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91화 (91/255)

의무병의 환생 91화

비극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부모와 헤어지고, 영문도 모른 채로 불태워지는 고향을 떠나 낯선 장소에서 살아갈 것을 강요받았다.

그 생활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행복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자상한 어른들과 천진난만한 아이들.

과하게 장난을 거는 자도 있었지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 그 괴롭힘을 막아주었다.

어느덧 그 아이들과도 친해졌다. 그들과 어울려 지내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 행복이 그저 또 다른 비극을 위한 거름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 못한 채…….

그 암실을 벗어난 후에도, 소녀는 자신을 동정하는 세상으로 하여금 비극의 굴레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굴레를 원치 않는다면.

제 손으로 그 사슬을 끊어내고자 발악해야하지 않겠는가?

* * *

"……예전에 기억나세요?"

침범이 잦아들었을 무렵, 어두운 선내의 복도를 거니는 베르디가 메어리에게 자신의 기억을 거론하였다.

"메어리가 저를 마녀라고 불렀을 때요. 그 때 아이들과 함께 저를 창고로 데리고 왔었죠."

어린 날의 치부였다.

그걸 지금 거론한 건 원망을 토로하기 위해서인가?

공교롭게도 그런 감정을 토로하고 싶은 건 메어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란사 사제님이 살려준 목숨으로 하는 게 금기를 저지르는 거라고?"

"그 분처럼 제 주변에 있는 분들께서 희생하는 건 잘못되었다 생각하니까요."

자신을 위해 몸을 던지면서도, 죽어가는 스스로를 대신해 지키고자 하는 이를 타일렀던 사람.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진 자를 마주했다면, 누구라도 당시에 살아남았던 건 그였다 말을 할 것이다.

"저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라고 있어요. 가능하면 이 몸을 던져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늘은 무정하게도,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수단마저 빼앗으며 죄를 범하길 반복했다.

제 앞에 있는 아이를 동정하기에, 그 아이가 더 이상 죄를 쌓는 것마저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순교자가 되길 자처한 이들을, 죄책에 시달리는 소녀가 어찌 방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금기를 저지른다면, 그들도 저를 지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겠죠. 그 때처럼 저를 위해 몸을 던지려 하진 않을 거예요."

"그런 이유로……."

"처음부터 이래야 했어요."

발끈하며 소리치려는 말이 단호한 말에 삼켜졌다.

"진작……. 제가 구제받아선 안 될 존재라는 걸 모두에게 가르쳐줘야만 했어요."

교단에서 말하는 빛을 거머쥐어선 안 될 존재임을 주장한다.

손에 쥔 총이 그 각오의 표현이었다.

죄를 범한 자신이 교단의 구제를 바라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주되.

그 총구를 결코 그들에게로 겨누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지만……."

"그 사실을 셰인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뭐라 답하려던 메어리의 숨이 멈춰졌다.

"……뭐?"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은 바로 질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순간.

총을 내려다보는 베르디의 얼굴에 그려진 감정이,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보였으니까.

"셰인을 보고 깨달았다고 했어요. 이렇게 손을 더럽히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걸."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녀석을 보고 왜……."

"그야, 셰인도 세간에선 저처럼 죄인이라 불리는 사람이잖아요?"

총을 쓰다듬는 손길에 정성이 어려 간다.

그 손짓은 누구를 투영하기에 취할 수 있는 것인가.

누구를 투영하기에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저와 달라요."

그래, 베르디는…….

"처음에는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그를 인정하고 있어요. 죄를 범했음에도 세상이 그를 받아들여준 거예요."

베르디는 웃고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그려진 황홀감.

창밖에서 비추는 천둥의 빛에 일순간 홍조가 비춘 듯하였다.

"그런 그를 보면서 생각했죠. 그래, 이런 방법도 있구나, 죄를 범하고도, 이렇게 떳떳해질 수 있는 거구나, 라고."

희열, 존경, 우정, 사랑…….

그런 '인간'을 향한 감정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감정이지만, 자신과 같은 신자라면 누구나 익숙히 여길 감정이다.

신을 섬기는 자가 끝내 빛을 받아들였을 때.

베르디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런 것이었다.

"이미 더렵혀진 사람이라면, 대의를 위해 손을 더럽히는 걸 마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베르디 하트리스는 셰인 골드리안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제껏 감춰져 있던 소녀의 속마음.

상처 받은 어린 소녀가 동경하는 사람을 찾아내며 각성한, 우상에 대한 애틋한 감정.

그 감정에 충실해지며 '필요악'으로 전락하는 것이야말로, 이제껏 삶을 고통이라 여겨온 소녀가 찾아낸 구원이었다.

"그래요, 이게 정답이었던 거예요. 이렇게 하면……. 더 이상 아무도 저를 위해 몸을 던지진 않을 테니까."

이미 더럽혀진 것을 씻기란 어렵지만, 그걸 더욱 더럽히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그리고 세상은 누군가가 그런 책임을 짊어지길 바란다.

누구 한 명이 그 책임을 짊어짐으로써, 대부분의 사람이 깨끗이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틀렸다면 블레이즈 영지라는 이단이 허락되는 땅이 생기지도, 이단의 문화를 지향하는 소년이 모두의 존경을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 오히려 누군가는, 그 사람처럼 저의 존재를 긍정해줄 지도 몰라요."

설령 이 손에 빛을 거머쥐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동경하는 그 사람처럼.

이런 죄인이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괜찮아요, 메어리.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이런 위기가 덮쳐온다 해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것이 빛을 거머쥐지 못한 소녀가 새로이 찾아낸 또 다른 빛.

그 빛을 길잡이로 삼길 택한 소녀의 입가에, 이제껏 본 적 없는 미소가 선명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평소처럼 해주세요.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저와 같은 사람들이 당신들을 대신해 손을 더럽힌다면……."

-쿵!

그 미소가 등이 벽에 충돌하며 사그라졌다.

시선이 밑으로 향해졌을 때, 제 멱살을 쥐고 있는 여린 여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말도……."

메어리.

그녀의 표정이 험상궂게 우그러져 있었다.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마치 자신의 각오와 깨달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그걸……. 지금 나한테 공감해달라고 떠드는 거야? 지금 네가 한 말이…….

"메어리……."

"나 같은 신자들에게 얼마나 모욕적으로 들리는지도 모르면서, 대체 뭘 깨달았다는 듯이 주절대고 있는 건데!?"

메어리는.

이 소녀가 어떤 비극을 겪었는지 모른다.

경솔하게 그를 핍박한 적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행동은 잘못되었을지언정 마음만은 옳았다고.

그런 무지한 시절의 치부를 반성하고 마음을 유지해왔기에, 메어리는 비로소 신성력을 각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현재.

메어리는 그때와 달리, 진심으로 눈앞에 있는 자에게 혐오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가 필요악을 자처한다는 거야……."

스스로를 악이라고 멋대로 규정하며.

"그런 걸 왜 네가 멋대로 정하는데. 네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는 주제에!"

그런 길을 스스로가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는 녀석이, 신실함을 추구하는 메어리에겐 더 없이 역겹게만 느껴졌기에.

아니, 그보다도 더 화가 나는 건 이런 선택을 한 계기가 다름 아닌 '그 녀석'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됐잖아. 그 녀석이 너와 같다는 것부터가 잘못됐다고!"

"잘못, 되었다니……."

"그 녀석은……. 그래도 자기가 뭘 저지르는지 알고 있어! 언제 어느 때에나 자기 행동에 신념을 담고 있다고!"

그가 집필한 책을 몇 번이고 읽어왔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가 고수하는 신념은 분명 올곧다는 걸.

그 신념은 분명 이 세계가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하지만 그 신념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결코 이 시대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

그것을 알기에 메어리는, 자신이 그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던 것이다.

자신이 눈여겨 본 고결한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그 시도가 하나같이 잘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이단의 문화를 그만두었으면 한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뭐…? 그 녀석처럼 되고 싶다고?"

눈앞에 있는 자가 그에게서 빛을 본 때, 메어리는 그 발밑에 자리한 끝없는 공허를 보았다.

한 번 추락하면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는 그런 절벽을.

그런 절벽의 위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소년을, 그를 회유해 자신이 디딘 땅으로 안내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렇게 결심한 자신이 어찌 이 소녀를 방관할 수 있을까?

"넌, 그 녀석이 얼마나 많은 걸 짊어지는지 헤아려본 적 있어?"

이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무런 신념도 없이, 그 위태로운 길에 동참하겠다는 이 소녀를 어찌 가만히 두고 볼 수 있단 말인가?

"했을 리가 없지. 자기애 하나 없는 녀석이 책임 같은 걸 느껴봤을 리 없을 테니까!"

타의에 의한 죄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넣어가면서 속죄해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자학감에 찌들어 있으니까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그런 너라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봤으면서……. 왜 그 동경심을 너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해선 쏟아 붓지 못하는 건데!?"

"메어리……."

"그러니까 제발 그런 이유로 너를 몰아넣지 마. 너는 나나 레온보다도 더 열심히……."

-쿠궁!!!

거센 진동.

그와 함께 그들이 있는 지역이 비틀거리고, 동시에 반대쪽의 벽이 함몰되며 빛이 터져 나왔다.

"무, 무슨……."

빛을 쫓아 움직이는 고개.

시야에 들어온 건 외벽을 부수고 들어온 언데드…….

아니,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다. 그 몸체 곳곳에는 두터운 촉수들이 돋아나 있다.

-쿠르르, 카하악!!

그 괴물이 배 밖에서부터 촉수를 휘둘러왔다.

공격을 피한다 해도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요란하게 울리는 선체. 그와 함께 기울어지는 배에 두 사람의 균형을 위태로워졌다.

"아……!"

바닥이 기울어짐과 동시에 쓰러지는 메어리의 몸.

그 순간 미끄러지는 장소의 벽이 갈라지고, 그것을 확인한 베르디가 총마저 내던지며 메어리에게 뛰어갔다.

총성이 울려 퍼진 건 그 순간.

-타타탕!

갑판에서부터 쏟아지는 총탄 세례에, 배의 표면에 달라붙은 촉수의 언데드가 벌집이 되어 추락했다.

"됐어! 쓰러트렸어!"

"아니, 잠깐……. 사람이 떨어지고 있어! 빨리 밧줄 내려!"

"비 때문에 미끄러워서 내리나 마나야! 직접 끌어올려야 돼!!"

"하지만 갑판에도 아직 언데드들이……."

갑판 위에서의 소란스러움.

하지만 거기에 귀를 기울일 새 따윈 없었다.

갈라진 벽의 틈새를 통해 떨어지는 베르디도, 그를 양 손으로 부여잡고 있는 메어리도.

분명 위기에 처한 건 메어리였지만, 당겼을 때의 반작용으로 인해 서로의 위치는 역전되어 있었다.

"놓지 마……."

벽에 하체를 메어리가 베르디의 손을 거세게 틀어쥐었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고 있다.

적셔진 손이 차차 미끄러져가는 게 느껴졌다.

"제발……!"

뭣보다도 베르디 본인이 손가락을 굽힐 의지가 없었다.

그저 서서히 미끄러져가는 손을 보며 미소를 지을 뿐.

"아뇨, 이걸로 됐어요."

"되긴 뭐가 돼!!"

"구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당신과 같은 신자가 될 수 없으니까."

"신자가 아니면 다 죽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모든 제국민이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

신도들을 관망하기만 하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올곧은 신념을 발휘하는 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하다못해 이 소녀를 그런 길로 이끌어야 한다.

방향이 그릇된 신념을 가벼운 마음으로 흉내 내는 게, 얼마나 스스로를 비참히 만드는지를 가르쳐줘야만 한다.

"……당신은 저를 구제할 수 없어요."

그 고결한 이상을 읽었음에도 베르디는 손을 내치고자 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손을 놓지 않으면.

자신이 동경하는 또 하나의 빛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걸.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난, 나는……."

하지만 메어리는 그 감정을 헤아려줄 수 없었다.

아직 이 아이에 대한 사정도 제대로 듣지 못했거늘.

그런 상태에선 무엇을 말하건 마음에 닿지 않을 텐데.

그런 올바른 조언을 할 기회조차 거머쥔 적이 없는데 포기하라니…….

"당신은 절 구하지 못해요."

그건 올곧음을 지향하는 신자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저와 같은 일을 겪게 될 아이들을 구해줄 순 있을 테니까."

'신이어, 제발…….'

"그러니 놓아주세요. 당신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야 할 의무가 있잖아요."

'제발 나에게 무력함을 주지 말아주세요. 나에게 이런 절망을 주지 마세요.'

상반된 절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메어리가 더욱이 손에 힘을 실어 넣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신이 모두를 사랑한다 할지언정, 모두를 사랑하기에 그 누구도 특별히 여길 수 없다는 걸.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축복받는다 해도, 그 축복받은 이들 간의 운명이 교차되는 것만은 어찌 할 수 없다.

그로부터 벌어지는 재액과 사건, 분쟁과 악의…….

순리라 부르는 그 모든 것을 거스를 수 없으니, 인간은 살아가며 겪을 모든 부조리를 시련이라 여겨야 한다.

언제가 됐건 그것을 인내로 극복해야 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그것이 신앙을 품은 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기껏 해봐야 18살의 여자아이.

'……이런 건, 못 버텨.'

아직 경험이 많지 않고, 그렇기에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이 커져가는 것을 억누를 수 없다.

자신의 손으로 제 앞의 사람마저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줄곧 옳다고 믿어온 신앙이 무너져가는 것을 느낀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그렇기에 기도한다.

'이 애를……. 구해줘.'

신이 아닌 인간에게…….

버려진 자에게 손을 뻗을 수 없는 신을 대신해줄, 이 땅에 함께 두 발을 붙이고 사는 누군가에게 구원을 갈구한다.

"베르디!!"

그 직후 갑판 위에서부터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빗물에 미끄러워진 손아귀를 대신하듯 한 그림자가 베르디의 뒤를 쫓았다.

찰나의 순간 메어리는 그 자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아."

아주 잠깐.

그 자와 눈을 마주친 순간 입밖으로 탄성이 내뱉어지고.

그 뒤를 이어 대찬 파도의 중심에 두 개의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자신이 동경하고, 때로는 질투마저 느꼈던 '두 개의 빛'이 가라앉으며 생긴…….

그런 묘비와 같은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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