기, 길을 열다니……."
-타앙!
답하기 무섭게 뿜어져 나오는 불길.
그 총격에 언데드 한 마리의 몸이 쓰러졌지만, 베르디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재차 방아쇠를 당겼다.
쏘아진 총탄은 예외 없이 미간에 적중. 방아쇠를 한 번 당길 때마다 언데드들의 목숨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숨을 꿀꺽 삼킨 메어리가, 바닥에 쓰러진 좀비들을 지나치며 힘겨이 물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검은 안개가 밀려왔어요."
"검은 안개라니?"
"이전 원정대가 보내온 쪽지에 적혀있던 문구의 얘기예요. 언데드들은 그와 함께 나타난 유령선에서 몰려온 것들이고……."
현재 배 안에 안전한 곳이라곤 극히 적다.
거주지역은 물론 창고도 갑판도 바다에서부터 기어오르고, 벽을 부수고 들어온 언데드들로 가득한 상태.
심지어 그들은 약탈을 목적으로 한 해적이나, 위장을 목적으로 한 괴수와 달리 의식조차도 없다.
즉, 배가 가라앉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날뛴다는 것이다.
"일단 마력엔진이 가동될 때까지 버티는 게 우선이에요. 모두 반대쪽 선실로 대피했으니……."
-캬아악!!
설명을 이어가던 중 측면의 문이 붕괴되었다.
배의 밖에서부터 벽을 부수고 침투해온 언데드가, 선실의 문을 박차고 나타난 것이다.
그 돌발적인 기습에도 베르디는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침착하게 총의 개머리판으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제 소매에서부터 무언가를 꺼내 겨누었다.
소드 오프 샷건.
산탄총의 총열과 손잡이를 잘라, 권총 크기로 줄여낸 산탄총이다.
-퍼엉! 퍼엉!
그 총이 연이어 격발하며 전방과 측면, 두 방향에서 나타난 언데드를 모두 찢어발겼다.
이후 품에서 탄환을 꺼낸 베르디가 그것을 총열이 열린 산탄총에 삽입하고, 그대로 방아쇠에 건 손가락을 능숙히 돌렸다.
-휘리릭! 철컥.
장전에 두 손조차 쓰지 않는 능숙한 손놀림.
그 직후 다시금 이루어진 격발에, 멀리서 다가오는 적들은 접근도 하지 못한 채 맥없이 쓰러져갔다.
"…미."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메어리가 몸을 파르르 떨며 숨을 삼켰다.
사격을 가하던 베르디가 잠시 손짓을 멈추었다.
"…미쳤어."
"무슨 말씀을……."
"미쳤어, 미쳤다고! 교단에 속했으면서 비밀리에 총을 쓰는 법을 연마하고!!"
총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 무기가 제국으로 유입되지 않는 한, 영지군에서 제식병기로 쓰는 것 정도는 그녀도 뭐라 간섭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교단에 속한 자는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 교리란 절대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것.
그건 교단의 영향력이 적은 벽외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교단에 속했으면 총을 다루는 법을 연마하다니, 넌 자기가 수행원이라는 자각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베르디가 개의치 않고 탄창에 총알을 집어넣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니……."
"이런 식으로 제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철컥.
총이 장전되고.
그 총이 다시 전방의 복도로 겨누어졌다.
저 암흑 속에서, 자신들의 영혼을 탐하는 부정한 존재들을 향해.
"그 때처럼, 제가 범하게 될 죄를, 다른 사람이 떠안게 될 테니까."
그렇게 겨누어진 총의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엔 망설임은 지워져 있었다.
4년 전.
그 날 자신을 대신해 총을 쥐었던 이들처럼.
-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